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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02화 (402/687)

402화

“조금 시간이 걸리겠군요.”

돌아온 파라그라눔 길드의 연금술사들이 그렇게 말하자 우레걸음 교수는 뭔 소리를 하냐는 듯이 되물었다.

“뭘... 소환하려고 하시길래 그렇게 오래 걸리오?”

“요아넨 메이킨 님의 말씀을 듣고 계산해 본 바에 따르면, 아무리 위압감을 줄여도 하급 정령들은 그냥 짓눌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아마.”

이한은 소심하게 반박했다.

아직까지 이한 앞에서 짓눌린 정령을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 걸릴 테니 다른 것부터 먼저 확인하는 게 낫겠습니다.”

“다른 것이라면?”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연금술사 한 명이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이한과 우레걸음 교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뭐하는 거지?

“뭡니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

몇 분 정도 지나고 나자 연금술사가 볼라디 교수와 같이 돌아왔다.

“이 분께서 확인을 도와준다고 하십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교수로서 해야 할 일이지.”

“......”

“......”

이한과 우레걸음 교수는 동시에 한탄했다.

학교에 있는 많고 많은 교수 중에 왜 대체!

*         *         *

마법사가 마법을 시전하는 건 언제나 흔적을 남겼다.

자신의 의지로 마력을 엮어서 현실을 변화시키는 순간, 마법사 주변에는 마력이 발산됐다.

이렇게 발산된 마력은 그 마법이 끝난 뒤에도 어느 정도 남았고 예리한 마법사들은 이런 흔적을 잡아내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파라그라눔의 연금술사들이 이번 물약으로 원하는 목표 중 하나가 이런 마력의 발산을 숨기는 것이었다.

“전투에 유용하겠군.”

볼라디 교수는 보기 드물게 희미한 만족감을 목소리에 드러냈다. 이한은 공포를 느꼈다.

“대체 왜 이런 물약을?”

“마법의 잔향을 느끼면 영향을 받는 희귀한 동식물들이 있습니다. 이 물약은 그런 동식물들을 다룰 때 커다란 도움이 될 겁니다.”

“제자를 훈련시킬 때도.”

볼라디 교수가 옆에서 첨언했지만 연금술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환장하겠군.’

이제까지 볼라디 교수가 공격을 날릴 때 이한이 먼저 파악하는 방법은 대충 세 가지였다.

마력의 발산, 뿜어내는 살기, 보이는 동작.

그런데 살기 같은 경우에는 볼라디 교수가 능숙하게 통제할 뿐만 아니라 이걸로 속임수까지 쓰다 보니 경험이 부족한 이한은 불리했다.

그나마 마력의 발산과 보이는 동작으로 어찌어찌 감을 잡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사라진다니.

퍽!

물약을 한 모금 마신 볼라디 교수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이한은 간신히 막아냈다.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서 다행이었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까다로웠다.

그걸 볼라디 교수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부탁했다.

“이 물약을 몇 병 받고 싶군.”

“완성되면 보내드리겠습니다.”

“......”

이한은 자신도 챙겨놓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 교ㅈ... 아니, 다른 사람들과 싸울 일이 있을지 몰랐으니까.

볼라디 교수와 싸우면서 느낀 건 노련한 전투 마법사들의 빈틈을 노리는 게 상당히 까다롭다는 점이었다.

‘일반적인 기습은 오히려 안 통한다.’

일반적이라면 투명 마법을 걸고 기습을 하는 방법이 안 통할 리 없었다.

그러나 전투 마법사에게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투명 마법을 걸고 기습하는 방식이 워낙 잘 알려져 있는 만큼 다들 대비책을 하나둘씩 갖고 있는 것이다.

전투 마법사의 허점을 찌르기 위해서는 상대의 발상을 뛰어넘을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파라그라눔의 장막>은 그런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바로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상대가 어떤 징조도 없이 갑자기 기습을 한다면 노련한 전투 마법사라도 당황하리라.

“정령이 준비됐습니다!”

“이제야?”

이한은 얼얼한 팔을 주무르며 투덜댔다.

조금만 빨리 소환됐으면 볼라디 교수를 불러올 일도 없었을 테니까.

“자. 이쪽으로...”

문을 열고 나가자 선선한 바람이 이한의 얼굴을 흔들고 지나갔다.

허공을 보니 새 모양을 가진 정령의 형체가 일렁거렸다. 누가 봐도 바람의 정령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앗. 혹시 친해지면 계약도 가능합니까?”

이한은 반색하며 물었다.

지금 이한이 부를 수 있는 정령은 가성비 안 좋기로는 에인로가드에서 손꼽히는 페르쿤트라였다.

한 번 부르면 한동안은 부르지도 못하는 필살기 같은 존재라 정작 필요할 때는 부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불러도 정말 활약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하지만 저 바람의 정령은 정말 유용해보였다.

당장 저런 정령이 있다면 저번에 흰 호랑이 탑 놈들이 사라졌을 때도 부탁해서 찾을 수 있었...

푸드덕!

이한이 나오자 갑자기 바람의 정령이 미친듯이 날갯짓하더니 정령계로 돌아가버렸다.

“......”

“......”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그 침묵을 끝낸 건 볼라디 교수였다.

“정령의 눈까지 속이지는 못했군.”

“조금 더 개선해보겠습니다!”

연금술사들은 의욕적으로 말했다.

이런 실패는 연금술사들에게 아무런 상처도 되지 않았다.

새로운 발견은 수백 번의 실패가 있어야 가능한 법.

오히려 지금처럼 완성 직전의 사소한 시련은 감사할 뿐이었다. 완성도를 더욱 높일 수 있었으니까.

“......”

물론 한 학생에게 상처를 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         *

주말이었지만 이한은 탑에 돌아가는 대신 밖에서 공부했다.

본관 앞 정원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놀고 있는 1학년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워다나즈. 불사조 탑에는 안 들러도 되나?”

“바보 같은 질문하지 마. 이한이 누구를 진짜 친구로 생각하는지 뻔하잖아. 그렇지?”

가이난도는 의기양양해져서 대신 대답했다.

‘사제들 싸우는 거 보기 미안해서 그런 건데.’

지금 불사조 탑 사제들은 무슨 콘클라베마냥 휴게실에 앉아서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 신성 마법은 저희 교단에서...

-아니! 당사자의 의사를 가장 존중해야죠! 부여 마법을 듣고 계시는 만큼 저희 교단에!

-예지 마법을 듣고 계시니까 저희 교단 아닌가요?

-제가 들어보니 바실리스크를 키우려고 한다는데 저희 교단에...

그걸 보면 아무리 이한이라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두 교단이 우연히 운이 좋았던 거고 그 다음부터 신성 마법을 각성하지 못한다면...

사제들은 내색하진 않겠지만 속으로는 매우 슬퍼할 것 아닌가.

“지금 탑에 돌아가기 싫긴 해.”

“그렇지?! 봐봐!”

“그런데 가이난도. 너 과제는 제대로 하고 있나? <기하학과 산술 심화> 책 펴봐라.”

“안... 안 갖고 나왔어.”

“가서 갖고 나와.”

가이난도는 고개를 축 떨구고 중얼중얼대며 탑으로 걸어갔다.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은 다급히 책을 펴고 시선을 깔았다.

물론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황녀 같은 경우에는 가이난도가 걸어가든 말든 펼쳐진 책만 뚫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왜 저러시지? 밀린 과제라도 있나?”

“아. 파라그라눔의 연금술사들 때문에.”

“우린 그냥 잘랐는데 황녀님은 몇 가지 부분을 지적해서 돌려주셨나보더라구.”

이한이야 이미 통과했지만 다른 학생들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가차 없는 평가에 포기했지만 그 중 몇몇은 구체적인 지적을 받아서 매달리고 있었다.

‘잠깐. 그 작자들 볼라디 교수 같은 사람들이던데 설명은 제대로 했나?’

이한이 보기에 파라그라눔 길드의 연금술사들은 연금술사 버전 볼라디 교수였다.

거기 사람들이 좀 더 적극적, 공격적이 되면 볼라디 교수가 되지 않을까?

...좋은 발상이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점이 많습니다. 기운을 완전히 은폐할 수 있는 방법을 보완하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 적은 방법으로는 기운을 은폐할 수 없습니다. 기운을 은폐할 방법을 보완해 오신다면...

“......”

황녀가 연구하고 있는 물약을 본 이한은 경악했다.

놀랍게도 <파라그라눔의 장막>과 비슷한 물약을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실력의 차이가 있는 만큼 빈 부분이 많았지만 저만큼이나 완성시킨 것도 충분히 대단했다.

이한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연금술사들이 별 소리 안 했습니까?”

“??”

집중하고 있던 황녀는 처음에는 이한이 부른 걸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뒤늦게 깨닫고 당황스러워했다.

“무슨 소리를... 말하는 겁니까?”

‘아무 소리도 안 했군.’

연금술사들 성격에 ‘사실 이거 우리가 지금 다 완성해가고 있는데 이렇게저렇게 해보시죠’라고 조언을 해줄 리는 없었다.

하지만 하다못해 ‘지금 이건 1학년 학생이 완성시키기에는 채워야 할 부분과 난이도가 너무 높은데 다른 물약을 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라고는 해줄 수 있지 않은가.

우레걸음 교수도 그 정도 배려는 해줄 것이다.

그런데 그냥 아무 말도 없이 ‘오 계속 해보시죠’라니.

‘덜 사나운 볼라디 교수 맞다니까.’

이한은 황녀가 계속 고통받는 게 안타까워서 슬쩍 말했다.

“연금술사들이 좀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

황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솔직히 마법사들은 다 이상했던 것이다. 여기 교수들과 비교하면 연금술사들은 딱히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질문을 잘못했군.’

이한은 후회했다.

상대도 에인로가드 학생인데 딱히 특별하게 이상하진 않았으리라.

“연금술사들이 이 물약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거나...”

“바로 대답하긴 했습니다...?”

황녀는 이한이 뭘 말하려는지 몰라서 빤히 쳐다보았다.

무언가 말하려는 게 있는 것 같았는데 감이 잘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모습에서 뭔가 연상되는 게 있지 않으십니까?”

“...아. 파라그라눔 연금술사들은 실력이 좋다? 그래서... 지금 수도에 있는 연금술 길드들이 받으려는 수도 기사단 물약 납품 사업에서 받을 확률이 높아지니까... 앞으로 향후 수도 연금술 길드의 권력 구조가 흔들릴 수 있겠습니다!”

황녀는 감탄스러운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할 말은 많았지만 참고 대답했다.

“...그것도 맞습니다만 그냥 여기에 물달개비, 금꿩꽃, 백장석을 넣어보시죠.”

돌려서 말해주기 귀찮아진 이한은 그냥 지금 당장 필요한 재료만 말해줬다.

<파라그라눔의 장막> 제작법의 일부분이었다.

“!!!!”

황녀는 방금보다 몇 배는 놀라서 이한을 쳐다보았다.

한 번 읽은 것만으로도 제작법을 생각해내다니.

마치 파라그라눔의 연금술사들 같은 번뜩임이었다.

본인의 재능으로는 따라갈 엄두도 나지 않는 천부적인 재능의 영역!

“대체 어떻게...”

“친구들아! 교수님이 사람 부른다! 가자!”

누군가 갑자기 달려와서 외치자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은 책을 집어던지고 벌떡 일어섰다.

옆에 있던 다른 탑 학생들도 허겁지겁 짐을 챙기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이한은 일단 따라서 달려가며 물었다.

“뭐야? 무슨 상황이지?”

“교수님, 강의 준비하는 거, 도와드리려고!”

“...그걸 이렇게 다들 자발적으로 달려간다고?”

“먹을 거, 주셔!”

“아...”

이한은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가는 모습에 감탄했다.

1학기 때라면 ‘뭐 우리 어차피 먹을 거 많은데...’하면서 뒹굴거렸을 놈들이 저러니 괜히 기특했다.

“2학년 때도 그냥 다른 탑에 있어야 하나?”

“?!?!?”

이한의 중얼거림을 혼자 옆에서 들은 황녀는 사색이 되어서 손을 내저었다.

*         *         *

학생들을 부른 건 번개걸음 교수였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도랑과 길을 파고, 여기는 아주 깊게 파라. 뭐가 나와도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네! 교수님!”

친구들이 해맑게 웃는 걸 보며 이한은 경악했다.

“너희들 지금 이 준비가 뭘 뜻하는지... 아니다. 됐다.”

이한은 그냥 혼자 알기로 했다.

다음 주 <탈 것 훈련 심화> 강의에 무시무시한 놈이 나온다는 걸 알아봤자 뭐하겠는가.

“밀레이 교수님도 같이 쓰실 곳이니까 잘 파야 해.”

“......”

소환 마법 강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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