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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33화 (433/687)

433화

“홍수를 준비하기 위해 다들 서로 돕고 있군요.”

“??”

옆에서 듣고 있던 이한은 귀를 의심했다.

“어... 검은 거북이 탑 놈들은... 가격을... 아니다.”

이한은 ‘쟤네는 홍수 온다니까 가격 올린 나쁜 놈이고 나는 가격 안 올린 착한 놈이야’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이게 무슨 해골 교장 앞에서 밀고하는 것도 아니고 추잡하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그래. 다들 서로 열심히 돕고 있군.”

“아니 뭔 소리에요 사제님!”

“검은 거북이 탑 놈들이 우리 등골을 빼먹고 있다니까요!”

흰 호랑이 탑 친구들이 물을 탈탈 털어내며 항의했지만 이한은 못 들은 척 무시했다.

“너희 준비는 잘 하고 있냐?”

“당연하지. 우리가 누군데?”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질문에 이한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분노해서 외쳤다.

“야, 이 자식아. 왜 머뭇거리는데!”

“미안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순간 생각이 안 나서.”

“기사! 기사잖아! 이게 뭐가 어렵다고!”

온갖 어려운 문제는 기가 막히게 대답하면서 제일 쉬운 질문에는 대답 못한 워다나즈의 모습에 어린 기사들은 분노했다.

기사 출신인 만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이런 일에 어느 정도 대응 가능한 능력이 있었다.

밖에 쌓아 놓은 짐들을 위로 올리고, 탑 주변에 배수로를 파고, 물이 넘칠 때를 대비해서 뗏목과 노를 준비하고...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도 당연히 이런 대비에 능숙했고 불사조 탑 사제들도 신전에서 자란 만큼 능력이 부족하진 않았다.

문제는 푸른 용의 탑이었다.

‘괜찮을지 모르겠군.’

이한이 나름 지시를 내리고 오긴 했지만 과연 제대로 하고 있을지 걱정이었다.

대충 장사를 마친 이한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마침 잘 됐다. 나하고 같이 좀 가자.”

“어? 뭐 사냥하러 가게?”

“아니. 푸른 용의 탑 기숙사 가서 작업 좀 하려고.”

“......”

“...그걸 우리가 왜 하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머리에 화살을 맞지 않는 한 푸른 용의 탑 놈들을 도와줄 일은 없었다.

뭐가 예쁘다고...

“비싼 마법 아이템을 원가에 사갔으니까. 지금부터 팔지 말까?”

“아니 뭐 이런...!”

짧지만 강력한 협박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부들부들 떨었다.

그 중 한 명은 그러는 와중에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이게 워다나즈 놈이 말했던 독점의 힘이구나!’

저번에 ‘시장에서 필수품을 독점하면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라고 이야기하길래 ‘뭔 소리야? 흑마법 주문인가?’하고 넘겼는데, 직접 체험하니 바로 이해가 됐다.

“도와주면 되잖나. 도와주면...”

“워다나즈.”

“?”

“최소한 푸른 용의 탑 놈들한텐 우리가 기사로서 명예롭게 도와주러 왔다고 말해다오.”

“...그, 그래. 알겠다.”

*         *         *

가이난도는 황녀 아덴아르트가 정령을 부려서 깊숙이 배수로를 파는 걸 보고 하품을 했다.

‘뭘 저렇게 열심히...’

“가이난도. 그만 놀고 빨리 삽 움직여.”

“마, 마력 회복 중이야.”

“마력 다 떨어졌어도 몸은 움직일 수 있잖아.”

가이난도는 친구들의 구박에 투덜거리며 삽을 잡았다.

이한은 없지만 이한에게 못된 것만 배운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가이난도. 잘 생각해봐.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 몰라?”

아산이 가이난도의 의욕을 북돋아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는 거야.”

“그냥 개미를 설득해서 같이 살면 안 되나...”

“너 같으면 받아주겠냐?”

“하인 노릇하겠다고 납죽 엎드리면 받아주지 않을까...”

“......”

아산은 묘한 논리에 설득될 뻔했다.

하긴 아산도 가이난도가 납죽 엎드려서 하인 노릇하겠다고 하면 두고두고 괴롭히게 받아줄 것 같긴 했다.

적도 하찮아서 항복을 받아주게 만드는 능력!

‘이것도 능력인가?’

아산은 아덴아르트를 보았다.

황족으로서 타고난 위엄을 보여주고 있듯이 가이난도도 타고난 하찮음이...

‘...그런데 하찮아 보이는 능력이 의미가 있나? 어디에 쓰지?’

“뭐야. 무슨 생각을 하길래?”

“네가 황족으로서 타고난 능력.”

“!”

가이난도의 얼굴이 환해졌다.

“뭔데? 뭔데??”

“어? 어.”

아산은 보기 드물게 당황했다.

“그게... 어...”

“다른 친구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능력이겠지. 그렇지?”

“워다나즈!!”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아산은 반색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런 능력이 있었나?’

“다들 준비 잘 하고 있...”

이한은 탑 주변을 둘러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에 친구들은 죄라도 지은 것처럼 시선을 피했다.

배수로는 들쭉날쭉하고 미리 만들어 놓은 뗏목은 2/3가 균형이 안 맞고 위로 옮길 물자들은 그대로 남아 있고...

아무래도 경험이 없다보니 시행착오가 많고 작업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다들 주눅 든 와중에도 황녀는 혼자 꼿꼿하게 자세를 유지했다. 작업에 나름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다른 친구들이 한 것과 비교해 봐도 황녀가 맡은 쪽이 압도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바로 작업 들어가야겠군.”

“?!?!?”

그러나 이한은 황녀가 맡은 쪽까지 확인하진 않고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황녀는 커다란 충격을 받은 눈동자로 이한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뒤에 있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의아하다는 듯이 소곤거렸다.

“저 황녀님은 왜 저렇게 노려보는 거지?”

“뻔하지. 워다나즈 놈을 견제하는 걸 거야. 네가 황녀님 입장이라고 생각해봐.”

“아. 하긴. 하나의 탑에 두 개의 태양은 있기 힘든 법이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지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젤의 권위에 도전했던 친구들이 얼마나 가차 없이 짓밟혔던가.

황족인 이상 권력에 더욱 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워다나즈가 탑에 있을 때야 워낙 놈이 압도적이라 기회만 엿보고 있었겠지만, 탑에서 사라진 지금은 이야기가 다를 터.

분명 탑의 권력을 다시 자기 손으로 찾아오려고 하리라.

그런 상황에서 워다나즈가 이렇게 돌아오면 곱게 보이지 않는 건 당연했다.

“후후. 이거 재밌겠는걸. 푸른 용의 탑 놈들도 자기들끼리 싸운다면... 게다가 워다나즈 녀석, 완전히 방심하고 있는 것 같아.”

“워다나즈 놈한테는 말해주지 말자. 큭큭.”

원래 얄미운 놈들끼리 싸우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드물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음흉한 눈빛으로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냐? 너희들. 왜 그렇게 수상한 눈빛을 하고 있지?”

“아... 아닌데?”

“우, 우리한테 왜 그러는 거냐, 도와주러 온 우리한테?”

“흠. 이상한데... 알겠다. 참. 여기 흰 호랑이 탑 친구들이 도와주러 왔다.”

이한의 말에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뭐? 왜?”

“속임수 아니야?”

“어허. 조용히. 기사로서 같은 친구들을 도와주러 온 거야.”

이한의 설명에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더 깜짝 놀랐다.

“워다나즈! 무조건 속임수...!”

“조용히 해.”

이한은 무력으로 친구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고 작업을 시작했다.

*         *         *

지젤은 앙라고와 바트렉을 데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셋은 매우 지친 얼굴이었다.

장클린 가문의 장클리프가 옆에서 미친듯이 떠들어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젊은 기사들... 아. 맞습니다. 말하다보니 놓친 게 있는데 다시...”

‘귀에서 피가 흐르는 기분이다.’

말 많은 건 딱 질색인 지젤에게 너도밤나무 기사단의 부단장은 현세에 강림한 악마 그 자체였다.

칭호는 아마 다변공이나 수다공 정도 되리라.

파파파파파파팍!

눈앞에서 미친듯이 흙이 솟구치고 길이 만들어지는 모습에 장클리프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셋은 장클리프가 조용해지자 방금까지 나갔던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끝났... 잠깐. 너희들 거기서 뭐하냐??”

셋은 친구들이 푸른 용의 탑 공사를 돕고 있는 모습에 놀라서 물었다.

대체 왜?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매우 당혹스러워하다가 뒤늦게 대답했다.

“...명, 명예 때문에?”

“훌... 훌륭합니다!!”

장클리프는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감동해서 외쳤다.

“실은 에인로가드의 학생들이 제국 전역에서 온 만큼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여기 기사들은 다르다니! 정말 감동했습니다!”

“...그, 그렇죠.”

“저희가 좀 그렇습니다.”

삽 들고 있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얼떨결에 인정했다.

옆에서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뭔 소리야’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우리가 언제 친했...”

“야. 체면 좀 세워줘라.”

“도와줬잖아! 체면 좀 세워줘!”

“......”

그러는 사이 지젤은 인상을 찡그리며 시선을 돌렸다.

친구들이 대체 왜 이러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미 장클리프 때문에 올라온 두통이 더 심해질 테니까.

“워다나즈. 슬슬 가자.”

“뭐? 어딜?”

“...무슨 시치미를 떼는 거야 이 새...”

지젤은 욕을 내뱉으려다가 보는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닫고 품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모임. 기억하고 있겠지. 다 같이 참석하기로 했었잖아?”

“벌써 출발한다고? 내일 금요일 강의는?”

“말씀드려서 다음에 들어야지. 어차피 금요일은 강의가 한두개밖에 없을 텐데.”

“아닌데.”

“......”

이한의 말에 지젤은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보니 워다나즈 놈은 달랐던 것이다.

“어쨌든 이해했다. 하긴 가는 시간도 있을 테니 지금 출발하긴 해야겠군. 교수님들께는 다른 친구들한테 부탁하면 될 거고.”

“그래. 빨리 준비해.”

“잠깐. 모라디.”

“...뭐. 또.”

지젤은 이한이 부르자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곧 홍수가 올 텐데 내가 나가도 되나?”

“어쩌겠어. 운명이지.”

그러자 갑자기 격렬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저런 사악한 흰 호랑이 탑 자식이!”

“자긴 밖에 나간다고!”

“모라디! 아무리 나가도 그렇지 워다나즈는 우리도 필요하다고! 저 자식이 없으면 일손이 얼마나 부족한데!”

흰 호랑이 탑 학생들까지 반응하자 지젤은 어이가 없었다.

이 미친 새끼들이...

“알아서 대비해. 머저리들아! 그것까지 떠먹여줘야 하나! 워다나즈가 너희 보모야?”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지젤의 말에 이한은 상처받았다.

“보모라니 말이 너무 심...”

어라?

보모 맞나?

이한은 자신이 했던 일들을 되새겨보고 살짝 충격을 받았다.

“워다나즈! 모라디 같은 사악한 녀석한테 속지 마! 우리의 우정은 그런 게 아니야!”

“맞아. 워다나즈! 넌 보모 같은 게 아니라니까! 어느 보모가 그렇게 두들겨 패냐!”

“...그, 그렇군.”

이한은 일단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바로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들 정도면 알아서 잘 하겠지!

*         *         *

“말이 참 신기합니다.”

“...그, 그렇죠?”

폰리그가 항의하듯이 히힝거리자 이한은 조용하라는 뜻으로 재빨리 갈기를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기사들 앞에서 ‘저는 그리폰을 말로 변신시켜서 타고 다닙니다’라고 말하는 건 좋은 행동이 아닌 것 같았다.

장클리프는 자기 뒤를 따라오는 젊은, 아니 아직은 어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는 기사들을 보며 기쁨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제국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들과 이렇게 같이 움직이게 되다니.

그것만으로도 영광이고 기쁨이었다.

“이렇게 제국의 인재들과 같이 밤길을 지나게 되니...”

‘세상에.’

‘신이시여.’

‘귀에 넣을 걸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런데 여러분. 에인로가드에서 학업은 잘 수행하고 계십니까?”

“......”

“......”

이한과 지젤은 비교적 떳떳했지만 다른 둘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장클리프는 알겠다는 듯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이해합니다. 기사 출신인데 숫자와 글자는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대신 여러분들은 승마나 검술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으니, 전혀 위축될 필요 없습니다.”

“......”

이번에는 지젤까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이야기 나온 모든 강의에서 다른 탑 학생에게 수석 자리를 뺏기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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