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70화 (370/687)

370

 디레트처럼 손해 보는 사람은 언제나 이번만이라고 하고서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이한은 선배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간식 싸왔으니까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시죠.”

 “초콜릿 타르트? 어디서 사온 거야?”

 “직접 만들었는데요.”

 “...으, 으응.”

 *         *         *

 시 정문에 모인 흑마법사들은 미리 빌려놓은 마차에 타고 출발했다.

 마치 소풍 가는 것 같았다.

 삐걱삐걱삐걱삐걱-

 바로 부서질 것처럼 삐걱거리는 낡은 마차만 아니었다면.

 “콜록. 마법 좀 다시 걸어야겠군.”

 “잠깐 정지!”

 선배들은 마차를 세우더니 밖으로 뛰쳐나가 바퀴, 축, 문짝에 차례대로 마법을 걸었다.

 그 모습을 본 이한은 예지마법으로 불행한 미래를 엿본 것처럼 불길해졌다.

 ‘흑마법이 지원을 못 받는다는 건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게 되다니.’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아직 삐걱거리는데요?”

 “완전히 잡을 정도로 마법을 걸면 마력 낭비가 너무 심해. 이 정도는 참을 수밖에 없어.”

 “후후. 이번에 언데드 계에서 괜찮은 버섯을 캐내면 마차도 바꿀 수 있어. 기대되지?”

 “...예!”

 이한은 2학기가 되면 삐걱거리는 소리 없애는 마법부터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제국 가도를 타고 도시에서 멀어지자 점점 인가가 줄어들고 숲과 들판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이난도는 타르트를 우물거리면서 마차 밖을 구경했다. 창가에 앉아있던 라파드엘은 성가시다는 듯이 가이난도의 머리를 밀어냈다.

 “정지!”

 한산한 길 끝 쪽에 무장한 병사들과 기사가 보였다. 그들은 마차를 경계하며 세웠다.

 “무슨 목적으로 오셨습니까?”

 “콜록. 우린 이번 현상을 연구하러 온 마법사요.”

 모르툼 교수는 허가증을 꺼내서 병사들에게 내밀었다.

 직인이 찍힌 서류를 본 기사의 얼굴이 한결 풀렸다.

 “마법사 님이셨군요.”

 제국의 땅덩어리가 워낙 넓은 만큼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현상을 통제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당장 언데드 계가 중첩되는 현상 같은 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경우 사방에 언데드 웨이브가 발생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간신히 먼저 발견해서 통제했다 하더라도 또 완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

 제국의 땅덩어리가 워낙 넓은 만큼 미친놈들도 많았기에 그 현상을 이용해보겠다고 덤벼드는 놈들도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인적 드물고 한산한 곳에서 통제하고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의 신경이 날카로운 건 당연했다.

 “콜록. 다들 고생이 많소.”

 “정말이지... 왜 하필이면 언데드 차원이 중첩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재수도 더럽게 없지... 식물 정령 차원이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식물 정령 차원도 만만찮게 피해가 컸을 거요.”

 “그래도 언데드 차원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글쎄...”

 “참. 마법사 님은 어느 학파를...”

 “콜록콜록콜록.”

 모르툼 교수는 갑자기 사레라도 들린 것처럼 기침을 해댔다.

 옆에 있던 제자들은 스승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교수님. 여기 물입니다!”

 “건강이 워낙 편찮으셔서...”

 “저런. 죄송합니다. 제가 편찮으신 분을 너무 오래 붙잡았군요. 이봐. 통과시켜드려.”

 병사들이 비키자 마차가 내달렸다.

 모르툼 교수는 기침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콜록. 갔냐?”

 “갔습니다.”

 “......”

 마차 안에서 보고 있던 1학년 학생들은 경악의 눈으로 디레트를 쳐다보았다.

 “...허가 진짜 제대로 받은 거 맞죠?”

 “받았다니까!? 후배! 물론 방금 모습은 좀 추하긴 했지만 우리가 이런 걸 무허가나 위조로 처리할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아!”

 디레트는 설명에 들어갔다.

 대충 이런 기현상이 터지면 이 인근 통로들은 접근하는 미친놈들을 막기 위해 병력을 배치하고 통제에 들어갔다.

 아마 주변에 군영이나 작은 마을 몇 개들을 활용해 접근하지 못하도록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게 지금 하신 것과 무슨 상관이...?”

 “끝까지 들어봐.”

 즉 방금 본 병사들만 아니라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 주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

 단순히 보초만 서는 병사들만 있는 게 아니라 마을에서 머무르게 도와주는 사람, 그들이 먹고 마실 걸 갖고 오는 사람, 또 가만히 있는 동안 할 마법사 카드를 사다주는 사람 등등 나름 이 주변에도 하나의 생태계가 형성이 됐다.

 “??”

 물론 이한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거랑 지금 ‘저 마법사입니다’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이런 상황에서 흑마법사인 거 알려지면 사건사고 터졌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의심을 받잖아. 그래서 약간 대답을 피한 거지.”

 “......”

 “......”

 1학년 학생들이 대답이 없자 선배들은 초조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가 속인 게 아니야. 그냥 기침을 좀 하셨을 뿐이지.”

 “맞아. 허가증도 제대로 받았다고.”

 “후배들 설마 이런 것 때문에 학파를 바꾸는 건 아니지??”

 ‘난 식물 원소 마법사라고 하고 다녀야겠군.’

 이한은 지팡이를 힐끗 쳐다보았다.

 나무 정령의 지팡이가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         *         *

 마차에서 내린 흑마법 학파 학생들은 미리 빌린 여관에 나눠 들어갔다.

 디레트가 얘기했던 대로 마을 사람들은 여행자들이 우르르 방문해도 놀라지 않았다. 보아하니 벌써 몇몇 사람들이 마을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소문을 듣고 진상을 직접 확인하러 온 호사가, 수상한 의뢰를 받고 해결하러 온 것 같은 용병, 누가 봐도 화염 원소 마법사처럼 차려입은 마법사 등등.

 “콜록. 다들 고생 많았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는 들어가서 작업하자꾸나. 마을은 적당히 돌아다니고. 뜨거운 녹차 좀 주시오.”

 “예. 마법사 님.”

 여관을 통째로 빌린 덕분에 1층에는 학생들만 있었다. 주인은 펄펄 끓는 녹차를 모르툼 교수에게 내밀었다.

 그 모습에서는 제국 사람들이 마법사에게 으레 보여주는 존경심이 엿보였다.

 “맛이 어떠십니까?”

 “괜찮소.”

 “다행입니다. 꽤 좋은 녹차잎을 썼거든요. 다른 손님이 아니라 마법사 님께서 마셔주셔서 기쁩니다. 하여간 이번 일 때문에 마을에 찾아온 놈들은 다 수상쩍고 기분 나쁜 놈들만 가득이라... 끝나고 제국에서 보상을 해준다지만 그 동안 마을 분위기는 얼마나 흉흉해지겠습니까. 마법사 님 같은 분들만 오신다면 참 좋을 텐데요.”

 “...콜록콜록.”

 모르툼 교수가 기침을 하자 학생들은 재빨리 짐을 던져놓고 여관 밖으로 호다닥 빠져나갔다.

 괜히 남아 있다가 무슨 마법을 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서로 곤란해졌다.

 “이런 마을에 구경할 게 많지는 않겠지만, 너무 돌아다니지는 말고.”

 “술 마시지 말고. 내일 마법 쓸 때 영향 받으니까.”

 “수상한 사람하고 너무 오래 이야기하지 마.”

 “사실 우리가 가장 수상해 보이는 게 문제야. 마법에 대해서는 최대한 회피해. 마을 작아서 소문 빨리 돈다.”

 선배들은 몇 번 경험이 있었는지 신신당부했다.

 농부처럼 차려입었어도 지팡이를 들고 있는 이상 사람들은 무슨 마법사인지 궁금해 할 수밖에 없었다.

 “선배는 어디 가실 겁니까?”

 “상인들 만나서 무슨 재료 필요한지, 시세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봐야지.”

 “난 기사들 만나러 갈 거야. 기사들한테 부탁해놓으면 수상한 놈들은 쫓아낼 수 있거든.”

 생각보다 유능한 선배들의 모습에 이한은 감탄했다.

 “넌 가서 좀 구경하고 있어도 돼.”

 “아닙니다. 저도 돕겠습니다.”

 이한의 말에 가이난도가 질색하며 옷 끝을 잡아당겼다.

 돌아다니면서 놀고 싶었던 것이다.

 “정말 괜찮은데...”

 “괜찮으시다잖아. 이한.”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요 뭘.”

 “없긴 뭐가 없어. 이한.”

 “넌 저기 가서 구경하고 있어라.”

 가이난도를 쫓아낸 이한은 디레트의 뒤를 따라 주변에 있는 상인들에게 다가갔다.

 “별로 어려운 거 아니야. 여기 물품 팔러 온 상인들도 있지만 재료 구하러 온 상인들도 있거든.”

 중첩 현상이 일어나면 안에서 재료가 나온다는 걸 상인들도 알았다.

 그런 만큼 발빠른 상인들은 잽싸게 달려와 앞에서 대기하곤 했다.

 피곤한 모험가들은 모든 재료들을 다 들고 나가지 않았으니까.

 “그 중 지금 시세가 비싸거나 현상금 걸린 재료가 있는 걸 미리 알아두면 좋지.”

 “상인들이 순순히 말해줍니까?”

 “마법사한테는 주로 잘 말해주는 편이야. 도움 필요할 때가 종종 있으니까.”

 제국 속담 중에는 ‘바보가 아니라면 마법사와 원수지지 마라’라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마법사에게 신세를 질 일이 많다는 뜻이었다.

 상인도 여기에 장사하러 온 만큼 괜히 마법사와 싸울 이유가 없었...

 “죄송합니다.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어?”

 디레트는 당황했다.

 설마 흑마법사인 걸 들켰나?

 “이유가 뭐죠?”

 “으음. 마법사 님. 제가 이걸 말씀드리는 건, 마법사 님을 존중해서입니다. 그... 먼저 계약한 모험가가 있습니다. 다른 상인들도 저와 비슷할 겁니다.”

 ‘이런.’

 디레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상인에게 의뢰를 받은 모험가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괜히 지금 비싼 재료들을 알려줬다가 다른 사람이 가져가기라도 하면 곤란해지니...

 “원래 이런 경우가 잦습니까?”

 “아니. 보통 고용까지 하진 않아. 한두 파티 보내는 걸로는 못 찾을 가능성이 더 높거든.”

 상인 입장에서는 그냥 아무나 갖고 오는 걸 사는 게 편하지 파티를 고용해서 들여보내는 건 여러모로 위험이 컸다.

 그 파티가 맨손으로 돌아오면 은화는 은화대로 쓰고 얻는 건 하나 없는 것이다.

 “어떤 재료인지는 몰라도 경쟁이 붙었나봐. 저 정도로 투자를 할 줄은 몰랐는데.”

 “으음.”

 이한은 고생만 하는 선배를 도와주고 싶어서 생각에 잠겼지만 딱히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기사들이면 말 한 마디로 속이는 게 가능했지만 상인들은 그리 쉽지 않았던 것이다.

 ‘잠깐. 저 문양...’

 이한은 상인이 갖고 온 마차 문양이 익숙하다는 걸 깨달았다.

 저건 리치몬드 가문의 문양이었다.

 제국에서 손꼽히는 운송 길드를 운영하고 있는, 검은 거북이 탑의 샤일스 리치몬드의 가문.

 “혹시 리치몬드 가문에서 나왔습니까?”

 “아. 예.”

 “제가 샤일스와 정말 친합니다.”

 “...아, 그, 그러십니까? 샤일스 님을 아시는...”

 “예.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가문 도련님의 절친 등장에 상인은 당황해서 머뭇거렸다.

 그러는 사이 이한은 자신이 얼마나 샤일스와 친한지, 강의 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갑자기 폭설이 내린 탓에 우리 모두 고립됐었습니다. 샤일스는 자길 두고 가라고 외쳤었죠. 저는 샤일스를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외투를 던졌습니다. 은화를 받긴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고, 샤일스가 눈물을 흘리면서 고마워하더군요.”

 “그... 그렇군요.”

 듣던 상인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왜 학교에 폭설이?

 “제가 샤일스를 도와준 것처럼 샤일스도 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도와주고 싶어 했습니다.”

 “......”

 “참 착한 친구죠.”

 “......”

 “돌아가면 샤일스한테 여기서 우연히 가문의 상인을 만났다고...”

 “...두 분한테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진짜 어디 가서 말하시면 안 됩니다.”

 “고맙습니다.”

 그 모습을 본 디레트는 이마에 손을 대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후배들이 이 모습을 직접 봤어야 했는데...

 *         *         *

 “왜 산환버섯이 이렇게 인기가 좋지?”

 목록을 들은 디레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산환버섯은 사실 그리 인기가 좋은 재료가 아니었다.

 인기가 좋은 재료는 보통 건강에 좋거나 모든 마법사들이 쓰기 좋은, 범용성 높은 재료였다.

 그에 비해 산환버섯은 주로 흑마법사들이 쓰는 재료였다.

 상대의 마력을 감소시키거나 소모시키는 저주, 혹은 독을 만들 때 시약으로 자주 사용되는 재료.

 “비싸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닙니까?”

 “...너 1학년 맞지?”

 말하는 사이 저 앞에서 기사들과 이야기하는 다른 흑마법 학파 학생들이 보였다.

 잘 풀리지 않는지 학생들은 곤란한 표정으로 연신 부탁을 했지만, 기사들은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쪽도 운이 별로 안 좋은가본데.”

 “선배.”

 “응?”

 “혹시 저기 기사들 중에 초이, 모라디, 알파, 그랄, 바크 가문과 관련이 있거나, 혹은 너도밤나무 기사단, 백양목 기사단과 관련이 있는 기사가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