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화
너야 유난을 떤다고 쳐도 모르툼 교수는 뭘 한 건지 모르겠군.
“아. 그게...”
이한은 머뭇거렸다.
모르툼 교수도 이한이 ‘하하 언데드가 좀 이상하게 조종 안 된다 싶었는데 숫자를 줄이니까 조종이 잘 되네요 역시 열 마리 넘게 조종하는 건 무리였나 봅니다’라고 말했을 때 미친놈 보듯이 쳐다봤는데...
“제가 언데드 조종에 욕심을 부려서 숫자를 늘리다가 난항에 처해서, 거기에 주목하시느라 잊으신 것 같습니다.”
거기에 주목했다고? 그래. 모르툼이 뭐라고 조언했나?
“한 번에 조종하는 언데드 숫자를 줄이라고...”
너무나도 당연한 말에 해골 교장은 감탄했다.
정말 유용한 조언이군. 왜. 흑마법 학회에 발표라도 해보지 그러나?
“교장 선생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준비해보겠습니다.”
언데드 십 몇 마리를 조종하기 힘들다면 한 마리로 줄여라.
아마 발표하면 학회가 뒤집어질 거라고 생각하며 해골 교장은 투덜거렸다.
숫자를 줄였으면 당연히 조종이 쉬워졌을 테고... 아. 그래서 뼈 폭발 마법을 연습하고 있었군.
언데드 계에서 소환한 스켈레톤 상대로 뼈 폭발 마법 같은 걸 시전했다가는 등 뒤에서 칼을 맞을 수도 있었지만, 고대 사령술로 불러낸 소환수는 별개였다.
온갖 뼈 마법과 결합해서 기교를 부릴 수 있었으니까.
됐다. 모르툼도 요즘 바쁘겠지. 내가 가르쳐주마.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별 건 아니고, 가르시아 교수를 피해 다니느라... 화 풀리려면 이번 학기 동안은 피해 다녀야 할 테니 어쩔 수 없지. 뼈 꺼내봐라.
이한은 주섬주섬 뼈를 꺼냈다.
언데드 차원의 궁전에서 얻은 뼈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색과 흑색이 섞인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뼈. 오골도스 선배가 구석에서 발견하고서 챙겨준 뼈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흰색의 뼈. 구울의 왕이 내놓은 뼈였다.
이건 알기 쉽군. 백작 정도 되겠는데.
“...아, 아니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해골 교장이 자색과 흑색이 섞인 뼈를 보고 바로 알아맞히자 이한은 경악했다.
혹시 제국의 백작들 뼈를 수집하는 게 취미신 건가?
설마 지금 제국의 백작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악마를 말한 거다.
“당연히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제국 백작이 여기서 왜 나옵니까?”
이한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른 불안정한 계(界)에서 출몰하는 악마들은 나름 엄격한 서열을 갖고 있었고 그 서열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치열하게 투쟁했다.
백작 정도 되는 등급을 가진 악마의 뼈라면 상당히 가치가 있을 터.
기특한 놈이군. 이런 뼈를 전리품으로 챙겨놓다니.
“혹시 갖고 싶으시다면...”
흥. 나를 비열한 놈으로 만들 생각이냐?
해골 교장은 코웃음을 치며 이한에게 뼈를 돌려주었다.
위대한 마법사는 제자를 미치게 할지언정 제자의 마법을 빼앗지는 않는 법.
“...금화하고 교환하자고 하려고 했는데요?”
‘저 놈은 대체 왜 저렇게 황금에 환장을 하는 걸까?’
해골 교장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한 정도 되는 마법사가 잘 먹고 잘 살려고 황금을 모으는 것도 아닐 테고, 1학년이 무슨 길드나 학교 운영 자금이 필요한 것도 아닐 테고...
대마법 실험이라도 준비하나?
이건 절대 팔지 말도록. 명령이다.
“예? 아니... 알겠습니다.”
매달 확인할 테니까 수작 부리지 마라. 잃어버렸다고도 하지 마라. 누가 훔쳐갔다고도 하지 마라.
“......”
이한은 놀랐다.
어떻게 알았지?
이건 지금 네게 필요한 시약이란 말이다.
왜 흑마법사는 뼈에 집착하는가.
질 좋은 뼈가 가장 쉽게 마법의 위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이었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잡뼈다귀 하나 붙잡고 스켈레톤을 불러내는 것과, 이런 고품격 악마 백작의 뼈를 사용해서 스켈레톤을 불러내는 건 그 수준이 달랐다.
특히 이한처럼 고대 사령술을 배우고 있는 흑마법사일수록 강한 뼈를 사용하고 다루는 법에 익숙해져야 했다.
미리 미리 적응을 해놔야 나중에 더 강한 뼈도 쉽게 다루지 않겠는가.
너무 강한 뼈는 다루기 쉽지 않을 테니, 지금 네게는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다.
“그렇습니까. ...악마 백작이요?”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위화감을 느꼈다.
1학년 흑마법 학생이 악마 백작의 뼈를 사용해서 소환수를 부리는 게 과연 정말 적당한 게 맞나?
뭐 문제 있냐?
“예 뭐... 알겠습니다. 그래서 이 뼈는 뭡니까? 악마 백인장 정도 되나요?”
흠.
해골 교장은 아무런 무늬도 없는 흰 뼈를 감식했다.
이한은 그 뼈에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일단 무늬도 없고, 색도 흰 색이고, 방금 전과 달리 양도 적었고...
구울의 왕이 수작을 부린 게 아닐까 의심됐다.
“악마 십인장? 악마 군견?”
조용히 해봐라. 이건... 모르겠군.
“그 정도로 하찮습니까? 구울의 왕 지금 어디 있죠?”
아니. 하찮은 뼈는 아니다.
해골 교장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뼈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해골 교장의 눈으로도 알아볼 수 없는 뼈라니.
절대로 하찮은 뼈는 아니었다.
강력한 존재의 뼈가 분명한데... 알아볼 수가 없군. 힘을 봉인하고 지워버렸나...
고민하던 해골 교장은 이한에게 말했다.
내가 가지고 가서 조사해보마.
“구울의 왕한테 직접 캐물으시는 게 더 빠른 거 아닙니까?”
글쎄. 놈의 수준을 봤을 때 이게 뭔지 알고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물어보긴 할 거다. 고문, 아니, 심문이 끝나면.
이한은 못 들은 척 넘겼다.
“가져가시죠.”
그래. 이 백작의 뼈는 갖고 가서 연습해보고... 참. 만마의 팔찌는 어땠나? 반응하는 놈이 있었나?
궁전에 갇혀 있던 온갖 악마들이 잠들어 있는 팔찌.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쉽게 반응하지 않았지만, 해골 교장은 이한이라면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하나 정도는 각성시킬 거라고 생각했다.
워낙 격렬한 일상을 보내는 녀석이니만큼 당연히...
“없었는데요?”
오. 그래? 알겠다.
해골 교장은 이한을 배웅하며 뒤로는 편지를 썼다.
볼라디 배그렉에게
이한 워다나즈가 공간 이동 마법 쓰는 골렘에게 패배해서 좌절하고 있다. 네가 도와주도록.
오수 고나달테스
배그렉 교수에게 날아가는 편지를 보며 해골 교장은 맑게 웃었다.
이런 스승을 둔 제자는 얼마나 행운아란 말인가!
* * *
“혹시 워다나즈란 학생을 아십니까?”
“...우린 그런 사람 모릅니다!”
“혹시 워다나즈란 학생...”
“그게 누군데요!”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외부에서 온 마법사들의 질문에 시치미를 뗐다.
그리고 바로 이한에게 종이 새를 보냈다. 종이 새가 지저귀게 하지는 못해도, 종이 새 위에 몇 글자를 새길 순 있었다.
위험. 외부인. 질문.
소환 마법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 같이 있던 이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왜 외부에서 온 흑마법사들이 날 찾는 건지 모르겠군...”
“......”
흰 호랑이 탑 학생 한 명이 딸꾹질을 했지만 이한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들 부탁 좀 하지. 누가 워다나즈 있냐고 물어보면 그냥 모른다고 해줬으면 좋겠다.”
“어렵지 않지. 워다나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한 님.”
“우, 우릴 믿어라. 워다나즈.”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너무 순순하게 대답하자 이한은 의아해했다.
“너희 왜 그러냐?”
“뭐... 뭐가?”
“평소라면 ‘내가 왜 도와줘야 하냐?’하면서 떽떽댈 텐데.”
“우, 우릴 뭘로 보고. 우리가 언제 그랬다고.”
옆에 있던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말을 얹었다.
“너희 원래 그랬는데?”
“맞아. 너희 그랬잖아.”
“...외부인이 왔을 때는 같은 에인로가드 학생끼리 힘을 합쳐야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점점 말을 짜내는 데에 능숙해지고 있었다.
그게 제법 먹혔는지 다른 탑 학생들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종이 새가 자꾸 오른쪽으로 빙빙 도는데 이거 왜 이러는지 아는 사람?”
“종이 새야, 제발, 똑바로 직진 좀 해다오. 종이 새야. 종이 새야. ...야 이 새새끼야!”
그보다 더 급한 과제가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이제 곧 소환 마법사들(일부 흑마법사들이 섞인) 의 축제가 열릴 텐데, 밀레이 교수의 점수를 받으려면 종이 새로 무언가 보여줘야 했다.
종이 새를 소환하는 건 이제 소환 마법을 듣는 학생이라면 다 할 수 있었지만...
이걸 개량하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많은 학생들이 고른 건 ‘명령 인식’.
원래 마법진으로 소환된 종이 새는 정해진 명령만을 따르지만, 저 기능이 추가되면 추가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숫자는 적지만 실력 있는 학생들이 고른 건 ‘음성 추가’.
종이 새에 음성 정보를 담아서 원거리에서도 대화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한은 혼자서 원견(遠見) 마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저번에 밀레이 교수가 종이 새로 보여줬던 묘기.
종이 새를 움직여서 그 시야를 마법사 본인이 공유하는 이 묘기는 간단해보여도 그 안에 들어간 원리는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종이 새를 소환하고, 눈이 없는 종이 새에게 시야를 만들어주고, 그 만든 시야를 마법사가 봐야 하니 의식을 연결하고, 이쯤 되면 직접 조종하는 게 더 편하니 조종도 해야 했고...
“워다나즈. 너무 어렵지 않아?”
“너 저번에 내가 음성 추가 하려고 했을 때 옆에서 교수님 편 들었지?”
“......”
말 한 번 잘못 꺼냈다가 이한의 살기를 받은 친구는 조용히 찌그러졌다.
밀레이 교수가 더 어려운 걸 하는 게 낫겠다고 했을 때 동의한 죄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교수님이 말하셔서 그냥 동의한 거였는데...!’
“난, 난 아무것도 안 했다?”
닐리아가 옆에서 소곤거리자 이한은 잘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닐리아.”
“응?”
“마법진 거기 획 다시 긋는 게 좋겠다. 삐뚤어져서 아마 세 번 마력 돌리면 선이 끊어질 거야.”
“......”
닐리아는 ‘넌 어려운 거 하는 게 맞아’라고 속으로만 중얼거리며 고쳤다.
그러는 사이 외부 흑마법사 몇 명이 쭈뼛거리며 밀레이 교수에게 다가왔다.
대화를 나누던 밀레이 교수는 이한을 가리켰다. 흑마법사들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젠장. 흑마법사들은 저런 거 못 물어볼 줄 알았는데.”
“??”
닐리아는 옆에서 뭔 소린가 싶어서 당황했다.
아무리 흑마법사들이 사교적이지 않더라도 설마 질문을 못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아닌가?
“워다나즈 학생 맞으십니까!?”
“예... 뭐...”
“골렘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한은 흑마법사들이 왜 찾아왔는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골렘에 대해 말하는 걸 보니...
“잠깐. 골렘 때문에 절 찾으셨다는 건... 혹시 허리춤에 목검 차고 다니던 놈들이 저에 대해 말한 적 있습니까?”
“네? 어... 아마 그랬던 것 같습니다만.”
“......”
“......”
“야. 다른 곳 가서 준비하자.”
“빨리 일어나. 워다나즈 놈이 흰 호랑이 탑 놈들 곧 팰 거야.”
“사제님. 빨리 일어나시죠.”
“잠, 잠깐. 어딜 가는 거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필사적으로 다른 탑 친구들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친구들은 냉정하게 손을 떨쳐냈다.
다행히도 이한은 피의 보복을 가하지 않았다. 눈앞에 흑마법사들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골렘은 그냥 수리한 거지 제가 만든 게 아닙니다만.”
“예? 알고 있습니다.”
“...??”
흑마법사들의 반응에 이한은 살짝 당황했다.
어라?
“만든 게 아니라 수리하는 거면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대단한 거야 미친놈아...’
옆에 있던 학생 한 명이 속으로 생각했다.
수리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 맞았다.
흑마법사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도 대단한 게 맞습니다만... 그보다 저희가 궁금한 건 골렘 조종이었습니다.”
“골렘 조종이요?”
“예!”
“그냥 잡일 정도만 했습니다만...”
“예. 그런데 보통 마법사들은 골렘으로 잡일을 잘 못 하죠.”
“......”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