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화
징조 없이 생겨나 날아드는 강의실 가구들.
친절한 볼라디 교수는 이한을 공격하면서 왜 맞아야 하는지도 설명했다.
예지 마법은 마법 중에서도 가장 신비스럽고 배우기 까다로운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사실 예지는 마법사가 아닌 사람도 할 수 있었다.
날씨가 흐리면 비가 올 것이라고 예지하고, 해골 교장이 선량해지면 세상이 멸망할 거라고 예지할 수 있는 것처럼 원래 예지란 건 과거와 현재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었다.
예지 마법은 이 능력을 극한에 가깝게 개발하는 학문.
그 개발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이 예측하려는 분야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많이 쌓는 것이었다.
공간 이동 마법의 위치를 미리 예지하고 싶다?
공간 이동 마법으로 많이 맞을수록 예지 마법의 정확도가 올라갔다.
“그런 셈이지.”
“그렇습니 컥!”
이한은 바닥에서 생겨난 의자가 치고 올라오는 공격에 턱을 당했다. 그 탓에 시야가 흔들리고 균형이 무너졌다.
“...교수님. 예지 마법 바로 연습해보면 안 됩니까?”
바닥에 뻗었다가 일어난 이한은 진지하게 물었다.
크라어 교수가 예지 마법을 함부로 시도했다가는 어떤 대가를 치러야할지 모른다고 경고했었지만, 지금 이미 충분히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안 된다.”
“어째서입니까?”
“위험하니까.”
“......”
이한은 난장판이 된 강의실을 쳐다보았다.
지금 박살난 가구 중 30% 정도는 이한의 몸으로 직접 부딪쳐서 부쉈는데...
‘가구한테 맞다가 죽으면 해골 교장이 엄청나게 즐거워하겠군.’
이한은 온몸에 힘을 주며 일어났다.
어떻게 된 게 예측보다는 잘 맞는 요령만 느는 것 같았다.
가구가 후려칠 때 육체에 순간적으로 마력을 결집시켜서 막으면 충격이 비교적 덜했다.
이한은 몰랐지만 이건 전장에서 난전을 자주 펼치는 베테랑 용병들이 쓰는 요령이었다.
“잠깐.”
“?”
볼라디 교수가 이한에게 쉬라고 손짓하더니 품속에서 물약을 꺼내 마셨다.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마력 회복 물약이십니까?”
“그래.”
원래라면 강의 시간 내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한을 두들겨 패던 볼라디 교수였지만 공간 이동 마법은 예외였다.
그 마법의 난이도 때문에 마력 소모가 훨씬 극심했기 때문이었다.
볼라디 교수가 사용하는 마법은 대부분 전투용으로 개량된, 시전이 빠르고 마력 소모가 적은 마법인데도 그랬다.
“저런. 교수님. 조금 쉬었다 하셔도...”
“아니. 걱정하지 마라.”
“마력 회복 물약 많이 마시면 몸에 무리 가잖습니까.”
“이 정도는 상관없다.”
“......”
이한은 힐끔 마력 회복 물약 상자를 쳐다보았다.
‘저쪽으로 접근해서 박살내버리면...’
“다시 시작해도 되겠나?”
이한은 대답 대신 바로 옆으로 뛰었다. 볼라디 교수의 함정이란 걸 깨달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공격이 날아들었다.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 상대가 방심하는 것을 노린 악랄한 공격이었다.
‘저 상자만 부수면...!’
이한은 공격의 절반 정도는 피하고 절반 정도는 몸으로 때우면서 어떻게든 접근했다.
그리고 마력 회복 물약 상자 위로 굴러버렸다.
와장창!
“이런! 교수님. 죄송합니다!”
“신경쓰지 마라.”
“하지만 물약이 없어졌으니 이번 강의는...”
벌컥-
강의실 문이 열리더니 우레걸음 교수가 커다란 궤짝을 들고 나타났다.
“마력 회복 물약 갖고 왔소. 여기다 놓으면 되오?”
“고맙습니다.”
“드래곤이라도 나왔소? 왜 이렇게 물약을 많이...”
우레걸음 교수는 그제야 강의실이 완전히 개박살나고 이한은 물약 상자 위로 널브러져있다는 걸 깨달았다.
‘음. 엮이지 말아야겠군.’
“여기다 놓고 가겠소. 워다나즈, 힘내라!”
우레걸음 교수는 이한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빠르게 문을 닫아버렸다.
이한은 증오로 가득 찬 시선으로 문을 노려보았다.
* * *
강의가 끝나갈 무렵에야 볼라디 교수는 마법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예지 마법의 전문가가 아니다.”
“...?”
이한은 뭔 개소린가 싶었지만 볼라디 교수는 진지했다.
일반적인 관념으로 볼라디 교수 같은 타입은 그 학파의 전문가라고 하지 않았다.
학파 마법을 필요한 만큼만 배워서 개량한 다음 전투에만 쓰고 있는 만큼, 어떻게 보면 사도에 가까운 방법.
학파의 전문가는 자신의 분야에 깊이 파고들어서 새로운 신비를 탐험하고 일 년에 관련 논문 몇 편 정도는 제국 학파 학회에 발표하며 연회비를 꼬박꼬박 납부하는 걸 잊지 않는 이들이었다.
“지금 가르쳐주는 마법은 예지 마법사들 앞에서 보여주지 말도록.”
“??”
이한은 볼라디 교수가 무슨 금지된 사악한 마법이라도 가르쳐주나 싶어서 경악했다.
‘해골 교장한테 고발해야 하나? 볼라디 교수가 나한테 보복할까?’
그러나 그런 걱정과 달리 볼라디 교수가 꺼낸 마법은 매우 멀쩡한 마법이었다.
<배그렉의 일순 예지>.
예지 마법과 부여 마법의 혼합 계열로, 마법사에게 시전하면 전투에 관한 미래를 1초 정도 앞서서 볼 수 있는 미래시(未來視)를 부여하는 마법이었다.
당연히 예지 마법 특성상 마법의 효율을 올리려면 대상자의 전투 경험이 높을수록 좋았다.
공간 이동 마법을 먼저 보고 싶다면 그만큼 맞아야 한다는 거지만...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군.’
이한은 속으로 투덜대다가 문득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이게 왜 예지 마법사들 앞에서 드러내면 안 되는 마법입니까?”
이한은 혹시 볼라디 교수가 유명한 예지 마법사한테서 뺏었나 싶었다.
제국법 없이도 잘 살 사람인 만큼 그래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좋아할 마법이 아니니까.”
예지 마법사들은 예지 마법을 부(富)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이들을 경멸했다.
이런 이들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제국의 경제를 망가뜨리고 시민들을 파탄에 빠뜨렸다.
볼라디 교수가 가르쳐 준 마법이 그 정도로 사악한 목적을 가진 마법은 아니었지만, 전투에만 쓸 수 있게 다른 부분을 다 쳐낸 마법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예지 마법사들이 좋아할 마법은 아니었다.
“아니 전투에 좀 쓸 수도 있지 너무한 거 아닙니까?”
이한은 되레 찔려서 발끈했다.
나중에 소소한 금전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 예지 마법을 쓰면 어떨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에 비하면 전투는 정말 아무한테도 피해주지 않는 실용적인 방법 아닌가.
“예지 마법사들이 시비 거는 것에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이 마법이 얼마나 괜찮은 마법인지는 쓰는 사람이 알 겁니다.”
볼라디 교수는 이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갑자기 교수가 말이 없어지자 이한은 불길해졌다.
‘다시 공격하나?’
이한은 손에 잡히는 대로 잉크병이라도 던져서 교수의 주문 시전을 방해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볼라디 교수는 공격하지 않았다.
“고맙군. 반드시 이번 학기가 끝나기 전에 이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겠다.”
“아니...”
기껏 편들어줬더니 살인예고를 하는 볼라디 교수의 모습에 이한은 치를 떨었다.
‘앞으로 절대 편들어주지 말아야겠다!’
* * *
이한은 멀미에 시달리며 지하에서 지상으로 걸어 올라갔다.
<배그렉의 일순 예지>는 괜히 예지 마법이 아니라는 듯이 실패할 때마다 이한의 마력을 진탕시키고 소모시켰다.
그나마 마력이 많아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고갈로 피를 토했을지도 몰랐다.
‘으윽. 멀미가...’
볼라디 교수의 말에 따르면 멀미로 끝난 것도 아주 행운이었다.
샘물은 폭풍이 불면 사정없이 흔들리지만 대양(大洋)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마력량이 워낙 많아서 거친 진탕에도 최소한의 흔들림으로 끝난 것이다.
물론 멀미에 시달리는 이한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소리였다. 이한은 볼라디 교수를 욕하며 걸어 올라갔다.
“워다나즈!”
앙라고가 이한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이한은 평소보다 두 배는 살벌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찾고 있었... 왜, 왜 노려봐? 내가 뭘 했다고?”
“멀미가 나서... 됐다. 무슨 일이지?”
“교수님이 널 찾으셔! 최대한 빨리 데리고 와달라고 하셨으니까... 서둘러야 해!”
“그렇군.”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심한 앙라고가 길을 안내하기 위해 돌아서자, 이한은 자신의 뺨을 강하게 때렸다. 그러자 고통으로 정신이 돌아왔다.
잠깐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한은 앙라고를 뒤에서 습격했다.
콰당탕!
이한은 앙라고를 뒤에서 넘어뜨린 다음 재빨리 팔을 붙잡고 제압했다. 앙라고는 기겁해서 외쳤다.
“뭐... 뭐하는 거야?! 뭐하는 거냐고!? 설, 설마 지금 학교 수색 늘어난 것 때문에... 안 불었어! 안 불었다고, 워다나즈!”
“안 불었다고 다냐? 이미 경계가 몇 배로 늘었는데. 혼자 잡힐 것이지 왜 남까지... 아니.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앙라고. 끝까지 날 속일 셈이냐?”
“????”
앙라고는 이 미친놈이 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뭐지?
“저, 저번에 워다나즈 니가 교장 선생님 뒤 이어서 학생들 괴롭히고 다니면 딱이라고 말한 것 때문에 그러는 거냐 설마? 그건 그냥 농담 삼아서...”
“...그딴 소리도 했냐?”
이한은 팔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다른 건 넘어가도 해골 교장의 뒤를 이으라는 말은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이 자식들이 재수 없게!
“아악! 아악! 그, 그러면 뭔데!”
“후. 앙라고. 교수님이 날 부를 거면 마법으로 종이 새를 보냈겠지. 뭐하러 널 시켰겠냐? 네 속셈이 뻔히 보인다. 내가 물자를 많이 갖고 있으니, 붙잡아서 뜯어내려는 거겠지.”
“그야 잉걸델 교수님이 보낸 거니까...! 잉걸델 교수님은 마법사가 아니잖아 미친 자식아!”
앙라고는 팔이 아파서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물자를 약탈하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무슨 창의적인 개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군.”
이한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풀어주었다.
“네 말이 맞다. 오해해서 미안하다.”
“......”
앙라고는 너무나도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 틈을 타 이한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빨리 안내해라. 교수님이 기다리신다며?”
“야 이 뻔뻔한...”
“빨리! 내가 다른 곳에 가도 되나?”
“......”
* * *
잉걸델 교수는 사교와는 거리가 멀었다. 애초에 전장을 돌아다니면서 검을 휘두르고 다니는 사람인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에인로가드의 공기는 잉걸델 교수를 편하게 만들었다.
교수들이 각자 자기 할 일에 집중하는 자유로운 분위기.
어찌나 자유로운지 교장이 모임에 불러도 무시하는 교수들이 있을 정도였다.
“비켈린츠 경과 겨뤘던 그 때 저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아, 내가 만난 기사들 중 가장 강한 기사를 만난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앞으로 만날 기사들 중 가장 강한 기사일지도 모르겠다. 비켈린츠 경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저를 보며 존중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눈빛 하니까 생각난 일인데, 기사들끼리 눈빛을 교환할 때도 기사단만의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 기사단의 기사들이 눈빛을 교환할 때는...”
잉걸델 교수는 파르르 떨리는 손끝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너도밤나무 기사단의 부단장, 장클린 가문의 장클리프는 잉걸델 교수의 고막을 파괴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다다다다 떠들어대고 있었다.
“장클리프 경... 이렇게 방문했는데 내가 너무 시간을 많이 뺏는 게 아닐까 걱정되는데...”
“아닙니다. 잉걸델 님 같은 검사를 만날 기회가 그리 흔치 않잖습니까.”
“혹시 검술 대련이라도?”
“이야기가 다 끝나고 해주시는 겁니까?”
“아니 지금...”
“너무 기쁩니다. 자, 아까 하던 이야기로 돌아와서...”
잉걸델 교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된 이상 가장 사교적인 제자가 빨리 와주기만을 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