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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41화 (441/687)

441화

저런 정신 나간 놈 같으니!

‘상당히 칭찬하시는군.’

데스 나이트는 속으로 생각했다.

해골 교장이 저렇게 말하는 건 꽤 드문 칭찬이었다.

학교를 추잡하게도 다니는구나!

‘저런 극찬까지?’

확실히 저런 칭찬을 받을 만하긴 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에인로가드의 장서들을 보관해둔 도서관일 테니까.

십 년 전 홍수 때도 몇몇 영리한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곤 했었다.

...물론 아예 저기서 살겠다고 짐을 싸갖고 오는 놈들은 없었지만...

*         *         *

이한은 미리 만들어 놓았던 뗏목과 나룻배들을 총동원해서 네 개 탑 학생들을 옮겼다.

그 모습은 마치 새로운 섬을 찾아 이주하는 선단(船團) 같았다.

“워다나즈. 네 판단력을 존중하긴 하지만...”

살코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원래 이한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 걸걸한 성격의 살코였지만, 오늘은 이야기가 달랐다.

-물! 물 차오른다!!

-퍼냈으니까 안심해라!

-배에 구멍이...!

-막았으니까 안심해라!

-파도에 배가 뒤집혔어!!

-얼음 배 지금 띄운다! 바로 갈아타!

폭풍을 뚫고 나면 선원들은 선장을 존중하게 되기 마련.

이번 일의 은혜는 살코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에서 머무는 게 정말 좋은 생각인가?”

“최선의 선택은 아니더라도 일단 최악만 피해보자고.”

사실 이한도 초조했다.

물에 가장 안전한 곳으로 도서관을 선택한 건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도서관도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주기적으로 안의 지형이 바뀌는 만큼, 재수가 없으면...

‘살았다!’

이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의자와 소파, 탁자들이 가득한 안락한 휴게실과 그 뒤로 쭉 이어진 통로.

저번처럼 바로 황야로 끌려가진 않는 모양이었다.

“비가 멈췄어!”

“워다나즈! 살았다고! 살았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은 학생들은 감격에 젖은 표정으로 바닥에 입을 맞추고 불을 피웠다. 가이난도는 서가에 꽂힌 책을 뽑아서 장작으로 쓰려다가 책에게 공격받고 비명을 질렀다.

“이럴 때가 아니지.”

“맞는 말이다. 습기 하나 없이 마른 곳이긴 하지만 그냥 바닥에서 잘 수는 없는 법. 숙소를 만들어야...”

“아니. 살코. 그것도 급하긴 한데 더 급한 게 있다.”

이한은 네 개 탑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불 피우고 뭐라도 끓이려던 학생들이 투덜거리며 달려왔다.

“탁자나 책상, 서가... 서가는 조심해라. 책 보호 마법이 걸려 있을 테니까. 하여간 주변에 쓸만한 거 다 쓸어갖고 와서 바리케이드부터 친다. 요새를 만들어놔야 해.”

“......”

“...어, 왜?”

상황 파악이 덜 된 친구 한 명이 당황해하며 물었다.

“멍청아. 교장 선생님이 습격할지도 모르잖아.”

“맞아. 휴게실은 입구가 정해져있지만 여기는 탁 트여서 방어하기 힘든 곳이지.”

“아하. 그래서...”

이한은 어이없다는 듯이 친구들의 말을 끊었다.

“아니. 교장 선생님 때문이 아니라 도서관에 원래 몬스터들 많았잖나.”

“아...”

“어, 잠깐만. 워다나즈. 그 때는 우리가 황야랑 깊은 구역을 돌아다녀서 그런 거 아니었어? 여긴 휴게실 구역이니까 괜찮지 않나?”

이한과 요네르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휴게실 구역도 가끔 몬스터 나온다.”

“저번에 공부하는데 공격하더라구.”

“......”

“자. 다들 지쳤겠지만 이거까지만 작업하자. 안 그러면 밤에 계속 일어나야 할지도 모르니까.”

“워다나즈. 내가 보기엔 바깥쪽에 깊게 참호도 파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검은 거북이 탑 친구들하고 같이 작업해도 되겠나?”

살코의 말에 이한은 흔쾌히 수락했다.

졸지에 일이 늘어난 검은 거북이 탑 친구들은 살코를 째려보았다. 매우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너희만으로는 힘들 것 같은데. 흰 호랑이 탑도 좀 도와달라고 해야겠군.”

졸지에 일이 늘어난 흰 호랑이 탑 친구들은 이한을 째려보았다. 물론 흔한 일이라 이한은 신경 쓰지 않았다.

황녀는 추종자들 사이에 앉아 있다가 바로 일어섰다.

이번에야말로 뭔가 보여줄 생각이었다.

“아참. 난 잠시 밖에 좀 다녀올게. 갖고 올 게 있어서.”

“조심해서 다녀와.”

“혼자 가도 돼? 같이 가줄까?”

“가이난도. 제발 개소리 하지 말고 남아있어라. 워다나즈 더 힘들게 하지 말고.”

“...도, 도와주겠다고 말한 게 그렇게 잘못한 일이냐???”

한 시간 후.

이한은 커다란 알을 소중하게 갖고 돌아왔다.

작업하던 친구들은 그 알을 보고 의아해했다.

“무슨 알이야?”

“바실리스크 알.”

친구들은 이한의 농담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 농담을 잘 하지 않던 친구가 농담하는 것만큼 웃긴 것도 없었다.

“다시 작업하자.”

“바실리스크 알이라니... 푸하핫!”

“......”

요네르는 뭐라고 말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친구들이 진실을 알아서 좋을 게 없어보였다.

덜덜덜-

바실리스크 알은 부들부들 떨며 이한에게 달라붙었다. 작업을 해야 하는 이한은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일해야 하는데...”

덜덜덜덜덜!

“알겠어. 알겠어.”

이한은 알을 달래주며 단단히 천으로 싸서 등에 업었다.

오두막 주변에 그렇게 물난리가 났던 만큼 겁을 먹는 것도 이해가 갔다.

“워다나즈! 우리 쪽! 우리 쪽이 급해!”

“이 자식들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땅 파는 건 너희들이 조금만 더 부지런하게 하면 되는 일이잖아! 워다나즈! 여기 바리케이드 쌓는 걸 먼저 해야 해! 이게 더 급한 일이지!”

“다 틀렸다! 워다나즈. 너도 네 재능을 잘 알고 있을 거다. 내 가문이 요리사 가문인 건 알고 있겠지? 넌 식사 준비를 도와줘야 해!”

“......”

발걸음 하나 내딛기도 전에 친구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끌고 가려고 하자 이한은 할 말을 잃었다.

뒤에 업혀 있던 바실리스크 알이 어이없다는 듯이 달그락댔다.

뭐 저런 놈들이 있냐는 기색이었다.

*         *         *

저녁.

이주를 끝낸 친구들은 도서관 입구 휴게실 구역에 나름 단단한 요새를 구축했다.

물론 서재들은 싹 사라졌지만 그 대신 단단한 바리케이드와 참호가 생겨서 학생들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여기 받아라.”

“흥. 나쁘지 않군.”

“먹기나 해. 이 자식아.”

서로 만나면 헐뜯던 다른 탑 학생들도 오늘만큼은 다투지 않고 나름 서로를 배려했다.

압도적인 위기 앞에서는 사이 안 좋고 으르렁거리던 이들도 뭉치기 마련.

밖을 뒤덮은 대홍수가 1학년 학생들에게 서로 뭉쳐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온 것이다.

이한은 빵 조각으로 나무그릇 바닥에 남은 토마토 수프를 한 번 슥 닦아먹고(눈이 마주친 살코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줬다) 주변을 확인했다.

‘급하게 온 것치고 나쁘지 않군.’

주말을 그냥 날려버렸지만 그래도 이렇게 수습한 게 어디냐 싶었다.

물에 휩쓸려간 식량들은 밖에서 갖고 온 걸로 대충 대체가 될 것 같았고...

‘중요한 시약이나 책들은 개인실에 다 나눠서 담아놨고, 지금 읽어야 하는 책들은 도서관에 갖고 왔으니 괜찮겠지.’

이한은 다시 한 번 꾸러미를 풀고 공부에 필요한 책들을 확인했다.

옆에서 마법사 카드 확인하고 있던 가이난도는 이한을 질색하듯이 쳐다보았다.

화르륵-

“붉은 머리칼의 검사는 소리를 질렀다네, 해골 교장, 네 최후가 찾아왔노라! 여기 너를 쓰러뜨릴 검이 있도다! 학생들의 눈물로 담금질하고 깃펜으로 벼려낸...”

다른 학생들도 곳곳에서 모닥불을 펴고 담요 위에 느슨하게 드러누워 개사한 노래를 부르거나(원래는 악룡을 쓰러뜨린 검사의 노래였다)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밖에 나갔을 때 반마법주의자들이 습격했는데 워다나즈 놈이 그 우두머리를 잡았다고??”

“믿기 힘들겠지만 진짜라니까?”

“내가 뭐라고 그랬냐? 워다나즈 놈은 워다나즈 가문의 사악한 비전 마법을 입학 전부터 전부 익힌 놈이라...”

“너 자꾸 확인도 안 된 소문 퍼뜨릴래? 그거 워다나즈 놈한테 물었다가 내가 얼마나 맞았는지 알기나 하냐?”

“하! 언젠가 내가 맞았다는 걸 알게 될 걸?”

평온한 분위기를 즐기던 이한은 이상하게 뭔가 찜찜했다.

“내가 잊은 게 있나?”

“탄주어(呑舟魚) 뿔? 홍수 시작하면 써보기로 했잖아.”

“그건 내일 날 밝는 대로 준비해서 써볼 생각이었어.”

“그럼 잊은 거 없는 것 같은데?”

요네르의 말에도 이한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요네르. 다음 주 중간고사 아닌가?”

“...아!”

*         *         *

새로운 주의 아침.

학생들은 어두운 얼굴로 도서관 입구로 걸어갔다.

어느 누구도 ‘이렇게 홍수가 치는데 시험 한 주 미루지 않나?’같은 착각을 하진 않았다.

그건 갓 입학한 아마추어나 할 생각이었다.

“기초 제국 문학 심화 강의 들으러 가는 놈들은 이쪽으로!”

“야! 저 자식 어제 배 뒤집은 놈이잖아! 저 놈을 뭘 믿고 키잡이를 시켜!”

“월요일 기하학 심화 강의 듣는 친구들! 이쪽으로 와! 잠깐. 다들 어디갔어?!”

“난 수요일 강의 들을게. 워다나즈랑 같이 움직이는 게 안전할 것 같아!”

도서관 앞은 임시 선착장이 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각자 들으러 가야 하는 강의에 맞춰 배를 나눠 탔다. 그 중 못 미더운 키잡이가 있는 배는 탑승을 거부하는 현상도 일어났다.

“이한. 뭐해?”

“소환 준비.”

“어떤 거?”

“탄주어.”

“그게 뭔데?”

“가이난도. 지금 좀 바쁘니까 잠시 좀 저기 가있어라.”

“!!!”

가이난도는 경악해서 푸른 용의 탑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쪼르르 일러바쳤다.

“저 사제들이...! 저 사제들이!!”

“뭔 소리야?”

평소에는 가이난도의 말을 무시하던 친구들이었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이한이 사제들과 같이 소환을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똑똑히 들어온 것이다.

“가이난도 말이 맞긴 해. 저건 우리도 도울 수 있는 일이잖아.”

“그렇지?! 날 밀어낸...”

“가이난도는 도움이 안 되더라도 우리는 도움이 되지.”

“맞아. 맞아.”

“......”

노려보는 가이난도는 무시하고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슬금슬금 다가갔다.

“워다나즈. 우리도 도와줄 수 있는데.”

“아니... 괜찮다.”

이한은 사양했다.

이 탄주어 소환 의식은 사제들과 이미 몇 번 예습했던 만큼 굳이 푸른 용의 탑 친구들 도움을 받아가면서 할 필요가 없었다.

“기, 기회를 줘! 증명할 기회를!”

“???”

이한은 친구들의 헛소리에 당황했다.

‘아침이 상했나?’

잘 먹고 왜 헛소리를?

“증명이고 뭐고 그냥 이건 정해진 대로 시약 준비하고 마력 넣으면 끝인데... 아. 잠깐. 시아나 사제 어디 갔지?”

“지금 시아나 사제님은 식수 준비하시느라...”

“맞아. 깜박했군. 한 명이 비는데. 황녀님.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이한은 황녀를 발견하고 불렀다.

연금술에도 조예가 있는 만큼 시아나 사제가 없어도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아덴아르트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쪼르르 달려왔다.

그리고는 다른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소환 인원 자리에 끼어버렸다.

“......”

“......”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은 배신감 가득한 시선으로 황녀를 쳐다보았다.

자기 혼자만...!

“배를 삼키는 자께 감히 청원컨대, 다음과 같은 제물들로 당신을 부르려고 합니다. 해영사(海影沙), 팔중수(八重水)...”

이한은 낭랑한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탄주어 소환 의식은 시약이 구하기 매우 힘들고 마력 소모가 심한 걸 빼면 방법 자체는 상당히 간단한 축에 속했다.

사제들이 정해진 대로 재료들을 마법진에 뿌렸다. 마력이 거세게 휘몰아치며 갑자기 주변 물의 유속이 빨라졌다.

“탄주어의 뿔, 팔십팔 년 된 침몰선의 용골조각...”

“온다!!!!”

학생들이 비명을 질렀다.

바다, 아니 학교에 차오른 물이 반으로 갈라지며 거대한 존재가 올라오고 있었다.

물이 꿀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고래 같은 존재가 입을 열었다.

말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철퍽이고 출렁거리는 기분이었다.

바다에... 다시... 불러내줘서... 고맙...

‘바다 아닌데.’

‘지적해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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