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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08화 (408/687)

408화

지금 상황에서는 딱히 꾸밀 게 없을 텐데...

고민하던 이한은 혀를 찼다.

‘어차피 생각해봤자 답이 없는 문제다.’

“알겠다. 다들 고생했고... 뭐 먹었나?”

“케, 케이크를 좀...”

“내가 그러니까 워다나즈 거 좀 남기자고 했잖아.”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소곤거리는 모습에 이한은 괜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됐다. 배고픈데 먼저 좀 먹을 수도 있지.”

“워다나즈...!”

“그럼 배 채운 김에 반대 쪽 작업 좀 더 하고 가자. 사제님들이 이번 주에 당번 맡으셨는데 아무래도 힘드실 거 아냐.”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한의 뒤를 따랐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아무 대가 없는 케이크는 없는 법이군.”

“니가 따라해봤자 워다나즈처럼 되진 않거든.”

“그, 그냥 해본 거야. 그냥.”

*         *         *

“랫포드. 좀 도와줄 수 있나?”

“물론입니다.”

암시장에서 친구가 갖고 온 상자의 자물쇠를 따고 있던 랫포드는 망설임 없이 일어섰다.

이한의 얼굴을 알아본 검은 탑 학생이 손을 흔들었다. 이한도 고맙다는 듯이 가볍게 인사했다.

‘...누가 보면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인 줄 알겠군!’

멀리서 힐끗 지켜보고 있던 살코는 기막혀했다.

보통 다른 탑 학생들이 오면 어지간해서는 ‘왜 왔냐?’ ‘뭘 둘러보나?’ ‘도둑놈인가? 살 거면 사고 말 거면 말 거지 왜 서있지?’하고 틱틱대던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워다나즈만 오면 저렇게 친한 친구 보듯이 대하다니.

살코도 누굴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근데 뭘 도와드려야 합니까? 훔치실 거라도 있습니까?”

“그런 걸 이렇게 쉽게 부탁하면 안 되겠지.”

“쉽게 부탁하셔도 되는데...”

“오늘 할 건 그냥 확인이야.”

이한의 말에 랫포드는 궁금해했다.

확인이라니.

뭘 확인하길래?

“번개걸음 교수님이 강의 때 쓰려고 준비한 동물들 확인.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해서.”

2학기가 되고 나서 이한은 조금 더 성숙해졌다.

강의 전 예습을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가만히 교수님 믿고 있다가는 팔다리 중 한군데는 부러질 것 같다. 먼저 확인한다.’

다른 선배들은 2, 3학년은 되어야 깨닫는 진리를 이한은 벌써 깨닫고 있었다.

“과연... 역시 워다나즈 님이십니다.”

랫포드는 감탄했다.

저래서 학년 수석인가?

“번개걸음 교수님 성격상 결계하고 장치를 섞으셨을 테니, 결계는 내가 맡고 장치는 네가 맡자.”

“워다나즈 님도 사실 이제 어디 가서 어엿한 도둑이라고 자처하셔도 괜찮은 수준입니다만...”

랫포드의 칭찬에 이한은 오랜만에 쑥스러워했다.

“내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아닙니다. 솔직히 그 정도면 충분하십니다. 피나는 연습의 결과인 만큼 자랑스러워하셔도 됩니다.”

“후후. 그런가.”

이한은 기뻐했다.

랫포드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자물쇠를 쑤시고 따댄 보람이 있었다.

이번 축제장으로 쓰이는,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는 숲 두 개를 옆에 끼고 있는 들판이었다.

한쪽에는 주말 동안 1학년 학생들이 열심히 작업한 소환 마법 시험장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번개걸음 교수의 강의가 진행될 구불구불한 경주로가 위치되어 있었다.

“경주로가 있는 걸 보니 타는 강의일지도 모르겠군.”

번개걸음 교수는 1학기 때도 동물을 길들여서 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새로운 몬스터를 길들여서 타는 거라면 비교적 안전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면 몬스터한테서 도망치는 강의일지도 모릅니다.”

“......”

랫포드의 말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게 슬펐다. 확실히 구불구불한 경주로는 뒤에서 쫓아오는 몬스터를 피해서 도망치기 좋게 생겼다.

“랫포드. 주변 확인 좀 부탁한다.”

“예. 아무도 없습니다. 이거 참... 이렇게 경비가 없다니. 좀 안일하신 것 같습니다.”

“원래 교수님들이 다들 그러신 편이지. 학생들을 시키셔서 본인의 위기감각이 부족해.”

이한은 사이좋게 교수를 욕하면서 우리 쪽으로 접근했다.

‘<파라그라눔의 장막>까지는 필요없겠군.’

만약을 몰라서 잔뜩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한은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

슬쩍-

덮고 있는 천을 걷어내려고 하자 예상대로 착 달라붙어서 떼어지질 않았다. 이한은 바로 마력을 해머처럼 휘둘렀다. 소리 없는 굉음과 함께 천이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놀라운 광경이었다.

“...?!”

우리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랫포드는 당황했지만 이한은 금방 알아차렸다.

“투명화 능력이 있는 몬스터군.”

“투명화요?”

“퀴네에군요.”

“!”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랫포드는 깜짝 놀랐다.

우리 안이 텅 비어 있어서 순간 정신이 팔린 것이다. 도둑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실수였다.

“크윽... 이런 실수를...”

“쉿. 랫포드. 괜찮으니까 표정 관리해. 아직 안 들켰다.”

두 학생이 무슨 꿍꿍이를 갖고 있는지 모르는 순진한 마법사는 허가증을 내밀며 말했다.

“여기 고나달테스 공께서 주신 허가증입니다. 소환 마법 축제 때문에 방문했습니다. 학생분들께서 퀴네에를 돌보느라 바쁘실 텐데 괜히 방해 드린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에인로가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한의 정중한 환대에 마법사는 싱긋 웃었다. 억양이나 동작만 봐도 상대가 대귀족 가문 출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과연 정말로 좋은 곳입니다. 이렇게 자연의 마력이 강할 줄이야... 여기서 배우는 마법사들은 매일 매일 꿈꾸는 기분일 겁니다.”

“...예. 뭐.”

“꿈도 어느 꿈이냐에 따라 좀 다를...”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둘은 외부인의 환상을 깨기 싫어서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그런데 저게 뭐라고요?”

“아. 퀴네에 말입니까? 온순하고 귀여운 녀석이죠.”

퀴네에.

투명화 능력을 갖고 있는, 살짝 덩치 작은 코끼리를 연상시키는 몬스터였다.

“사람을 잡아먹습니까?”

“네? 아니요. 온순하고 귀엽다니까요?”

“아. 죄송합니다. 온순하고 귀여워도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으니까요.”

“하하하. 재밌는 농담이었습니다.”

두 학생이 의미심장한 시선을 교환하고 있었지만 마법사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렸을 때 스승님께서 이 녀석을 데리고 오신 적이 있습니다. 제가 자꾸 투명한 몬스터를 놓치다보니 찾는 방법을 알려주시려고 하신 거죠. 그 때 어찌나 겁을 먹었던지.”

“...온순하고 귀엽다면서요?”

“대신 장난을 좋아하거든요. 뒤에서 시끄럽게 쫓아오면 어찌나 무섭던지! 하하하하!”

“......”

“...혹시 퀴네에를 타는 훈련도 합니까?”

“퀴네에를요? 그럴 성격은 아닐 텐데요. 누군가를 태우기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이한과 랫포드의 추측 중 랫포드의 추측이 정답이 되자 둘의 얼굴이 흐려졌다.

정말 보이지 않는 투명 야수를 상대로 도주극을 펼쳐야 한단 말인가?

“장소가 잘 준비되어 있군요. 역시 에인로가드답습니다. 3년 전 축제 때는 그 지역 가문들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준비가 부실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저기 커다란 구덩이 보이십니까? 저기가 이제 생물을 소환할 마법사들이 모일 곳이 될 겁니다.”

랫포드가 무심코 물었다.

“왜 저렇게 커다란 구덩이가 필요합니까?”

“가끔씩 이상한 걸 소환하는 마법사들이 꼭 나와서... 저런 구덩이 안에서 소환하면 묻어버리기 쉽잖습니까.”

랫포드는 당황해서 이한에게 속삭였다.

“농담하시는 겁니까?”

“아냐. 저건 진담이다.”

끔찍한 축제에 대해 미리 들어봤자 기분만 우울해질 것 같아서 이한은 퀴네에로 주제를 돌렸다.

당장은 자신을 짓밟을 투명 거대 야수가 더 위험했으니까.

“혹시 퀴네에를 상대하시는 요령이라도 있으십니까?”

“흔적이 남는 마법이 좋습니다. 색이 강한 물약을 미리 준비하시는 것도 좋고요.”

정석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마법사의 모습에 이한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그 정도는 이한도 알고 있었다.

“놈을 도망가게 할 방법 같은 것 말입니다.”

“...어... 그렇긴 한데... 퀴네에는 순한 짐승인데, 그런 방법은 왜 물으시나요?”

마법사는 살짝 경계하며 물었다.

그걸 눈치 챈 이한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제가 계속해서 녀석을 돌봐야 하는데 혹시라도 실수할까봐 걱정돼서 그렇습니다.”

“아하. 제가 괜한 걱정을...”

마법사는 바로 넘어가서 정보를 털어놓았다. 다행히 퀴네에를 퇴치하는 물약이 있었다.

들을 만큼 듣자 이한은 감사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이 녀석은 제가 잘 돌보도록 하겠습니다.”

“잠깐만, 잠깐만요.”

“??”

마법사가 둘을 불렀다.

“혹시 워다나즈라는 학생을 아시나요? 골렘 조종이 특기인 학생인데?”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런가요... 학교가 넓어서 그런가? 어쨌든 감사합니다.”

마법사는 고마워하며 멀어져갔다.

상대가 사라지자 이한은 경악의 눈빛으로 랫포드에게 물었다.

“뭐지? 대체? 어떻게?”

“혹시 흰 호랑이 탑 놈들 때문 아닐까요?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그 놈들 때문이잖습니까.”

“아니... 이번만큼은 아니겠지. 흰 호랑이 탑 놈들이 어떻게 저런 소문을 퍼뜨리겠나. 뭐지, 정말로? 교장 선생님인가??”

이한은 정답이 나왔다는 걸 모르고 혼란스러워했다.

*         *         *

“...워다나즈!”

“네?”

번개걸음 교수는 모여 있는 학생들이 하나같이 검은 잉크가 든 물약병을 들고 있는 모습에 이한을 불렀다.

“네 녀석이 범인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치미 떼지 말도록. 나 원 참... 1학년이 눈치만 빨라져가지고.”

번개걸음 교수는 어이없다는 듯이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학생들은 슬금슬금 시선을 피했다.

닳고 닳은 3학년도 아니고 1학년 학생들이 미리 강의 내용을 알아내다니.

‘양떼 사이에 사자가 한 마리 있으니 다르긴 하군.’

“칭찬은 해주마. 용케도 알아챘군. 이렇게 미리 준비하는 것도 능력이긴 하다.”

학생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한은 끝까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미리 준비했다고 해서 오늘 강의가 만만하진 않을 거다. 이 몬스터 이름은 퀴네에라고 하는데...”

번개걸음 교수는 보이지 않는 몬스터의 모습을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학생 한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질문 있나?”

“예. 교수님. 정말 저 보이지 않는 몬스터를 상대로 도망쳐야 하는 겁니까? 그냥 가만히 서있는 녀석의 위치를 알아내는 거죠?”

“워다나즈가 그것도 알아냈냐? 정말 신기하군.”

번개걸음 교수는 이한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퀴네에를 준비했다는 건 알아챌 수 있지만, 퀴네에를 피해 도망치는 강의 내용을 미리 알아채는 건 쉽지 않았다.

어떻게?

“......”

“...아, 아니... 투명한 몬스터 위치를 알아내는 게 강의 목표 아닌가요?”

“강의 목적 맞다. 원래 몬스터는 가만히 서있지 않으니까 당연히 움직이는 놈을 상대로 연습해야지. 퀴네에 정도면 제법 쉬운 편이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밖으로 나가지 말고 경주로 안에서 피하면 된다. 이 모래시계가 다 떨어질 때까지만 버티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한은 전혀 놀라지 않고 주섬주섬 만들어 온 물약을 꺼냈다. 이미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워, 워다나즈. 지금이라도 물약 살 수 있을까?”

“지금은 가격이 좀 올랐는데.”

“상관없어! 의심해서 미안하다!”

‘...워다나즈 저 녀석은 3학년하고 비교하면 안 되겠군.’

번개걸음 교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 모습을 보니 차라리 3학년은 순진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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