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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03화 (403/687)

403화

‘대체 뭘 부르려고 이러시는 거지?’

이한은 번개걸음 교수가 지시한 자리를 보며 찜찜해했다.

아주 깊숙하게 항아리 모양으로 땅을 파라니.

최소한 이 크기에 걸맞은 놈이 나온다는 소리 아닌가.

“워다나즈?”

“예.”

“네가 친구들 작업하는 것 좀 감독해라.”

“...교수님. 저도 1학년...”

이한은 항변했지만 번개걸음 교수는 듣지 않았다.

“우리 갖고 올 테니까 건드리지 말고. 안에서 뭔 소리를 내도 절대 열면 안 된다. 알겠지?”

“그런 놈을 꼭 여기다가 갖다놓으셔야 합니까?”

번개걸음 교수는 다시 무시했다.

*         *         *

“헉, 헉...”

“야. 놀지 마.”

“마력이 부족하다고!”

“누가 그렇게 마법을 낭비해서 쓰라고 했냐? 손이라도 움직여.”

“이 자식이...”

번개걸음 교수가 지시한 조경 작업은 어렵진 않았지만 그 작업량이 상당했다.

벌판 위에 짐승이 돌아다닐 수 있는 길들을 새로 만들고, 뭐가 들어갈지도 모르는 깊은 구덩이를 파 넣어야 하는 것이다.

노련한 마법사라면 모를까 1학년 학생이라면 다 완성하기 전에 마력이 거덜나는 게 보통이었다.

물론 마력이 거덜난다고 해서 쉴 수는 없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을 재촉했다.

“삽 빨리 들어!”

“나는 기사라 삽을 들면 내 명예에...!”

“기사고 뭐고 간에 삽 안 들면 교수님에게 이르겠다.”

“나는 귀족이라 삽을 들면 내 명예에...”

“야. 워다나즈! 이 자식들이 헛소리 해!”

“아, 아니야! 아니야! 워다나즈는 부르지 마!”

그나마 계속해서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이한 정도였지만, 아무래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었다.

“파내라, 파내라, 파내라...”

“워다나즈.”

“?”

흰 호랑이 탑 학생 몇 명이 이한을 부르자 이한은 지팡이를 멈추고 반응했다.

“왜 그러지?”

“지금이 바로 그 순간 아닐까?”

“...무슨 순간? 헛소리 하지 말고 일해라.”

이한은 상대방이 어떻게든 일을 빠지려고 헛수작을 부리는 줄 알고 경계심을 보냈다.

그러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매우 분한 얼굴로 항의했다.

“골렘 말이다, 골렘!”

“아. 그 <죽어라 날아다니는 해골>?”

“쉿!!”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이한처럼 용감하지 않았다. 그들은 허겁지겁 이한의 말을 막은 다음 벌벌 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자식들 기사치고는 너무 겁 많은 것 같은데.’

“그거 이름부터 바꿀 거다. 하여간 그 놈... 지금 제법 완성됐거든. 네가 허락만 하면 불러올 수 있다.”

앙라고와 친구들은 밤낮을 아끼지 않고 골렘 수리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심지어 다른 강의들도 무시하고 수리를 할 정도였으니.

“...강의는 듣고 해도 되지 않았나?”

“워다나즈. 인생에 중요한 게 무엇이겠냐. 그건 강의 같은 게 아니라 진정한 지혜...”

“보통 그런 소리 하는 놈들은 진정한 지혜도 없던데. 어쨌든 알겠다. 움직일 정도로 수리됐다면 데리고 와도 되겠지.”

확실히 지금 골렘이 있다면 작업이 훨씬 더 빨리 끝날 게 분명했다.

야간 당번은 물론이고 이런 일에도 쓸 수 있다면 앞으로도 매우 유용하리라.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지금 갖고 오고 있다!”

“맞고 싶냐?”

“아... 아니... 작업량을 봐. 이대로라면 오늘 끝내기는 힘들다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시선을 피하며 중얼댔다.

“워다나즈! 여기 왔다!”

앙라고가 흰 호랑이 탑 친구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넓적한 짐수레 위에 골렘을 끌고 오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어떻게 데리고 오나 했었는데 그냥 바닥에 판을 깔고 바퀴를 단 모양이었다.

“다들 워다나즈한테 잘 말했지?”

“어? 어어.”

“으응. 물론이지.”

돌아온 앙라고의 질문에 친구들은 떠듬댔다. 그러나 앙라고는 그런 것까지 알아차리지는 못하고 힘차게 물었다.

“자. 그럼. 워다나즈! 골렘을 기동시켜다오!”

“...나한테?”

“...어, 어? 그, 그러면 너 말고 누가 하냐?”

앙라고의 순진무구한 질문에 이한은 ‘너 내가 같은 1학년이라는 건 알고 있지?’라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별 의미 없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골렘 다루는 건 책에서만 읽어봤는데.”

“너한테 그거면 충분하겠지?”

“...야. 이리 와봐라.”

“왜, 왜?”

앙라고는 이한의 목소리에서 불길함을 느꼈는지 슬슬 뒷걸음질쳤다. 가이난도와는 다른 눈치였다.

‘저번에 망가졌을 때 핵이 어디 있었지? 이쪽이었나?’

골렘.

마법사들이 만들어 낸 이 인공적인 소환물은 여러 학파의 마법사들이 사용했다.

소환 마법사는 물론이고 흑마법사 같은 이들도 ‘골렘은 우리가 잘 다루지’하고 주장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는 만큼 이 골렘을 운용하는 방법도 수십 가지가 넘었다.

그 중에서도 그나마 대표적인 공통점은...

‘핵에 마력을 불어넣는다.’

보통 잠든 골렘은 핵에 마력을 불어넣었을 때 깨어나곤 했다.

어떤 골렘들은 특정한 주문을 외우거나 주인을 알아봐야 일어났지만, 저번에 알아서 청소를 실행한 걸 보니 이 골렘에게는 그런 금제가 걸려 있지 않았다.

팟!

마력이 제법 핵에 불어넣어졌는데도 변화가 없었다.

이한은 몰랐지만 골렘의 핵은 낡고 파손된 상태라 마력 누수가 꽤 심했다.

핵의 수리 재료는 다른 재료들과 비교해서도 압도적으로 희귀했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일단 비교적 구하기 쉬운 골렘의 팔다리부터 먼저 수리했다.

그 결과 마력을 먹어도 절반 넘게 흘려버리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평범한 마법사라면 ‘골렘에 뭔가 문제가 있군 핵을 수리해야겠는걸?’하겠지만...

파아아아아아아앗!

골렘, <죽어라 날아다니는 해골> 기동했습니다. 명령을 수행합니다.

“됐, 됐다!!”

“됐다고!!!!”

이한은 그냥 무식하게 마력을 때려 넣었다.

‘골렘이 원래 이렇게 마력을 많이 먹나? 보통이 아니군.’

눈을 빛내는 골렘을 보며 이한은 신기해했다.

다른 마법사들이 쓰는 걸 보면 아무리 마력을 많이 먹어도 어느 정도 상식적인 수준이 있을 텐데...

원래 이런 건가?

“너는 무엇을 할 수 있지?”

이한은 상대가 가능한 명령들을 물었다. 골렘은 마법사가 미리 짜놓은 명령 이상을 할 수 없었다.

저는 에인로가드에 있는 모든 잡일들을 해치우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세상에!”

“저런 기특한...!”

골렘의 팔다리를 열심히 모아서 재건해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눈물을 훌쩍였다.

소리를 듣고 온 다른 탑 학생들도 골렘의 모습에는 놀라워하고 있었다.

“이런 걸 흰 호랑이 탑 놈들이 만들었다고? 대체 어떻게??”

“워다나즈가 만들었대.”

“아. 그럼 그렇지.”

“워다나즈가 만든 거 아니야!! 그냥 수리하는 거 도와준 거라고!!”

“아. 작작해라. 추한 놈들아. 너희들이 저 골렘에서 뭘 담당했겠냐. 기껏해야 색칠 정도 담당했겠지.”

친구들이 싸우는 동안 이한은 정신을 집중했다.

골렘은 명령 한 번 내리면 그 명령을 자신이 알아서 잘 처리하는 똑똑한 정령이 아니었다.

‘연못을 만들게 땅을 파줘’라는 명령을 내릴 경우 사람이라면 알아서 적당히 파겠지만, 골렘 같은 경우는 세상의 종말이 찾아올 때까지 파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이한은 마력을 불어넣은 골렘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미세한 감각과 함께 명령을 내렸다.

“이쪽 구덩이를 파도록.”

알겠습니다.

“...으악! 으아아악!”

멍하니 있다가 골렘이 갑자기 자신을 치고 지나가려고 하자 흰 호랑이 탑 학생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굴렀다.

이한은 사과했다.

“미안하다.”

“미... 미안하면 다냐! 워다나즈!”

“그럼 네가 조종할 테냐?”

이한의 질문에 다른 친구들이 곧바로 힐난을 퍼부었다.

“워다나즈가 실수할 수도 있지 이 자식아!”

“너 워다나즈가 저거 골렘 조종 안 하면 오늘 밤까지 여기 있어야 한다는 거 몰라? 욕할 거면 나중에 기숙사로 돌아가서 욕해!”

‘다 들린다...’

이한은 정신을 집중해서 골렘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다행히 방금 같은 사고는 없이 골렘은 천천히 구덩이를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어? 골렘은 어디서 났냐?”

돌아온 번개걸음 교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골렘을 보고 놀라워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1학년 학생들이 만들 수준의 소환수는 아니었다.

“워다나즈가...”

“아하. 워다나즈가 만들었냐? 참 너도 재주가 대단한 놈이다.”

“...수리했는데요.”

“아.”

번개걸음 교수는 머쓱해졌다.

듣고 보니 1학년 학생이 만들었다고 생각한 스스로가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그렇게 생각했지?

“골렘 조종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텐데 용케 명령을 내리고 있군.”

이한은 집중하기 위해 신경을 기울이며 대답했다.

“그나마 간단한 일들이라... 가능한 것 같습니다.”

“하긴 그렇겠군.”

쿵!

번개걸음 교수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뒤에 천으로 덮여진 우리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

어떤 짐승인지 파악하기 힘든 울음소리가 안에서 울려퍼지자 이한은 매우 신경이 쓰였다.

‘대체 무슨 놈이지?’

“콜록. 혹시 지금 골렘을?”

“앗. 모르툼 교수님.”

번개걸음 교수가 하던 작업을 멈추고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번개걸음 교수님... 콜록, 지금 골렘을 조종하고 있는 겁니까?”

“맞습니다.”

대답을 들은 모르툼 교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한은 교수가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 불안해졌다.

“워다나즈. 흑마법으로 벌써 골렘을...! 콜록, 기특하구나! 가르시아 교수가 날 죽이려고 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이런 제자를 버려두고 나올 뻔했으니...”

“네? 누가 누굴 죽...?”

이한은 귀를 의심하며 되물으려고 했지만 모르툼 교수는 계속해서 들뜬 목소리로 떠들었다.

“이걸 보면 디레트가 정말 기뻐할 거다. 디레트도 골렘의...”

“엇... 밀레이 교수님.”

번개걸음 교수는 조경을 확인하러 온 밀레이 교수를 보고 움찔했다.

왠지 모르게 두 교수를 같이 두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걸어오던 노교수는 멀리서부터 눈에 확 들어오는 골렘을 먼저 발견하고 놀라더니, 감정을 추스르고 침착하게 물었다.

“워다나즈. 소환 마법으로 골렘을 불러내는 데에 성공한 겁니까? 놀랍군요.”

“어...”

이한은 옆에 있는 모르툼 교수를 쳐다보았다.

모르툼 교수의 눈빛은 애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눈빛은 제발 소환 마법이 아니라 흑마법으로 해낸거라 말해달라고 빌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있을 소환 마법사들의 축제에 이걸 보여줘도 괜찮겠습니다.”

보다 못한 번개걸음 교수가 크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밀레이 교수는 놀라서 시선을 돌리더니 모르툼 교수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아. 혹시 흑마법으로?”

“수리한 겁니다. 두 분. 수리 말입니다.”

“......”

“......”

흑마법 교수와 소환 마법 교수는 매우 머쓱해졌다.

“아... 하긴.”

“확실히 그렇겠습니다.”

머쓱해진 두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한에게 덕담 몇 마디를 건넸다.

골렘을 조종할 때 뭘 신경 쓰면 좋은지, 어떤 재료가 마력 연비에 유리한지(모르툼 교수가 밀레이 교수의 말에 트집을 잡고 싶지만 꾹 참는 게 느껴졌다), 명령을 내릴 때 어떤 식으로 내려야 하는지...

두 교수가 떠나자 번개걸음 교수가 이한을 보며 말했다.

“...고생했다. 정말로.”

“교수님.”

“왜 그러지?”

“다음 주에 혹시 또 외부인들 오는 겁니까?”

밀레이 교수가 말한 소환 마법사들의 축제가 왠지 모르게 에인로가드 안에서 진행될 것 같았기에 이한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있었다.

사제들이 찾아와서 베풀어주는 축제를 생각해보면 화낼 이유가 없었지만, 이한은 그럴 것 같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법사들이 왜 괜히 찾아오겠는가!

“...혹시 화났냐?”

“아니요? 제가 왜 화가 납니까? 무슨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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