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86화 (386/687)

386화

‘...착각이겠지.’

이한은 믿고 싶지 않았다.

방금까지 그렇게 서로를 믿고 챙겨주던, 이 지옥 같은 곳에서도 한 줄기 희망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불사조 탑 사제들이었으니까.

그런 사제들이 설마 이한이 믿는 교단 때문에 싸우겠는가.

“지금 몇몇 교단에 관심을 가지고 있긴 한데.”

“!”

“그 말은 즉... 아직 진정한 신앙을 정하지 못하셨단 뜻입니까?”

“대체 그게 어떻게 그렇게 들리는 거지?”

분명 ‘몇몇 교단에 관심을 두고 있다’라고 했는데 옆에 있던 사제한테는 ‘진정한 신앙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습니다’로 들리다니.

“나는 신앙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는 게 아니라, 제국의 귀족들이 으레 그렇듯이 신전들을 후원하는 것에 가깝지.”

이한은 사제들을 설득하기 위해 평소에 안 하던 짓까지 했다.

바로 스스로를 전형적인 제국의 귀족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제와서 그래봤자 별 소용은 없었다.

“하지만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신전을 후원해주시는 귀족 분들은 많지만, 직접 신전에 찾아가서 기도에 참여하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잖소. 다른 귀족들과는 그 성의가 다르다고 생각하오.”

아프하 교단의 니기소르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한은 이를 갈며 말했다.

“친절한 설명 고맙다.”

“부끄럽소.”

이한이 아프하 교단이나 프리싱가 교단 신전에 찾아가서 행사에 참가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다른 사제들의 눈빛이 더욱 더 번뜩였다.

지금 사제들에게 이한은 방황하는 어린 양처럼 보일 뿐이었다.

“저희 교단에도 한 번 방문해주십시오. 분명 찾고 계시던 진정한 신앙을 발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거 없이 그냥 순수한 후원의 마음으로... 아니, 그보다 너희 교단은 다신 신앙을 허용하지 않잖나?”

제국의 교단 중에서는 여러 신앙을 같이 갖고 있어도 허락해주는 교단이 있었고, 오로지 자신의 신앙만을 고집하는 교단이 있었다.

이한은 전자 위주로 찾아가며 이득을 보려고 하고 있었던 만큼 후자는 친해질 수가 없었다.

“지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신앙을 찾기만 하신다면 다른 신앙들은 잊어버리실 테니까요.”

“잠깐. 그 말은 받아들일 수 없소. 아프하 교단의 신앙을 잊어버리란 것이오? 지금 여기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처럼 아프하 교단의 신앙에 신실한 사람은 제국에서 드무오.”

‘넌 그냥 마력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

이한은 속으로 니기소르를 욕했다.

이한을 거대한 화염의 연료통처럼 생각하는 놈이 무슨!

“다른 교단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역시 플레맹 교단이죠. 연금술 성적을 보세요.”

“그렇게 따지만 다른 강의도 다 성적이...”

시아나는 못 들은 척 말을 돌렸다.

“방학 때도 꾸준히 연금술 공방에서 일하신 만큼, 플레맹 교단에 방문하시면 만족할 수밖에 없을 걸요.”

“연금술사라고 다 플레맹 교단을 믿는 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은 검술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즉 검을 숭배하는 저희 교단에...”

“다 틀렸습니다! 가이난도 님에게 들었는데 이한 님은 마법사 카드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행운을 숭배하는...”

사제들은 탁자에 앉아서 뜨겁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태도는 예의가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완강하고 타협이 없었다.

사제들은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이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주변을 지나가던 학생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시선을 던질 정도였다.

“잠깐, 다들 진정하십시오!”

티질링 사제의 외침에 불사조 탑 학생들은 멈칫했다.

그 모습에 이한은 감동했다.

‘역시 티질링 사제는 제정신이었군.’

다른 사제들이 신앙 욕심에 눈이 멀었어도 티질링 사제만은 정신줄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티질링 사제는 빠르게 말했다.

“다들 제비를 뽑아서 순서를 정하도록 합시다. 서로 배려하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일정을 짤 수 있을 겁니다.”

“과연!”

“역시...”

“......”

이한은 갑자기 푸른 용의 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         *         *

“야. 너희 워다나즈 돌아왔...”

“말 걸면 죽여버린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독기 가득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별 생각 없이 말을 걸려고 했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당연히 당황했다.

“뭐, 뭔...? 아, 아니. 그냥 물어보려고 한 거야! 워다나즈 돌아왔냐고!”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살벌한 얼굴로 지팡이를 붙잡았다.

더 말을 걸면 패싸움도 불사하겠다는 굳은 다짐이 느껴졌다.

마치 주군한테 버림받고 사지(死地)에서 돌아온 기사단이나 보여줄 법한 기백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압도됐다.

“뭐... 뭐지? 저 놈들? 미쳤나?”

“잠깐. 저 자식들 가만히 내버려둘 거야?”

불사조 탑을 제외한 세 탑 학생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평소에는 날 선 말 몇 마디를 던지는 정도였지만 방금처럼 저렇게 대놓고 시비를 건다면 이쪽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누가 이기든 간에 한 판 붙는 게 자존심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내버려두자.”

“왜!?”

“내가 보기에 워다나즈 놈이 크게 다친 것 같다.”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그렇군. 확실히 그래서 저런 반응을...”

“푸른 용의 탑 놈들이 오만하고 무례한 놈들이긴 하지만, 자기 친구 때문에 저렇게 슬퍼하는데 건드리는 건 명예로운 일이 아니지. 오늘은 넘어가주자고.”

“맞는 말이야. 우린 기사잖아.”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코밑을 쓱 훔치며 서로를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서로가 서로의 친구란 게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워다나즈 놈이 다치다니. 왜 다친 거지?”

“교장 선생님한테 결투 신청 한 거 아닌가?”

“어제 검은 거북이 탑 놈이 교장 선생님이 워다나즈 들고 날아다니셨다는 말을 했는데, 설마 그게?”

“워다나즈... 그 자식, 겁이 없는 건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그 자식 괜찮겠지?”

“뭐야. 너. 설마 그 놈을 걱정하는 거냐?”

“내... 내가 무슨. 아닌데? 걱정 안 하는데? 그러는 네가 걱정하는 거 아니냐?”

“나, 나도 안 하는데?”

그렇게 떠드는 사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가르시아 교수의 <기초 실용 마법> 강의실 앞에 도착했다.

드르륵!

“다들 안... 워다나즈!!”

“??”

이한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깜짝 놀라는 걸 보고 의아해했다.

“나 주말에 온 거 몰랐나?”

“다, 다친 거 아니었어?”

“아닌데? 무슨 헛소리를... 이상한 소문 들은 거 아니냐?”

이한은 한심하다는 듯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기사라는 놈들이 저런 헛소문에 놀아나다니.

“...그럼 푸른 용의 탑 이 새끼들은 대체 왜 지랄하고 간 거야?”

“몰라. 미친놈들인가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이를 갈며 자리에 앉았다.

두고 보자!

그러는 사이 푸른 용의 탑 학생들도 삼삼오오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울한 얼굴로 이한의 옆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불사조 탑 학생들이 없다는 걸 알고 눈을 크게 떴다.

“워다나즈! 사제 새... 사제 님들은?”

“저기 앉아 있잖아.”

이한은 불사조 탑 학생들이 모여있는 구역을 가리켰다. 사제들은 반갑게 손을 흔들어줬다.

“우, 우리랑 같이... 우리랑 같이 앉아주는 거야?”

“저기 불사조 탑이랑 같이 안 앉고?”

“...너희 혹시 뭐 잘못 먹었냐?”

이한은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이 미쳤나 싶어서 당황했다.

그러나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의 미친 짓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으헝헝! 워다나즈!”

“네가 우릴 떠날 줄 알았어!”

“다른 탑에 있어도 우린 친구지!!”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이한의 팔다리에 달라붙어서 눈물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한은 진지하게 지팡이로 팰까 고민했다.

‘이 자식들이 다른 탑 학생들 다 있는 자리에서 창피하게.’

“우리가 잘할게! 이제 떠나지 마!”

“휴게실 청소도 제 때 제 때 할 테니까!”

“저 새끼들 휴게실 청소도 따로 안 했나?”

옆에 있던 검은 거북이 탑 학생 한 명이 경악했다.

뭐 저런 쓰레기 새끼들이?

“다들 반... 어. 이한 학생. 시간을 좀 더 줄까요?”

“괜찮습니다. 교수님.”

이한은 거머리를 떼듯 달라붙은 친구들을 하나씩 떼어냈다. 마지막까지 남은 가이난도는 머리를 한 대 맞고 밀려났다.

“이한 학생이 돌아와서 기뻐요. 다들 알겠지만...”

“교장 선생님과 결투 때문에 회복하느라 늦은 거잖습니까.”

흰 호랑이 탑 학생 한 명이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이한은 그걸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저 자식들은 소문이라면 다 믿는 건가?’

혹시 ‘전재산을 공터에 묻으면 소원을 들어주는 정령이 나온다’고 소문을 내도 통하나?

“아닌데요?”

“어. 아닙니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술렁거렸다. 옆에 있던 검은 거북이 탑 학생 한 명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말했잖냐. 한심한 놈들. 드래곤이라고.”

“큭.”

“...드래곤도 아니고요. 그냥 탐사하다가 갇힌 거니까 다들 이상한 상상 그만하세요.”

가르시아 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술렁거렸다.

그냥 탐사하다가 갇히다니.

그게 말이 되나?

“숨기시는 것 아냐?”

“쉿. 인정해드리자. 자꾸 캐물으면 화내실지도 몰라.”

가르시아 교수는 더 이상 말하는 걸 포기하고 한숨을 쉬었다.

“오늘 강의는 옆 강의실에서 할 거에요. 다들 따라오세요.”

학생들은 가르시아 교수의 뒤를 쫓아 이동했다.

이한은 요네르에게 물었다.

“저번 강의도 다른 곳에서 했어?”

“응. 강의실을 동굴처럼 만드셨어.”

아무리 암흑 시야 마법을 위해서라지만 강의실을 동굴로 바꿀 줄이야.

이한은 가르시아 교수의 스케일에 감탄했다.

‘직접 봤으면 좋았을 텐데.’

...눈앞에 거대한 호수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

문 잘못 열었다가 호수에 빠질 뻔한 가이난도는 휘청거리면서 아산의 옷을 잡으려고 했다.

아산은 어딜 잡느냐는 듯이 피했다. 가이난도는 욕설을 퍼부었다.

넘어지려는 가이난도의 뒷목을 붙잡아 당기면서, 이한은 물었다.

“교수님. 오늘 배우는 마법이 혹시...”

“눈치챘군요. 이한 학생.”

“...유미디후스의 수옥탄이나 증발입니까?”

“...강의 이름을 다시 보겠어요?”

*         *         *

당연히 <기초 실용 마법>에서 수옥탄이나 증발을 가르치진 않았다.

오늘 배우는 마법은 수중 호흡 마법이었다.

“아... 과연.”

이한은 눈에 띄게 안심했다.

저 호수 속에 어떤 몬스터가 있을지 몰라 걱정했던 것이다.

“다들 2인 1조로 모이세요.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어보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파트너한테도 마법을 걸어보세요.”

교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서로 밀치며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비켜. 이 자식아.”

“너나 비켜. 너 때문에 워다나즈가 실망해서 불사조 탑으로 소속 옮겨버리면 책임질 거냐?”

“공평하게 성적 순으로 할까? 응? 부여 마법 누가 성적 좋았지?”

“물 원소 마법으로 해야지!”

“내가 가장 친하니까 내가...”

“거기서 한 발만 더 움직이면 호수에 처박아버릴 줄 알아, 가이난도!”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누가 흔들리는 이한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 푸른 용의 탑으로 돌려놓을 것인가’로 다투는 동안, 불사조 탑의 상어 수인 사제가 쾌활하게 말을 걸었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저와 같이 하시죠!”

“그러지.”

안 될 것도 없어서 이한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다른 사제들도 있을 텐데.”

“아. 제가 첫 번째 순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