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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30화 (430/687)

430화

이한이 사다리를 통과해 안으로 발을 내딛자 사제들도 서둘러 올라왔다.

시아나 사제는 조심스럽게 안을 둘러보았다.

넓은 방 안은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앤틱한 가구들과 부드러운 벨벳 커튼, 푹신한 융단 카펫이 방 안을 장식했고 어디선가 나팔관 달린 축음 아티팩트가 노랫소리를 자아냈다.

“아. 이렇게 호화로운 곳은 교수님 휴게실밖에 없으니까...”

시아나 사제는 알겠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여기가 교수님 휴게실인지 어떻게 알았나 싶었는데, 이 풍경으로 추리한 게 분명했다.

역시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었다.

“아니. 저기 입구에 교수 전용 휴게실이라고 쓰여 있어.”

교수 전용 휴게실

-창립 때부터 세상의 종말까지 학생들 출입 절대 금지!-

오수 고나달테스

“......”

“아하.”

사제들은 입구에 걸린 황동 명판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교수 전용 휴게실이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요?”

시아나 사제가 실망감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창고도, 장서관도 아닌 이런 휴게실에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응? 쓸만한 거 챙겨야지. 다들 배낭 꺼내.”

이한은 바로 배낭 꺼내서 교수들 간식부터 쓸어 담기 시작했다.

휴게실 안에 있던 찻잎, 커피가루, 각종 과자들이 사라지는 데에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숙련된 도둑의 솜씨로 배낭에 차곡차곡 빈틈없이 꽉꽉 채워 넣는 그 모습에 사제들은 홀린 표정을 지었다.

“공간 마법이 걸려있나요??”

“아니. 그냥 차곡차곡 잘 넣은 거야. 식량 챙겼으면 그 다음은 시약하고 아티팩트야. 쓸만한 거 있나 찾아봐.”

“여기 이 축음 아티팩트는 어떻소? 기숙사 휴게실에서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어마어마한 사치일...”

“아냐. 너무 부피가 커. 그리고 노래는 들어봤자 배가 부르지도 않잖아. 다른 걸 찾자.”

니기소르 사제와 시아나 사제는 동시에 시무룩해졌다.

노래 들으면서 기도하고 싶었는데!

“여기 시약 상자 찾았습니다.”

“훌륭해. 티질링 사제. 도둑의 재능이 있군.”

“...감사합니다? 잠깐, 이걸 다 챙겨도 될까요? 교수님이 쓰실 일이 생기시면...”

작은 솥 조각이 새겨진 청동 상자를 들고서 티질링 사제는 머뭇거렸다.

휴게실에 있는 시약 상자를 통째로 가져갔다가 교수가 곤란하기라도 할까봐 걱정됐던 것이다.

“쓰실 일이 생기시면 알아서 구하시겠지. 우리도 알아서 구하는데.”

그러나 이한은 가차 없이 상자를 챙겨서 배낭에 넣었다.

학생들도 시약 필요하면 밖에 나가서 구해야 하는데 교수라고 뭐 그리 다르겠는가.

심지어 교수는 그냥 밖에 나가서 사와도 됐다.

“정말 중요하신 거라면 알아서 숨기셨을 것이오.”

“말 잘 했어. 니기소르 사제.”

짝!

이한과 니기소르 사제는 서로 손바닥을 부딪치고 다음으로 위치를 영구이동시킬 물건을 찾았다.

“?”

통로를 따라 다른 방으로 이동하려던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방 자체는 그냥 휴게실에 자리 잡은 여러 방 중 하나였지만...

그 안에 특이한 게 있었다.

그건 나무를 깎아 만든, 방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시판이었다.

월요일

9:00~11:00

11:00~1:00

1:00~3:00

휴식 시간이 없잖아요!

누가 자동 방어 부여 좀 익히게 해줘! 진도가 안 나가잖아!

엿이나 먹게, 비블레

강의 시간 빌려줄 분 찾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도 휴식 시간 없습니다. 자꾸 추가하려는 사람 보이면 농담 아니라 황제 폐하에게 투서 넣을 겁니다.

...다들 가르시아 교수의 말을 존중하도록.

‘교수들 강의 시간표인가?’

이한은 게시판에 적힌 메모들을 읽어보며 생각에 잠겼다.

교수들의 이름이 나오는 걸 보니 강의 시간표 같긴 했는데, 뭔가 이해가지 않는 문구들이 몇 개 있었다.

‘교수들의 암호나 은어라서 못 알아듣는 건가?’

적혀 있는 메모 말고도 지워진 메모들도 몇 개 있었다.

부여 마법은 너무 부족해

정통 환상 마법?(가르쳐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급 염력 통제 O

물 원소 심화 O

번개 원소 O

냉기 원소 O

잠깐, 이걸 다 했다고요???

강철 변환 O

회전 속성 부여 △

교수님. 잠시 이야기 좀 하죠.

‘고학년 강의 목록인가보군.’

그렇게 생각한 이한이었지만 왠지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뭐지? 미리 예습하기엔 너무 먼 일인데...’

달칵-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휴게실 통로 끝의 문이 열리고 책을 한아름 들고 있는 가르시아 교수가 들어왔다.

“......”

“......”

“...버두스 교수님 심부름 하러 왔습니다.”

*         *         *

뒤에 있는 사제들만 아니었다면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의 말에 속았을 뻔했다.

그 정도로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터무니없는 소리를 진지하게 말하는 재주가 있었던 것이다.

“이한 학생...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시간을 주시면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됐어요. 사실 설명 안 해도 알 것 같으니까.”

가르시아 교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들고 있던 <상대에게 겁을 주지 않고 친해질 수 있는 화술>과 <공포를 유발하는 종족들의 화술법>을 내려놓았다.

“밤산책 다니다가 여기 들어온 거겠죠?”

“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교수 휴게실에 겁도 없이...”

가르시아 교수는 크게 나무라진 않았다.

에인로가드의 변덕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었고, 학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가끔 길을 잃을 정도였다.

학생이 밤산책을 하다가 길을 잃고 특이한 장소로 가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교수 전용 휴게실로 오는 건 처음 봤지만...

“그래서 어떻게 왔어요? 혹시 복도에서 길 안내해주겠다고 말 거는 목 없는 기사 만났어요? 그 기사는 믿으면 안 되는데.”

“......”

이한은 절대 밤 복도에서 목 없는 기사를 만나면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거미줄 호수에서 들어왔습니다.”

“...거미줄 호수로 들어왔어요!?”

가르시아 교수는 다시 들려던 책을 깜짝 놀라서 내려놓았다.

이건 정말 예상 밖이었던 것이다.

“거기가 어디라고 들어갔어요!? 배 띄워도 가라앉을 텐데?!”

“마법으로 얼음 나룻배를 만들었습니다.”

“아하.”

가르시아 교수는 그제야 제자가 어떤 제자인지 뒤늦게 떠올렸다.

하긴 저 정도 능력이라면 거미줄 호수를 건너는 방법을 마련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으리라.

“길은 어떻게 찾았어요? 지도라도 구했어요? 세이렌들이 괴롭혔을 텐데?”

“......”

이한은 다음에 <거미줄 호수>에 갈 때는 꼭 귀를 막을 아티팩트를 준비해서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세이렌은 없었습니다. 지금 물 정령들이 난리치기 전이라 다들 도망갔다는데요.”

“아. 벌써 때가 그렇게 됐네요.”

“?”

가르시아 교수가 너무 태연하게 받아들이자 이한은 당황했다.

“교수님. 그, 제가 알기로 에인로가드는 마력의 지맥이 매우 강력한 곳이고... 덕분에 정령들의 힘도 강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정령들이 난리를 치면 홍수가 나는 거 아닙니까?”

이번에는 가르시아 교수가 당황할 차례였다.

“아. 그랬죠. 미안해요. 학생들은 불편할 수 있겠어요. 강의 들으러 갈 때마다 노 저어서 이동해야 할 테니까.”

“......”

“......”

졸지에 미래를 엿보게 된 학생들은 황당해했다.

에인로가드에 크게 홍수가 나면 어떻게 되나 짐작도 가지 않았는데...

저렇게 되는구나!

“에인로가드에 오래 있다 보면 자꾸 이상한 일들에 익숙해져서요. 홍수도 몇 번 보다보니까 그렇게 반응하게 됐네요. 무심하게 말해서 미안해요.”

“아, 아닙니다.”

“잠깐. 그런데 누가 말해줬어요?”

가르시아 교수가 의아해하며 묻자 이한은 불가살이를 만난 일을 털어놓았다.

전말을 들은 가르시아 교수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 그 불가살이를 만났어요? 귀엽죠?”

“?”

니기소르 사제와 시아나 사제는 의문을 눈빛에 품었지만, 이한은 번개와 같은 동작으로 사제들의 옆구리를 한 번씩 찔렀다.

“예. 귀여웠습니다.”

“억. 귀엽습니다.”

“읏. 귀여웠어요.”

다들 동의하자 가르시아 교수는 살짝 신이 난 모양이었다.

“원래 그 정도로 기른 불가살이는 보기 힘들거든요.”

“혹시 교수님께서 갖고 오신 건가요?”

“...아, 아닌데요?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이한 학생?”

‘교수님은 아니신가보군.’

가르시아 교수가 단호하게 부정하자 이한은 그 말을 믿었다.

해골 교장과 달리 가르시아 교수는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어쨌든... 홍수가 난다는 걸 듣고 물자를 챙기러 온 거군요.”

가르시아 교수는 참 딱하다는 듯이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티질링 사제는 양심에 찔려서 입술을 꼼지락거렸다. 딱히 홍수 때문에 온 건 아니었던 것이다.

“교수 휴게실은 챙길 것도 별로 없을 텐데.”

“맞습니다. 참 아쉽습니다.”

“???”

사제들은 묵직해진 이한의 배낭을 쳐다보았다.

‘저 정도면 많이 챙긴 거 아니에요?’

‘아닌 것 같소.’

“다들 잠깐만 있어 봐요. 방수(防水) 마법이 걸린 천들이 어디 있었는데.”

가르시아 교수는 학생들에게 뭐라도 챙겨주려고 휴게실 벽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해수석도 갖고 있으면 좋으려나? 아직 쓰기 어려울 것 같은데... 아니다. 이한 학생이라면 금세 배워서 쓰겠죠?”

“예?”

“그거 말고는... 스크롤도 있긴 한데... 아니다. 이것도 이한 학생이라면 괜찮겠죠.”

“예??”

이한은 들어달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가르시아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달칵-

반대쪽에서 휴게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가르시아 교수는 재빨리 네 명의 학생을 끌어안더니 벽장에 처박고 문을 닫은 다음 마법을 시전해서 인기척을 지워버렸다.

이한은 초고속으로 벽장에 처박히는 와중에도 가르시아 교수의 마법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다...!’

지팡이 동작 한 번으로 어질러진 주변을 정리하고 각종 기운들을 가리는 차폐막을 벽장 위에 치다니.

“큰... 큰일난 거 아니에요??”

시아나 사제는 겁에 질려서 속삭였다. 이한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안 잡혔으니까 괜찮은 편이지.”

“......”

친구들이 경악해서 이한의 뒤통수를 쳐다보았지만, 이한은 벽장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신경이 쏠려 알아차리지 못했다.

가르시아 교수. 고생이 많소.

“제 기쁨이죠.”

그러니까 사악한 새끼들의 부탁은 그만 들어주라니까.

“......”

가르시아 교수는 해골 교장이 다른 교수들 욕을 하는 게 신경이 쓰여 벽장을 힐끗거렸다.

원래 맨날 심심하면 다른 교수들 욕하는 게 해골 교장의 취미였지만, 아무래도 학생들 앞에서 하기에는 좀 부끄러운 소리였던 것이다.

“교장 선생님. 그래도 교수님들도 나쁜 뜻은 없었...”

아니. 비블레는 사악하오. 그냥 사악한 새끼라니까. 아무리 선해하려고 해도 사악해.

“......”

뭐지?

해골 교장은 찻잎이 든 양철 캔이 텅 빈 걸 보고 의아해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커피가루도 텅 비어 있었다.

‘가르시아 교수가 스트레스가 많나보군.’

해골 교장은 짠한 눈빛으로 가르시아 교수를 쳐다보았다.

버두스 교수는 찻잎을 세 번 우려먹어도 아까웠지만 가르시아 교수라면 양동이에 찻잎을 들이부어서 마셔도 괜찮았다.

올망졸망하던 학생 시절 모습이 어제 일 같은데, 이제는 어엿한 교수가 되어서 다른 교수들에게 고통 받고 있다니...

잠깐. 가르시아 교수. 혹시 시약 상자 못 봤소? 작은 솥 조각이 새겨진 청동 상자인데.

“못 봤는데요? 그게 뭔가요?”

이번 정령 홍수 때 쓰려고 준비한 건데... 제기랄. 알았다.

해골 교장은 알았다는 듯이 뼈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가르시아 교수는 긴장했다.

이한도 긴장했다.

비블레! 이 개자식이 진짜! 다른 사람 물건 손대지 말라니까!

“...아,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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