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5화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한 가이난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낚시도 된다고 하셨잖아?”
“...되겠냐?”
학생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런 날씨, 이런 상황에서 낚시로 필요한 수중생물을 데리고 올 수 있을 만큼 에인로가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멀쩡한 날씨였어도 수중생물들 대부분은 낚시로 건지기 힘들었다. 섣불리 찌를 던졌다가는 낚시꾼을 끌고 들어가는 게 몬스터였다.
“물고기 하나 낚으면...”
물고기는 이런... 날씨에 없지.
뒤에서 쉬고 있는 탄주어가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지간해서는 마법사들의 대화에 끼고 싶지 않아했지만, 가이난도의 말이 너무 황당했던 것이다.
“이 날씨에 물에 들어가라고? 정말?”
“내가 말했잖아. 교수들을 절대 믿지 말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 탄주어를 잡아왔다고 우기면 안 되나?”
탄주어는 방금 말을 꺼낸 학생한테 물을 찍 쏘아냈다.
풍덩!
물을 맞은 학생은 그대로 바다에 빠졌다. 학생들은 조용해졌다.
“후...”
“어쩌겠어. 준비하자.”
에인로가드에 오래 있으면 며칠 걸려서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단계를 차례대로 겪는 대신 30초 만에 빠르게 해치울 수 있었다.
순식간에 받아들인 학생들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물속으로 어떻게 들어갈지 생각에 잠겼다.
“수중 호흡하고... 또 뭐 필요하지?”
“시야 밝힐 만한 빛이 필요해. 방수는 무리더라도 얼어 죽지 않으려면 열 나는 게 필요할 것 같은데.”
“<잠열 부여> 마법을 익혀두길 잘했군.”
<잠열 부여> 마법을 성공적으로 익힌 학생들은 뿌듯해하며 지팡이를 들었다.
이한은 시무룩해졌다. 옆에서 듣고 있던 요네르가 급히 달래줬다.
“...이, 이한. 넌 다른 거 잘 하잖아.”
“비 오니까 좀 낫지 않을까?”
이한은 혹시 몰라서 주문과 함께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망토에서 불꽃이 치솟았다.
“불이다!!!”
“워다나즈! 물에 넣어!!”
재빨리 망토를 물에 넣었지만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물속에서도 타오르는 불꽃에 학생들은 경악했다.
“......”
“......”
치이익-
이한은 씁쓸한 표정으로 망토를 꺼냈다. 주변에 있던 친구들은 다급히 말했다.
“잠, 잠열 부여는 내가 걸어줄게. 그거 솔직히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마법이잖아.”
“넌 다른 거 걸어주면 돼! 서로 도우면 되잖아!”
평소 다른 탑 친구들이 마법 실수라도 하면 사납게 비웃던 여러 탑 학생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한 마음이 되어 재빨리 말렸다.
* * *
“젠장!! 또 나야?!”
“미안하다. 빨리 들어갔다와.”
“큭...”
제비뽑기에서 진 학생은 밧줄로 몸을 묶고 풍덩 뛰어들었다.
‘여기 1학년들은 눈치가 빠르군.’
번개걸음 교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원래 각자 보는 시험인 만큼 학생들은 따로 움직여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지금 학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삼삼오오 모여서 협력하고 있었다.
난해한 마법 주문보다 더 소중한 지혜를 이미 알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너 이 자식... 너 이 자식! 제비를 조작해!?”
“헛, 헛소리 하지 마! 무슨 제비를 조작해!”
“워다나즈! 이리 와봐라! 심판 좀 봐다오! 이 자식이 제비를 조작했어!”
“워다나즈는 왜 불러! 워다나즈! 오지 마라!”
물론 다툼이 있는 곳도 있었지만 사람이 모인 곳은 원래 다툼이 있기 마련.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대단했다.
첨벙, 첨벙, 첨벙!
곳곳에서 학생들이 잠수했다가 올라왔다. 이한이 띄운 빛 구체들 덕분에 선착장 위는 마치 대낮처럼 환했다.
‘...저건 봐주자.’
학생들이 뛰어난 1학년 친구를 가진 것도 능력이었다. 번개걸음 교수는 저건 넘어가주기로 마음먹었다.
“뭐 보여?”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더 내려가야 할 것 같아.”
올라온 학생들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정보를 교환했다.
이쯤 들어갔으면 뭔가 나왔어야 했는데, 바다가 소란스러워서 그런지 살아있는 거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내 차례군.”
이한은 수중 호흡 주문을 외우며 들어갈 준비를 했다.
<고나달테스의 암흑 시야>와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도.
그리고 <공간 인지>와 <진실의 빛 부여>...
‘몇 개를 거는 거야?’
번개걸음 교수는 보다가 기가 막혔다.
누가 들어가면 물이 아니라 악마 공작의 내성에 침투하는 줄 알겠다!
“간다!”
“잠, 잠깐만.”
같은 차례인 가이난도가 주저하며 외쳤다.
“왜?”
“마음의 준비가...”
풍덩!
이한은 가이난도를 차서 밀어 넣은 다음 뛰어들었다.
‘깊숙이 내려간다.’
밧줄로 몸을 단단히 묶었는데도 물 속에 들어오자 거칠게 흔들렸다. 정령들이 피운 난동의 여파가 물 속에도 미치고 있었다.
같이 내려온 학생들도 생각 외로 빠른 유속에 손발이 꼬여서 허둥대고 있었다.
-다들 침착해라.
이한은 일단 친구들을 불러모았다.
더 내려가야 하는 만큼 여기서 적응하고 내려가야했다.
-유속이 생각보다 빠르긴 하지만 마법으로 극복할 수 있다. 물 원소 마법은 1학기 때 배웠지. 여기서 물 원소 마법에 자신 있는 사람은 손 들어봐라.
친구들 중 세 명이 손을 들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 원소를 조종하는 거다. 이런 식으로... 움직여라!
이한은 마법을 영리하게 응용했다.
원래라면 물을 움직여서 형태를 만들거나 이동시키는 정도의 마법이었지만, 물속에서는 제법 괜찮은 추진력을 얻는 수단이 됐다.
촤아악-
물살이 갈라지며 이한이 앞으로 밀려나자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원리인지 이해한 것이다.
-이해했어. 워다나즈.
-해볼게. 움직여라!
-......
-...???
학생들은 아무런 변화도 없는 모습에 당황했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움직이라니까?? ...큭!
주문을 외우던 친구 한 명의 안색이 갑자기 나빠졌다.
‘급성 마력 고갈!’
이한은 재빨리 친구를 붙잡고 위로 올라갔다. 이한이 물속에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이 물었다.
“어떻게 됐어?!”
“얘 좀 쉬게 도와줘라!”
“???”
이한은 대답도 하지 않고 쓰러진 친구를 선착장 위에 던졌다. 그리고 다시 내려갔다.
-다시 한 번 시도를...
-허억...
‘젠장.’
친구 한 명이 또 쓰러지자 이한은 다시 붙잡고 올라갔다.
“얘도 부탁한다!”
첨벙!
“......”
“...아, 아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데?”
이한이 같이 내려가서 친구들을 한 명씩 위로 던지자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학생들은 슬슬 두려워졌다.
혹시 아까 <잠열 부여> 때문에 화났나?
“내가 그러니까 마법 자랑하지 말라고 했잖아!”
“워다나즈 앞에서 마법 보여주는 게 자랑이라고 생각 안 했지...! 너 같으면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하겠냐! 워다나즈 앞인데!”
“아까 제비 조작해서 화난 거 아니야?”
위에서 수군거리는 사이 이한은 상황을 파악해나가고 있었다.
‘물 속에서 마법을 쓰는 게 보통이 아니군.’
마법사의 마법은 쉬워보여도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정신적 과정이었다.
당장 전투 마법사로서 훈련을 받지 않은 마법사들이 살기 넘치는 전장에 떨어지면 주문을 쓸 수 없는 것처럼,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는 마법사의 마법을 방해했다.
지금처럼 이렇게 춥고 어둡고 거센 물속은 마법사를 방해하기에 충분할 터.
‘...잠깐. 난 시전했는데?’
이한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물속에서 주문을 외우면 실패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 같다. 다들 조심해라.
-근데 넌 잘 쓰고 있... 아니다. 내가 괜한 걸 물은 것 같다. 워다나즈.
뭔가 물으려고 했던 친구는 빠르게 납득했다.
하긴 워다나즈는 물속이 아니라 용암 위에 거꾸로 매달아놔도 주문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신 내가 밀어줄 테니까 다시 내려간다.
이한은 빛 구체를 띄우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바다 속에 자리 잡은 흙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몇 번 본 것 같은 익숙한 장소였다.
‘...우리가 만든 경주장이잖아...’
어이가 없었지만 이한은 집중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살아있는 걸 찾아야했다.
-워다나즈. 여기. 여기.
친구 한 명이 이한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더니 아래를 가리켰다.
놀랍게도 바닥에 방향을 표시하는 문양이 새겨져있었다.
‘뭐지? 교수님이 새긴 건가?’
-가보자. 따라와.
-알겠어.
이한은 바닥에 새겨진 이정표를 따라 천천히 헤엄쳐 들어갔다. 길은 해저동굴로 이어져있었다.
-......
아무리 봐도 매우 들어가기 싫게 생긴 동굴이었다.
‘교수님이 준비하신 거겠지?’
수중생물을 그냥 바다에 풀어놨다가는 에인로가드 구석구석에 흩어질 텐데 어떻게 준비했나 싶었는데, 이렇게 해저동굴 안에 풀어놓다니.
번개걸음 교수다우면서도 한숨이 나왔다.
‘안에 또 뭔 개 같은 게 있을...’
-♪♬♩♩♩♬
‘?’
이한은 멈칫했다.
멀리서 청아하고 맑은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긴 물 속인데...?’
옆에 있던 가이난도의 눈빛이 갑자기 탁하게 변하더니 홀린 듯 행복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이한은 경악해서 가이난도의 뺨을 후려갈겼다.
* * *
“교수님!!!!”
다른 쪽으로 들어갔던 검은 거북이 탑 학생 한 명이 기겁해서 뛰쳐나왔다.
어찌나 놀랐는지 물기를 닦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뭡니까 이게!! 그... 그... 그 동굴 앞에 있는 게 뭡니까!!”
“오. 이제 발견했냐?”
앉아있던 번개걸음 교수는 살짝 반가워하며 대답했다.
“동굴 안에는 들어가게 해주셔야죠!!”
“아무리 바다가 험해도 그렇지 그냥 동굴 안에 들어가서 냉큼 하나 들고 오는 게 시험일 리가 없잖냐. 당연히 극복해야지.”
번개걸음 교수는 오히려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말했다.
이번 시험을 대비해, 번개걸음 교수는 해저동굴에 각종 잡기 힘든 수중생물들을 풀어놓았다.
이 중 가장 날래고 잘 숨고 잘 도망치는 녀석을 잡을수록 점수가 높았다.
물론 그냥 그렇게 쉽게 잡을 수 있진 않았다. 당연히 학생들을 방해하는 존재도 있었다.
“제... 제가 좀 뒤에서 들어가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남들보다 해저동굴을 빨리 찾아낸 줄 알고 신났던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은 아직도 기막혀하고 있었다.
세이렌이라니!
해저동굴을 찾아내서 들어가려고 했던 친구들은 지금 다 홀려서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였다. 밧줄이 없었다면 그대로 잡혀갔을 것이다.
“잠깐. 진정해. 몰라서 당한거지, 정체를 알게 된 이상 상대할 방법이 있을 거야. 세이렌이라면...”
인어와 정령의 혼혈인 세이렌은 그 목소리에 고대의 마법을 담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마력을 다루는 만큼 몬스터의 특이한 능력에도 제법 저항력이 있었지만...
세이렌의 노랫소리는 그걸 뚫을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정체를 알게 된 이상 언제나 공략할 방법은 있었다.
“귀를 막고 들어가보자.”
“그... 그래! 그러면 되겠군.”
번개걸음 교수는 씩 웃었다. 그 웃음을 본 학생들은 갑자기 불길함을 느꼈다.
...아닌가?
“세이렌의 노랫소리는 귀를 막는다고 안 들리는 게 아니야. 온몸을 타고 들어온다고.”
해안가 출신인 앙라고가 말했다.
흰 호랑이 탑 학생치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지적인 모습에 모두가 놀랐다.
“그, 그러면? 알파.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떤 식으로 공략해야 하지?”
“어?”
앙라고는 당황했다.
“어... 선원들은 뱃전에 몸을 묶어놓긴 하는데...”
“...우린 안으로 들어가야 하잖아.”
“대화나 설득이 불가능한 존잰가? 세이렌은 뭘 좋아하지?”
“사람들 엿먹이는 걸 좋아한다고 알고 있는데...”
첨벙!
그러는 사이 뒤에서 누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앙라고와 친구들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이한이 세이렌을 잡고 올라오고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