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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46화 (446/687)

446화

“그걸 잡아오면 어떡하냐!”

제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노련한 탐험가인 번개걸음 교수였지만, 1학년 제자가 세이렌의 뒷덜미를 붙잡고 질질 끌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자 자동으로 비명이 터져나왔다.

“안, 안 되는 겁니까?”

이한은 당황해서 되물었다.

그 얼굴에는 ‘세이렌도 당연히 수중생물이겠지?’하는 순수함이 가득했다.

번개걸음 교수는 얼굴을 양손으로 덮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아니. 수중생물이 맞긴 하지...”

생각해보니 이한이 잘못한 건 없었다.

번개걸음 교수가 수중생물을 하나 잡아오라고 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세이렌을 잡아올 줄이야.’

산에 가서 먹을 것 좀 잡아오라고 하면 적당히 버섯이나 산나물, 크게 양보한다면 멧돼지 정도 갖고 오지 어느 누구도 드래곤을 찾아서 잡아오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해저동굴에 들어가서 희귀한 수중생물을 잡아오라는 시험에서 어느 누구도 세이렌을...

“...대체 어떻게 잡은... 아니, 일단 놔줘라. 지금 화내고 있잖냐.”

-♩! ♬!! ♪♪♪♪!!!

세이렌은 격렬한 소프라노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이한이 노래에 조예가 깊진 않아도 상대가 화났단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아. 화내는 것도 시험의 일부인 줄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이한은 세이렌의 뒷덜미를 놓아주었다. 세이렌은 바로 첨벙 물속으로 들어간 다음 얼굴만 내밀고 살벌하게 노래를 불렀다.

-♩♪ ♬♩♩♪!!!!!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죄송합니다.”

“저, 내가 사과할 테니 노래는 그만 불러주게. 학생들이 쓰러지고 있으니.”

번개걸음 교수는 대신 사과하며 세이렌에게 말했다.

세이렌은 어지간히도 억울했는지 어떻게든 이한을 지배하려고 노래를 불러댔지만, 애꿎은 학생들만 홀린 듯 비틀대고 있었다.

한참을 쉬지 않고 불러대던 세이렌은 마침내 지쳤는지 콜록거렸다. 그런 다음 씩씩대며 번개걸음 교수한테 다가갔다.

“그게 그러니까 일부러 한 게 아니라... 아니. 미안하게 됐네. 나도 잡힐 줄은 몰랐지. 그리고 솔직히 물 속에서 1학년 마법사한테 잡힐 줄 누가 알았겠...”

-♩♪♪♪♪♪!!

“약속했던 보수의 두 배를 줄 테니 화를 풀어주게. 그리고 다른 1학년은 절대 저 정도 수준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정말이라니까. 생각해보게. 에인로가드에서 저런 1학년 학생 본 적 없잖나?”

번개걸음 교수는 진땀을 흘려가며 세이렌을 달랬다.

마침내 분노가 풀린 세이렌은 다시 물속으로 첨벙 들어갔다. 번개걸음 교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설득했군.’

해저동굴의 시험관으로 세이렌만큼 적절한 이들도 없었다.

이들이 화를 내고 가버린다면 시험을 다시 고민해야 했을 것이다.

“혹시 세이렌은 안 되는 겁니까?”

“세이렌은 확실히 갔지?”

번개걸음 교수는 수면 위를 확인한 다음 말했다.

“잘 했다. 만점이다.”

놀라움과 황당함이 가시자 번개걸음 교수는 제자를 칭찬할 정신이 돌아왔다.

아직도 어떻게 잡은 건지는 몰랐지만 물 속에서 세이렌을 잡은 건 정말 대단했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몇몇 탐험선의 선장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올지도 몰랐다.

“아. 역시... 세이렌을 잡는 것도 시험 내용에 있었던 게 맞습니까?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한은 교수를 존경하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자존심 강한 세이렌이 진짜 잡혀서 화를 내자, 그걸 달래주기 위해 모르는 척 하다니.

역시 교수는 어중간한 수완으로 될 수 없었다.

“...그, 그래.”

번개걸음 교수는 설명하는 대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떻게 잡았는지나 말해봐라. 궁금하다.”

*         *         *

-♪♬♩♩♩♬

가이난도의 뺨을 때린 이한은 효과가 없다는 걸 깨닫고 바로 대응에 나섰다.

‘세이렌!’

인어와 정령의 혼혈, 바다의 잔혹한 장난꾸러기들이 나타날 줄이야.

‘교수님께서 말한 수중생물은 세이렌이었나!’

이한은 홀린 친구들의 몸에 묶인 밧줄을 세 번 잡아당겼다. 신호를 받은 위에서 밧줄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홀가분해진 이한은 바로 귀를 막은 뒤 주문을 외우고 세이렌에게 달려들었다.

마법사가 홀리지 않고 달려오자 세이렌은 깜짝 놀라 노래를 더 크게 불렀다.

-♪♪♪♪♪♪... ?!!

그러나 아무리 크게 부르고 노래의 힘을 집중시켜도 이한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미리 귀를 막은 덕분이었다.

*         *         *

“...귀를 막아서가 아니라 네 저항력이 괴물 같아서다. 세이렌의 노래는 귀를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게 아니야. 흔한 착각이지.”

“아. 그런 겁니까?”

*         *         *

아무리 크게 부르고 노래의 힘을 집중시켜도 이한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타고난 마력 덕분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추적자가 제정신으로 다가오는 걸 목격한 세이렌은 대경실색해서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 ♬♩♩! ♬♩♩!

‘무슨 저주를 날리는 거지?’

세이렌은 오지 말라고 당황해서 노래를 불렀지만 불행히 세이렌 어(語)를 모르는 이한에게는 닿지 않았다.

‘세이렌은 고대 정령의 핏줄을 이어받은 존재. 내가 모르는 사악한 능력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한의 경계심을 더 올리기만 했다.

이한은 세이렌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대신 살을 주고 뼈를 취하기로 했다.

-몰아쳐라... 페르쿤트라의 벼락이여!

원래라면 일직선으로 쏘아졌을 번개가 사방으로 방전되며 마치 광역 마법처럼 시전됐다.

물 속에서만 가능한 특이한 현상이었다.

물론 번개는 이한도 타격했지만, 이한은 타고난 저항력으로 버텼다. 세이렌은 생전 처음 느끼는 저릿저릿한 마비감각에 더욱 허둥댔다.

팍!

세이렌은 마비된 꼬리지느러미를 멈추고 노래를 불러 물의 정령들을 동원했다.

어떻게든 힘을 빌려서 속도를 올리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달려오던 물의 정령들은 갑자기 이한을 보고 흠칫하더니 뒤로 미친듯이 도망쳐버렸다.

-??????

세이렌은 갑작스러운 혈족의 배신에 경악했다. 그러는 사이 이한은 세이렌의 앞길을 막을 마법을 시전했다.

-타올라라...

-?!

상대 마법사가 물 속에서 화염의 기운을 불러오자 세이렌은 무슨 짓을 하는지 몰라서 당황했다.

물 속에서 화염 마법을 시전하려고 하다니.

어떤 바보 마법사도 그런 짓을 하지는 않...

화르르르르르륵!

정교하게 만들어진 화염의 벽이 펼쳐지며 앞을 막았다.

이한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속을 썩이던 화염 마법이 이렇게 깔끔하게 형태 변환까지 성공시키며 완성되다니.

*         *         *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지금 감동이 아니라 물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을 이상하게 여겨야 하지 않... 아니. 됐다. 게속해라.”

*         *         *

세이렌은 완전히 패닉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한은 손쉽게 헤엄쳐서 세이렌을 붙잡을 수 있었다.

마법사치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단련된 힘에 붙잡힌 세이렌은 발버둥치며 이한의 눈동자를 마주보려고 노력했다.

세이렌의 핏줄에 새겨진 능력은 노래만이 아니었다. 세이렌은 서로 눈동자를 마주보는 것으로 본능적인 환상 마법을 펼칠 수 있었다.

상대의 그릇을 읽어내고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환상을 보여주는 강력한 능력.

평소에는 노래가 있어서 쓸 일이 없는 능력이었지만, 노래가 통하지 않는 만큼 세이렌은 필사적으로 눈동자를 마주보려고 했다.

-!!!!!

그리고 눈동자를 마주치는 순간 느껴지는 마력에 겁을 먹고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이한은 상대가 드디어 포기했나 싶어 뒷덜미를 잡고 위로 헤엄쳐 올라왔다.

*         *         *

“설득하기 어려운 애들인데 겁을 그렇게 주면 어떡하냐...”

“예? 협박 같은 건 안 했습니다만?”

“그게 말로 협박하는 게... 아니다. 됐다. 고생 많았고 좀 쉬어라.”

번개걸음 교수는 어이없어 하면서 기특한 제자를 칭찬했다.

황당하긴 했지만 실로 대단한 업적은 맞았다.

어느 누가 이런 날씨에 세이렌을 잡아오겠는가.

“예.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한은 번개걸음 교수의 예상대로 담요를 두르고 쉬는 대신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애들아. 세이렌 잡는 거 맞대. 확실히 점수가 높은 타겟인 것 같다.”

“정말?!”

“그런데 세이렌을 어떻게 잡지?”

“워다나즈. 정말 미안한데, 혹시 한 번만 보여줄 수 있나?”

여러 탑 친구들의 간곡한 부탁에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미 시험을 끝낸 입장에서 친구들을 위해 시범 한 번 정도는 보여줄 수 있는 일이었다.

“자. 다들 수중 호흡 걸고 물로 들어와라. 가이난도. 넌 왜 뺨을 부여잡고 있어?”

“몰라. 아까 돌에 부딪쳤나봐.”

가이난도는 부어오른 뺨을 붙잡고 투덜거렸다.

아까 잠깐 정신 잃은 사이에 위에 있는 놈들이 밧줄을 세게 당겨서 어디 박은 모양이었다.

“세이렌을 잡는 방법은... 음. 아니다. 직접 잡는 걸 보여주는 게 빠르겠군. 내가 다시 한 번 잡아볼 테니까 너희들이 멀리서 보는 게 어때?”

“그렇게까지...!”

“워다나즈...!”

듣고 있던 번개걸음 교수는 경악하며 입을 떡 벌렸다.

*         *         *

학생들은 결국 세이렌을 잡는 걸 포기하고 해저동굴로 들어가 진귀한 수중생물들을 찾았다.

요네르가 데리고 온 물토끼를 본 이한은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세이렌 말고 물토끼를 데리고 올 거 그랬나? 물토끼가 더 쉬워 보이는데.”

“......”

-......

번개걸음 교수와 세이렌은 이한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특히 세이렌은 이한을 아주 원수처럼 노려보았다.

하루에 똑같은 마법사한테 세 번 붙잡힌(가이난도가 이해를 못해서 이한은 한 번 더 보여줬다) 굴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한은 세이렌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세이렌이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물 속으로 들어가 깊숙이 도망치기 전이면 몰라도, 지금 물 밖에서 저 마법사한테 욕할 자신은 없었다.

“...자. 다들 고생한 세이렌한테 감사인사를 하자꾸나!”

번개걸음 교수는 세이렌의 불쾌한 기분을 눈치채고 학생들을 불렀다.

에인로가드의 신비한 생물들 사이에서 번개걸음 교수의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싶지 않다면 화해는 해줘야했다.

“감사합니다! 세이렌 님!”

“노래 정말 좋았습니다!”

학생들은 세이렌에게 별다른 악감정이 없었다.

노래에 홀린 건 불쾌하기보다는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기억에 가까웠다.

그리고 사실 학생들은 세이렌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붙잡혀서 끌려간 편이었다.

세이렌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오만하게 턱을 들고 학생들의 칭찬을 들었다.

“저도 감사했습니다. 세이렌 님.”

-...♪♪♪♪!!

감정조절을 잘하던 세이렌이 폭발해서 이한에게 노랫소리를 퍼부었다.

번개걸음 교수는 황급히 끼어들어서 말리며 강의를 마무리 지었다.

“다들 고생 많았다! 바다 노래 정령의 직계께서도 고생이 많으셨소! 이제 그만 돌아가도 좋소! 참. 워다나즈.”

“예?”

“에인로가드 돌아다닐 때 세이렌 나오는 곳에는 접근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니... 강의 시험이었을 뿐인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이한은 쿨하지 못한 세이렌의 반응에 서운해했다.

*         *         *

“저기 오두막이다!”

“갈고리 던져!!”

“잡았다!!”

아침.

휴식을 취한 이한과 다른 탑 학생들은 탄주어 위에 올라타서 고래사냥, 아니, 오두막사냥을 하고 있었다.

떠내려가는 오두막에 갈고리가 걸리더니 천천히 끌려오기 시작했다.

‘어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이한은 낯익은 오두막 모습에 의아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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