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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59화 (359/687)

359화

흑마법사들이 묘지 근처에서 머무르는 건 묘지를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일부 특이한 흑마법사들은 묘지를 좋아하긴 했지만, 굳이 따뜻하고 안락한 벽난로를 두고 춥고 음침한 묘지를 고르는 마법사는 드물었다.

흑마법사들이 묘지 근처에서 머무르는 건 그게 흑마법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기운에 익숙해짐으로서 언데드 소환수들과 친숙해질 수도 있고, 각종 흑마법에 추가적인 마력을 얻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남들 눈치 안 보고 마법 실험 할 수 있고...

...사실 마지막 이유가 상당히 중요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흑마법사들이 옆집에서 연구를 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심지어 흑마법사 본인들도 자기 저택 안뜰에서는 연구하고 싶지 않아했다.

온갖 독이 화초에 뿌려지고 언데드들이 잔디를 짓밟고 걸어가면, 아무리 아름다운 안뜰이라도 묘지로 변하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명망 있고 역사 깊은 대가문의 저택이라면 더더욱 그런...

“아. 선배 오셨습니까?”

저택 앞 정원에서 언데드들을 통제하고 있던 이한은 디레트를 보고 반가워했다.

언데드들은 느릿하고 어색한 동작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걸 본 디레트는 깜짝 놀랐다.

‘그 사이에 이렇게나?!’

이한이 언데드 조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고작 1학년 학생이 고전 흑마법 스타일로 언데드를 조종하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저렇게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어떻게 움직이게 한 거지?”

“아. 아직 멀었습니다. 원래라면 세련되게 움직여야 하는데...”

원래 세련된 정석은 수십, 수백 가지의 명령을 하나로 정교하게 엮어내는 거였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걷는 건 숨쉬듯 쉬운 일이었지만 아무런 의사가 없는 스켈레톤 전사를 걷게 하는 건 ‘발바닥뼈에 힘을 줘라’, ‘종아리뼈에 힘을 줘라’ ‘넓적다리뼈로 전달시켜라’ 등등 세밀한 지시 수십 수백 개가 필요했다.

물론 이걸 다 일일이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마법사는 이 수십, 수백 가지의 명령을 하나로 엮어내서 ‘걸어라’라고 명령할 수 있어야 했다.

그 온갖 복잡한 마력 흐름과 이해는 절대 1학년 학생이 시행착오로 얻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경험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이한은 편법을 동원했다.

“그냥 마력을 더 불어넣었습니다.”

“...!”

세밀한 지시를 하나하나 하는 대신, ‘걸어라’라는 명령을 엄청나게 강한 마력으로 퍼붓는다.

물론 효과는 처참했다.

실제로 언데드들은 엄청나게 느렸으니까.

세밀한 지시를 하나씩 했다면 훨씬 더 빨랐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움직였다는 점이었다.

한 번 움직이게 만든 이상 반복하면서 감각적으로 적응해나가는 게 가능했다. 심지어 저 후배는 저런 말도 안 되는 낭비를 해도 마력이 남아돌지 않는가.

명령 하나하나를 계산해가면서 뇌를 혹사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길일지도 몰랐다.

“아주 좋은 방법인데?”

“선배...”

이한은 살짝 상처받은 표정으로 디레트를 쳐다보았다. 디레트는 당황했다.

“왜?”

“제가 바보도 아니고 마음에 없는 말을 못 알아듣겠습니까. 그렇게 억지로 칭찬 안 해주셔도 됩니다.”

“아니... 야!”

디레트는 매우 억울해졌다.

물론 무식한 방법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아서 좋다고 해준 건데 이 후배가!

“아니라니까!”

“예. 선배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자신을 ‘권위로 후배를 누르는 못된 선배’로 만드는 후배의 말에 디레트는 억울해서 날개를 떨었다.

그러는 사이 이한은 디레트가 갖고 온 짐을 뺏어들었다.

“제가 들어드리겠습니다. 이건 뭡니까?”

“아. 그 방문 선물...”

이한은 상자 안을 힐끗 쳐다보았다. 정체불명의 뼈가 가득 들어있었다.

마력을 더듬어보자 사이한 음(陰)의 마력이 물씬 느껴졌다.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선배. 이런 선물을 받게 될 줄이야...”

“그래?”

디레트는 살짝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나름 생각하고 고른 선물이었지만 후배가 이 정도로 좋아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여기 앉아계십시오. 마실 걸 준비하겠습니다.”

“아, 나도...”

“손님으로 오셨는데 그럴 순 없죠. 그런데 다른 분들은...”

“얘네들도 흑마법 듣는 후배들이야.”

“과연!”

이한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같은 학파의 선배들이라니.

...생각해보니 이한은 모든 학파의 선배들을 만날 수밖에 없긴 했지만, 하여간 같은 학파의 선배들은 언제나 잘 보여서 나쁠 것 없었다.

“다들 앉으시죠. 곧 마실 걸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 그래.”

“커, 커험. 뭐... 나쁘지 않네.”

흑마법 학파 학생들은 ‘나는 이런 대접에 매우 익숙하다’는 걸 드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물론 그 모습은 다들 어색해보여서 이한에게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몸이 안 좋으신가?’

이한이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자, 어색하게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던 흑마법 학파 학생들은 바로 자세를 풀고 속삭였다.

“뭡니까?? 혹시 저주 거셨어요?”

“협박한 거 아닙니까?”

“......”

디레트는 이 새끼들을 괜히 데리고 왔나 후회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푸른 용의 탑, 그것도 워다나즈 가문 출신이 흑마법을 배우는 것도 신기한데! 왜 저렇게 깍듯합니까!?”

“푸른 용의 탑 학생이 저러니까 소름돋는데???”

“푸른 용의 탑 아니지 않아?”

흑마법 학파 학생들은 수군거렸다.

기본적으로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흑마법을 배우지 않았다.

명예, 체면, 가문 등 외적으로 신경 쓸 게 많은 이들이 뭐하러 흑마법을 배우겠는가.

설령 정말 특이한 푸른 용의 탑 학생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대체 왜 저렇게 깍듯하단 말인가?

‘확실히.’

디레트는 후배들의 당혹스러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마법학교의 학생들은 자기 탑 선배가 아니면 굳이 그렇게까지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마법학교 안에서는 개처맞듯이 처맞을 수 있으니 최소한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지만 밖에서는 ‘저 아십니까?’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더더욱 그랬다.

안에서야 무서워서 고개 숙이고 다니지 밖에서는 뭐하러 그러겠는가.

애초에 서로 만날 일이 적을 뿐더러 만나도 그냥 무시하고 자기 할 일 하는 놈들이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그게 더 재수 없었다.

차라리 흰 호랑이 탑처럼 으르렁대고 쏘아붙이기라도 하는 게 낫지...

“징벌방에서 만나서 그래. 징벌방에서 사식 챙겨주다가 친해졌거든.”

“선배님이요?”

“어... 아니... 쟤가 챙겨주긴 했는데.”

“......”

“...????”

후배들은 경악과 의혹과 당혹이 섞인 눈빛으로 디레트를 쳐다보았다.

대가문 출신의 푸른 용의 탑 학생을 어떻게 징벌방 수발까지 시키게 만들었단 말인가?

아무리 믿어주려고 해도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저주다. 100% 저주야.’

‘아니. 독이야. 저주보다는 독이 더 깔끔하고 들키지 않아. 매주 해독제를 주는 조건으로...’

‘디레트 선배를 말려야 하는 게 아닐까? 제국 신문에 또 기사라도 나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다 오해야. 이 나쁜 새끼들아.”

*         *         *

이한이 직접 찻주전자와 이슬이 맺힐 정도로 차가운 주스가 든 유리병을 들고 와서 대접하자 흑마법 학파 학생들은 이한을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

“후배... 설명 좀 해줘. 이 새... 이 녀석들이 지금 내가 널 협박하고 있는 줄 알고 있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전 협박받고 있는 게 아닙니다.”

이한의 말에도 흑마법 학파 학생들은 ‘그래 그렇겠지’하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뭔 해명을 해도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데려온 내가 미쳤지. 이놈들이 뭐가 좋아서... 다른 1학년들은 불렀어?”

“예. 불렀습니다.”

오늘 모임의 목적을 들은 이한은 다른 친구들도 불렀다.

생각해보니 그 중에는 황자도 있었다.

‘...오해는 선배가 알아서 잘 푸시겠지.’

이한은 디레트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떠넘겨버렸다. 솔직히 귀찮았다.

“잠깐 몇 가지 질문을 좀 해도 되나?”

“예.”

이한은 자리에 있는 선배들이 모두 다 자신에게 호의적이지는 않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세계든 간에 새로 들어온 신입을 호의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면 적대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 법.

신입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진심인지 등등.

이 때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줘야 앞으로 일이 훨씬 편해졌다.

‘난 준비됐다.’

이한도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너무 많은 학파의 마법을 같이 듣고 있다는 점.

...이게 고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간에 조금 안 좋게 보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한은 이걸 충분히 만회할 자신이 있었다.

솔직히 이한만큼 흑마법 열심히 하고 있는 1학년 학생이 어딨겠는가.

“아까 보니까 스켈레톤들을 소환해놨던데. 저택 앞뜰에서 그래도 되나? 앞뜰이 더러워질 텐데?”

“더러워지면 오히려 더 좋습니다. 흑마법을 연습할 때 도움이 될 테니 말입니다.”

“...아까 보니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언데드를 소환하는 거 같던데?”

“예. 평소 흑마법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지금은 잘 쓰지 않는 흑마법을 직접 연구해 새로운 발견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모르툼 교수님께서 제 욕심을 좋게 평가해주셔서 이렇게 연습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해골 교장과 모르툼 교수가 강요한 게 이한이 직접 자원한 것으로 포장됐다.

그걸 모르는 흑마법 학파 학생들은 경탄의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볼 뿐이었다.

대체 이런 인재가 왜 흑마법에?

“흥.”

그러나 질문을 던진 선배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흔들더니 더 끈질기게 질문을 던져왔다.

“욕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이뤄내느냐고. 기초는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한데. 저주는 할 줄 아나?”

“예.”

“독은?”

“산공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옆에서 디레트가 끼어들었다.

“암흑 원소도 다룰 줄 알아.”

“...!”

그 말에 선배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질문할 게 없다는 항복의 표시였다.

“미안해. 후배. 오골도스가 원래 저렇게 까칠한 녀석은 아닌데.”

디레트는 다른 학생들이 음료를 마시는 동안 이한을 잠깐 데리고 나와서 따로 사과했다.

“흑마법에는 상당히 진심이거든. 그래서 새로 들어온 후배들이 잠깐 건드리다가 사라지는 걸 싫어해.”

“이해합니다. 그러실 수도 있죠.”

사실 이한 눈에 오골도스 같은 선배는 별로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진짜배기 미치광이들은 교수 쪽에 있지 선배들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진짜 미치광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가끔 보면 진짜 내가 독이라도 먹여서 협박하는 게 아닌가 싶단 말이지. 너처럼 기특한 후배가 흑마법에...”

“그런데 다른 마법도 다 듣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니까 조용히 해라.”

디레트는 이런 모임이 보통 얼마마다 열리고, 왜 열리는지 좀 더 설명해줬다.

흑마법사 학생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방학 때 쓸만한 일자리나 기회를 공유하고...

“참. 너를 끌고 가려고 교수님들이 길거리에서 싸웠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건 가짜지?”

“아뇨. 진짜입니다. 그런데 모르툼 교수님은 어디 계십니까?”

“모르툼 교수님? 우리가 모임 할 때는 보통 그랑덴 시에 계셔. ...잠깐만. 진짜라고?”

“그랑덴 시에 계신다고요? 어째서입니까?”

“마법 연구에 도움 필요한 거 있으면 부담 갖지 말고 모임에 부르라고 하시거든. 그런데 보통 모임 자리에서까지 마법 연구 이야기는 잘 안 하니까. 야. 후배. 근데 방금...”

“...선배. 잠깐만요.”

이한은 위화감을 느끼고 디레트의 말을 막았다.

모르툼 교수는 주변에 없었지만, 이상하게 목소리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나도 불러줘’라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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