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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47화 (447/687)

447화

“워다나즈!”

지휘를 내려야 할 이한이 잠시 멈추자 다른 학생들은 당황해서 이한을 불렀다.

살코는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뭐지? 무슨 문제가...”

“해적이라도 나타난 거 아니야?”

학교에... 해적이 어딨...

최대한 말하지 않고 시킨 일만 하려던 탄주어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미안하다. 잠시 다른 생각을 했군. 당겨!”

이한은 친구들과 함께 밧줄을 당겼다. 나름 강화 마법을 다 걸고 들어왔는데도 오두막을 당기는 건 쉽지 않았다.

‘으음. 더 강한 강화 마법을 배워두긴 해야겠군.’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은 아주 빠르게 시전 가능한 1서클 마법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범용성이 높은 강화 마법이었다.

당장 근력과 민첩성과 반사속도 등을 모두 올려주는 다른 강화 마법들은 3서클부터 시작했다. 저걸 1서클로 압축해낸 해골 교장의 천재성이 비범한 거였다.

하지만 마법학교에서 오래있다 보니 슬슬 더 강한 마법의 필요성을 느꼈다.

‘시전에 오래 걸리고 좀 더 투박한 마법이더라도 특화형이 필요해.’

당장 지금 같은 상황만 봐도 근력을 집중시키는 강화 마법이 필요했다.

‘책에서 본 <탁탑천웅의 힘> 같은 강화 마법이 좋을 것 같은데. 익힐 수 있을까...’

“워... 워다나즈. 더 강한 마법은 없나?”

“미안하다. 지금 쓸 주문이 없군.”

“야. 멍청한 소리 하지 마! 지금 이 마법도 다 쓰고 나면 반작용이 심한데!”

옆에 있던 흰 호랑이 탑 학생이 친구를 타박했다.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만 해도 근육통이 꽤 심했던 것이다.

‘아. <탁탑천웅의 힘> 같은 강화 마법은 반작용이 더 심하겠군.’

이한은 새삼스럽게 강화 마법의 반작용을 깨달았다.

육체를 직접 강화시키는 마법은 그에 따른 반작용이 제법 많았다.

노련한 마법사는 다양한 마법으로 충격을 줄이고 반작용을 최소화했지만 이한에게 아직 먼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본인은 워낙 마력이 많아서 저런 반작용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필요하면 써야 하니까.’

이한은 고민을 빠르게 끝냈다.

친구들이 좀 더 고통스러울 수야 있겠지만 에인로가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툭, 투툭-

가죽 장갑은 물론이고 헝겊까지 덧대서 밧줄을 잡았지만, 미끄러운 탄주어 위에서 당기다가 넘어지는 학생들이 한둘씩 나왔다.

“서두르지 마라!”

살코가 크게 외쳤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서두르지 않는 거였다.

석공 길드원들과 함께 건축물을 쌓아올리다 보면 실수야 나오기 마련.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게 침착하게 대응하는 거였다.

“버티기만 해라! 먼저 끝나는 쪽이 도와주러 갈 테니까!”

살코는 자기가 잡고 있는 쪽만 제대로 끝나면 바로 달려가서 도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한이 한 발 더 빨랐다.

이한은 마력을 폭발적으로 낭비하듯이 전신으로 방사했다. 주변의 물방울이 마력과 결합해 증발할 정도였다.

순간 밧줄이 미친듯이 당겨지더니 오두막이 가까이 끌려왔다.

“다 됐다! 기다리고 있어라!”

자기 쪽 작업을 끝낸 이한은 밧줄을 던지고 넘어진 학생들 쪽으로 달려갔다.

그걸 본 살코가 감탄했다.

‘저 자식은 정말 타고난 일꾼이다!’

저런 녀석은 워다나즈 가문이 아니라 투탄타 가문에 태어났어야 했는데...

*         *         *

“워다나즈.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두워?”

“지쳐서 그런 거겠지.”

결국 오두막을 사냥하는 데에 성공한 학생들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도서관에 돌아왔다.

그러나 이한의 얼굴은 뿌듯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음. 그러니까...”

“??”

“...아무것도 아니다.”

“뭐야. 싱겁긴.”

이한은 말하려다가 말았다.

이 오두막은...

‘우레걸음 교수 오두막이잖아!’

연금술 재료 채집을 위해 드넓은 에인로가드 부지 곳곳을 돌아다니는 우레걸음 교수인 만큼, 제자인 이한도 오두막이 얼마나 많은지는 몰랐다.

그러나 같은 사람이 지은 건축물은 티가 나기 마련.

이 오두막은 우레걸음 교수의 오두막이었다.

“이거 왜 안 열리지?”

“도끼도 안 먹는 것 같은데?”

“잠시 비켜봐라.”

이한은 오두막에 가까이 접근했다.

파직!

다행히 발도르오른에게 배운 방법으로 방어 마법이 깨졌다. 학생들은 바로 도끼로 문을 부수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우... 우와와아아아아!”

“이, 이거...! 이거 봐!”

안에 들어간 학생들이 함성을 터뜨렸다.

도서관의 다른 쪽에서 쉬고 있던 학생들도 그 소리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다가왔다.

“뭔데? 뭐가 있는데?”

오두막 안에는 에인로가드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꿈꿀 만한 물자들이 들어 있었다.

드워프 식 훈제 햄과 소금에 절인 청어, 달걀과 쌀, 양파, 밀, 건포도, 자두, 바나나, 무화과 등은 물론이고 올리브기름이나 소금 같은 부재료, 심지어 맥주까지 있었다.

한 흰 호랑이 탑 학생은 눈물까지 흘릴 정도였다.

“워다나즈. 이 정도면 연회를 열어도 되겠지??”

“...그, 그래라.”

고민하던 이한은 친구들의 부름에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이상 우레걸음 교수한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증거를 인멸해야겠군.’

“인원을 나누자. 1조는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고 2조는 통나무집을 완전히 해체해. 흔적도 못 알아보게. 장작으로 써버리자.”

“대충 자르고 나중에 쓸 때 해체하면 안 되나?”

“안 돼. 지금 미리 해둬야지.”

“에이... 귀찮은데...”

학생들은 투덜거렸지만 이한의 말을 거절하진 않았다.

이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빠르게 끝내면...

“잠깐! 워다나즈!”

“?!”

누군가 이한을 부르자 이한은 깜짝 놀랐다.

“뭐지?”

‘설마 들켰나?’

누군가 이게 우레걸음 교수의 오두막이란 걸 알아차렸다면...

“해체는 우리가 할 테니까 넌 요리 쪽을 맡아줘!”

“맞아! 부탁이야!”

“......”

“이 자식들이 우리 요리가 그렇게 싫었냐??”

저번 당번을 맡았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입을 삐죽 내밀며 불평을 토해냈다.

*         *         *

도서관 안에 모인 학생들은 오랜만에 포식을 즐겼다.

임시로 만든 탁자 다리가 몇 번 부러질 정도로 꽉꽉 채운 음식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학생들은 모닥불 위에서 속살이 녹을 정도로 끈기 있게 구운, 부드러운 고깃덩이를 덥석 물어뜯었다.

갓 구워진 납작한 빵을 볼이 터져라 쑤셔 넣다가 뜨거워서 비명을 지르는 가이난도를 보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야. 생각보다 푸른 용의 탑 놈들의 식사예절이 별 거 없는 것 같지 않냐?”

“그러게. 저번에 워다나즈 놈이 기사단 가서 그렇게 대단했다던데 우리랑 별 차이 없어 보이는데...”

이한은 작은 솥 안에 콩과 쌀, 양파와 고기를 넣어 쪄낸 요리를 추가로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흐뭇하군.’

학생들이 잘 먹어서 흐뭇한 게 아니었다.

1학기 때와 달리 식사를 하면서도 책을 놓지 않은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1학기에 한 번 호되게 당한 만큼 학습한 학생들이었다.

“야. 식사하는데 무슨 공부야!”

“만들어 준 워다나즈한테 실례... 악!”

몇몇 학생(보통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었다)이 말을 꺼냈다가 이한한테 뼈다귀로 맞았다.

“남 방해하지 말고 너희들도 읽어.”

“우, 우리는 검술 강의라...”

검술 강의 말고 다른 강의들도 많이 듣지만 굳이 검술 강의만 말하는 얄팍한 속셈에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친구가 뼈다귀로 맞는 걸 보자 격구(擊毬) 공을 꺼내서 놀려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슬며시 공을 집어넣었다.

그 모습에 지젤은 앞으로 뼈다귀를 몇 개 챙겨놔야 하나 고민했다.

“위대한 마법의 적통... 아니야. 너무 교조적인 것 같아...”

옆에서 요네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깃펜을 입에 문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한은 호기심을 느끼고 물었다.

“무슨 강의지?”

“응? 기초 문학 심화. 에인로가드에 걸맞은 강령(綱領)을 하나 짜오는 건데...”

‘안 듣길 잘했군.’

이한은 질색했다.

모든 마법 학파를 듣는다고 이상하게 부풀려진 소문이 돌고 있는 이한이었지만, 사실 이한이 듣지 않는 강의들도 제법 있었다.

기초 연극의 이해나 제국 걸작의 이해 같은 강의는 누군가가 몰래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는 한 절대 듣지 않는 것이다.

좋은 강의란 논리와 노력과 이성으로 A+를 받을 수 있는 강의였지 감성으로 승부하는 강의가 아니었다.

“혹시 떠오르는 거 있어?”

“흠... 부자유를 통한 자유의 추구 같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내기에는 너무 음울하군.”

“응? 좋은데??”

요네르는 화색이 되어서 메모했다. 이한은 그걸 보고 당황했다.

“좋다고?”

무슨 제국 감옥에 어울릴 것 같은 문구 아닌가?

“응. 혹시 이거 제출해도 돼?”

“상관없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문구 같지는 않아.”

“아니야. 괜찮을 것 같은데?”

요네르는 확신에 가득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친구의 감성에 문제가 있나 살짝 고민했다.

‘하긴 요네르네 언니도 감성이 좀 남다른 분이긴 했다.’

푸드득-

학생들이 즐거운 식사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사이, 도서관에 종이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기초 소환 마법의 이해 심화를 듣는 학생들은 주목하십시오. 에인로가드의 기상 변화로 인한 중간고사 변경이 있겠습니다.

밀레이 교수의 목소리에 소환 마법을 듣는 학생들은 웅성거리며 새 앞에 모였다.

그러나 새는 끝나지 않았다. 몇 마리가 더 날아왔다.

-기초 검술 심화를 듣는 학생들은 주목하...

-기초 연금술 심화를...

-...

-나는 딱히 알려줄 건 없지만 심심해서 보내봤다. 공부 열심히 해라, 무쇠대가리들아.

-......

이상한 종이 새도 하나 있긴 했지만, 교수들의 따뜻한 배려에 학생들은 살짝 감동받았다.

원래 개같이 못해주다 보면 사소한 친절에도 감동받기 마련.

“......”

그러나 이한은 사이에 껴서 머뭇거렸다.

듣고 있는 강의가 너무 많은 탓에 어디에 서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워다나즈. 내가 알려줄 테니까 그냥 쉬고 있어.”

“넌 가만히 앉아 있어!”

친구들은 재빨리 이한을 말렸다.

이한을 쳐다보는 친구들의 눈빛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         *         *

밀레이 교수의 시험은 안락하고 평화로웠다.

벽난로 있는 강의실 안에 모인 학생들은 편안하고 따뜻한 공기 속에서 이번 <볼츠만의 부름> 축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아마 놀라고 있는 학생들도 있을 겁니다. 저번 학기의 시험이나 이번 학기에 배운 것들에 비하면 너무 간단한 시험처럼 느껴질 테니 말입니다.”

밀레이 교수가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며 말했다.

“그러나 이런 서류를 작성하는 것 또한 마법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알아둬야 합니다.”

외진 곳에 세운 자신의 탑에 틀어박혀 연구하는 마법사의 시대는 고대에 끝난 지 오래였다.

마법사는 꾸준히 다른 마법사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가끔은 투자자들의 금화도 갖고 올 줄 알아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연구라도 진행하기 힘들어졌다.

“한 번 작성해보면 쉽지 않다는 걸 느낄 겁니다. 처음이니만큼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괜히 가식적으로 꾸미지 말고 진솔하게 쓰는 게 좋을 겁니다. 축제에서 뭘 느꼈는지,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보완해나갈 것인지?”

“......”

듣고 있던 이한은 심각하게 생각에 잠겼다.

‘...뭘 더 보완해야 하지?’

이한의 짧은 식견으로는 딱히 뭘 더 보완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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