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66화 (366/687)

366

 너도밤나무 기사단이 실전을 격렬하게 치르는 기사단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사단의 정식 기사와 에인로가드에서 아직 마법을 배우는 학생은 실력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너도밤나무 기사단도 보는 눈이 많으니 당연히 손속에 사정을 둘 수밖에 없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학생들이 너무 불리해보였다.

 하인은 왜 학생들이 좋아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감히 건방을 떤 놈들을 밟아버리자, 워다나즈! 절대 용서하지 마!”

 “놈들은 네가 검을 쓸 줄 안다는 걸 모르고 있을 거야. 감추고 있다가 한 번에 끝내버리자!”

 “마법으로 공격하다가 검을 꺼내면 당황해서 그대로 당하겠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추잡한 외침에 다른 탑 학생들은 당혹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살코는 중얼거렸다.

 “저 놈들 기사 맞나?”

 몇몇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친구들이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기가 나서는 것도 아니고 워다나즈한테 맡길 거면서 저렇게 기세등등하게 굴다니...

 “저,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하인이 주저하며 물었다.

 “걱정 안 해도 된다! 여기 워다나즈가 있으니까!”

 “어... 마법사 님이 나가는 게 아니라요?”

 “......”

 “......”

 하인의 순진한 질문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정신을 돌아오게 만들었다.

 “우... 우리는 워다나즈보다 약해서...”

 “아, 아하. 그렇군요.”

 서로 머쓱해지자 하인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외쳤다.

 “저도 친구라면 대신해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정이란 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딱, 딱히 친구도 아닌데...”

 “......”

 매우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한을 쳐다보았다.

 “나, 나가줄 거지? 워다나즈?”

 “흰 호랑이 탑 전력에서 널 빼면 안 되잖나.”

 “야. 미친놈아. 워다나즈 푸른 용의 탑이야.”

 “아, 아차. 습관적으로...”

*         *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푼수짓과 별개로 이한은 상대의 도발을 상당히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겨루기에 앞서 더르규와 지젤을 불러 상대의 전력을 확실하게 확인하려고 했다.

 “너도밤나무 기사단은 그렇게 강력하거나 이름 높은 기사단은 아니야.”

 “확실해?”

 “확실해.”

 “정말로 확실해?”

 “...무슨 뜻으로 다시 묻는 거지?”

 지젤은 뒤에 ‘새끼’나 ‘자식’을 붙이는 걸 참고 물었다.

 이한은 대답 대신 더르규를 쳐다보았다. 더르규는 지젤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다. 이한. 그렇게 대단한 기사단은 아니다.”

 “그건 다행이군.”

 “하지만 이한... 비켈린츠 님이나 잉걸델 교수님처럼 고수는 아니더라도, 기사단에서 대표로 나올 정도라면 그 실력이 절대 만만치 않을 거다.”

 더르규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하도 많이 맞아서 이한의 강함에 이상한 환상을 갖고 있는 다른 흰 호랑이 탑 학생들과 달리(몇몇 흰 호랑이 탑 학생은 이한이 숨겨놓은 금지마법을 꺼내서 해골 교장과 싸운다면 동수를 이룰지도 모른다고 진지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더르규나 지젤은 꽤 현실적이었다.

 이한이 강하기는 했지만 아직 학생 아닌가.

 그에 비해 상대는 경력이 있는 기사. 언제나 마법사를 잡는 건 기사였다.

 “걱정마라. 더르규. 다 생각이 있으니까.”

 일이 이렇게 흘러오자 이한도 부드럽게 넘어갈 생각이 없어졌다.

 아무리 연회장에 미쳐도 그렇지 정도가 있지 않은가.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간에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어떻게 할 생각인데?”

 지젤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이한이 교활하고 비열하고 치밀한 전략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할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보고 있도록.”

 이한은 하인에게 다가가더니 속삭였다.

 “학생들이 기사를 상대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가혹한 것 같군. 아무래도 좀 더 양보를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이걸 잘 말해보게.”

 하인은 소매 속으로 들어오는 은화에 감동하기보다는 당황했다.

 아니 이런 것까지?

 “당, 당연히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은화는 안 주셔도 됩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어허. 아니야. 넣어둬. 넣어둬.”

 이한은 저항하는 하인을 붙잡고 주머니에 은화를 찔러줬다.

 결국 포기하고 은화를 챙긴 하인은 밖에 나갔다가 잠시 후에 돌아왔다.

 “마법을 미리 준비하셔도 된다고 하십니다.”

 “고맙다.”

 지젤은 이제 알 것 같았다.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물론 대귀족 가문 출신이 할 방법은 절대 아니었다.

 ‘미친놈인가 진짜.’

 “자. 여기 하나 더.”

 “예!? 정말 괜찮...”

 “다시 가서 학생들이 그냥 제안을 거절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 더 양보를 해줘야 할 것 같다고 전해주게.”

 “......”

 하인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홀린 얼굴로 나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말했다.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이 상대하셔도 된다고 합니다.”

 “그렇군. 잠깐. 가지 말고. 오늘 학생들이 잔뜩 먹어서 몸이 무거운데 더 양보를...”

 “워다나즈, 큰일이다!”

 갑작스러운 외침에 세 학생은 고개를 돌렸다.

 “너도밤나무 기사단만 있는 게 아니야! 백양목 기사단도 있어! 저번에 학교에 찾아온 놈들이야!”

 “!”

 이한은 깜짝 놀랐다.

 이건 확실히 타격이 컸다.

 백양목 기사단의 견습기사들이 있었던 일들을 전하기라도 하면...

 ‘약한 척해서 방심시키는 게 힘들어진다!’

 “그래도 저번에 같이 검을 섞은 우정이 있는데, 비밀을 지켜줄 가능성은 없나?”

 이한의 질문에 더르규와 지젤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 놈들이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 새끼들이 그러면 내가 모라디 가문이 아니라 워다나즈 가문이지.”

 ‘너무한 거 아닌가?’

 이한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누군가 연회장의 뒷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낯이 익은 백양목 기사단의 견습기사였다.

 “첩, 첩ㅈ...!”

 “쉿! 조용히 해. 몰래 들어왔으니까. 정보를 알려주려고 왔다.”

 견습기사는 바깥 눈치를 보며 학생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근데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첩?”

 “...쩝쩝대는 소리를 잘못 들은 거 아닐까?”

 “그래?”

 견습기사는 별 관심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매우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지금 밖에 너도밤나무 기사단 기사 놈들이 방심하고 있어. 그 자식들은 워다나즈 네가 얼마나 사악한...”

 “사악한?”

 “...급해서 말실수를 했어. 검술과 마법 양쪽에 뛰어나고 심계가 깊은지 모르고 있을 거야. 대표로 나서는 놈은 검과 방패를 같이 쓰는데 좌수검을 쓰거든? 검술은...”

 바로 약점을 전해주는 견습기사의 우정에 이한은 더르규와 지젤을 쳐다보았다. 둘은 시선을 피했다.

*         *         *

 휴식을 끝낸 공작은 문을 열고 나왔다.

 호위들과 시종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서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불필요한 행동이었지만 공작은 당연하다는 듯이 앞장서서 걸어갔다.

 “...?”

 대계단 아래에 위치한 1층의 중앙에서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연회장에서 나는 소린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방향이 달랐다.

 “무슨 일이지?”

 “......”

 “......”

 시종들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숨을 죽였다.

 공작이 쉬는 동안 하인들에게 방해하지 말라고 전한 다음 자기들도 서재 앞에서 쥐죽은 듯 대기하고 있었던 탓에 상황 파악이 덜 된 것이다.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시종 한 명이 급히 내려갔다. 어찌나 빨리 내려갔는지 몇 번 미끄러져서 넘어질 뻔했다.

 내려간 시종은 1층에 기사들과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결투 비슷한 걸 하고 있는 모습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걸 느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연, 연회장을 어디 쓰시는지로 문제가 생겨서...”

 하인도 시종의 심각한 얼굴로 상황 파악을 했는지 울상이 되어 변명했다.

 “올라오지 말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

 “중재를 했어야지 저택 안에서 칼부림을 벌이게 해?!”

 “칼, 칼부림이 아니라 연습 대련입니다...”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기사와 학생이 붙으면 누가 이길지는 뻔하지 않은가.

 얌전히 이겨도 학생들이 공작의 일처리에 불만을 품을 텐데, 기사가 손속이라도 거칠게 쓰면 그 뒷감당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시종은 최대한 빨리 공작에게 달려가 상황 설명을 했다.

 모든 말을 들은 이칼도렌 공작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분노의 임계치를 넘은 것이다.

 “그래서?”

 “......”

 “그래서 그걸 그대로 전하는 이유가 뭐냔 말이다. 이 몸이 해결하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응?”

 “지금 가서 바로 해결하겠습니다!”

 시종들과 호위들은 즉시 외치고 아래로 달려갔다.

 기사들을 두들겨 패서라도 이 일을 멈출 생각이었다.

 “이... 이건 반칙이오!”

 “어째서 반칙인지 모르겠군.”

 “마법을... 마법을 숨기고 있었잖소!”

 “마법을 미리 걸어도 된다고 했잖나?”

 “...???”

 그러나 호위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들의 예상과 정반대였다.

*         *         *

 이한, 더르규, 지젤은 강화 마법을 닥치는 대로 걸고서 걸어 나갔다.

 최대한 약하고 겁먹고 긴장한 흉내를 내면서.

 “더르규. 눈에 힘 풀어라. 강해보인다.”

 “미, 미안하다. 이한. 연기가 어려워서...”

 “스스로를 가이난도라고 생각해봐라.”

 “나, 나는 가이난도다. 나는 가이난도다.”

 “......”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이한은 당당하게 물 구슬을 띄워서 회전을 완성시킬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상대 기사는 이한이 무슨 마법을 준비할지도 모르고 가볍게 수긍했다. 셋의 긴장된 모습에 이미 이겼다고 판단해버린 것이다.

 꽝!

 그 결과 상대 기사는 유리창을 깨고 저택 옆 정원으로 날아가 버렸다.

 “......”

 “...일부러 날려보낸 거 아니라고 해다오. 이한.”

 “미안하다. 힘조절에 실패했군.”

 뒤늦게 정신을 차린 기사들은 강하게 항의했다.

 “이... 이건 반칙이오!”

 원래 나름 팽팽하게 싸워서 상대에게 ‘하하 어린 학생들이라 방심했군’이란 핑계를 줄 생각이었는데, 실수로 한 방에 날려 보낸 이상 이한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뻔뻔하게 나가기!

 “어째서 반칙인지 모르겠군.”

 “마법을... 마법을 숨기고 있었잖소!”

 “마법을 미리 걸어도 된다고 했잖나.”

 이한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하는 얼굴로 우겼다.

 실제로 기사들은 할 말이 없었다.

 이미 사전에 다 허가된 이야기긴 했던 것이다.

 “이런 교활한 속임수를...!”

 “그만.”

 “공작 전하!”

 기사들은 이칼도렌 공작의 방문에 기뻐했다.

 “지금 간단한 대련을 하고 있었는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심판을...”

 “왜?”

 “예?”

 “왜 남의 저택에서 대련을 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

 “...그, 사소한 논쟁이 생겨서...”

 “사소한 논쟁이 생기면 남의 저택에서 대련을 해도 되나? 너도밤나무 기사단의 방식인가?”

 그제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기사단 기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자기 땅에서는 나름 기사 가문의 일원으로서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녔지만, 공작이 분노를 터뜨리면 그대로 날아갈 이들이었다.

 “공, 공작 전하. 오해가 있으십니다.”

 “지금 이 몸이 머저리란 거냐? 너희 말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관대하게 실수를 넘어가줬더니 이 몸을 능멸하려고 들어!”

 공작은 차갑게 절제된 분노를 토해냈다.

 그 모습에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소문하고는 다른 것 같은데.’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그 난리를 칠 때는 즐겁게 웃던 사람이 대련 때문에 저렇게 화를 내다니.

 소문과 달리 꽤나 변덕스럽고 괴팍한 성격이었다.

 구두쇠기도 하고...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