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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96화 (396/687)

396화

“하지만 에인로가드잖아.”

이한은 흰 호랑이 탑 학생의 말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었다.

구조적으로 그런 통로가 불가능해보여도 절대란 게 없는 곳이 에인로가드였으니까.

상층 첨탑에서 계단 몇 칸 내려왔더니 학교 밖 마을의 지하실로 나올 가능성도 있는 곳인 것이다.

해골 교장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오래된 마법의 유산들이 가득했으니...

“아니. 아무리 감안해도 그건 아니지.”

고민하던 이한은 단호히 부정했다.

물론 가능성이야 있겠지만 그 가능성이란 게 가이난도가 이번에 학년 수석을 할 정도의 가능성 아닌가.

“헛소리하지 말고 비켜서라.”

“흑흑.”

탕탕탕-

이한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마법을 걸어서 성분을 확인하고, 마력을 최대한 탐지해보고, 바닥문을 두드려가면서 안에 기관이나 함정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노력했다.

‘없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혼자 확인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이한은 친구들을 불렀다.

“여기 함정이나 기관 탐지, 해체에 자신 있는 놈?”

“......”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기사 가문 출신인데 그런 기술에 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한은 무자비하게 그들을 비난했다.

“없냐?? 너희들은 대체 기술도 안 배우고 뭐한 거냐?”

“아니... 우리 기사... 야...!”

“됐다. 내가 혼자서 하마.”

이한은 투덜거리며 랫포드에게 배운 기술로 문을 다시 확인했다.

랫포드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억울했지만 이한이 확인하는 모습에 차마 반박하지도 못했다.

저 자식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없는 것 같은데... 좋아. 연다. 그 전에 너희 중에 세 명만 뽑자.”

“뭐하려고?”

“문 같이 열 세 명. 나머지는 혹시 모르니까 저쪽 문가에 서 있다가 문제 생기면 바로 튀어나가서 도망쳐라.”

“......”

10분 후.

재수 없게 뽑힌 세 명은(보충을 끝내고 돌아왔다가 잘못 뽑힌 앙라고는 울기 직전이었다) 이한과 같이 문 앞에 섰다.

“열어!”

쿠쿠쿠쿠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위로 열렸다.

기침이 나올 정도로 자욱한 먼지가 가시자 지하로 연결된 어두컴컴한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쿨럭, 쿨럭... 탈, 탈출 통로?”

“그럴 리가. 다들 암흑 시야 걸려있지? 들어간다!”

열기 전에 가능한 강화 마법을 친구들에게 걸어준 이한은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내딛었다.

아무리 암흑 시야가 걸려 있다고 하더라도 어둠 속을 돌아다니는 건 시야가 제한되고 답답하기 마련.

마음 같아서는 불을 켜고 싶었지만 이한은 참았다.

안에 뭐가 있을지 몰랐으니까.

“물약이다, 워다나즈!”

“꽤 많아!”

계단을 내려가고 통로를 조금 걷자 옆 선반에 찰랑이는 유리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뭔가 건졌다 싶어서 기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나 이한은 고개를 저었다.

“마력이 안 느껴진다. 술이군.”

“......”

“더 좋은 거 아니냐?”

“쉿. 워다나즈 앞에 있잖아.”

흰 호랑이 탑 학생 중 한 명이 어리둥절해하며 말하자 옆에서 눈치를 줬다.

아무리 술을 좋아해도 그렇지 워다나즈 앞에서 ‘야! 물약이 아니라 술이네! 신난다!’해서 좋을 게 없었다.

얼마나 무식하고 천박하게 보겠는가.

“...그래. 술도 꽤 좋은 물건이지. 검은 거북이 탑하고 교환도 가능하고.”

“그,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앙라고는 군침을 숨기며 대답했다.

교환이고 뭐고 자기 몫은 자기가 마실 생각이었던 것이다.

‘선배들의 비밀창고였나?’

이한은 선반에 놓인 술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에인로가드는 매순간 새로운 방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몇 년 동안 잘 쓰던 방이 갑자기 다른 곳으로 날아가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 술들은 밖에서 사온 상표가 달린 술병도 있었지만 누가 봐도 직접 담근 것도 있었다.

미친 해골을 저주하며 여기 이 술을 완성하노라.

중간고사로 서로 패싸움 벌이는 게 말이 됩니까? 언젠가 황제 폐하한테 고발할 겁니다!

언젠가 이 빈 병을 발견할 후배여, 외부인들이 들어오면 경계할지어니! 그들은 너희를 짓밟기 위해 초대받은 자로다!

내년에 내가 졸업 못하면 나는 언데드가 되어도 불평하지 않겠다!

‘꽤 열심히 담근 것 같은데...’

불평불만과 별개로 이한은 선배들이 왜 이 술병들을 놓고 갔는지 의아했다.

물론 다시 찾기 쉽지는 않겠지만, 마법학교에서 몇 년 보낸 선배들이라면 위치가 바뀌는 경험을 한두번 해본 게 아닐 터.

노련한 마법사들이 이런 걸 그냥 포기할 이유가 없...

“워, 워, 워, 워다나즈.”

옆에서 겁에 질린 앙라고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한은 바로 반응했다.

지팡이를 겨누고 즉시 주문을 외울 준비를 마친 다음 시선을 돌렸다.

‘뭐지?’

거대한 조각상이 일행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모여 있는 학생들보다 두 배 정도 되는 키를 가진 조각상은 통로 천장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다가왔다.

전혀 위압감이나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 상대방의 모습에 이한은 주문을 외워야할지 망설였다.

망설임을 먼저 끊어준 건 상대였다.

-도전자들을 환영한다.

순간 흰 호랑이 탑 학생 한 명의 목검이 조각상의 손아귀로 순간이동했다.

이한은 깜짝 놀랐다.

‘공간 계열 마법을 이렇게 쉽게!?’

마법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 높기로 악명 높은 게 시공간 계열 마법이었다.

아무리 에인로가드가 마력적으로 특수한 곳이라지만 조각상이 저렇게 공간 계열 마법을 시전하다니.

실제로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내... 내 검!! 내 검을 돌려줘!!”

-이건 도전의 대가다. 자. 언제 시작하겠는가?

조각상은 무감정하게 물었다.

“...뭘 겨루는 거지?”

-뭐겠는가? 마법사들끼리 만났다면 당연히 마법이지.

‘젠장.’

이한은 혀를 찼다.

마법이 아니라 다른 거였다면 모를까, 마법이라면 순수한 실력의 승부였다.

방금 공간 계열 마법으로 반응도 하지 못하게 목검을 뺏은 정도의 마법사라면...

“됐다!”

“마법이라면...!”

“...야 이 미친놈들아.”

“?!”

기뻐하다가 욕을 먹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매우 놀랐다.

어째서?!

*         *         *

“...그래서 창고에서 쓸만한 걸 찾고 있었다고?”

뒤늦게 창고에 도착한 지젤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모여 있는 걸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물론 골렘을 수리하고 싶다는 건 이해가 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워다나즈가 자기 일 대신 시키는 거 아닌가?’

“그건 아니야. 모라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사제님들도 같이 하는 일이잖아. 그런 속임수를 쓸 리 없다고.”

“...오... 그래.”

지젤은 욕설이 나오는 걸 참았다.

“그래서 워다나즈 놈은 어디 갔는데?”

“여기 지하에 내려갔는데.”

“...?!”

상황 설명을 듣기도 전에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계단에서 누군가 뛰쳐 올라왔다.

사색이 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비명을 질렀다.

“워다나즈가 죽어가!!”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게?!”

기다리고 있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깜짝 놀라서 우르르 달려왔다.

“안 죽어간다... 이 멍청한 놈들아...”

친구들이 만든 들것에 실려 온 이한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예상은 했었지만 마법사 조각상의 실력은 실로 경이로웠다.

결투가 벌어지자마자 이한이 있던 자리에 바로 바위조각 몇 개를 텔레포트시켰다.

-아니, 마력이... 놀랍군!

물론 직접적인 텔레포트는 이한의 비정상적인 마력으로 인한 대마력 때문에 막혔다.

하지만 조각상의 강함은 그 뒤에 드러났다.

마법이 막혔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공격.

직접 텔레포트가 불가능하다면 간접으로!

슉!

순식간에 이한의 사방을 포위하듯이 바위조각들이 생겨나 빠르게 난타했다.

변환 마법으로 급히 방어를 시도했지만 충격은 어쩔 수 없었다.

이한은 그대로 나뒹굴었다. 공간 마법을 응용한 공격은 지독할 정도로 빈틈이 없었다.

-대장이 쓰러졌으니 이번 도전은 이걸로 끝일세. 지식의 방은 그리 쉽게 들어갈 수 없다네.

“지식의 방??”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당황스러워했다.

“지식의 방이 뭔데?”

“물어보니까... 선배들이 공부한 것들이 쌓여 있는 장소라고 하던데.”

“뭐? 그런 게 있다고?”

“있어봤자 의미 없어! 저긴 못 들어가니까!”

앙라고가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직접 대면한 학생들만 느낄 수 있는 강렬한 압박감이 상대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그 워다나즈가 한 번에 나가떨어지다니.

“일단 워다나즈부터 치유실로 데리고 가자. 혹시 모르니까 확인해야지.”

“그, 그래.”

더르규와 지젤은 이한의 양쪽 어깨를 붙잡았다. 지젤은 무심코 부축했다가 어이없다는 듯이 더르규를 노려보았다. 더르규는 제발 한 번만 봐달라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내가 왜...”

“뭐라고? 모라디?! 이한을 부축해주겠다고! 역시 넌 명예로운 기사다!”

더르규는 다들 들으라고 크게 외쳤다.

지젤은 입을 크게 벌리고 경악했다.

저런 워다나즈 같은 짓을 더르규가 할 줄이야!

“이런 미친 새...”

“미, 미안하다. 솔직히 저 녀석들은 믿음직스럽지가 않아서.”

부축을 받으며 나가기 전에, 이한은 앙라고를 불렀다.

“앙라고...”

“말, 말해. 워다나즈! 문을 닫을까?? 지시 내릴 거 있나?”

“아니... 안에 있는 술 가지고 나오라고...”

“......”

*         *         *

-상당히 세게 얻어맞았군.

-위... 위험한 상태입니까?

-아니. 잘 맞아서 별로 안 다쳤다. 충격만 회복시키면 곧 나아질 거다.

-이한! 들었나? 분명 마력으로 몸을 보호한 게 틀림없다. 그런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하다니!

-더르규... 울렁거리니까 조용히 좀 말해라...

몇 시간 쉬고 회복된 이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검은 거북이 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심했다가 크게 당했군.’

에인로가드에서는 절대 긴장을 풀면 안 됐는데 잠깐 방심했다가 크게 당한 것이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선배들 중 몇 명이 찾아낸 방을 술 창고와 독서실로 사용했다가, 학교의 공간이 재배치되면서 웬 미친 조각상 놈이 끼어든 것이다.

접근하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결투를 신청하는 놈인 만큼 선배들이 뚫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게다가 마법전투 실력도 살벌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으니...

‘지하는 엄두도 내지 말고 골렘이나 수리해야겠군.’

어지간하면 길을 뚫고 선배들이 남긴 게 뭐가 있나 확인해봤겠지만 솔직히 이건 답이 안 나왔다.

“워다나즈!”

얼굴 익힌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 몇몇이 암시장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이한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네가 없어서 아쉬웠다. 너 같은 큰손이 있어야 시장이 활성화되는 법인데.”

“미안하다. 곧 밖에서 물건을 가지고 올 테니 걱정하지 마라.”

“후후...”

“후후후.”

서로 사악한 대화를 나누며 눈빛을 교환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노련한 밀수업자 그 자체였다.

“대신 오늘은 다른 걸 좀 갖고 왔지.”

이한은 지하실에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맞아가며 꺼낸 술들을 위에 올렸다.

그 생명의 액체에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술을 이렇게나...?! 워다나즈, 너는 대체...! 어떻게 구한 거냐?!”

“왜 촌스러운 질문을 던지고 그러나.”

“후... 후후. 괜한 걸 물었군.”

“저기 두 분 왜 그렇게 이상하게 대화하십...?”

진짜 전문가 랫포드는 필요 이상으로 수상한 분위기에 의아해했다.

암시장에서는 저렇게 수상하게 대화하지 않았다.

그냥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데...?

이한은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에게 술 다섯 병을 건네고 각종 물자를 받아서 챙겼다.

종이봉투에 감싸진 치즈의 무게를 가늠하며 협상을 마친 이한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일주일은 괜찮겠군.”

“과장이 심하군. 워다나즈. 한 달은 버틸 양이라고. 참. 제국 연금술사들이 온 거 아나?”

“...누가 왔다고?”

“제국 연금술사들이 왔다는데? 아까 다른 친구들이 봤어.”

“그렇군.”

이한은 갑자기 지하실에서 봤던 문구가 떠올랐다.

언젠가 이 빈 병을 발견할 후배여, 외부인들이 들어오면 경계할지어니! 그들은 너희를 짓밟기 위해 초대받은 자로다!

“...아니, 아직 중간고사도 아닌데...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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