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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29화 (429/687)

429화

티질링 사제의 속삭임에 이한은 상황을 빠르게 이해했다.

‘저런.’

하긴 이런 밤산책 경험이 적으면 신나는 것도 당연한 일.

가이난도였다면 꿀밤을 한 대 먹여줬겠지만, 아무래도 사제들에게는 관대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들 걱정하지 마라. 급해서 이런 임시 배를 만든 거니까. 계속 밤산책을 나가다보면 이렇게 호수를 건너야 할 일이 많을 텐데, 다음에는 제대로 된 배를 만들자고.”

그 말에 두 사제의 얼굴이 환해졌다.

옆에서 듣고 있던 티질링 사제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음이 있나?’

다들 너무 자연스럽게 다음 밤산책 약속을 잡고 있었다.

*         *         *

촤아아악-

고요한 지하 호수 위를 얼음 나룻배가 가르고 지나갔다. 몬스터가 없다는 걸 확인하자 이한은 좀 더 대범하게 행동했다.

나룻배 위에 빛 구체를 띄운 것이다.

‘아직 발견 못한 몬스터가 있다면 이걸로 올 수도 있다.’

만약 그럴 경우 이한은 마법 폭격을 날려서 물 안에서 해치울 각오로 기다렸다.

그러나 호수는 계속해서 고요했다. 몬스터가 움직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군.”

이한은 괜히 찜찜함을 느꼈다.

매번 학교 구석진 곳에 발을 내밀면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을 기대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었는데...

이렇게 계속 나오지 않으니 오히려 찜찜해지는 것이다.

어째서지?

“이상해요.”

시아나 사제가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에 이 정도 호수면 물고기든 뭐든 있어야 할 것 같거든요?”

“!”

이한은 시아나 사제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 저 말도 맞았다.

몬스터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물고기든 뭐든 이 정도 호수 규모면 보이는 게 당연했다.

아무리 지하 호수라지만...

“시아나 사제. 그러니까...”

“맞아요.”

시아나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은 매우 믿음직스러웠기에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 쳐다보았다.

과연 시아나 사제는 어떤 추리를 내놓을까?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그렇소. 이런 호수도 있다니. 정말 신기하긴 하오. 에인로가드에 별 장소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

이한은 괜히 기대했다고 후회했다.

두 사제는 너무 신나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티질링 사제는 괜히 미안해서 자신이 대신 추측해보았다.

“폐쇄된 인공적인 시설이면 생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치고 수풀이나 흙이 꽤 보이는데다가 유속도 제법 있어. 어딘가 연결되어 있는 것은 분명해.”

“호수 밑에 강력한 존재가 있다면 어떻습니까? 다 먹혔거나 도망쳤다면?”

“그런 호전적인 존재가 있었으면 이런 식으로 이목을 끌었을 때 나왔을 것 같군.”

둘은 진지하게 가설을 세워보고 가능성을 가늠해봤다.

그러는 사이 시아나 사제와 니기소르 사제도 둘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와! 저기 조각이!”

“여기 물수제비를 보시오!”

“......”

“......”

이한과 티질링 사제는 둘을 빤히 쳐다보았지만 둘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잠깐, 섬이다!”

둘을 쳐다보던 이한은 고개를 들고 외쳤다.

시력이 강화된 덕분에 친구들보다 한 발 더 앞서서 발견할 수 있었다.

짙은 어둠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암초만한 작은 섬이 거리가 가까워지자 수평선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제는 더욱 신이 나서 물었다.

“혹시 잊혀진 마도서가 있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역사서일지도 모르오! 밖에서 구할 수 없는 아주 귀한!”

에인로가드는 그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귀한 장서(藏書)들이 많았다.

물론 그 장서들을 원하는 대로 꺼내서 볼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였다. 한 번 사라진 책의 행방을 찾는 일은 교수도 힘들었다.

그런 만큼 이런 외진 곳에서 귀한 책들을 발견하게 되는 건 낭만적이고 기쁜 일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부정 탈 수 있으니까 다들 조용히 해라.”

“......”

“......”

이한 빼고.

필요한 물자를 어떻게든 확보하려는 이한에게 있어서 낭만은 사치였다.

책은 무슨 책이란 말인가!

‘선배들이 세운 창고. 교수들이 세운 창고. 교장이 세운 창고. 셋 중 하나면 좋겠군. 제발.’

사제들이 시무룩해하는 사이 이한은 나룻배를 붙이고 상륙했다.

작은 섬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커다란 크기의 바위였다.

이한은 만약 이 섬에 무언가가 있다면 바위 안에 숨겨져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진실의 빛을...’

이한이 뭘 하려는지 깨달았는지, 니기소르 사제와 시아나 사제도 장비를 들었다.

불과 산성 용액으로 숨겨진 길들을 찾아내보자!

고나달테스 님인가?

“!!”

갑자기 바위 안에서 우렁우렁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한은 그제야 자기가 거대한 바위라고 생각했던 게 몬스터라는 걸 깨달았다.

작은 섬이라지만 그 섬의 덩치와 맞먹는 몬스터라니!

이한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상황과 장소를 봤을 때 정면승부는 답이 없었다.

“바로 내가 사악한...”

고나달테스 님이 아니구나. 학생이군.

“......”

응? 뭐라고 하려고 했지?

“사악한 제국 마법의 적통을 고나달테스 님에게 물려받은 제자입니다.”

아. 그래서 마력이 그런가. 착각할 뻔했어.

거대한 바위는 느릿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마력만으로 상대를 파악하는 게 아닌 건 분명했다.

“혹시 바위 정령이시오?”

“정령은 아닐 것 같은데.”

이한은 무심코 대답했다.

그러자 거대한 바위는 기특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울리며 대답했다.

맞아. 나는 정령이 아니야. 놀라운 걸. 학생들은 보통 날 정령으로 생각하던데. 어떻게 안 거지?

“...경험과 지식으로요?”

이한은 ‘정령이면 대부분 저를 싫어해서 습관적으로’라고 대답하려다가 돌려서 말했다.

난 불가살이(不可殺伊)다.

“!”

불가살이.

무쇠를 먹고 성장하는 부정형의 몬스터.

정해진 생김새가 없는 만큼 어떤 금속을 먹고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을 가지게 됐다.

지금 이 작은 섬을 차지하고 있는 불가살이는 그 덩치와 온순한 성격을 봤을 때 꽤나 잘 먹고 싸움 없이 자란 게 분명했다.

“불가살이가... 왜 에인로가드에?”

언제였더라... 너무 예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 학생 한 명이 갓 태어난 날 몰래 가지고 와서 키웠지. 여기가 기르기 좋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불가살이는 느긋하게 말했다.

물론 듣고 있는 이한에게는 경악스러운 이야기였다.

‘이런 무책임한 놈들!’

아무리 에인로가드여도 그렇지 밖에서 유해생물을 멋대로 데리고 들어오다니.

그러니까 학교가 이 모양 이 꼴이 되는 것 아닌가.

듣고 있던 시아나 사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불가살이 님께서는 딱히 화가 나거나 학생들을 괴롭히실 생각은 없으신 거겠네요?”

응. 내가 왜 그런 일을 하겠어. 날 데리고 와준 학생도 교수로 일하고 있는데.

“......”

이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심지어 범인이 교수였다니.

“혹시 비버 수인족이었습니까?”

으으응? 아닌데.

“혹시 뱀파이어?”

아닌데... 잠깐. 그만 물어봐.

불가살이는 느릿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자길 데리고 와준 학생, 아니 교수에게 피해를 끼칠까봐 입을 다문 것이다.

날 데리고 왔다고 그 교수를 존경하지 않으려는 거라면 잘못 생각했어. 어렸을 때는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잖아.

“하긴 그렇소.”

니기소르 사제는 깊이 공감했다.

사제 본인도 더 강한 화염을 만들겠다고 신전에서 불장난 좀 많이 쳤던 것이다.

어렸을 때 했던 풋풋한 장난이었다.

“전 무슨 잘못을 해도 학교만큼 커질 수 있는 몬스터를 몰래 데리고 오진 않을 것 같... 읍읍.”

“쉿. 시아나 사제. 괜히 성질 자극하지 말자고.”

이한은 재빨리 시아나 사제의 입을 막았다.

선배, 교수, 교장의 창고가 아닌 게 아쉬웠지만 이건 또 이거대로 기회였다.

학생들에게 친절하고 학교에 박식한 존재를 만날 일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대부분의 존재들은 학생들을 보면 선공을 가하곤 했다. 당장 저번 골렘만 봐도...

‘최대한 정보를 캐내야 한다.’

“그 말이 맞습니다. 어떤 진실이 있더라도, 저희가 가진 교수님을 향한 존경심은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겁니다.”

이한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갓 태어난 새끼 불가살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하더라도 존경심은 바뀌지 않았다.

애초에 0이었으니까!

그래? 다행이다.

불가살이는 만족했는지 느긋하게 대답했다.

이한은 상대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럼 여기서 머무시는 겁니까?”

응.

질문을 던지자 불가살이는 천천히 정보를 털어놓았다.

지금 불가살이가 머물며 헤엄도 치고 먹이도 먹는 이 호수는 이른바 <거미줄 호수>라고 불리는 모양이었다.

거미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호수의 지형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몇 층이기도 세기 힘들 정도로 깊숙한 본관 지하에 위치한 이 호수는 오랜 시간이 흐르며 에인로가드의 몇몇 구역들과 아주 견고하게 결합하고 연결됐다.

에인로가드가 주기적으로 몸을 뒤틀며 안의 공간을 섞어놓아도 이 거미줄 호수와 연결된 공간들은 풀리지 않을 정도로.

그 사실을 잘 아는 교수들은 이 거미줄 호수를 일종의 지름길처럼 사용했다.

“!!”

이한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참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이 주변에 어디로 연결된 곳이 있을까요?”

다른 곳은 모르지만, 내 아래로 하나 있지. 들어보니까 교수들이 쓰는 곳이라던데.

“!!!”

교수들이 쓰는 곳이라는 말을 듣자 이한의 눈이 흔들렸다.

니기소르 사제와 시아나 사제도 흥분됐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이한과 시선을 교환했다.

‘창고인가?’

‘교수들 도서관일지도?’

가만히 듣고 있던 티질링 사제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더니 물었다.

“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교수님이나 교장 선생님과 친분이 있으신 것 같은데, 이런 걸 알려주셔도 됩니까?”

응? 물론이지. 여기까지 왔으면 고학년일 텐데, 내가 안 알려줘도 곧 알아낼 수 있잖아.

“......”

“1학년인데요...”

어??

불가살이는 깜짝 놀랐다. 바위가 흔들거리며 움찔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1학년이면 호수를 어떻게 건넌 건데?

“물을 얼려서 배를 만들었습니다.”

와. 대단하군. 요즘 신입생들의 수준이 오른 거야?

‘아닙니다.’

‘아닌데요.’

‘아니오.’

불가살이의 말에 따르면, 이 거미줄 호수를 건너려면 마법이 필요했다.

마법이 없는 수단으로 건너려고 한다면 대번에 호수의 물이 기슭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치사한 교수들 같으니.’

이한은 혀를 찼다.

당장 이 호수를 지름길로 이용하려고 해도 출구와 입구의 위치를 알고 있지 않으면 이 넓고 복잡한 호수를 지름길처럼 쓰지 못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저런 제약까지 걸다니.

“역시 고나달테스 님이 거신 겁니까?”

응? 아니야. 자연 현상이야. 마력이 고이고 고이더니 저렇게 되더라.

“...저런.”

이한은 살짝 반성했다.

“그럼 호수에 생명체가 없는 것도 저 마력 때문입니까?”

그건 물의 정령들이 장난칠 때가 되서 그래. 곧 물난리가 일어날 거라 미리 도망친 거지.

“......”

“...????!”

너무 커다란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불가살이의 모습에 이한 일행은 경악했다.

*         *         *

“저... 커다란 홍수가 일어난다면 빨리 가서 말해야 하는 게 아닌지...?”

이한은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살이 밑의 통로를 타고 교수들의 전용 공간으로 움직였다.

그 꿋꿋한 모습에 티질링 사제가 당혹스러워했다.

지금 당장 돌아가서 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

“티질링 사제. 이럴수록 더 챙겨야 해. 교수들의 창고라면 물난리가 났을 때 쓸만한 것들이 있을 테니까.”

“확실히 맞아요!”

“동의하오.”

다른 두 사제들은 잔뜩 신이 나서 사다리를 붙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늦게 돌아간다고 일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야. 저 위의...”

통로 사다리 가장 위에서 올라가던 이한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는 딱딱하게 얼굴을 굳혔다.

“왜 그러세요?”

“...교수들 휴게실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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