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화
“뭐야!? 어떻게 골렘으로?!”
“대체 어떻게!”
골렘 소환 마법사들의 반응에 흑마법사들은 무슨 소린가 싶다가 상황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에인로가드의 워다나즈 학생이 골렘을 조종하는 걸 보고 오해한 게 분명했다.
“아. 저건 우리가 한 게 아니라...”
“조용히! 조용히 해라. 우리가... 우리가 알아맞힐 수 있다.”
“아니...”
흑마법사들은 당황했다.
설명을 해주려고 하는데 소환 마법사들이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고 자기들끼리 고민에 들어간 것이다.
“뭐지? 어떻게 골렘으로 저런 낭비를 버티는 거지? 마력 소모가 극심할 텐데?”
“발산된 마력을 다시 수집해서 회복시키는 거 아닌가?”
“그게 효율이 얼마나 된다고! 십 분의 일도 다시 회복하기 힘들 텐데. 설, 설마 우리가 모르는 방식의 마법진을 개발해낸 건가?”
“흑마법... 흑마법에 그런 게 있나? 음의 마력이 가진 희귀한 속성이...”
“그런 건 들어본 적 없어! 그런 게 있었다면 우리도 알았겠지!”
“다른 방법은? 다른 방법은??”
“너무 직접적으로 쳐다보지 말게. 티나지 않나! 슬쩍 쳐다보게.”
소환 마법사들은 끙끙대며 속삭였다.
자존심 때문에 슬쩍슬쩍 골렘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모르는 새로운 마법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재료를 쓴 것도 아니고, 겉으로는 평범한 골렘이었는데...
대체 어떻게 굴리길래 저런 세밀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마력 유지가 되는 거지?
“혹시 그냥 마력을 많이 넣은 것 아닌가?”
“...아무리 답이 안 나와도 그렇지 그런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고 싶나?”
마석이고 물약이고 골렘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무식한 방법이 답일 리 없지 않은가.
“어이.”
“잠깐! 잠깐만 기다려라.”
“아니... 그냥 설명을...”
“잠깐만!! 잠깐만 기다리라니까!! 어허!!”
“......”
흑마법사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얼굴만 보면 매번 싸우던 놈들이 저렇게 구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기껏 알려주려고 했더니...
“끙... 끄응... 끄으으응.”
“끄윽... 끄으으윽... 끄으으으윽.”
“흑. 크흑.”
소환 마법사들은 계속 고민했다.
어떤 소환 마법사는 분해서 눈물까지 글썽일 정도였다.
흑마법사들한테 골렘으로 밀린 것도 모자라서 짐작도 하지 못할 줄이야.
소환 마법사들이 굴욕감에 떨며 패배했다는 시선을 보내자 기다리고 있던 흑마법사들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어라?
“사실 어떻게 된 거냐면...”
“쉿. 잠깐만.”
“왜 그래?”
“굳이 말해주지 말자. 저 놈들이 설명할 필요 없다고 한 거잖아.”
“...!”
흑마법사들이 사악한 수작을 부리는 것도 모르고 소환 마법사들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아직...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 한 건지는 몰라도 이번 축제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대답해주겠다. 기다려라!”
소환 마법사들은 더 이상 자리에 남아 있을 수가 없어서 굴욕을 참으며 서둘러 돌아섰다.
흑마법사들은 딱히 할 대답이 없었기에 그냥 웃었다.
“...크핫핫! 크핫핫핫핫!”
“우하하하하하하!”
“...두고 보자!!”
소환 마법사들이 돌아가고 나자 흑마법사들은 가슴 벅찬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시원했던 게 얼마만의 일이던가!
“...저기. 흑마법사 분들?”
“......”
방금 일어난 일을 뒤에서 보고 있던 이한이 부르자 흑마법사들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 * *
“골렘 놈들 왜 준비 안 하고 저러고 있지?”
“글쎄?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다른 분야 소환 마법사들은 골렘 소환 마법사들의 분위기를 보고 의아해했다.
무생물 타겟 소환 마법 중에서도 골렘을 전공하는 마법사들은 목소리가 크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직관적으로 강력한 소환수인데다가 제국에서 요구도 많은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초상이라도 난 것마냥 분위기가...?
“괜찮냐? 너희 준비 안 하면 우리가 먼저 한다?”
“...마음대로 해라...”
“!?”
평소라면 ‘어딜 감히 남의 순서를 탐내냐!’하면서 펄펄 뛰었을 놈들이 창백한 안색으로 양보하자 다들 당황했다.
“정말 먼저 해도 되냐?”
“그래...”
“평소에 에고 아이템 우습게 여기던 놈들이 진짜 괜찮냐?”
“그래...”
“...아니. 이 자식들 진짜 괜찮은 거 맞나?”
“걱정되는데 이거...”
처음에는 그냥 넘어가려던 소환 마법사들도 수군거렸다.
골렘 소환 마법사들이 슬슬 진지하게 걱정되었던 것이다.
마법을 모르는 일반인도 우울함이라는 늪에 빠지면 나오기 쉽지 않았지만, 마법사는 특히 더욱 위험했다.
폭발한 일반인보다 폭발한 마법사가 몇 배로 위험했으니까.
괜히 사고라도 치면...
“이봐. 벽에 막힌 건 알겠어. 하지만 그렇게 우중충하게 있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고.”
“맞아. 이리 와. 이럴 때는 차라리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다른 마법사들의 마법을 보는 게 나아. 참.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소환 마법 보여줄 텐데 그거나 보자. 정통 중의 정통 마법 볼 기회가 그리 흔치 않아. 그 밀레이 님의 제자들이라고.”
“작은 거 소환해봤자...”
“...이 새끼들 그냥 구덩이에 버리고 가면 안 되나?”
“쉿. 참아.”
다른 소환 마법사들은 같은 소환 마법사의 우정으로 골렘 소환 마법사들을 어르고 달랬다.
결국 골렘 소환 마법사들은 못 이긴 척 일어났다.
“후...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만 고민하라니까! 학생들 마법이나 보자고.”
“종이 새인가?”
“저 나이에 벌써?!”
“자네, 아직도 종이 새 소환 못하지?”
“나, 나는 적성에 안 맞아서...”
소환 마법사들은 이러쿵저러쿵 떠들며 관중석에 앉았다.
오늘 축제에 참가한 소환 마법사들 중에 에인로가드의 학생들보다 높은 서클의 마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은 제법 있었다.
그러나 에인로가드의 학생들처럼 소환 마법의 모든 기초를 탄탄하게 닦고 올라온 마법사는 극히 드물었다.
마법은 선택 받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좁고 어려운 길.
당장 눈앞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이는데 그걸 참고 다른 기초들을 닦으며 인내할 수 있는 마법사도, 그리고 그게 가능한 환경도 많지 않았다.
그런 만큼 오늘 축제에 참가한 마법사들에게 에인로가드의 1학년 학생들은 결코 아랫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저 멀리의 망망대해에서 몰려오기 시작한, 아직은 작지만 한 번 기세가 붙으면 조각배 정도는 쉽게 뒤덮을 거대한 파도의 전조처럼 보였다.
“시작한다. 종이 새로군!”
“깔끔하다! 한 번에 소환시키다니!”
소환 마법사들 사이에서 감탄과 박수가 새어나왔다.
그러나 몇몇 소환 마법사들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은 이번 축제에 참가한 이들 중 손꼽힐 만큼 실력 있는 마법사들이었다.
에인로가드의 수준을 알고 있는 만큼 저 정도로 감탄하진 않았다.
“후배들아 제발...”
“쉿. 스승님 듣겠다.”
선배들은 그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밀레이 교수가 아닌 척하면서 긴장하고 있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멈춰!”
빙글-
쭉 날아가던 종이 새들이 멈춰서자 박수갈채가 더 강해졌다. 그러나 선배들은 작게 탄식했다.
후배들이 저지른 사소한 실수들이 눈에 밟혔던 것이다.
“명령을 듣고 바로 멈출 수 있어야 하는데 조금 늦었어.”
“동작도 깔끔하지 않았고...”
“마법진 만들 때 낭비가 있었던 거야. 마력이 누수되니까 동작이 저렇게 흔들리지.”
아니나 다를까 실력 있는 소환 마법사들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 다음으로 날아드는 종이 새들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박수갈채와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여전히 몇몇 소환 마법사들의 무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게 했어야지! 차라리 노래를 부르게 했어야...”
“너도 성공 못해놓고 그걸 1학년들한테 하라고??”
“성공만 했으면 전원 기립박수 나왔다!”
“그냥 지금이라도 가서 일어나라고 협박하자. 징벌방 좀 가는 게 낫지.”
선배들이 떠드는 사이 1학년 중 한 명이 뒤늦게 종이 새를 날렸다. 가장 준비가 오래 걸린 탓에 마지막으로 출발시킨 학생이었다.
“...어, 쟤 워다나즈지? 아까 흑마법사들하고 같이 있던.”
“흑마법사들하고 왜 같이 있었던 거래?”
“글쎄...? 종이 새에 흑마법이 도움 되는 게 있나?”
이한이 날려 보낸 종이 새는 평범했다.
다른 종이 새들과 같이 허공 위로 빙글 날아오르더니 천천히 허공을 유영했다.
많은 소환 마법사들은 박수는 쳤지만 의아해했다.
‘그냥 늦은 건가?’
‘민망하지 않게 박수쳐야겠군.’
심지어 선배들조차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당황해했다.
“늦어서 준비 못한 거냐?”
“흑마법사들이 붙잡아서 그런 건가? 이 흑마법사들이...!”
“아니. 원래 흑마법 듣는 녀석이잖...”
벌떡!
무표정하게 있던 소환 마법사들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밀레이 교수에게 시선을 보냈다.
밀레이 교수는 무뚝뚝한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하려는 짓을 허락한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허공에서 정령 매가 나타났다. 튀어나온 정령 매가 매섭게 날아들며 종이 새를 잡아찢으려고 들었다.
이한은 욕설을 참으며 새를 조종시켰다.
‘미쳤나?!’
남이 지금 시연하는데 대뜸 소환수를 공격하다니.
만약 볼라디 교수였다면 바로 ‘본체를 쳐라’라고 외쳤을 무례였다.
축제 자리만 아니었어도 상대 마법사는 뼈 몇 개는 부러졌을 터.
이한은 보는 눈이 많은 상황을 노리고 공격하는 상대 마법사의 비열함에 이를 갈며 집중했다.
‘회피, 회피, 회피...!’
쉭!
종이 새가 말도 안 되는 기동을 보여주며 공격을 피해냈다.
한 번, 두 번, 세 번.
“...!!”
“저... 저거?!”
그러자 못 알아보던 소환 마법사들도 깜짝 놀라기 시작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움직임을 봐! 저 움직임을!”
미리 마법진에 기록해놓고 소환한 종이 새의 움직임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름 회피를 한다고 하더라도 정령 매처럼 사납고 날쌘 소환수의 공격을 버티는 건 무리.
그런데 지금 종이 새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피하고 있었다.
마법사가 직접 의식을 연결해서 조종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화아악-
‘...진짜 미쳤나!?’
이한은 웬 정체 모를 마법사가 시야 가리는 안개를 뿌리자 분노했다.
종이 새 공격도 모자라서 지금 조종도 제대로 못하게 안개를 뿌리다니.
징벌방이고 뭐고 끝나고 보자고 다짐하며 이한은 원견에 집중했다.
마법사의 시야로 볼 수 없다면 새의 시야로 볼 뿐.
‘조금만 버텨라... 됐다!’
다행히 원견 마법은 제대로 작동했다. 종이 새는 다시 한 번 정령 매의 공격을 피해냈다.
더 이상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소환 마법사는 정령 매를 원래 계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품위 있는 동작으로 손을 내밀었다.
“축하드립니다. 밀레이 님. 훌륭한 제자를 두셨군요.”
“에인로가드의 학생들이 뛰어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앉아 있던 소환 마법사들이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축하를 남기자, 밀레이 교수의 눈빛에 은은한 기쁨이 맴돌았다. 스승의 반응을 본 선배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저 마법 또한 제 마법을 따라했을 뿐. 곧 자기만의 마법을 만들어야 하겠지요.”
“너무 성급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 정도 실력을 가진 젊은 마법사라면 곧 자기 길을 찾아낼 테니.”
‘우리 스승님이지만 진짜 너무하실 때가 있지 않나?’
‘그러게 말이야.’
선배들은 이 와중에도 자기 제자 부족하다고 하는 스승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해도 해도 너무하신다!
쾅!
“방금 어떤 마법사가 안개를...”
“아. 이 분이 우리를 감탄시킨 그 마법사군요.”
“감동했습니다.”
분노를 토해내려던 이한은 밀레이 교수와 주변 마법사들의 분위기를 보고 빠르게 상황을 알아차렸다.
“...배려해서 뿌려주신 덕분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저는 손속에 사정을 둔 적이 없습니다만. 하하하!”
‘...방금 저 후배 화난 것 같지 않았냐? 기분 탓이었나?’
“말도 안 돼!!”
“!?”
소란이 끝난 줄 알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커다란 고함소리.
골렘 소환 마법사들이 경악한 시선으로 이한을 쳐다보고 있었다.
“흑, 흑마법사가 아니었다고?!”
“그럼 어떻게 골렘을... 아니... 대체... 종이 새... 어... 둘 다...?!”
“이봐. 자네들 지금...”
밀레이 교수 곁에 있던 소환 마법사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감 넘치는 건 좋았지만 남의 영지에서 이 무슨 무례란 말인가.
“아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골렘을 조종했단 말입니다! 골렘을!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골렘도 조종할 줄 압니다! 진짜 기가 막히게 조종을...”
영문을 모르는 소환 마법사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골렘 소환 마법사들이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종이 새를 조종하느라 지친 1학년 학생한테 무슨 소리를 한단 말인가.
그 기색을 알아차린 이한이 밀레이 교수에게 속삭였다.
“교수님께서 적당히 중재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한 학생.”
밀레이 교수는 단안경을 고쳐 쓰고서 입을 열었다.
“골렘 조종도 보여주도록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