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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06화 (406/687)

406화

“콜록. 왜 소리가 멈췄지?”

모르툼 교수는 제자들을 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한이 혹시라도 실수를 저질렀나 걱정되었던 것이다.

다른 마법이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았겠지만 이번 뼈 폭발 마법은 이한에게 특히 위험...

다행히 안쪽은 멀쩡했다.

준비해 놓은 충격 흡수 마법진과 폭발 분산 마법진들도 아직 유지되고 있었고, 연습용으로 상자에 채워놓은 뼛조각들도 넉넉히 남아있었다.

모르툼 교수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물었다.

“혹시 마력이라도 떨어진 거냐?”

“그건 아닙니다.”

“하긴 그럴 리가 없지.”

“...그게 아니라, 축제 때 제가 뭘 증명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이한은 설마 싶었다.

애초에 이건 소환 마법 강의 관련 아닌가.

밀레이 교수가 뭘 시키든 간에 아마 기준이 쉽지는 않을 테고, 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할 텐데...

거기에 흑마법의 자존심까지 짊어지기에는 이한이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아, 그거 말이냐. 콜록.”

“교수님. 제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교수 앞에서 거짓말을 즐겨하는 이한이었지만 이럴 때만큼은 떳떳했다.

지금도 당장 강의 끝나고 바실리스크의 알을 돌보러 가야 하는 상황.

“알고 있다. 모든 교수들이 다 알고 있을 걸.”

“그렇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콜록. 그리고 네가 축제 때 딱히 할 일은 없다.”

“??”

이한은 교수의 말에 당황했다.

자기보고 흑마법의 자존심을 증명하라고 해놓고서 딱히 할 일이 없다니?

‘뭐지? 속임수인가?’

“잘 이해가 안 갑니다만?”

모르툼 교수는 쿨럭이며 뭘 이렇게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대답했다.

“그야 네 성격에 뭘 딱히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증명하려고 할 테니까. 콜록. 믿고 있다.”

“...아닙니다!”

이한은 오랜만에 격분해서 외쳤다.

대체 왜 이런 오해를!?

*         *         *

쓸만한 제자를 붙잡아서 학문의 적통을 잇게 하려는 교수가 있다면, 그런 야심 없이 자신의 연구에만 전념하고 싶어하는 교수도 있는 법이었다.

변환 마법을 가르치는 교수, 도플갱어 르지 교수가 바로 그런 교수였다.

에인로가드 교내의 쟁쟁한 미친놈들... 아니, 교수들이 워다나즈를 두고 다투는 동안에도 르지 교수는 반대로 행동했다.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면 녹아내리는 법.

굳이 워다나즈를 끌고 올 필요 없었다. 르지 교수는 자신의 평온한 일상이 계속해서 유지되길 바랐다.

“...1학기 때 강철 변환을 공부했었지요. 그동안 강철을 많이 만지고 이해하려고 했을 거예요. 아마 다들 그럴 겁니다.”

르지 교수는 손깍지를 끼고서 느릿하게 설명해나갔다.

교수 모습일 때의 르지 교수는 제국의 대귀족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품위 있는 분위기가 풍겼다.

가짜 가이난도로 변신했다가 이한에게 맞았을 때와 비교해보면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너무 주눅 들 필요는 없지요. 어느 물질이든 간에 통달하는 건 시간이 걸립니다.”

‘...2학기 시작하기 전에 숙달되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볼라디 교수한테 맞으면서 강철 변환을 익힌 이한은 속으로 당혹스러워했다.

“계속해서 다른 마법들을 배워나가다 보면 막혔던 부분들이 서서히 풀릴 겁니다. 잊지 마세요. 이번 학기의 목표는... 다양한 재료들의 변환을 다뤄보면서 자신의 적성을 찾아보는 거라는 걸.”

1학기 때 가장 쉽고 대중적인 강철 변환과 그 응용을 배웠다면 2학기 때는 온갖 재료와 자재들을 다뤄보며 마법사의 적성에 맞는 물질들을 골라낸다.

뛰어난 변환 마법사들은 평소에 압축된 시약을 갖고 다니다가 유사시 자신이 잘 다루는 재료들로 변환시켜서 사용하곤 했다.

압축된 시약을 수은으로 변환시킨 다음 폭발적으로 부피를 늘려서 공격 용도로 사용하거나, 압축된 세사(細沙)로 변환시켜서 단단한 모래 방패로 사용하거나.

이런 전투방식으로만 활용하는 건 아니었다. 연금술에 필요한 재료를 변환시키거나 자신의 겉모습을 변환시켜 몬스터의 눈을 속일 수도 있었다.

오늘도 뿌듯하게 강의를 마친 르지 교수는 품위 있게 학생들과 작별을 하고 돌아섰다.

...이한이 따라오기 전까지는.

“교수님?”

“껙.”

예상하지 못한 괴물 제자의 방문에 르지 교수는 딸꾹질을 했다.

“괜찮으십니까?”

“당... 연히 괜찮죠.”

르지 교수는 딸꾹질을 숨기며 품위 넘치게 말했다. 교수 모습일 때 르지 교수는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무슨 일로 왔지요?”

“교수님께 여쭤볼 게 있습니다.”

이한은 같은 탑 사제들의 신성 마법 권유는 물론이고, 강의를 듣고 잡일을 해내면서도 같이 하고 있는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바실리스크의 알을 돌보는 일이었다.

그러나 바실리스크의 알은 그 몬스터의 악명만큼이나 돌보기 까다로운 존재였다.

전용 오두막을 지어서 돌봐주는 건 그저 시작일 뿐.

먹이를 먹여주고 기온을 맞춰주고 나자 바로 다음 작업으로 들어가야 했다.

알이 더 이상 먹지 않을 정도로 며칠 동안 넉넉하게 먹이고 나면, 알의 취향에 맞는 둥지를 새로 준비해주어라. 기본적으로 제국 서부에서 발견된 바실리스크는 부드러운 조류의 깃털을 선호하고, 동부에서 발견된 바실리스크는 딱딱한 암석을 선호하지만 절대적이진 않다. 안전한 건 변환 마법사가 옆에서 대기하며 바실리스크의 변덕을 맞춰주는...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이한은 오두막을 찾아온 볼라디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 지금 구할 수 있는 재료에는 한계가 있는데 어떻게 변덕을 맞춰줍니까?

-변환 마법을 배우도록. 운이 좋군. 안 그래도 변환 마법을 더 배워야 했는데.

-......

개소리긴 했지만 확실히 변환 마법사가 필요하긴 했다.

이한은 르지 교수를 보며 물었다.

“혹시 제가 바실리스크의 알을 돌보는 데에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안 될 거... 없겠지요.”

“감사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르지 교수는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스승으로서의 책임감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야심 넘치는 괴물 제자가 부탁을 거절한 일로 원한을 품을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벌써 이 정도인데 졸업할 때는 바로 교수, 혹은 교장으로 취임할지도 몰랐다.

‘정말 친절한 분이시군.’

르지 교수의 속마음도 모르고 이한은 감복했다.

펑!

르지 교수가 도플갱어의 능력으로 겉모습을 변환시키자 이한은 살짝 당황했다.

왜냐하면 상대가...

가이난도였기 때문이었다.

“어... 교수님? 왜 가이난도로?”

“그냥.”

“아. 그렇군요.”

이한은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그냥 납득하기로 했다.

교수가 도와준다는데 가이난도 모습이든 해골 교장 모습이든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해골 교장 모습이면 조금 신경 쓰일 것 같긴 했다.

‘다른 교수들이 봐도 못 알아채겠지.’

르지 교수는 다른 교수들의 다툼에 끼고 싶지 않았다.

괜히 나중에 교수 휴게실에 갔을 때 ‘그 날 워다나즈가 어디 있었냐고요? 르지 교수님께서 데리고 계셨던 것 같은데’란 말이라도 나오면 얼마나 곤란하겠는가.

가이난도의 모습이라면 다른 교수들이 멀리서 보더라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         *         *

“야. 가이난도. 자꾸 딴짓 그만하고 빨리 가자니까. 해야 할 일 많다고. 오늘 안에 맡은 일은 끝내야지.”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조금 더 늦게 들어가도 끝낼 수 있으니까!”

기숙사끼리 맡은 당번 일을 하러 가는 대신 본관에서 자꾸 버티는 가이난도의 모습에 친구들은 혀를 쯧쯧 찼다.

“저 자식 워다나즈 없다고 말을 더럽게 안 듣네.”

“가이난도. 너 그러다가 크게 혼난다.”

“흥. 워다나즈도 없는데 누가 날 혼...”

말하던 가이난도는 저 멀리서 지나가는 자신의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귀... 귀신이다! 내 모습을 훔쳤어! 셰, 셰이프시프터!? 언제 내 모습을 훔친 거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갑자기?”

“저기! 저기 보라고!!”

가이난도가 외쳤지만 이미 이한과 르지 교수는 지나간 뒤였다.

친구들은 별 소리를 다 한다는 듯이 가이난도를 쳐다보았다.

“야. 그만 놀고 가자고.”

“이상한 변명 대지 말고.”

“진짜라니까! 진짜...!!”

가이난도는 억울함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친구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저기 분명 내 모습을 뺏은 몬스터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몬스터가 할 일 없냐? 네 모습을 뺏게?”

*         *         *

“궁금한 게 있는데.”

가이난도, 아니, 르지 교수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예. 뭐든 하십시오.”

“...바실리스크 알을 대체 왜 돌보는 거지? 1학년이 할 일이 아니지 않아?”

“거기에는 길고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오두막의 문을 열고 들어온 이한은 말끝을 흐리며 앉았다.

르지 교수는 한가운데 놓여있는 바실리스크의 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교수가 희귀한 동물의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지금 이 바실리스크의 알이 어떤 상태인지 정도는 짐작이 갔다.

‘아주 상태가 좋군.’

영양분을 제대로 보급받고, 돌봐주는 사람과의 유대관계가 단단하게 쌓인 덕분에 바실리스크는 매우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1학년 학생이 이렇게 잘 키웠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돌보는 것에 재주가 없을 텐데.’

마법 관해서는 언제나 우수한 성적을 보여줬지만, 푸른 용의 탑 학생들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돌보는 일에 관해서는 흰 호랑이 탑 학생들과 막상막하일 정도로 서툴렀던 것이다.

“아주 잘 돌봤어. 이제 내가 한 번 확인해보도록 하지.”

‘세상에. 가이난도가 믿음직스러워보일 수가 있다니!’

이한은 가이난도의 모습으로 말하는 르지 교수가 주는 신뢰감에 깜짝 놀랐다.

가이난도의 얼굴로 저런 말을 하니 위화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쉬리리릭!

주문과 함께 르지 교수의 마법이 시작됐다.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바실리스크의 둥지가 수십 가지도 넘는 재료들로 변환됐다.

구리, 진흙, 모래, 단풍나무 나뭇가지, 뜨거운 부정형의 액체(이한은 이 액체가 무슨 물약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황금, 용암...

번쩍이며 지나가는 황금빛을 본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황금으로 둥지를 만들어주면 바실리스크가 좋아하지 않을까요?”

“이미 확인해봤는데 아니더라. 바실리스크는 사람처럼 금을 다 좋아하진 않아. 그리고 차라리 다행이지. 황금이 답이었으면 유지하느라 어마어마하게 마력이 소모됐을 텐데.”

‘칫.’

이한은 아쉬웠지만 교수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희귀하고 가치 있는 재료일수록 그 난이도가 올라가고 유지가 힘들어질 테니까.

“찾았다.”

르지 교수는 동작을 멈추고 말했다. 이한은 매우 기뻐하며 물었다.

“뭡니까? 어떤 재료로 하는 게 가장 좋아보입니까, 교수님?”

“수은(水銀).”

“...아. 교수님께서 해주실 겁니까?”

“내가 한 번은 해주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계속해서 네가 걸어야 유지가 될 테니까 배워야지.”

르지 교수는 담담하게 현재 상황을 말했다.

변환 마법은 영원히 고정되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바실리스크를 키우는 일이라면 마법사가 옆에서 꾸준히 버텨줘야 했다.

“그렇지만 수은은 제가 변환 마법으로 다룰 수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렇긴 해... 아직 강철도 다 마스터하진 못했을 텐데.”

“...음... 뭐...”

이한은 르지 교수의 말에 슬쩍 대답을 피했다.

“그러면 내가...”

르지 교수가 매번 방문해서 도와주겠다고 말하려는 순간 문이 열리고 볼라디 교수가 들어왔다.

볼라디 교수는 가이난도를 보고 눈썹을 위로 치켜 올리더니 물었다.

“교수님?”

“...예. 맞네요...”

펑!

르지 교수는 시무룩해져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필이면 볼라디 교수한테 들키다니.

완고하고 타협불가능한 상대 아닌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셨습니까?”

“워다나즈가... 수은 변환을 배우고 싶어하는데, 힘들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난이도가 있다보니 강철부터 마스터하고 들어가야 할지...”

“강철은 이미 다룰 줄 압니다.”

“그렇습니까?!”

“네.”

볼라디 교수는 자신의 말이 맞지 않냐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이한이 시무룩해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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