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31화 (431/687)

431화

가르시아 교수는 일말의 양심으로 버두스 교수를 옹호하려고 했지만, 해골 교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놈이 아니면 누가 했겠소? 학생들이 들어와서 가져가기라도 했겠소? 범인은 비블레가 분명하오. 내 두개골에 맹세코 이 잡놈을 반드시 징벌방에 처넣고 말겠다!

“......”

그럼 이만! 적당히 고생하시오. 가르시아 교수. 학생 때처럼 몸 생각 안 하지 말고.

해골 교장이 밖으로 쉭 날아가자 가르시아 교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등줄기에 진땀이 흥건히 흐를 정도로 긴장했던 것이다.

“빨리 나와요. 다들. 왜 그러게 교수 휴게실에 들어와서!”

가르시아 교수는 벽장에 박힌 학생들을 한 명씩 끄집어냈다.

티질링 사제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저희 때문에 버두스 교수님이 곤욕을 겪게 되면...”

그러자 이한이 대신 대답해줬다.

“괜찮아. 버두스 교수님은 이해해주실 거야.”

“...??”

교수님한테 물었는데 이한이 대신 대답해주자 티질링 사제는 살짝 당황했다.

으응?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티질링 사제.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 민망하지만, 나는 버두스 교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 중 하나지. 교수님이 무슨 생각을 하실지는 쉽게 알 수 있다고. 버두스 교수님은 이해해주실 거야.”

“...그... 그런...?”

티질링 사제가 뭔가 이해가 가지 않아 머뭇거리자 가르시아 교수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이한 학생 말이 맞아요. 교수님은 이해해주실 겁니다.”

사실 버두스 교수가 이해해줄지 안 해줄지는 가르시아 교수도 몰랐지만, 지금은 그런 걸로 떠들 때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학생들을 휴게실에서 보내야 했다.

“빨리 다들 내려가요. 그리고 다시는 교수 휴게실로 오지 말고!”

“안 들켜도 말입니까?”

“...이한 학생은 나중에 나랑 따로 이야기 좀 하죠. 아참.”

가르시아 교수는 잊을 뻔했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아까 챙겼던 아이템들도 갖고 돌아가요. 기껏 챙겼는데.”

방수 마법이 걸린 천부터 시작해서 해수석, 스크롤들을 한아름 쌓아서 건네주자 이한은 당황했다.

“그런데 교수님, 아까 들어보니 이건 제가 쓸 수 있는 것들이 아닌...”

“배워서 써요. 언제는 처음부터 알았다고 그래요.”

“교수님 혹시 제가 휴게실 들어와서 화나셨습니까?”

*         *         *

간신히 탑으로 돌아온 학생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니기소르 사제와 시아나 사제는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빠르게 속삭였다.

“정말 훌륭했소!”

“내일도 가나요?!”

“...아, 아니. 내일은 공부해야 하는데.”

“그럼 내일 모레는요??”

“내일 모레는 일할 게 있는데.”

시아나 사제의 얼굴이 실망감으로 물들었다.

이한은 괜히 미안해져서 말했다.

“밤산책의 길잡이가 필요하다면 다른 친구들도 있어. 소개시켜줄게.”

“그런...! 그런 방법도 있었네요.”

시아나 사제는 생각치도 못했다는 듯이 턱을 흔들었다.

확실히 이한하고만 같이 나가란 법은 없었다.

“탑의 다른 사제분들한테도 권해야겠네요.”

“같이 가면 나쁘지 않겠지.”

사제들은 또 데스 나이트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는 만큼 여럿이 나가서 나쁠 것 없었다.

대화를 듣고 있던 티질링 사제가 조심스럽게 이한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왜 그래? 아하.”

이한은 알겠다는 듯이 티질링 사제를 바라보았다.

“같이 가고 싶은데 쑥스러운 거군.”

“...아니요.”

티질링 사제는 정말 보기 드물게 평정심을 잃을 뻔했다.

“그거 말고, 상자 말입니다...”

“아. 그거.”

이한은 짐더미에서 작은 청동 상자를 꺼냈다.

작은 솥 조각이 새겨진, 해골 교장이 찾고 있던 시약 상자였다.

“이 상자 때문에 계속 고민했었습니다.”

티질링 사제는 한숨을 살며시 내쉬며 말했다.

이한은 알겠다는 듯이 티질링 사제를 다시 바라보았다.

“나도 이 상자를 어떻게 써야 홍수 때 이득을 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그게 아니라 교장 선생님한테 돌려드...”

“문제는 이걸 어떻게 쓰느냐인데.”

이한은 깊은 고민에 잠겼다.

해골 교장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이 시약 상자는 홍수 때 학생들을 더 괴롭힐 수 있는 물건이 틀림없었다.

홍수의 수량을 늘리거나 방향을 조절하거나...

“혹은 물에 탈 독일지도.”

“...아니, 그건 진짜 아닙니다.”

티질링 사제는 무심코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물에 탈 독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쯤 되면 교장 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미친 마법사라고 봐야 했다.

“그런가? 나름 가능성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한은 아쉬워하며 청동 시약 상자의 뚜껑을 잡았다.

나름 할 수 있는 만큼 검사도 해봤으니 직접 열어서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달칵!

다행히 상자를 열었다고 해골 교장이 걸어놓은 저주가 이한을 습격하진 않았다.

상자 안에 든 건 평범한 시약들이었다.

“시약... 이군.”

“시약을 보관하는 상자니 말입니다.”

“못 보던 재료긴 하군. 시아나 사제?”

다른 사제들하고 내일 밤산책 나갈 계획을 짜고 있던 시아나 사제는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왜요? 저 지금 계획 짜야 해서 조금 나중에 물어보시면...”

“혹시 이 재료가 뭔지 알까 싶어서. 연금술에 뛰어난 시아나 사제라면 알 것 같았는데. 바쁘다면 어쩔 수 없...”

시아나 사제는 깃펜과 종이를 던지고 달려왔다.

그리고는 시약 상자 안을 보고 놀라워했다.

“이건 탄주어(呑舟魚) 뿔이에요!”

“!”

탄주어.

‘배를 삼킨다’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고래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바다 몬스터였다.

물론 고래와 비슷한 크기만 가지고 있다면 굳이 저런 이름이 붙지도 않았다.

탄주어는 바다의 풍랑을 멋대로 조종하고 파도와 구름 사이를 뚫고 오가는, 능력만 놓고 보면 악마나 정령 같은 타 차원의 핏줄이 짙게 섞인 몬스터였다.

그리고 탄주어의 뿔은...

“책에서만 봤지 실제로는 처음 봐요. 정말 귀한 건데...”

“뭐? 얼마나 비싸지?”

이한의 질문을 농담이라고 생각한 시아나 사제는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탄주어의 힘이 여기에 오롯이 담겨 있거든요. 이 뿔만 있으면 탄주어를 소환할 수 있을 정도로요. 비록 영체 형태긴 하지만...”

생전처럼 뼈와 살로 된 몸은 아니더라도 탄주어 정도의 몬스터라면 막강한 권능을 부릴 수 있었다.

이한은 해골 교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나머지 재료들도 소환을 보조하는 재료들이군. 탄주어를 소환해서...”

시아나 사제와 티질링 사제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교장 선생님 성격상 비바람을 조종하며 학생들을 괴롭힐 게 뻔했다.

“...학생들이 있는 탑을 공격하려고 하셨겠지.”

“???”

“...어? 그렇게까지요?”

“가능성 있지 않나?”

이한은 상자를 닫으며 말했다.

사제들은 너무 선량해서 해골 교장의 악의를 과소평가했지만 이한은 그러지 않았다.

폭우가 쏟아지면 시야도 좁아지기 마련.

해골 교장이 보낸 데스 나이트들이 탄주어를 타고 탑을 덮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맞소. 상자가 우리 손에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오.”

“아. 그것도 중요한 거고... 내가 말하려던 건 다른 탑에 홍수 대비하라고 연락 돌린 다음에 이 천 팔 준비 하자는 거였는데.”

“......”

“......”

“같이 하면 되겠지? 참. 시아나 사제. 탄주어 소환에 대해 조금 더 물어봐도 되나?”

“소환 자체는 어렵지 않아요. 여기 재료도 다 모아놨고, 과정만 정확히 따라하면 될 걸요?”

“아니 얼마나 비싼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고맙군.”

하긴 생각해보니 파는 건 꽤 어려울 것 같았다.

외부에 가지고 나가서 판다고 해도 과연 해골 교장 앞에서도 비밀을 지켜줄까?

“아. 워다나즈 님.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어요.”

“뭐지?”

“마력이 꽤 많이 들어갈 텐데 그건 괜찮죠?”

“......”

이한은 친구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본인을 걸어 다니는 마력통으로 생각하자 살짝 슬퍼졌다.

*         *         *

<기초 마법 인성 교육 심화> 강의를 진행하기 위해 들어온 해골 교장은 학생들이 수군거리자 해골에 주름을 잡았다.

-그러니까 정말 홍수가 온다고.

-이 날씨에? 홍수가 올 날씨는 아닌데.

-하지만 워다나즈 놈이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진 않았잖아.

-그럼 어떡해?

-일단 뗏목부터 만들자고. 나무 더 구할 수 있겠어?

-검은 거북이 탑 놈들이 자꾸 비싸게 부르고 있어. 저장해놓은 고기들을 좀 내놔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비열한 놈들! 친구의 불행을 틈타서 이득을 취하려고 하다니!

홍수가 터진다는 가짜 소문에 휘둘리다니. 너희들이 그러고도 에인로가드 학생이냐?

“!”

“!!!”

1학년 학생들은 해골 교장의 일갈에 눈을 크게 부릅떴다.

그리고 다시 속삭였다.

“진짜 홍수가 오나보다!”

“미치겠네...! 솔직히 안 올 줄 알았는데!”

......

해골 교장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속으로 혀를 찼다.

다른 학년과 달리,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네 개 탑 전체에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좋으니 싫으니 해도 결국 소년의 말을 무시할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해골 교장과 이렇게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버두스 제자 아니랄까봐 아주 하는 짓이 얄밉군.’

해골 교장은 매우 무례하고 모욕적인 생각을 하며 둥둥 날아갔다.

마음대로 해라. 고생해봤자 너희들만 손해지.

“야. 진짜 홍수다.”

“이건 내 가문을 걸고도 내기할 수 있겠는데.”

닥쳐라.

눈치 없는 학생들에게 침묵 마법이 걸렸다.

해골 교장은 학생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저번에 어디까지 했었지? ‘나는 외부에서 온 손님을 습격해서 주머니를 털지 않겠습니다’는 다 했나?

“예! 교장 선생님!”

‘정말 어쩔 수 없이 손님을 습격해서 주머니를 털었다면, 들키지 않게 잘 위장하겠습니다’도 했나?

“예! 교장 선생님!”

그랬나? 진도 빨리도 나갔군. 그럼 오늘은 교보재를 갖고 와야겠다.

딱 소리와 함께 데스 나이트들이 서둘러 복도를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학생들은 급격히 긴장했다.

몇몇 학생들은 길다란 탁자 아래 몸을 숨기고, 몇몇 학생들은 이한 옆으로 모여들었다.

“워, 워다나즈. 어떤 몬스터가 오지? 어떤 몬스터가 오냐고?”

“조용히 해라. 정신 사납게.”

문이 열리고 데스 나이트들이 들어왔다.

그러나 학생들이 걱정한 것처럼 몬스터들의 습격이 일어나진 않았다.

데스 나이트들 사이에 있는 건 평범한 마법사였다.

“???”

“무슨...”

시작해라.

마법사는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후배 여러분. 여러분들도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

이한은 그 호칭에 경악했다.

놀랍게도 상대는 에인로가드 졸업생이었다!

‘아니 뭔...!?’

자기보다 선배인 사람을 거의 처음 보는 학생들은 매우 신기해하며 마법사를 쳐다보았다.

“나는 제국 최고의 마법학교인 에인로가드에서 배우고 있어. 그러니까 내가 제국에서 최고야. 나는 뭘 해도 돼. 마을의 가축들을 훔쳐서 변환 마법 실험에 써도 되고, 도시 길드의 재산을 빌려다가 연금술에 써도 돼.”

“......”

1학년들은 모두 정색했다.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생각은 아주 커다란 착각입니다. 후배 여러분. 그런 착각을 하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사악한 범죄의 늪에 빠져들고, 제국 현상금이 걸리게 되지요.”

그러게 왜 남의 재산을 멋대로 가져가서 실험에 꼬라박았나?

“교장 선생님, 제발... 후배들 앞이잖아요...”

잡힌 놈이 체면은 무슨. 알겠다. 더 말 안 하마.

해골 교장은 툴툴댔지만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눈앞의 선배 마법사가 ‘나는 왜 에인로가드의 영광스러운 기회를 잊어버리고 범죄에 빠져들었는가’를 떠드는 동안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선배라면 혹시 학교에 남겨놓고 졸업하신 게 있지 않을까?’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