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화
“그럼 수은... 다뤄보도록 합시다.”
르지 교수는 하기 싫은 걸 참고 말했다.
“와... 감사합니다.”
제자 이한도 하기 싫은 걸 참고 말했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오두막. 볼라디 교수만 혼자 만족스러워했다.
* * *
볼라디 교수는 원래 수다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준은 상대적인 법.
외딴 오두막에서 이한, 르지 교수, 알 상태 바실리스크와 같이 있자 볼라디 교수는 가장 수다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변환 마법은 전투 마법사에게 중요하다.”
“예.”
“저번에도 말했듯이...”
볼라디 교수는 변환 마법이 전투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는지 설명했다.
빠른 시전과 낮은 마력 소모.
부여 마법으로 일일이 방어를 강화하고 공격력을 강화하는 것보다 길가의 수풀을 강철의 칼날로 변환시켜 상대를 찌르는 게 훨씬 간편했다. 마법 전투의 핵심은 그 효율성에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몇몇 경지에 오른 변환 마법사들은 소환 마법도 쓰지 않고 주변의 사물들을 생명체로 바꿔 내거나 자기 자신을 몬스터로 변환시키곤 했다.
볼라디 교수는 이 모든 경지를 상상해보라며 장광설을 쏟아냈다.
물론 본인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시무룩해진 이한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바실리스크로 변신할 수 있게 되면 실수로 교수를 집어삼켜도 정상참작이 되나?’
“그런데 교수님. 수은은 독성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변환 마법사라고 해서 닥치는 대로 세상의 모든 물질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변환 마법사일수록 더더욱 조심해서 독이 될 수 있는 물질의 종류들을 알아놔야 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실수로 물질을 잘못 변화시켰다가 본인을 중독시키기라도 한다면...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하긴 한데... 확실히 독 저항법부터 익히긴 해야겠어요.”
이한의 말에 대답하던 르지 교수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수은을 다루는 법도 법이지만 그걸 배우기 전에 독 저항을 익혀놓는 게 안전했다.
그리고 독 저항을 익히기 가장 좋은 방법은?
“독 저항은 변환 마법보다는 흑마법에 더...”
“독 저항도 1학기 때 배웠습니다. 교수님. 워다나즈는 흑마법도 수강하고 있습니다.”
“......”
“......”
볼라디 교수의 대답에 르지 교수와 이한이 다시 한 번 시무룩해졌다.
오두막 안의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심지어 바실리스크의 알도 어색해하는 것 같았다.
“그럼... 그냥 수은 다루는 방법부터... 배웁시다.”
르지 교수는 한숨을 참으며 말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볼라디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렇게 말을 남기자 이한은 놀라서 시선을 돌렸다.
어라?
“가십니까?”
“그래.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런...”
이한은 가식적인 안타까움을 위장했다. 볼라디 교수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급해하지 말도록.”
“하하. 알겠습니다.”
이한은 볼라디 교수가 오두막 밖으로 나서는 걸 배웅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야 조금 안심이 됐다.
‘잠깐. 볼라디 교수가 할 일이... 그리 많지가 않을 텐데?’
생각해보니 볼라디 교수가 지금 제자가 이한밖에 없을 텐데?
불길한 미래가 떠오르자 이한은 단호하게 밀어냈다. 예지 마법을 배워서 그런지 이상하게 불길한 미래가 자꾸 정신을 어지럽히는 기분이었다.
“후.”
이한이 씁쓸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르지 교수는 살짝 의아해했다.
왜 저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1학년 때부터 교장의 자리 그 이상을 노리는 야심가 워다나즈 아닌가.
왜 저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거지?
‘내가 잘못 본 건가?’
르지 교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머니에서 시약을 꺼냈다.
황합철은 수은보다 구하기 쉽고 다루기 쉬운 금속이었지만 수은과 상성이 좋아 쉽게 변환되는 금속.
초보 변환 마법사가 다루기에는 상당히 편리했다.
“저런. 황합철을 두고 와버렸습니다.”
이한의 얼굴이 밝아졌다.
“지금 합성해드릴 테니...”
이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두 번이나 비슷한 일이 반복되자 르지 교수는 설마 싶었다.
...설마?
“수은 변환... 별로 안 배우고 싶나봐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교수님? 저는 배우고 싶습니다. 혹시 교수님께서 오늘 가르치실 기분이 아니신 겁니까? 그런 거라면 저는 얼마든지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모범적인 대답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르지 교수는 속지 않았다. 저 대답은 르지 교수가 해골 교장의 귀찮은 명령에 보여주는 모습과 똑같았던 것이다.
-르지 교수. 지금 북쪽 귀족 가문 중 몇몇의 영지에서 수상쩍은 변환 마법사들이 출몰하고 있다던데 혹시 방학 때 잠시 갔다와줄 수 있겠나? 이런. 표정이 별로군. 별로 가고 싶지 않은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교장 선생님? 저는 가고 싶습니다. 혹시 교장 선생님께서 절 보내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이해하겠습니다.
-고맙네. 잘 갔다오게.
-......
원래 같은 종류의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
르지 교수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직감을 제자에게서 느꼈다.
...설마?
“이한 군. 솔직하게 대답... 아니, 별 의미 없겠군요. 그럼 그냥 듣도록 해요. 오늘은 수은 변환을 넘어갈까 싶은데.”
이한은 ‘지금 마법의 길에 전념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소리십니까’하고 반발하지 않았다.
대신 침묵했다.
확신을 얻은 르지 교수는 정말로 놀랐다.
상대가 자신과 비슷한 성격일 줄이야!
그렇다면...
범인은 교장 선생님밖에 없었다.
‘세상에. 해도 너무하시는군.’
원래부터 제자를 가혹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인 건 알고 있었다지만 모든 학파 마법을 듣도록 강요하다니.
워다나즈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재능을 타고났단 이유만으로 저 가혹한 과정을 견디고 있는 게 분명했다.
놀라우면서도 실로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내가 오해했군요. 이한 군이 교장 선생님의 후계자로서 에인로가드의 영주가 되기를 원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예???”
어지간해서는 대답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한이었지만 무심코 대답이 튀어나왔다.
대체 무슨?
“하고 싶지 않은데 다른 교수님들이 그렇게 압박을 했으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어요.”
“저는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걱정해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둘은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눴다. 이한이 기뻐하자 바실리스크의 알도 신나서 꿈틀댔다.
* * *
이번 <볼츠만의 부름> 축제가 에인로가드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자, 멋모르는 마법사들은 기뻐했다.
제국 마법의 적통 에인로가드 아닌가.
원래라면 평생 들어갈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그러나 발이 넓거나, 경험이 많은 마법사들은 매우 질색했다.
-하필이면 왜 에인로가드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겠군.
아무것도 모르는 선량한 일반인이면 모를까, 에인로가드의 주인은 다른 마법사에게까지 친절하지는 않았다.
마법사의 공방을 생각해보면 쉬웠다.
원래 마법사의 공방은 마법사의 영지 같은 것이라 방문할 때 주의사항들이 제법 많았다.
마법사가 연구한 온갖 비밀과 신비가 가득한 만큼 의심받을 짓은 최대한 피해야 하는 것이다.
그 공방 주인의 성격이 까탈스러울수록 규칙은 삼엄해지기 마련.
그리고 에인로가드의 주인은 지랄맞게 까탈스러운 대마법사였다.
-허락 받지 않은 곳을 멋대로 방문하시지 마십시오. 또한 주인 없는 물건이라 하더라도 절대로...
“알겠네. 알겠네. 알겠어.”
데스 나이트의 경고를 지긋지긋해질 때까지 들은 흑마법사 쿠탕은 진저리를 치며 발걸음을 옮겼다.
‘괜히 먼저 왔나?’
소환 마법에 관심이 있는 인근의 마법사들은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에인로가드로 오고 있었지만, 그들 중에서도 쿠탕은 한 발 빨리 도착했다.
아무래도 본인이 흑마법사인 탓이 컸다.
괜히 다른 마법사들과 같이 움직였다가 길에서 이야기라도 나누면 서로 귀찮기 때문이었다.
-저는 소환 마법을 연구하고 있는 타딩고라고 합니다. 마법을 배운지는 칠 년 정도 됐고, 운타라 길드 출신의 스승님에게서 배웠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도 소환 마법을 연구하고 있는 타딩고입니다! 저는 우연히 마도서를 구해서 독학으로 오 년 정도 배웠습니다. 혹시 마법사 님께서는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흑마법을 연구하고 있는 쿠탕이라고 합니다.
-...어. 음. 오.
-흑, 흑마법! 저도 평소에 흑마법 관심 많았습니다. 그... 하여간 대단한 마법 아닙니까?
평소 흑마법에 관심 없는 마법사들과 어색한 대화를 나눠봤자 괴롭기만 할 뿐.
흑마법사들이 괜히 다른 마법사들과의 교류를 피하는 게 아니었다.
‘축제 시작할 때까지 접촉은 피해야겠군.’
쿠탕은 그렇게 생각하고 인적 드문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학교가 어찌나 드넓은지 시작할 때까지 적당한 숲이나 산속에서 기다려도 충분할 것 같았다.
쿠웅-
“!”
쿠탕은 깜짝 놀랐다.
아직 어려 보이는 학생들이 놀랍게도 숲 한쪽 구석 공터에서 골렘을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에인로가드구나! 내 나이의 절반도 안 되어 보이는데 벌써 골렘을...!’
육중한 골렘을 움직여서 잡일을 해내는 걸 보니 한층 더 놀라웠다.
보통 마법사 중에 골렘으로 잡일을 시도하는 사람은 없었다. 무엇하러 골렘처럼 만들기 힘들고 조종하기 힘든 소환수로 잡일을 하겠는가.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수련이구나.’
골렘을 만든 것도 모자라 움직이는 수련까지 하다니.
“놀랍다!”
“외, 외부인이다!!”
흰 호랑이 탑 학생이 뒤에서 중얼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에 쿠탕이 더 놀랐다.
“진, 진정하십시오. 허가를 받고 들어온 겁니다! 여기 고나달테스 공께서 주신 허가증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둥글게 둘러싸자 쿠탕은 커다란 압박감을 느꼈다.
‘왜지? 날 못 믿는건가? 혹시 흑마법사인 게 들켰나?’
에인로가드 학생들한테 공격이라도 당할까봐 쿠탕은 긴장했다.
“혹시...”
“???”
“먹을 것 좀 있으십니까?”
“......”
* * *
쿠탕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빠르게 친해졌다. 쿠탕은 외부인의 긴장을 달래주기 위해 유머감각을 잊지 않은 학생들의 배려에 살짝 감동했다.
“천천히 드셔도 됩니다. 여러분들의 진심은 이해했습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쿠탕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게걸스럽게 단 음식을 먹어치웠다. 친구의 손가락에 묻은 크림마저 뺏으려고 몸싸움을 벌일 정도였다.
‘...학교에서 굶기나?’
자신이 핵심을 짚었다고는 생각치도 못한 채 쿠탕은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이 아까 골렘을 조종하시던데...”
“쿠흡.”
“컥. 콜록콜록.”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미친듯이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혹... 혹시 골렘을 잘 조종해서 이걸 주신 겁니까?”
“예? 아닙니다.”
“휴...”
“다행이다.”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가슴을 쓸어내리자 쿠탕은 당황스러워졌다.
뭐지?
“조종에 대해서 몇 가지 묻고 싶은데 혹시 괜찮으십니까?”
“그게, 음.”
“저희도 먹었으니까 대답해드리고 싶은데, 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머뭇거렸다.
설마 뱉어내라고 하진 않겠지?
“이걸 조종한 건 다른 친구입니다.”
“...예? 현장에 없는데 조종을 했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그... 명령을 남겨놓고 간 건데...”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원래 골렘을 조종할 때는 마법사가 직접 옆에서 하나씩 조종하는 게 정석이었지만, 워다나즈는 요령이 붙고 나자 단순한 작업 같은 경우는 골렘에게 ‘여기까지 해놓도록’ 명령을 내린 다음 다른 장소에 갔다 오곤 했다.
그 설명을 듣자 쿠탕은 진심으로 놀랐다.
‘골렘을 만든 것도 모자라서 명령까지 유지를 시켰다고??’
쿠탕은 원래 사교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예외가 있었다.
마법적으로 흥미로운 것을 봤을 때가 바로 그 예외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재밌었습니다.”
“저희도 정말 잘 먹었습니다!”
이한의 이름까지 들은 쿠탕은 아는 흑마법사들에게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조금 지나고 나서 이한이 돌아왔다.
“별 일 없었지?”
“외부에서 축제 때문에 온 마법사가 잠깐 구경하고 가더라.”
“그거 말고는 없었어.”
“그렇군.”
순간 이한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길함에 의아해했다.
‘뭐지?’
이상할 게 전혀 없는 상황.
‘설마 교장 선생님이 이상한 음모라도 꾸미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