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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25화 (425/687)

425화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알카시스 교수의 질문에 이한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버두스 교수님께서 도와달라고 하고 계십니다.”

“...뭘?”

“아티팩트... 제작이요?”

“......”

알카시스 교수는 어이없다는 듯이 밖을 한 번 쳐다보고 이한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밖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천진난만한 눈동자로 기다리고 있던 버두스 교수는 문이 열리자 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라그린데 교수! 반가워!”

“반갑습니다. ...그래서 지금 뭐하고 계시는 겁니까?”

알카시스 교수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사실 질문보다는 ‘지금 니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거냐?’에 가까웠다.

“아티팩트 제작하는데?”

“혹시 난이도 낮은 아티팩트입니까?”

알카시스 교수는 마지막 남은 믿음을 긁어모아 최대한 버두스 교수를 이해해주려고 시도했다.

만약 저학년들을 위한 연습용 아티팩트라면 워다나즈를 데리고 가서 연습시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닌데? 내 연구과제야.”

“교수님 연구과제 말입니까?”

“응!”

버두스 교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버 수인족이라는, 종족적으로 귀여움을 타고난 외모에도 불구하고 버두스 교수는 다른 사람들의 분노를 잘 유발하는 편이었다.

‘주먹 날아가나?’

이한은 습관적으로 알카시스 교수의 손을 쳐다보았다.

보통 다른 교수들이 버두스 교수를 상대할 때면 손을 봐야 감정을 읽기 쉬웠다.

불끈 쥐어지면 이제 한 대 맞기 직전이라는 뜻이고, 힘줄이 꿈틀거리면 아직은 좀 괜찮다는 건데...

놀랍게도 알카시스 교수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교수님께서 진행하실 정도로 난이도 높은 아티팩트라면 1학년 학생이 진행하다가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고, 그럴 경우 무조건 부상으로 연결된다는 것도 알고 계십니까?”

“조심하면 되지! 얘가 마법을 못하긴 하지만 나름 세심한 편이라 괜찮을 거야!”

이한은 살짝 상처 받은 표정을 지었다.

버두스 교수를 제외하면 어디 가서 마법 못한다는 소리를 듣진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치면 치료하면 되잖아.”

“치유실에서 치료 못할 정도면?”

“학교에 있는 치유 마법사들도 불러서 치료하면 되겠지?”

“그러십니까? ...야. 잠깐 나가봐라.”

알카시스 교수는 바실리스크 알을 가리키고 이한에게 손짓했다.

알 갖고 밖에 잠깐 나가있으란 뜻이었다.

버두스 교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화 끝났으면 그냥 데리고 가면 되는데?”

“교수님은 잠깐 남아계시죠.”

분위기를 파악한 이한은 재빨리 바실리스크 알을 챙기고 오두막 문을 닫았다.

마법으로 소리를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버두스 교수가 지르는 비명이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알이 부들부들 떨자 이한이 괜찮다는 듯이 토닥였다.

“버두스 교수님이라서 그래. 다른 사람한테는 안 저러신다.”

*         *         *

대화가 끝나자 버두스 교수는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도와줘도 돼.”

“좀 더 성숙하게 말하시죠.”

“교수 수준의 아티팩트 제작을 1학년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건 위험할 뿐만 아니라 학생에게 너무 과중한 부담을 지우는 행위라는 걸 깨닫게 됐어.”

“잘하셨습니다.”

알카시스 교수는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안 되는 남는 시간을 버두스 교수 때문에 낭비하자 갑자기 허탈함이 몰려온 것이다.

‘에인로가드에서 가장 쓰레기 같이 시간을 낭비해도 이것보단 나았겠군.’

“교수님. 이거라도 좀.”

이한은 매우 공손한 태도로 산딸기 주스를 내밀었다.

우레걸음 교수의 텃밭 근처에서 서리한, 아니, 딴 산딸기로 만든 주스였다.

알카시스 교수는 이한이 왜 갑자기 존경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단 제자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고맙다. 만약 버두스 교수님이 이상한 소리를 하시면 말하고.”

“교수님은 에인로가드 최고의 교수님이십니다.”

“쓸데없이 아부하지 마라. 마법사에게는 좋은 습관이 아니니까.”

알카시스 교수가 떠나고 나자 버두스 교수는 툴툴댔다. 바실리스크의 알이 듣기 싫다는 듯이 꿈틀댔다.

이한은 못 들은 척 무시하고 말했다.

“다른 거 하면 되잖습니까?”

“다른 거 뭐? 새 연구과제? 헉. 생각한 거 있어?”

1학년 학생한테 자신의 새로운 연구과제 아이디어를 묻는 모습에 이한은 잔잔하게 웃었다.

“강의 준비 말입니다.”

“아... 강의...”

버두스 교수는 노골적으로 하기 싫다는 표정을 드러냈다. 이한은 다시 알카시스 교수를 불러오고 싶어졌다.

“하기 싫은데.”

“그걸 당당하게 말하시다니 교수님 맞으십니까?”

‘말은 그렇게 하셔도 실제로는 아니시잖습니까.’

순간 생각과 말이 뒤바뀌어서 나가자 이한은 살짝 당황했다.

그러나 버두스 교수는 침울해진 탓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난 하고 싶지 않은데 고나달테스가 억지로 시키는 거라고. 내가 왜 해야 하는데.”

“그런 거였습니까? ...잠깐. 교장 선생님한테 금화 투자 받으신 적 있으셨죠?”

“그랬지?”

이한은 경멸 섞인 시선으로 버두스 교수를 쳐다보았다. 버두스 교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강의 준비나 하시죠.”

“하기 싫다니까.”

“교장 선생님 부릅니다.”

“...!!!”

버두스 교수는 마치 자신의 수제자에게 배신당한 대마법사 같은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어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비버 수인족 특유의 수염이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빨리 준비나 하시죠.”

“알겠어...”

버두스 교수는 완전히 의기소침해져서 준비하러 움직였다. 그 뒷모습이 왠지 초라해보였다.

‘다행이군. 상대가 버두스 교수라.’

다른 교수님이었다면 괜히 마음이 아팠을 텐데 상대가 버두스 교수다보니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이한은 버두스 교수의 등을 떠밀어 탑으로 향했다.

성각관.

버두스 교수의 공방이자 탑.

교수는 도착하자 다시 귀찮아졌는지 또다시 툴툴대며 강의를 준비했다.

“여기 흑주마철 주괴하고... 또... 석탄 조금... 또... 화로하고 풀무... 청숯이 필요한데... 에이... 귀찮아... 숯 말고 다른 걸로...”

“숯 찾으시죠.”

버두스 교수는 두 배로 툴툴대며 숯을 찾았다.

“그래서 이거 무슨 강의입니까?”

“철 주괴를 직접 형태 변환시켜가면서 아티팩트 만들기 좋게 다듬을 거야.”

뛰어난 부여 마법사는 단순히 마법에만 능한 게 아니라 재료의 성질을 파악하고 형태를 주무르는데도 뛰어났다.

부여 마법의 가장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가 마법진을 통해 물질에 마법을 각인시키는 것이었는데, 이 때 물질의 형태나 구조도 마법에 영향을 줬다.

똑같은 갑옷이라도 그 위에 새길 마법진의 힘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거기에 맞는 구조를 처음부터 만드는 게 뛰어난 장인이었다.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새길 마법진을 파악하고, 그 마법진의 원리를 이해하고, 장비를 어떤 구조로 만들어야 할지 미리 계산이 가능해야 했다.

만들고 나서 그걸 계산할 수는 없었으니까.

계산한 다음에도 이제 각종 마법 재료들을 아주 세밀하게 모양을 잡아야 하는데, 변환 마법은 물론이고 각종 야장일이나 세공에도 능해야 했다.

버두스 교수한테 준비물 목록을 뜯어낸 이한은 이곳저곳 뒤지며 필요한 것들을 챙겨갖고 왔다.

“그런데 교수님. 교수님께서 지향점이 높은 건 알겠는데 너무 어려운 거 아닙니까? 이걸 1학년들이 할 수 있나요?”

“이거 2학년들 강의인데?”

“......”

이한은 들고 있던 준비물을 던지려다가 꾹 참았다.

2학년 강의 준비는 가장 불쌍한 2학년 학생 한 명 골라서 시켜야지 왜 이한을 시킨단 말인가.

“1학년 강의 준비하시죠.”

“대체 왜 그렇게 준비하는 걸 좋아하는 거야?”

“그냥 해야 할 기본만 하자는 건데... 아니, 됐습니다. 그냥 빨리 찾아나 오세요 좀.”

*         *         *

해골 교장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는 데스 나이트들의 수색에 아쉬워했다.

‘뭐지? 외부인의 도움이라도 받았나? 관계있는 외부인은 없을 텐데.’

해골 교장은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학생들과 관계가 있는 외부인들은 미리 다 확인을 해놓고 있었다.

혹시라도 탈옥, 아니, 무단외출을 도와주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사이좋게 징벌방을 구경하게 되리라.

-오해가 아니었을까요?

해골 교장은 대답 대신 데스 나이트의 입을 막아버렸다.

사람 좋다는 이유만으로 입이 막힌 데스 나이트는 억울해했다.

누군가를 매수한 걸지도.

-어떤 미친 사람이 에인로가드 안팎을 오가는 걸 도와주겠습니까? 은화가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걸리면...

세상 일은 모르는 법이다. 게다가 녀석은 꽤나 사악한 혀를 가지고 있거든. 충분히 꼬드길 수 있어.

해골 교장은 이한이 마음만 먹는다면 인근 납품업자 몇 명 정도는 쉽게 속일 수 있다고 믿었다.

워다나즈 가문의 재력과 본인의 사악한 언변만 있다면 어수룩한 직원 한둘 속여서 마차를 빌려 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좋아, 좋아.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계속 수색해라. 압박하다보면 빈틈이 나오는 게 학생들이지. 참. 마법사들은 잘 떠났나?

-예. 마지막 남은 마법사들까지 마을을 떠났습니다.

불평하는 호로새끼들은 없었고?

-예. 모두들 만족했습니다.

해골 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학교에 방문한 마법사들의 평가는 상당히 중요했다.

제국 마법사들 사이에 안 좋은 소문이라도 돌면 각종 초대, 행사, 투자 유치, 연구 지원 등 귀찮은 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황제한테 불려가서 한 소리 듣는 건 덤이었다.

아주 웃기는 놈들이군. 에인로가드의 완벽한 교육을 보여주면 그렇게 불평하면서 학생 한 명 던져주니까 신나서 조용해지다니!

-아주 웃기는 놈들입니다.

그래. 어쨌든 놈들은 꺼졌고... 기사 놈들은 아직 있지?

-예. 허락받은 대로 주말에 기사들 모임에...

뇌 없는 자들의 모임이겠지. 허락했으니 어쩔 수 없나. 데스 나이트들 보내서 감시해라. 혹시라도 몰래 빠져나가서 도시나 마을에 가는 놈 없도록.

데스 나이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를 학생의 일탈을 감시하는 건 그들의 역할이었다.

대충 보고를 받은 해골 교장은 둥둥 떠서 날아갔다.

학생들이 들으면 언제나 놀라워하는 사실이었지만 해골 교장은 정기적으로 교수들의 교육 커리큘럼을 확인하곤 했다.

확인했는데 이 정도가 아니라, 확인을 했으니 그나마 이 정도인 것이다.

누구 차례지?

-밀레이 교수님이십니다.

밀레이는 됐다. 알아서 잘 할 사람이야.

-그럼 가르시아 교수님이십니다.

가르시아도 더더욱 됐다. 너무 열심히 해서 문제지. 좀 대충 가르쳐도 학생들은 잘 자라는데.

-그 다음은 버두스 교수님이십니다.

...확인하러 가자. 그 놈은 내 두 눈으로 봐야겠다.

어지간하면 그냥 넘어가는 해골 교장도 버두스 교수는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아무리 넘어가더라도 직접 두 눈으로 봐야 하는 교수는 여전히 있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놈이 바로 버두스 교수였다.

카닐리언 한 자루, 가공된 매발톱나무 한 상자, 얼음질겅이 두 주머니, 오우거의 힘줄 하나 대충 잡히는 대로 학생들한테 던져놓고 ‘이번 시간 동안 이걸로 아티팩트 만들어서 보여줘’이러는 놈이었으니 절대 방심할 수가 없었다.

천재는 내버려둬도 알아서 자란다는 게 해골 교장의 지론이었지만 버두스 교수는 언제나 그 선을 넘으려고 해서 문제였다.

...뭐냐?

-강의실입니다.

강의실인 걸 몰라서 물은 게 아니라... 저게 뭐냐고 물은 거다.

-준비하신 거 아닙니까?

그 놈이??

강의실 안에 학생들이 앉을 자리마다 계량된 재료들과 함께 예시로 그려진 마법진들이 놓여있는 걸 보고 해골 교장은 눈을 의심했다.

혹시 버두스 교수는 납치당하고 다른 에인로가드의 적들이 몰래 변장해서 들어왔나?

-...그, 그러게요. 조금 이상하긴 합니다.

조금?

-많이 이상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의실 안으로 이한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안을 둘러보며 확인을 끝낸 뒤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은 해골 교장은 어이가 없었다.

저 놈은 이제 하다못해 1학년 제자하고 같이 준비를 해?!

아무리 제자가 똑똑해도 그렇지 강의 내용 준비를 1학년 제자한테 맡기면 어떡한단 말인가.

틀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주인님.

왜? 또 뭐냐?

-그... 여기는 2학년 강의 준비 같습...

...안 되겠다. 비블레 불러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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