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90화 (390/687)

390화

“알겠다. 용서해주지.”

“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한이 다음 말을 하기 전까지는.

“그러면 가자.”

“?”

학생들은 당황해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디를?”

“창고로. 일 대충 했으니까 다시 해야지.”

“......”

“......”

이한의 말뜻을 뒤늦게 깨달은 학생들은 더듬으며 물었다.

“우, 우리도 이거 해야 하는데.”

“그래. 나중에 다시 와서 하면 되겠군. 낮에 오면 되겠네.”

“우리만 편법을 쓴 게 아니라 다른 놈들도 편법을 썼는데...”

“더 잘 됐군. 그 놈들도 불러와라.”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옆의 시냇물을 한 번 쳐다보고 이한의 지팡이를 한 번 쳐다봤다.

슬슬 시냇물에 빠지면 추울 날씨였다.

*         *         *

“이렇게 도와주러 오시다니...!”

사제들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도와주러 오자 깜짝 놀랐다.

“이렇게 오실 필요까진 없었는데요.”

“맞습니다. 저희 일이잖습니까.”

사제들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우울하고 슬픈 표정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이한이 뒤에서 속삭였다.

“야. 표정 관리해라.”

“......”

“생각해보니까 사제님들께서 하시기에는 너무 많은 양 같아서... 도우러 왔습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저번 주에... 잘했다면 애초에 사제님들이 힘드실 것도 없었는데... 크흑!”

“괜히 흰 호랑이 탑이 기사들의 탑이 아니군요.”

“정말 감동했습니다.”

사제들의 진심 어린 감사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속으로 울상을 지었다.

차라리 부려먹지 저렇게 행동하니 어디 화도 내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쓰레기 숨기지 말자고 했잖아. 들키면 징벌방이라고.”

“안 들키긴 했잖아! 워다나즈 놈이 찾아서 그렇지.”

척척척척-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괜히 일주일 먼저 한 게 아니라는 듯이 능숙한 동작으로 창고에 쌓인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다리가 여덟 개 달린 의자(그 중 두 개는 아무리 봐도 문어의 다리였다), 반쯤 불탄 마도서(표지에는 ‘다 익혔다! 죽어라!’라고 쓰여 있었다), 세 가지 색의 피가 묻어 있는 외투(붉은색뿐만 아니라 초록색과 파란색 피도 묻어 있었다) 등등.

“대단하군. 앙라고.”

“뭐?”

이한의 칭찬에 앙라고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편히 쉴 수 있는 야밤에 불려왔는데 기분이 좋을 리 없었던 것이다.

‘이 자식이 뭔 시비를 걸려고.’

“창고 정리 말이다. 요령이 대단하군. 혹시 가르쳐 줄 거라도 있나?”

이한의 칭찬은 진심이었다.

사제들이 게으르거나 요령이 없는 이들이 아닌데도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속도는 사제들을 압도했다.

그 동안 쌓인 요령 덕분이었다.

“흐... 흥! 뭐... 못 가르쳐줄 건 없지.”

앙라고는 싫지는 않았는지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설명에 나섰다.

“일단 가장 먼저 치워야 하는 게 뭔지 알아?”

“비교적 가벼운 쓰레기들 아닌가?”

하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만큼 최대한 양을 줄이는 것도 중요했다.

가벼운 것들부터 치우고 그 다음에 무거운 걸...

“틀렸어. 우리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

“?”

“먼저 치워야 하는 건 위험해보이지 않는 쓰레기들이야. 그런 건 그냥 들고서 끌어내면 되거든. 위험한 건 이제 딱 봐도 위험해보이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쓰레기야. 위험해 보이는 쓰레기는 차라리 나은 편이지. 그냥 먼저 공격을 하면 되거든. 정체를 알 수 없는 쓰레기는 정말 위험한데...”

앙라고는 푹 한숨을 쉬었다.

말만 해도 힘들다는 게 느껴졌다.

“이런 건 어쩔 수 없어. 앞사람이 방패를 들고 다가가고 뒤에서는 지원을 해줘야지.”

“......”

이한은 할 말을 잃었다.

‘하긴 학교의 일이 쉬울 리가 없겠지.’

마법끼리 서로 부딪쳐도 충돌이 일어나고 예상치 못한 현상이 벌어지는데 그런 관련품들을 수천 개 넘게 쌓아놓은 곳이 멀쩡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이번 주에 1학년 학생들이 맡은 일들 중에 이 창고 정리가 가장 난이도가 높은 편에 속했지만, 그건 이한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다.

“어쩔 수 없군.”

이한은 지팡이를 흔들고 뼛조각을 던졌다. 샤르칸이 튀어나오고 스켈레톤 전사들이 우르르 일어났다.

“이대로라면 무리겠군. 합쳐야겠다.”

이한은 저번 구울의 왕 궁전에서 배운 대로 스켈레톤 전사들을 서로 합쳐서 압축시켰다.

숫자만 많아봤자 지금 정리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고나달테스도 불러야겠군.”

“뭐?!?!?”

“아. 놀라지 마라. 내 소환수 이름이다.”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으스스한 마력과 함께 창고 안에 언데드들이 생겨났다.

그 모습에 몇몇 사제들이 불편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아차. 미안하다. 일손이 필요해서.”

“아닙니다. 저희도 흑마법사 분들이 사실은 죽음을 모욕하려는 게 아니라 죽음을 이해하고 망자를 위로하시려는 분들이란 걸 잘 압니다.”

“???”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그랬나?

‘아닌 것 같은데.’

에인로가드에 다니는 사제들은 신성 마법을 제외하고서도 마법을 본격적으로 배우는 만큼 다른 사제들보다 편견이 덜했다.

당연히 흑마법에 대해서도 무작정 미워하기보다는 그걸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역시 직접 배우지 않는 만큼 오해는 있었다.

“좋아. 준비가 끝났으니 일을 나누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이쪽으로. 강화 마법을 걸어줄게.”

“오...!”

이한의 말에 학생들은 반색했다.

미운 것과 별개로 이한의 마법 실력은 누구나 인정했다.

강화 마법을 걸고 일을 한다면 몇 배는 쉬워질 터.

“고맙다. 워다나즈.”

“별 말을 다 하는군. 같이 일하는데 서로 도와야지.”

“...잠깐, 워다나즈. 왜 사제님들은 안 걸어주지?”

“사제들은 여기 끌어낸 짐들을 밖으로 빼는 일을 할 거니까.”

“...그러면 우리는??”

“너희는 이제 저기 정체불명의 쓰레기 치우러 들어가야지.”

“......”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이한을 노려보았다.

“나도 같이 들어갈 거다.”

“그런다고 네가 우릴 푸대접하는 게 달라지진 않거든.”

“...일 끝나면 뭐라도 차려줄까?”

맛있는 음식만 먹이면 되는 줄 알고 묻는 이한의 질문에, 앙라고는 발끈해서 대답했다.

“그걸 말이라고...”

“헉. 뭐해줄 거냐?”

“......”

“미, 미안. 앙라고.”

“솔직히 워다나즈 놈이 해준 건 맛있단 말이야. 2주 동안 육포만 먹어서 힘들어.”

이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검은 거북이 탑하고 교환하면 되지 않나? 그 동안 뭘 했길래?”

“저번에 걔네 암시장 갔다가 싸움 붙어서...”

“그 자식들이 먼저 사과를 안 하더라고...”

이한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주 동안 서로 싸우면 손해 아닌가?

‘이 자식들 설마 내가 없으면 아무도 먼저 화해하려고 하지 않는 건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들도 물자 고갈로 고통 받고 있었던 만큼 이한이 중재해주길 내심 기대했다.

“그래. 알겠다. 치우자.”

“워다나즈...?!”

“그, 그게 다냐?! 더 할 말이 있지 않냐?!”

“난 모르겠군.”

*         *         *

“이건 대체 어디에 쓰는 거냐?”

행글라이더처럼 생긴 날개짝을 들고서 흰 호랑이 탑 학생은 아리송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새의 날개처럼 쓰려고 했던 거겠지. 높은 곳에서 날면 제법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이걸 왜?”

“탈출하려고?”

“아...”

흰 호랑이 탑 학생은 이름 모를 선배의 시도에 경외심 섞인 눈빛을 보냈다.

“혹시 이거 수리해서 써볼 순 없을까?”

“이걸... 타보겠다고?”

“어? 위험한가?”

“그러면 안 위험하겠냐?”

이한은 그냥 실험해보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상대가 정말로 할까봐 걱정되어서였다.

“그렇군. 그럼 타봐도 되는 건가?”

‘때릴까?’

기동. 기동. 기동.

“!?”

이한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갑자기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불쑥 골렘의 손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흰 호랑이 탑 학생을 후려갈기려고 들었다.

‘공간 예지를 미리 걸어놔서 다행이다!’

이한은 골렘의 손이 날리는 공격 궤도를 읽고 다급하게 외쳤다.

“강철로 화(化)해라, 망토여!”

자신의 망토는 아니어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흰 호랑이 탑 학생의 망토는 단단한 강철로 변했다.

이한은 곧바로 학생을 뒤로 던졌다. 쓰레기더미 위로 구른 학생은 앓는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모두 전투 준비해! 골렘이다! 저번에는 어떻게 상대했지?”

“골... 골렘까진 안 나왔어!!!”

“뭐?”

“골렘 나온 적 없다고 미친 자식아! 골렘이 왜 나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패닉에 빠져서 외쳤다.

아무리 정체불명의 쓰레기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골렘이 나온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제야 뒤늦게 깨달은 이한은 머쓱해져서 말했다.

“그렇군. 당연히 나온 적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곳이라면 때려죽여도 안 들어왔지...!”

골렘, <죽어라 날아다니는 해골> 기동했습니다. 명령을 수행합니다.

“......”

“...확실히 선배들이 만들었군.”

누군가를 향한 증오심이 느껴지는 골렘 이름에 자리에 있던 학생들은 모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화강암과 현무암, 그리고 정체불명의 두 가지 암석과 박달나무로 만든 골렘은 절반 정도가 파괴되었지만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샤르칸. 스켈레톤 전사를 강화시키겠다. 같이 협공하자.”

이한은 저번에 했던 것처럼 전투를 준비했다.

스켈레톤 전사를 폭발적으로 강화시킨 다음 원소 마법을 난사.

골렘의 강도가 상당히 단단해보였지만 반쯤 부서진 놈이라 이쪽이 유리했다. 계속해서 쏘다보면 골렘의 약점인 핵에도 타격이 갈 수밖에 없었으니까.

청소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골렘은 이한의 공격에 대비하는 대신 묵묵히 쓰레기를 집고 밖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날아오는 쓰레기에 기겁한 앙라고가 옆으로 몸을 던졌다.

“공격이다!!”

“청, 청소라는데?”

이한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갑자기 일을 대신해주는 골렘의 모습에 놀라워하며 쳐다보았다.

한쪽 다리가 날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골렘은 빠른 속도로 쓰레기들을 치워냈다.

‘하지만 오래 움직이지는 못하겠군.’

이한은 골렘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마력을 읽어냈다.

움직일 때마다 발산되는 마력량이 상당한데다가 파손된 부분에서 손실되는 양도 상당했다.

그러면 추가적으로 회복을 하거나 메꿔줘야 하는데 골렘의 마력 자체가 점점 약해지는 걸 보니 오래 움직이기는 힘들어보였다.

‘하긴 오래 움직일 수 있는 놈이었다면 여기서 이러고 있지는 않았겠지.’

우연히 무언가 잘못 건드려서 다시 기동된 게 분명했다.

“이 자식... 너 대단하잖아! 저번 주에 우리가 널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해 못해도 돼!”

명령을 수행합니다. 폭발성이 있는 물약이 발견됐습니다. 뒤로 물러나주십시오.

“고, 고마워.”

그러나 이한의 생각과 달리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골렘과 빠르게 친해졌다.

“이걸로 어떻게 다시 다리를 만들어줄 수 없나?”

“그보다는 떨어진 다리를 우리가 찾아주자. 쓰레기장 속에 있을 수도 있잖아.”

아까까지만 해도 치우기 싫다고 칭얼대던 놈들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창고를 샅샅이 훑어댔다.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시간 다 됐다. 남은 일은 내일 와서 하자.”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냐?”

“우리 없는 동안 골렘이 혼자서 다 치우겠는데?”

흰 호랑이 탑 학생들 말에 이한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대답했다.

“그럴 일은 없을 텐데.”

“왜?”

“그야 반나절 정도 더 가면 정지될 테니까?”

“......”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가 있냐’는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아니... 파손된 것도 있고 마력 소모도 있어서 오래 기동이 힘들어. 봐라. 멀쩡한 놈이었으면 지금 이렇게 기동하겠냐?”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골렘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잠깐. 지금 그게 중요해? 워다나즈. 그럼 고칠 수는 있고? 고칠 방법은 있지? 고치면 되잖아.”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간절하게 말했지만 불가능한 걸 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한도 같은 1학년인데 어떻게 골렘을 고친단 말인가.

“되겠냐?”

“휴. 된대.”

“다행이다.”

“역시 워다나즈 놈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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