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81화 (381/687)

381

 “아니, 당연히 중요한 거 아닙니까?”

 이한은 정색하고 말했다.

 이제까지 오골도스가 무슨 소리를 해도 예의를 갖추던 후배가 갑자기 정색하자, 오골도스는 왠지 자기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그러냐?”

 오골도스의 기준으로는 에인로가드에 늦게 들어가면 더 좋은 것 아닌가 싶었다.

 일찍 들어가 봤자 해골 교장이 괴롭히기만 더 하겠는가.

 “아. 혹시 징벌방 때문에? 물론 네가 1학년이니까 징벌방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는 건 이해하는데, 에인로가드 오래 다니다보면 징벌방에도 익숙해질 거다. 징벌방이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야. 익숙해지면 기숙사보다 편할 때도 있어.”

 1학년 학생들은 징벌방에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기 마련이었지만 그건 다 해골 교장의 속임수였다.

 징벌방을 너무 두려워하면 에인로가드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징벌방은 몇 번 가봤습니다. 제가 걱정한 건 강의 놓치는 거였는데요.”

 “......”

 “어쩔 수 없군요. 선배.”

 “어, 어?”

 “저 공부하게 좀 도와주시죠.”

 이한이 책을 꺼내자 오골도스는 경악했다.

 ‘미친 놈...’

 지금 언데드 차원의 심층부에서 구울의 왕과 같이 갇혀 있는데 2학기 성적 걱정부터 하는 후배의 모습에 오골도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학교에서 나름 미친 것 같은 사람들은 많이 봤었지만 그건 미친 게 아니었다.

 진짜 미친 사람은 여기 오골도스 앞에 있었다.

*         *         *

 “며칠 정도 지난 것 같습니까?”

 “글쎄. 다른 차원에서 시간감각은 믿기 힘들 때가 많아서. 일주일?”

 “일주일 정도는 따라갈 수 있겠죠?”

 “너 정도면 충분하지.”

 “뭘 충분합니까!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시죠!”

 이한은 벌컥 화를 냈다.

 그리고는 바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선배. 선배한테 화를 내면 안 됐는데.”

 “아, 아니야. 난 괜찮다.”

 다른 부분에서는 어떤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예의바르던 후배가 강의 관련해서는 매우 날카로워지는 모습에 오골도스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대체 에인로가드는 무슨 1학년을 받아들인 것인가?

 “그래서 선배. 뼈 원소 마법으로 돌아와서...”

 뼈 원소 마법은 얼핏 보면 다른 원소 마법보다 발전 가능성이 부족해보였지만 이 또한 깊게 파고들면 얼마든지 깊게 파고들 수 있는 마법이었다.

 기본적으로 뼈를 소환해서 발사하거나 상대를 묶는 것 말고도 뼈 자체를 강화하고 변화시키고 융합시키는, 어떻게 보면 연금술이나 부여 마법과도 연관이 있는 부분이 많았다.

 “뼈 원소 마법 특징 중 하나가 미리 사전 준비를 하는 만큼 더욱 강해지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뼈 자체를 저주나 독, 암흑 원소로 미리 강화한다면 마법 자체의 위력이 훨씬 증폭됐다.

 “뼈 원소 마법은 결국 시체를 다루는 마법이라고 보면 돼. 시체의 핵심은 결국 뼈니까. 뼈 원소 마법에 통달한 마법사는 비쩍 마른 시체 하나만으로 제국 기사 몇 명은 상대 가능한 괴물을 만들 수 있지.”

 “예. 제가 궁금한 게, 냉기 저주와 타각의 독과 암흑 원소를 뼈에 미리 담아두고 싶은데 뼈가 버티지 못합니다. 방법이 있을까요?”

 “......”

 4학년 디레트한테 물어봐도 ‘잠깐만 교수님 좀 불러올게’할 질문을 너무 자연스럽게 묻는 후배의 모습에 오골도스는 울고 싶었다.

 가장 괴로운 건 후배가 악의라고는 조금도 없이 순수하게 묻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거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습니까? 아쉽네요.”

 이한은 아쉬워하며 책장을 넘겼다.

 오골도스는 힐끗 책장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흑마법 책에는 ‘뼈에 추가적인 마법으로 강화가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지 ‘냉기 저주와 타각의 독과 암흑 원소를 걸어서 강화해보자’라고 적혀 있지 않았다.

 ‘혹시 이 자식은 언데드 소환해보라고 하면 본 드래곤을 소환하는 거 아닐까?’

 “선배.”

 “어? 어?”

 이제 이한이 부르면 살짝 무서워졌다.

 “이 뼈 원소 마법을 조합하면 소환된 언데드를 강화할 수 있잖습니까.”

 “그렇지.”

 소환된 언데드에게 추가적인 뼈 갑옷을 씌우거나 무기를 들려주는 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었고, 노련한 마법사는 피, 독, 살점, 사령체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강화시키곤 했다.

 “혹시 선배는 어떤 식으로 하고 계신지 좀 보고 배우고 싶은데...”

 “...잠깐. 이 안을 좀 더 수색해봐야 할 것 같군.”

 오골도스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한이 저번에 스켈레톤 전사들을 하나로 모아서 합치는 걸 봤을 때, 오골도스의 언데드 소환수를 보면 매우 실망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다시 수색해보시려고요?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게 뭐가 무리라고. 걱정하지 마라.”

 오골도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한은 아쉬워하며 책을 덮었다.

 ‘수색하시는 동안 다른 책 먼저 봐야겠군.’

 이한은 <기초 번개 원소 마법과 그 응용에 대하여>를 꺼내서 번개 원소 마법의 위력을 어떻게 늘릴 수 있나 공부했다.

 페르쿤트라가 ‘번개 원소는 가장 강력한 위력을 가진 원소다’라고 주장한 것과 달리 최근 위력 부족을 자주 느꼈던 것이다.

 ...평생 여기 갇혀 있을 생각이냐?

 “번개를 응축할수록... 이해가 안 가는군. 꽤 응축한 것 같은데. 여기서 더 응축해야 하나?”

 ...너도 느끼고 있겠지. 네놈의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두려움을.

 “다음 장... 아니. 형태 변환을?”

 이한은 놀라워했다.

 많은 마법사들이 하는 착각과 달리, 번개 원소의 형태 변환도 불가능하진 않다. 물론 다른 원소보다 난이도가 높다는 것까지 부정하지는 않겠다. 풋내기 마법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번개 원소의 형태 변환을 어설프게 시도하다가 마력이 고갈되어서...

 볼라디 교수는 책으로는 참 친절한 사람이었다. 무리하게 어려운 마법을 강요하는 대신,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도록 권했다.

 책을 읽던 이한은 문득 의문에 빠졌다.

 ‘이럴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왜 나한테는?’

 하여간 번개 원소의 형태 변환은 이론상 번개를 강하게 마력으로 압축해 질량을 가지게 만든 다음 다른 원소처럼 형태를 변환시키는 것이었다.

 마력 소모도 소모고 난이도도 난이도인 만큼 마법사들이 번개 원소로 형태 변환을 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갔다.

 마법은 만능의 기적이었지만 마법사들은 언제나 효율을 추구하는 이들이었으니까.

 부정하지 마라. 네놈의 두려움을! 네놈도 느끼고 있을 텐데!

 “이런 식으로... 아차.”

 파지지직!

 “생각보다 어렵군.”

 통제를 잃은 번개가 구울의 왕에게 날아갔다. 이한은 입맛을 다시며 다시 집중했다.

 책에 적힌 이상 2학기 때 볼라디 교수가 ‘해내거나 죽어라’하며 나올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못 들은 척 한다고 달라질 것 같으냐!

 “음?”

 이한은 지팡이를 내려놓고 시선을 돌렸다.

 “아. 미안하다. 하도 시끄러워서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있었군. 그래. 왜 불렀지?”

 언데드 차원에서 수많은 적수들의 숨통을 끊고 무릎을 꿇려왔던 구울의 왕이었지만 지금 이 어린 마법사처럼 굴욕감을 선사한 적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구울의 왕은 분노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두려움! 네놈이! 여기서 평생 갇혀 있을 거란! 이제라도 타협을...

 “아직도 그 소리냐?”

 이한은 어이없다는 듯이 구울의 왕을 쳐다보았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너하고 사정이 다르다.”

 뭐가 다르단 거냐?

 “난 여기 가만히 있으면 나를 끌고 가려고 올 사람들이 있다.”

 ‘구하러’가 아니라 ‘끌고 가려고’였지만 구울의 왕은 분노 때문에 눈치 채지 못했다.

 그게 네 착각이란 거다. 내 궁전이 그렇게 우스워 보이더냐? 차원의 심층에 위치한 이 궁전은 절대로 쉽게...

 ‘허세가 심하군.’

 구울의 왕은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이한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솔직히 해골 교장이 더 강해보였던 것이다.

 모르툼 교수가 만약 찾지 못하면 해골 교장한테 말할 것이고, 해골 교장이 들으면 알아서 찾으러 올 것이다.

 그리고 징벌방에...

 “생각하니까 화나는군.”

 이한은 들고 있던 간식 포장지를 구울의 왕에게 집어던졌다.

 생각해보니 이 자식이 눈치 없게 왕좌에 앉아 있어서 이 사단이 난 것 아닌가.

 이 자식만 아니었다면 평온하게 궁전 탐색하고 나가서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었는데...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 너도 초조하다는 걸 안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타협. 타협하는 거다. 그만 부정하고!

 “타협은 널 교장 선생님한테 바치고 징벌방 며칠 깎을지가 타협이고... 아. 잠깐.”

 이한은 문득 궁금해졌다.

 구울의 왕은 지금 이한에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뭘 어떻게 하려는 걸까?

 “흐음. 말해봐라. 어떤 타협을 원하는 거지?”

 당연히 이 마법진을 푸는 거다.

 이한이 드디어 솔깃해한다고 생각했는지, 왕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간교해졌다.

 힘을 얻고 나서는 자주 쓰지 않았지만 구울의 왕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이런 교활한 계략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였다.

 “내가 뭘 믿고?”

 당연히 그렇겠지. 하지만 잘 생각해봐라.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서로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여기서 무한한 시간 동안 갇혀 있고 싶지 않다면, 어느 정도는 믿어야 한다. 물론 그냥 믿기는 쉽지 않겠지. 내 왕으로서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마. 여기서 나가더라도 널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

 ‘가이난도도 저딴 개수작에는 안 속겠군.’

 이한은 한심하다는 듯이 구울의 왕을 쳐다보았다.

 왕으로서의 명예를 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까 말하는 걸 보니 딱히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이한도 학년 수석으로서의 명예부터 시작해서 가문 명예까지 얼마든지 필요하다면 걸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전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그런...”

 이한은 일단 진지하게 고민하는 척을 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던 것이다.

 “정말인가?”

 그래!

 “하지만 믿기 힘든...”

 믿어라!

 “그러면 네가 조금만 더 성의를 보여준다면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게 뭐냐?

 “여기에 남은 보물 더 없나?”

 ......

 구울의 왕은 본능적으로 찜찜함을 느꼈지만, 조급함 때문에 의도적으로 무시해버렸다.

 “설마 숨기는 거냐? 서로 믿어야 한다고 말해놓고서?”

 ...좋다. 하나 알려주겠다.

 “그래. 좋은 생각이다. 믿음이 가는군.”

*         *         *

 ‘음. 그래도 뭘 하나 찾아야 하는데.’

 오골도스는 신중하게 벽의 문양을 읽어나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에인로가드에서 고대 문자 강의를 좀 더 들을 걸 후회가 됐다.

 ‘교수님께서 공부는 다 쓸모가 있을 거라고 하셨던 게 진짜일 줄이야.’

 “선배!”

 “지, 지금 찾고 있는 중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라!”

 오골도스는 황급히 외쳤다.

 이한이 흑마법을 공부하다가 또 어떤 걸 물어보려는 건지 몰라서 덜컥 무서워졌다.

 “왼쪽에서 세 번째 기둥 뒤를 뒤져봅시다.”

 “뭐?”

 오골도스는 당황했다.

 “왜?”

 “구울의 왕한테 들었습니다.”

 “그런... 잠깐. 대화를 한 거냐? 나 없는 사이에?!”

 오골도스는 깜짝 놀랐다.

 다른 차원의 강력한 존재와 길게 대화를 나누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경험 없고 어린 마법사의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속아서 커다란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었으니까.

 구울의 왕이 마법진 안에 갇혀 있다지만 놈은 여전히 위험한 맹수였다. 오히려 안에 갇혀 있어서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더욱 더 필사적으로 설득하려고 할 테니...

 “...근데 너라면 괜찮겠군.”

 ‘이 사람 방금 좀 대답이 늦게 나오지 않았나?’

 이한은 오골도스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 같은데...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