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98화 (398/687)

398화

“...을 리가 없지.”

“방금 좀 머뭇거리지 않았어?”

“네 기분 탓이겠지.”

요네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이한이 망설였던 것 같았는데?

“니기소르 사제. 혹시...”

니기소르를 입단속시키려던 이한은 사제가 푸른 용의 탑 학생들한테 뜨겁게 부르짖는 걸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미 저렇게 외치고 있는 이상 입단속을 시켜도 다른 사제들 귀에 무조건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아시겠소???!”

이글거리는 니기소르 사제의 눈동자를 대면한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당황했다.

사실 빵 먹느라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덜 된 것이다.

“아시겠냔 말이오!”

“뛰... 뛰어난 화염 마법인 것 같...”

황녀는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일단 저 마법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화염의 성질이 독특하게 변화한 걸 봤을 때 원소 계열 마법 중에서 익히기 힘든 까다로운 비전 마법이 아닐까 추측됐다.

1학년이 익힐 마법은 아니었지만 워다나즈라면 익혀도 별로 놀랍지 않았다.

“화염 마법이 아니라 신성 마법!! 신성 마법이란 말이오!!”

니기소르 사제는 발을 쾅쾅 구르며 억울해했다. 황녀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살짝 움츠러들었다.

아산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물었다.

“근데 신성 마법은 사제님들만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소. 하지만 꼭 사제가 아니더라도 가끔 신성 마법에 각성하시는 분들이 나타나곤 하오. 아주 독실한 신도분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오.”

“어. 근데 워다나즈는 딱히 안 독실한...”

아산은 이한이 딱히 신앙심이 깊다고 보진 않았다.

기숙사에서 같이 지낼 때 기도를 열심히 하거나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진 않았던 것이다.

물론 불사조 탑 사제들한테 식사를 주기적으로 주긴 했지만 그건 다른 탑 학생들도 마찬가지였고...

“어, 어, 어, 어떻게 그런 말을...!”

니기소르는 말 그대로 거품을 물듯이 분노해서 부들부들 떨었다. 아산은 당황해서 급히 외쳤다.

“아니, 아닙니다! 사제님. 생각해보니 워다나즈는 독실했었던 것 같습니다! 사제님들한테 매번 식사도 주고!”

“??”

황녀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식사를 주는 게 어떻게...”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어, 어! 물론이지!”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간신히 니기소르 사제가 진정할 수 있었다. 황녀는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화제가 지나가버려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들 파라그라눔 길드한테 들고 갈 건 생각했나?”

“파라그라눔 길드?”

“...지금 왜 모인 거라고 생각한 거지?”

“간, 간식 주려고 모인 거 아니었나?”

이한은 배고픔 때문에 지능이 내려간 푸른 용의 탑 학생은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친구들을 불러 모은 건 제국의 연금술사에게 인정 받아야 한다는 까다로운 난제를 돌파하기 위해서였다.

서로 지혜를 모은다면 혼자서 하는 것보다 몇 배는 나을 테니까.

“아무래도 만족시키려면 일반적인 물약으로는 안 되겠지?”

“그렇긴 하지.”

아산이 대답했다.

“파라그라눔 길드의 연금술사들은 언제나 새로운 제작법에 목말라하는 이들이거든.”

“오. 아산. 혹시 만나본 적 있나?”

“아니. 직접 만나본 적은 없는데, 어렸을 때 거기 연금술사들이 수도 건물을 하나 점령하고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으면 불태우겠다고 날뛴 적이 있어서 기억이 나.”

“...그, 그렇군.”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상대방의 정보를 추가로 알게 되었다.

“일단 지금 만들 수 있는 물약들을 적어보고, 아직 만들지는 않았지만 시도해 볼 만한 물약들도 적어보자. 그런 다음 각자 이야기 나눠보고.”

이한의 말에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만들었던 게, 하급 정신 강화 물약, 하급 체력 회복 물약...”

“난 비온의 각성 물약 만들어봤어.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저번에 안 된다고 하더니 결국 성공한 건가?”

“응. 가루 넣을 때 쓰던 마법이 불완전했더라.”

차례대로 적어나가던 학생들은 이한이 적은 글씨를 보고 의아해했다.

“워다나즈. 잘못 적은 것 같은데. 도브룩의 환혼 물약 맞아?”

“맞다. 이번 방학에 배웠어.”

“......”

이한 옆에 있던 학생은 질색하며 쳐다보았다.

대체 어느 미친 공방이 1학년 학생한테 <도브룩의 환혼 물약> 제조를 맡긴단 말인가?

‘황제 폐하한테 고발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느 정도 리스트가 정리되자 이한과 친구들은 하나씩 짚어보았다.

“회복 물약 쪽으로 한 번 새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마침 약초 몇 개 구한 거 있는데 한 번 실험해보면...”

“난 강화 계열 물약으로 도전해 볼 생각이야. 요즘 강화 계열을 많이 연습해서.”

새로운 물약을 개발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방법.

이제까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참신한 방법으로, 쓰이지 않았던 재료들을 조합하고 새 마법을 만들어 개발하는 방법이었다.

당연히 거장 중의 거장이 오랫동안 공을 들여야 가능한 일이었고 이렇게 한 번 개발된 물약은 수많은 연금술사들의 교과서가 되고 지침이 됐다.

다른 하나는 기존의 방법을 파고들어서 개선하는 것.

백령버섯 대신 암웅버섯을.

칼타칼 점액 대신 그리폰의 부러진 부리를.

재료를 바꾸는 것뿐만이 아니라 도중 시전하는 마법 등 온갖 요소들을 바꿔보며 확인해보는 건 제국의 수많은 연금술사들이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이었다.

난이도도 첫 번째 방식보다 훨씬 쉬웠고 지혜와 행운이 동시에 따라준다면 꽤 괜찮은 성취를 낼 수도 있었다.

당연히 지금 1학년 학생들이 몰두하고 있는 것도 두 번째 방식이었다.

‘도브룩의 물약을 개선해보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이번 방학 때 지긋지긋할 정도로 연습한 도브룩의 환혼 물약.

난이도가 정말 높긴 했지만 그 완성도 또한 이한이 알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물약이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다면 확실히 뛰어난 성과가 되리라.

재료가 좀 복잡하긴 했는데 우레걸음 교수한테서 빌리면 될 것 같고...

“이한. 이한.”

“?”

“언니한테 받은 물약을 만들어보는 건 어때?”

“어? 그래도 되나?”

이한은 놀랐다.

요아넨에게서 받은 물약 레시피는 평범한 물약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개발한 물약.

“애초에 줬을 때부터 네가 어디에 전수해도 불만을 가지면 안 되는 거지. 그리고 언니는 그럴 사람도 아니야. 주고 나서 이미 잊었을 걸.”

“정말?”

“아니면 뭐 어때. 언니는 좀 손해봐도 싸.”

요네르는 어디 한 번 당해보라는 듯이 말했다. 쌓인 게 많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요아넨 님이 혹시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게 있나?”

“나한테는 없어. 보통 내가 데리고 온 친구들한테 잘못을 많이 저질렀지.”

“저런... 나는 운이 좋았던 거군.”

“......”

요네르는 미친놈 보듯이 이한을 보다가 말하려는 걸 포기했다.

“됐고 물약이나 만들자.”

*         *         *

백염(白焰).

니기소르 사제는 이한이 신성 마법으로 불러온 화염을 그렇게 불렀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교단에 기록된 신성 마법 중에 비슷한 게... 41년 전, 초록색 화염, 독을 빨아들이고 응축하는 성질을 가졌다, 아니고, 아! 여기 있소. 흰색 화염, 백염(白焰). 삿된 오염을 태우고 음에너지를 몰아내는 성질. 아마 이 화염이 아닐까 싶소.”

‘난 흑마법도 배우고 있는데 이래도 되나?’

일단 파사(破邪)의 화염이라니 나쁘지는 않았지만 약간 기분이 복잡한 것도 사실이었다.

“흑마법 쪽 물약 만들 때는 못 쓰겠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꽤 유용하긴 하겠군.”

“흑마법 쪽도 물약이 있소?”

니기소르 사제의 악의 없는 순수한 질문이 이한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있지...”

“오오.”

사제가 놀라는 사이 이한은 씁쓸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렸을 때 내게 지혜를 전해주신 사제께서는 무려 세 가지의 신성 마법을 사용할 줄 아셨소. 워다나즈 님도 꾸준히 정진하면 더욱 더 많은 은총을 받을 수 있을 것이오.”

“여기서 더 늘어날 수 있을지 의문인데.”

“충분히 가능하오.”

니기소르 사제는 굳은 신뢰가 반짝이는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다른 친구였다면 감동했겠지만 이한은 좀 떨떠름했다.

‘너처럼 미친 화력의 화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분명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해서 세상을 불태울 화염도 만들 수 있을 거다’라는 수상한 기대감이 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워... 워...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옆에서 새된 비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아나 사제?”

“말... 말도 안 되죠? 거짓말이라고 해주세요. 정말 아프하 교단의 신성 마법을...???”

“사실이오!”

‘아오 이 눈치 없는 새끼.’

이한은 자랑스럽게 외치는 니기소르 사제의 뒤통수를 때리고 싶었다.

조금 미안한 기색을 보여도 모자랄 판에!

“시아나 사제. 신성 마법을 각성했다고 해서 내가 플레맹 교단에 대해 보내는 신앙이 사라지진 않...”

“한 번만!”

“??”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시아나 사제의 반응은 이한의 예상과 달랐다. 사제는 거의 엎드려서 발목이라도 잡고 늘어질 기세였다.

“무슨 기회를?”

“기숙사에 들어가시기 전에 한 번만 더 기도를...! 신성 마법 각성할 수 있을 거예요! 진짜!”

‘사제들의 신앙심, 이래도 괜찮나?’

기적에 가까운 신성 마법을 무슨 해골 교장의 교육처럼 ‘조금만 더 하면 될 거야!’라고 생각하다니.

옆에서 니기소르 사제가 점잖게 말했다.

“신성 마법은 그런 식으로 급하게 한다고 되는 게...”

“좀 조용히 하고 있어요. 한 번만! 차례 지나가면 또 한참 기다려야 한단 말이에요!”

“알겠으니 좀 진정하도록.”

이한은 시아나 사제를 달랠 겸 기도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시아나 사제는 누가 와서 방해라도 할까봐 걱정된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감시했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그 변화를 일으키시는 분이여, 오늘도 이렇게 믿음을 보내니 그 신도에게 변화의 실마리를...”

팟!

“?!”

이한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뿜어낸 신성력이 저번처럼 다시 움직이더니 날실과 씨실로 변해 서로를 엮어갔다.

이건...?!

“아, 안 되오!”

여유롭게 지켜보던 니기소르 사제가 깜짝 놀라서 외쳤다.

이건 누가 봐도 신성 마법 각성의 전조였다.

이런 전조가 있다면 아껴뒀다가 아프하 교단의 신성 마법을 각성하게 해야지 다른 교단에 넘겨주다니!

“안 되긴 뭐가 안 돼! 조용히 하고 있어요!”

“시아나 사제?”

이한은 살벌한 대화에 당황해서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온 반응은 더 격렬했다.

“집중!! 집중해주세요 제발!!!”

“그, 그러도록 하지.”

시아나 사제의 걱정과 상관없이 신성력은 무사히 기적으로 변했다.

플라스크 안에 담겨있던 물약이 투명하게 변하는 모습에 시아나 사제는 박수를 치며 폴짝폴짝 뛰었다.

“될 줄 알았어요! 될 줄 알았다고요! 딱 각성할 순간이었는데 차례가 넘어가서 그렇게 된 거죠!”

“신성 마법이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는 않...?”

이한이 알기로 신성 마법은 도박사의 오류 같은 게 아니었다.

여러 번 실패하고 나면 이제 슬슬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그런 구조가 아니라, 믿음과 의지가 영향을 주는 그런 구조...

하지만 시아나 사제는 이한의 말을 듣지 않았다. 너무 신이 났기 때문이었다.

“저 잠시 기숙사 좀 다녀올게요!”

“잠깐! 시아나 사제! 잠깐만!”

분명 기숙사에 가면 다른 사제들 열 몇 명이 ‘아하! 지금이 기회구나’하고 뛰쳐나올 것 같았기에 이한은 급히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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