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화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볼라디 교수를 쫓아내고 나자 해골 교장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모두 다 가르시아 교수 같다면 얼마나 좋겠나.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다음 작업은 언제 들어가세요?”
...잠, 잠깐 휴식 좀 취하고 있네.
“그렇군요...”
1분 후.
“그런데 다음 작업은 언제 들어가세...”
지금 가네. 지금 가.
해골 교장은 진저리를 치며 둥둥 날아갔다.
멀쩡한 모습 때문에 종종 잊곤 했지만, 가르시아 교수 또한 에인로가드에서 모든 학파 강의를 수강하려고 한 사람이었다.
‘학교에 제정신인 교수를 데리고 올 수 있다면 좋으련만.’
마법 실력도 뛰어나고 정신도 멀쩡한 교수는 정말로 찾기 힘들었다.
해골 교장은 안타까운 제국 교육 현황에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 * *
“후...”
......
“하...”
......
“참...”
...그만해주겠나, 가르시아 교수?
“네?”
아까부터 한숨을 수십 번 쉬고 있네.
“아. 죄송합니다. 걱정이 되어서요.”
오늘의 작업을 끝내고 다음 길이 열릴 때까지 잠시 쉬러 나온 해골 교장이었지만, 가르시아 교수는 그 잠시도 봐주지 않고 한숨을 날렸다.
해골 교장은 가르시아 교수가 성실하다는 사실에 한탄했다.
에인로가드로 보내고 싶어도 보낼 핑계가 없었다.
워다나즈는 괜찮을 걸세. 예지 마법으로도 그렇게 나왔고.
“아. 오골도스 학생을 걱정하고 있었는데요.”
해골 교장은 가르시아 교수의 말에 어이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1학년 학생과 2학년 학생이 같이 갇혔으면 1학년 학생을 걱정해야지...
그걸 눈치챘는지 가르시아 교수도 민망한 얼굴로 변명했다.
“이한 학생도 걱정하고 있었죠. 물론.”
별로 걱정하지 않은 것 같은데...
“당연히 걱정되죠. 유적 안에 갇히면 당장 식량부터가...”
해골 교장은 ‘유적 안에 갇혔으면 식량보다는 함정이나 파수꾼들의 습격을 더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워다나즈는 어디를 가도 식량을 꽤 많이 챙겨서 가지고 다니더군.
“...아, 네. 그렇군요.”
가르시아 교수는 할 말을 잃었다.
뭐 이런...
“저. 고나달테스 님. 모험가들이 면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기사들이 와서 묻자 해골 교장은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한 번만 더 귀찮게 굴면 일이 끝날 때까지 거꾸로 묻어놓겠다고 전하도록. 감시 제대로 하게. 모험가 놈들은 규칙이란 걸 이해하지 못해서 일을 귀찮게 만드는 데에 재주가 있으니.
“알겠습니다.”
기사들이 돌아가고 나자 가르시아 교수는 다시 물었다.
“그래도 둘이 버텨야 하는데 식량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글쎄, 들고 다니는 양을 생각해보면 내가 들어갈 때까지는 충분하게 버틸 텐데...
해골 교장의 말에 가르시아 교수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오골도스 학생도 이한 학생이 같이 있을 테니 괜찮을 거구요.”
...아까부터 말하면서 이상함을 못 느끼나?
* * *
“선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식량을 좀 아껴야 하니 오늘 디저트는 케이크 한 조각입니다.”
“...저기, 나도 에인로가드 학생이다.”
오골도스는 초콜렛 케이크를 받으며 어이없어했다.
에인로가드 학생 기준으로 이 정도면 호화로운 만찬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한은 다시 암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웃던 구울의 왕도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는지 온갖 수작으로 방해하려고 들었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평생 뚫을 수 없을 거다.
다시 생각해봐라! 무너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렇게 해봤자 아무런...
오골도스는 이한에게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이제까지 이 후배한테 여러 번 감탄하긴 했었지만 이번 건 조금 달랐다.
어떻게 저렇게 사람 말을 철저하게 무시할 수 있을까?
오골도스였다면 아무리 무시하는 척을 하더라도 신경이 쓰여서 대꾸하거나 반박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한은 정말 구울의 왕이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무시했다.
오죽하면 구울의 왕이 발작하듯이 비명을 질러댈 정도였다.
파파팍-
떨어지는 돌가루를 본 이한은 조심스럽게 판 거리를 확인해봤다.
일어나 있는 시간 대부분을 이 암반 앞에서 미친듯이 마법을 때려 박은 덕분에 꽤 많은 거리를 뚫고 들어온 상태였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군.’
물 구슬을 띄우고, 회전시키고, 쏜다.
이 단순한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반복하는 동안 이한도 점점 숙련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완전한 회전을 즉시 불러오지는 못하더라도...
팡!
‘아차. 너무 급했군.’
물 구슬을 띄우자마자 바로 고속으로 회전시키려다가 터져나가자 이한은 혀를 찼다.
아직 시간을 더 들이거나 속도를 낮춰서 불완전한 회전에 만족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좋다.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말해주마!
이한이 계속해서 파고들자 급해진 구울의 왕이 외쳤다.
물론 이한은 못 들은 척 무시했다. 마음만 먹으면 옆에서 누가 소리를 질러도 귓등으로 들을 수 있는 게 이한의 능력이었다.
‘교수가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자.’
그 안에는 만마(萬魔)가 잠들어있다. 그러니 멈춰라! 계속해서 열어봤자 너한테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여기 언데드 차원은 물론이고 폭력과 투쟁이 넘치는 차원에서 패자는 승자 앞에 무릎 꿇고 자비를 구걸해야 했다.
구울의 왕 또한 지금의 지위까지 올라오면서 자신에게 패배한 이들을 잔인하게 짓밟아왔다.
그 흔적 중 하나가 저 문으로 봉인된 공간이었다.
영혼만 남은 패자들이 힘을 갖춰서 부활하지 못하도록 봉인해 놓은 공간.
오골도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이대로 여는 건 상당히 위험했다.
제대로 된 봉인을 갖춘 문을 여는 것도 아니라 옆의 암반 자체를 날려버리는 무식한 방식인 만큼, 안에 갇혀 있던 놈들이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 힘든 것이다.
“후배. 지금은 좀 고민해봐야 할 것 같은데...”
“저 말이 사실 같습니까?”
“솔직히 거짓말치고는 꽤 그럴듯하긴 해.”
자신한테 위협적인 적수를 저런 식으로 가둬놓는 건 딱 강력한 언데드가 할 법한 짓이었다.
이한은 분노해서 으르렁거렸다.
“감히... 저런 걸 보물이라고 속이다니!”
‘보물이 맞긴 한데.’
오골도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런 강력한 영혼들은 대마법이나 아티팩트를 만들 때 사용 가능한 만큼 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이한이 지금 정식으로 문을 열려는 게 아니라서 그렇지...
“왜 그러십니까? 선배?”
“그, 그래. 이런 걸 보물이라고 하다니. 구울 놈! 정말 너무하는군!”
오골도스는 급히 대답했다.
이한의 목소리에 잔잔한 분노가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최악입니다. 선배.”
“최, 최악까지는 아니지 않나? 그냥 구조를 기다려도...”
“남는 시간 동안 보물을 더 건질 수 없이 공부만 해야 한다니...”
“......”
오골도스는 공감이 잘 가지 않았지만 후배가 무서워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콰지지지지직!
그 순간 궁전 전체를 감싸고 있던 마력이 미친듯이 흔들리더니 우르르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심층부를 지키고 있던 마력들도 연신 사방으로 휘몰아치며 비명을 질러댔다.
“커헉...!”
오골도스는 너무나도 강한 마력의 파도에 기절해서 쓰러졌다.
직접적인 공격은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몰아치는 마력의 격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력적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너무 거친 방법 아닌가요?!”
워다나즈는 괜찮을 테니 그만 걱정하게. 가르시아 교수. 워다나즈! 살아있다면 징벌방 갈 준비를...
“아니. 오골도스 학생이요.”
아.
해골 교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죽지는 않을 걸세.
“이 미■ 언■■■ 정■■ 나■■-!”
학생이 듣고 있네, 가르시아 교수. 욕 그만하게.
“교수님. 저 여기 있습니다.”
이한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자 가르시아 교수는 욕설을 멈추고 달려왔다. 표정만 봐도 교수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한 학생...!”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교수님.”
“아니에요. 1학년 학생을 데리고 들어간 사람이 잘못한 거죠.”
‘내가 가겠다고 한 건데.’
일확천금의 꿈으로 고집을 부린 장본인이었던 만큼 이한은 모르툼 교수에게 살짝 미안해졌다.
“오골도스 학생은... 괜찮군요. 다행이네요.”
잠깐 기절했지만 그 전까지는 무사히 잘 지냈는지 혈색이 괜찮았다.
가르시아 교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것저것 잘 차려먹었는지 이런저런 쓰레기들부터 시작해서 돌을 깎아 만든 탁자와 마도서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경악했을 테지만 해골 교장과 가르시아 교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공부를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제법 안락하게 잘 꾸며놨군.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건 뭐냐?
해골 교장은 마법진 안에 갇혀 있는 구울의 왕을 가리키며 물었다.
구울의 왕은 본능적으로 해골 교장이 어느 정도의 대마법사인지 느꼈는지 몸을 낮추고 있었다.
“그, 구울의 왕입니다.”
말을 꺼낸 이한은 상대가 많이 약해져서 구울의 왕처럼 보이지 않을까봐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이게 지금은 많이 약해보여도 갇히기 전에는 좀 더 강력했고, 또 구울의 왕이란 칭호는 자칭도 가능한 만큼...”
...대체 뭘 설명하려는 거냐??
해골 교장은 황당해했다.
눈이 달려 있다면 저게 구울의 왕이란 건 알 수 있었다.
* * *
있었던 일들의 설명을 들은 해골 교장은 탄식했다.
‘모르툼에게는 한동안 가르시아 교수를 피해 다니라고 해야겠군.’
그냥 갇혀 있는 줄 알았는데 구울의 왕과 싸우고 갇혀 있었다니.
벌써 가르시아 교수의 주먹이 터질 듯이 쥐어지고 관자놀이 옆의 힘줄이 불끈 솟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학생만 없었다면 지팡이 몇 개는 분질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알아서 할 일이지.’
해골 교장은 모르툼 교수의 걱정은 그 정도만 하기로 했다.
그만큼 나이 먹었으면 자기 목숨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 법이었으니까.
“저 놈이 정말 비열하고 사악한 놈입니다.”
이한은 치가 떨린다는 듯이 하소연했다.
그 모습에 해골 교장은 의아해했다.
배그렉이나 버두스 같은 놈들이 괴롭혀도 담담하게 이겨낼 정도로 담력이 강한 게 이한 아니었던가.
그런데 저렇게 하소연을 하다니.
그 정도로 구울의 왕이 위협적이고 난폭했던 것일까?
“보물의 위치를 알려준다고 해놓고 저를 헛수고시켰습니다!”
......
해골 교장은 거의 뚫린 암반을 보고 기가 막혔다.
마력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마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남는 시간 동안 저 거대한 암반을 뚫으려고 시도했다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어느 누가 저런 걸 상상했겠는가. 마법사의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는 짓이었다.
사악한 놈이긴 하구나. 언데드가 원래 그렇지.
“지옥의 고통을 줘도 모자랄 놈입니다.”
너는 대체 워다나즈 가문이면서 왜 그렇게 물욕이...?
해골 교장은 자포자기했는지 저주를 퍼붓는 구울의 왕을 입 닥치게 만들고 둥둥 떠서 날아갔다.
그리고 암반을 마저 뚫어버린 다음 안에 있는 악마의 영혼들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
!!!
이한도, 구울의 왕도 경악할 정도로 강렬한 장면이었다.
해골 교장은 푸른 안광을 뿜어내며 삼킨 영혼을 그대로 묶었다. 그리고 뼈 하나에 압축해서 가둬버렸다.
받아라.
해골 교장은 뼈로 팔찌를 만들어서 이한에게 던졌다.
구울의 왕에게 패배한 사악한 영혼들이 갇힌, 희귀하고 보기 드문 유물이었다.
원래 학생들에게 이런 특혜를 베풀어주지는 않지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한은 살짝 감명 받은 얼굴로 해골 교장을 쳐다보았다.
“교장 선생님...!”
그래.
“그런데 이런 아티팩트는 원래 보석이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제가 별다른 의도가 있어서 물어본 건 아니고 그냥 안정성 면에서 궁금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