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73화 (373/687)

373

 디레트가 슬쩍 이한의 양쪽 귀에 손바닥을 가져다댔다. 이한은 불쾌해하며 밀어냈다.

 “그, 다른 차원에서 언데드 몰아오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요?”

 “콜록. 원래 그렇긴 하지.”

 모르툼 교수는 디레트의 지적에 순순히 수긍했다.

 재능 있는 마법사들이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다른 차원에 진입해서도 평소처럼 행동하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언데드 계에서 흑마법을 사용하고 언데드를 불러내는 건 잔뜩 굶주린 벌레떼를 향해 꿀을 바르고 다가서는 것과 비슷한 일.

 바깥에서는 아무리 흑마법을 써도 별다른 반향이 없었지만 다른 규칙을 가진 차원에서는 마법사가 모르는 사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몰랐다.

 막말로 재수가 없으면 저주 한 번 썼다가 그 마력의 파동에 특별한 불쾌감을 느낀 대악마가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떠나서 언데드들을 한 곳에 모는 건 그냥 위험한 행동이었다.

 한 곳에 뭉친 언데드 군세는 비탈길을 내려가는 눈덩이처럼 스스로 규모를 불리며 아무도 막을 수 없어질 때까지 커질 테니까.

 “하지만 방법이 있다.”

 “어떤...?”

 “여기 이 워다나즈 군을 사용... 아니, 군의 힘을 빌리는 거지.”

 이한은 버두스 교수 같은 말을 하는 모르툼 교수의 모습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기껏 모임에 참석시켜드렸더니 본색을 드러내시는군.’

 “콜록. 언데드가 워다나즈 군을 피한다는 건... 역으로 말하자면 언데드의 움직임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거지. 복잡한 마법을 써서 적을 끌어들일 필요 없이 말이야.”

 모르툼 교수는 아주 간단한 마법 몇 개만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적과 언데드의 위치를 감지하고 이한에게 텔레파시로 전달하는 정도.

 모르툼 교수 정도의 실력이라면 밖으로 흘러나가는 마력의 흐름을 완전히 숨길 수 있는데다가 흑마법도 아니었으니 이 정도면 위험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언데드가 한 곳에 몰리는 위험성은요?”

 “괜찮습니다. 선배.”

 이한은 대신 대답했다. 디레트는 의아해했다.

 “왜지?”

 “어차피 적들이 먼저 싸우게 될 테니 이상하다 싶으면 그 때 멈추면 되지 않습니까.”

 “...그, 그래.”

 디레트는 혹시 후배가 화났나 싶었다.

 “혹시 화난 건 아니지?”

 “예? 아닌데요?”

*         *         *

 “쫓아서 끝내버리세요.”

 “예!”

 방패와 중갑으로 무장하고서 끈질기게 버티던 적의 전위가 마침내 무너지자, 박드굴은 사납게 명령을 내렸다.

 겁에 질린 적 파티는 등을 돌리고 허둥지둥 도망쳤다.

 이제 남은 건 살육의 시간...

 끄어어어-

 “빌어먹을, 이 주변에 언데드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던 거야?”

 “옆에서 아귀들입니다!”

 쫓으려던 부하들은 옆의 통로에서 뛰쳐나온 언데드들의 모습에 짜증을 터뜨렸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계속 언데드들이 나와서 싸움이 길어졌는데 또 나오다니.

 “처리해. 뒤에서 쫓아오게 두면 귀찮아진다.”

 “알고 있습니다!”

 부하들은 아까 했던 것처럼 언데드들을 쓸어버리고 추적에 나서려고 했다.

 그러나 그 싸움이 끝나기도 전에 뒤쪽에서 새 언데드 무리가 나타났다.

 “좀비 도마뱀이다!”

 다리 길쭉한 악어처럼 생긴 덩치 커다란 몬스터가 쿵쿵거리며 뒤쪽에서 다가오자 부하들은 짜증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저런 대형 몬스터부터는 상대하는 것 자체가 보통 수고가 아닌 것이다.

 “물약 쓰게 허락해주십시오!”

 “물약이 남아도는 줄 아나봐요.”

 “하지만...”

 “쯧. 한 개만 쓰도록!”

 박드굴은 결국 물약 사용을 허락했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서 사용을 제한하려고 했지만, 지금 부하들이 점점 지쳐가고 있는 게 눈에 보였던 것이다.

 쨍그랑!

 화르르륵!

 통로에 물약병이 던져지자 시퍼런 불꽃이 피어올랐다. 다가오던 언데드들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박드굴과 부하들은 언데드 계에 들어가는 만큼 당연히 그에 맞춰서 준비를 해온 상태였다. <파사(破邪)의 불꽃 물약>은 그 비싼 값어치를 했다.

 “처리... 아니 뭐야!!”

 부하들은 고함을 질렀다.

 원래라면 불꽃에 접근하지도 못할 언데드들이 갑자기 뭐라도 잘못 먹었는지 불꽃에 타오르는 것도 감수하며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불꽃보다 무서운 무언가가 뒤에서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연금술사 새끼, 죽여 버리겠다!”

 “반으로 나눠서 대응한다!”

 욕설과 고함을 지르며 부하들은 전력을 다해 몬스터들을 상대했다.

 한 시간 후.

 박드굴의 부하들은 피와 오물,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안 되겠군. 잠깐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원래라면 늦어서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지만, 전투가 격렬해도 너무 격렬했다.

 이대로 계속 밀어붙이다가는 아무리 충성스러운 부하라 하더라도 반발이 안 생길 수 없는 상황.

 박드굴은 포기하고 잠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휴식을...”

 “무기 버리고 손 들어라, 모험가 놈들! 불응하면 공격하겠다!”

 “?!?”

 박드굴과 부하들은 입구 근처에 완성된 살벌한 포위망에 당황했다.

 기사들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병사들까지 다 불러왔는지 촘촘한 포위망이 입구 근처에 구성되어 있었다.

 ‘이건...!?’

 쇠뇌와 활들이 조준 끝난 채로 날카롭게 겨누고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건 일반적인 체포와 차원이 달랐다.

 “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너희들에게는 차원 안에서 다른 자들을 멋대로 공격한 혐의가 걸려 있다. 무기를 버려라!”

 “오해입니다! 어디까지나 정당방위...”

 박드굴이 억울해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차원이든 던전이든 안에서 다른 파티를 공격하는 건 엄연한 범죄긴 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말이었다.

 안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혹시라도 조사나 탐문을 한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파티들은 교묘하게 수를 써서 상대방을 도발하곤 했다.

 상대방이 공격할 때까지 밀어붙인 다음 정당방위라고 주장하곤 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안에서 싸움이 일어났고 공격을 받았다는 증언을 들어도 보통 그 대응은 미지근할 수밖에 없었다.

 경고를 주거나 둘 다 추방시키거나 하는 정도.

 그런데 이 기사들은 이번에 대체 뭘 잘못 먹었는지 주변에 있는 병사들까지 다 데리고 와서 확실하게 체포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다 죽여 버릴까?’

 박드굴은 살심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기사 놈들이 주제도 모르고 계속 시비를 걸어오는 게 참기 힘들 정도였다.

 대체 이 기사 놈들은 왜 이런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무기를 버리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무기를 버리도록 하죠.”

 박드굴은 피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며 말했다.

 워낙 포위망이 촘촘하고 탄탄해 싸움이라도 벌인다면 부하들 중 절반은 죽을 것이다.

 차라리 체포된 다음에 금화를 내고 최대한 빠르게 풀려나는 게 나았다. 

 “무기를 뺏고 단단히 묶어서 가둬라! 놈들이 서로 수작질을 부리지 못하도록 따로 가둔 다음 감시를 엄밀히 하도록!”

 “저, 기사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왜 저 놈들을 저렇게까지 가두시는 겁니까?”

 다른 지역을 지키고 있다가 불려온 병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있었던 일들을 들어보니 이 정도까지 엄격하게 대응할 자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기껏해봤자 난폭하게 굴었거나 차원 안에서 싸움 일으켰다는 증언 한두개가 전부인 것 같은데...

 “자네는 아직 정의를 모르는군. 수상쩍은 자들을 미리 제압해야 아무 잘못 없는 제국 신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걸세. 내가 보기에 저들은 매우 수상해!”

 “그, 그렇습니까?”

 ‘그렇게 수상한 것 같지는 않던데...’

 병사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나름 기사인 만큼, 이들의 보는 눈에 뭔가 있을 거라고 믿은 것이다.

*         *         *

 “기사들한테 부탁까지 하고 왔어?”

 디레트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예. 보아하니 꽤 난폭한 자들 같은데, 같이 있어봤자 좋을 게 없어보여서 기사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잘했어. 그런데 별 효과는 없을 거야. 미리 알려주는 건 몰라도 붙잡아놓는 건 한계가 있거든.”

 싸움을 일으켰다는 증언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곳에서 누가 먼저 잘못했느니는 따져봤자 답이 안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마 몇 시간 정도 문답하고 풀려나겠지.”

 “그 정도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성가시게 굴면 짜증나서 물러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이한의 말에 디레트는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러면 좋겠네.”

 둘은 설마 밖에서 기사들이 아예 작정하고 가뒀을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2구역이다. 다들 준비됐나?”

 모르툼 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발걸음을 내딛었다.

 파앗!

 갑자기 달라지는 공기의 느낌에 이한은 왜 선배들이 ‘차원 내 구역이 달라지는 건 느껴보면 안다’라고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바닥에 깔린 흙의 색도 달랐다. 방금까지는 흰색이었던 흙들이 회색으로 변해있었다.

 “암흑 원소가 강한 마력이라 점점 색이 어두컴컴해질 거야.”

 “이야, 넓다!”

 가장 앞에서 통로를 통과한 학생이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좁고 꼬불꼬불한 동굴의 길이 끝나고 탁 트인 황야가 눈에 들어왔다. 별빛 하나 없는 하늘에는 검은 탁류가 일렁거렸다.

 빠직!

 누군가 밟은 뼛조각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곳곳에 뼈들이 잡초처럼 깔려 있었다.

 “콜록. 다행이군. 뼈라니.”

 “다행이 아닌 것도 있습니까?”

 “뼈 대신 독이 많으면 꽤나 귀찮아지지.”

 “아하.”

 이한은 납득하고 나서 멈칫했다.

 ‘나는 독이 더 편한 것 아닌가?’

 “왜 그러지?”

 “아. 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콜록.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하진 말게. 뼈도 뼈 나름대로 귀찮아질 때가 있으니. 그러면 각자 움직이도록.”

 모르툼 교수는 지팡이를 바닥에 꽂았다. 그러자 지팡이가 거대한 나무처럼 자라나더니 하나의 표식으로 변했다.

 “다들 기억하겠지만 다시 말하마. 서둘러 움직이지 말고, 시끄럽게 움직이지 말고, 콜록. 마법 많이 쓰지 말고, 멀리 가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선배들은 익숙한 듯 각자 지팡이와 바구니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1구역이 아닌 2구역까지 들어온 선배들은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고 경험이 있는 학생들.

 1구역에서 단체 행동을 했던 것과 달리 자기 몸 하나 정도는 알아서 챙길 자신이 있었기에 각자 원하는 재료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넌 나하고 같이 가자.”

 “고맙습니다.”

 이한은 디레트의 호의에 감사를 표했다.

 이렇게 후배를 지켜주려고 하시다니.

 ‘...내가 지켜줄 수 있는 거 맞... 겠지?’

 디레트는 이한의 말에 순간 속으로 헷갈려졌다.

 저 후배가 상대하지 못하는 적이 나타났을 때 본인한테 막을 실력이 있나 의아해진 것이다.

 “...지켜주는 건 잘 모르겠지만 언데드 차원에서 길 찾는 방법은 알려줄 수 있지. 나만 믿어. 후배.”

 “잠깐, 왜 지켜주는 건 잘 모르시겠다고 하시는...?”

*         *         *

 “세상에! 저거 봐, 후배! 뼈 무덤이야! 정말 운이 좋은데??”

 “그렇군요.”

 “독 늪!! 독 늪까지 옆에 있다고? 이게 말이 돼!?”

 “그렇습니까?”

 “저건...! 저건 지형 자체에 저주가 걸렸잖아!”

 혼자 흥분해서 외치던 디레트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저게 뭔지 모르는 후배의 눈에는 좀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 같았다.

 “으흠. 저게 뭐냐면...”

 “선배. 저기 몬스터 있습니다.”

 이한은 손가락을 뻗어 독 늪 건너편을 가리켰다.

 몇 개의 언데드 종류가 얽혀서 만들어진 것 같은, 트롤만한 덩치를 가진 맹독 포식자가 우물거리면서 독 점액을 삼키고 있었다.

 ‘저런 놈도 나오는군.’

 듣기로 맹독 포식자는 꽤 강한 몬스터였는데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괜히 다른 차원이 아니었다.

 ‘선배들은 저런 놈들을 어떻게 상대하시는 거지?’

 “어떻게 할까요?”

 “큰...”

 “?”

 “큰일났다...!”

 디레트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속삭였다.

 원래 2구역 정도에서 볼 몬스터가 아니었던 것이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