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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49화 (449/687)

449화

원래 교수의 공방에서 수학하는 제자들의 분위기는 제각각 다르기 마련.

어떤 곳은 친하고 끈끈하다면 어떤 곳은 서로 할 일만 하는 건조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한은 후자가 전혀 싫지 않았다.

‘솔직히 버두스 교수 제자들은 선배라고 해도 믿기 힘들다.’

이미 버두스 교수가 방학 때 저택 찾아와서 갸웃갸웃하던 기억이 생생한 이한이었다.

만약 버두스 교수 제자들 중에 스승을 닮은 선배들이 있다면 이제 방학 때 갸웃거리는 사람이 몇 배로 늘어나게 됐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었다.

“이쪽으로 와.”

안파곤은 본관 1층 서쪽에 위치한 열두번째 강의실로 들어가더니 책상을 쌓아 계단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천장에 새겨진 붉은색 조각을 세 번 두드렸다.

스르륵-

숨겨진 길이 나타났다. 이한은 그걸 보고 열심히 메모했다.

‘이런 곳이 있었군.’

“여긴 어디입니까?”

“내 공방.”

안파곤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인간 종족은 종족들 중에서 체력이 특출하게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런 만큼 인간 종족인 안파곤은 과로에 피곤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한은 배낭에서 커피가 든 보온병을 꺼내 내밀었다. 안파곤은 짧은 감사인사와 함께 받았다.

그리고 이상함을 느꼈다.

‘...1학년이 어떻게 커피를 갖고 있지?’

“개인실이 아니라 공방에서 작업하시는군요.”

“어.”

2, 3학년만 되도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학교 곳곳을 뒤져 자신의 공방을 마련하곤 했다.

왜냐하면...

“1학년 때는 기숙사 개인실에서 연습해도 되겠지. 하지만.”

“조금만 지나도 기숙사 개인실에서 연습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커지니 말입니다.”

“!”

안파곤은 살짝 놀란 눈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1학년 후배가 이걸 알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이다.

“맞아. 어떻게 알았냐?”

“아. 그게...”

이한은 자신이 연습했던 마법들을 떠올렸다.

수많은 스켈레톤 전사들.

주변을 파괴하는 번개 원소와 화염 원소와 기타 파괴적인 원소들.

그리고 위험천만한 시약들과 다른 학파의 마법들까지.

아무래도 기숙사 개인실에서는 연습하기 조금 그런 것들이 많았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휴게실이 난리날 수도 있었다.

“...저도 마법을 연습하다가 불편함을 느껴서 새로 장소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안파곤은 마음속에서 후배의 평가를 조금 더 올렸다.

과연 해골 교장이 붙여준 후배답게, 1학년인데도 진도가 꽤 빠른 모양이었다.

“혹시 2서클 마법도 다룰 줄 아나?”

“예? 어. 예.”

‘다룰 줄 알지만 자신은 없는 모양이군.’

하지만 상관없었다.

1학년 때 2서클 마법을 다룰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꽤 우수한 편이었으니까.

어차피 대부분의 일은 안파곤이 해야 할 터.

안파곤은 1학년 후배에게 대부분의 일을 맡길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자. 여기다.”

다락방처럼 생긴 공방의 입구 앞에서 안파곤은 멈춰 섰다.

그리고는 옆의 벽에 걸어놓은 기다란 외투를 꺼냈다. 후드가 달려 있는, 전신을 푹 뒤덮는 형태의 망토였다.

“이거 착용하고.”

“이게 뭡니까?”

“보호장비. 아티팩트 작업 도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막아주지.”

“아. 고학년이 되면 이런 걸 입고 강의를 듣습니까?”

학년이 낮을 때는 위험도가 낮으니 필요가 없지만, 아티팩트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거기에 들어가는 마력의 양과 마법의 위험도도 높아지기 마련.

이런 장비를 입고 작업해도 놀랄 게 없었다.

“아니. 이건 우리가 만든 거야. 교수님은 보통 이런 게 왜 필요하냐고 하시지.”

“......”

이한의 머릿속에서는 ‘이런 게 왜 필요해? 실수를 안 하면 되잖아?’하고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버두스 교수의 목소리가 재생됐다.

“자리에 앉아.”

“예.”

안파곤은 시약과 도구가 든 궤짝들을 꺼내 탁자 위에 늘어놓고 다락방의 불빛을 켰다.

마석에 마법진을 새겨서 만든 간이 등롱(燈籠)이 깜박거리더니 시들었다.

안파곤은 쯧쯧 혀를 찼다.

“수명이 다 됐군. 이것부터 작업해야겠는데...”

“제가 하겠습니다.”

“괜찮겠냐?”

앞으로 작업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보면 마력을 아끼긴 해야겠지만, 안파곤은 1학년 후배가 새로 마석에 마법진을 새길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빛 부여> 마법이 난이도가 제법 낮은 편이긴 했지만 1학년한테는 이야기가 달랐다.

게다가 지금 안파곤이 만든 간이 등롱은 크기가 작아서 마석의 크기도 그만큼 작았다.

당연히 여기에 마법진을 새겨 넣는 건 더욱 어려워지기 마련.

“빛이여!”

“......”

그러나 이한은 마석을 붙잡고 마법진을 새기는 대신 그냥 등롱 안에 빛 구체를 소환해버렸다.

안파곤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기본적으로 안파곤은 물론이고 버두스 교수의 제자들은 에인로가드에서도 가장 덜 사교적인 이들이었다.

그런 만큼 1학년 후배가 이런 귀여운 실수를 저질렀을 때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직접 빛의 구체를 소환하면 기껏해야 몇 분 갈 텐데...

‘...지적하기도 귀찮으니 그냥 사라지면 내가 다시 작업해야지.’

괜히 지금 시간 낭비를 하느니 안파곤은 빛의 구체가 사라지면 자기가 다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험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시험을 만든다고 하면 거창하게 들렸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시험이 아니었으니까.

안파곤은 3학년 학생인 만큼 1, 2학년 때 겪었던 시험들을 기억하고 있었고, 이번 시험도 그 시험을 갖고 오면 됐다.

다만 준비가 좀 걸리고 귀찮을 뿐.

“여기 아티팩트가 보이지?”

안파곤은 작은 쇠막대 아티팩트를 꺼냈다.

한 번 휘두르자 쇠막대의 끝이 백열되며 불꽃을 토해냈다. 화염 생성 계열의 아티팩트였다.

“예.”

“이제 이걸...”

쾅!

안파곤은 쇠막대를 휘둘러서 벽에 박았다. 그러자 쇠막대 가운데가 살짝 휘었다.

“...이렇게 고장내는 거다. 왜 고장내는지 알겠냐?”

“수리를 위해서입니까?”

안파곤은 씩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에인로가드에서 부여 마법 학파 학생으로 살다보면 웃을 일이 줄어드는 만큼, 꽤 오랜만에 웃은 기분이었다.

“맞아. 수리가 시험이야.”

뛰어난 부여 마법사라면 아티팩트를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남이 만든 아티팩트를 수리하는 것도 할 줄 알아야했다.

제작이 수리보다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수리에는 직접 제작에 없는 난이도가 있었다.

남이 만든 아티팩트인 만큼 이 아티팩트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파악부터 해야 했던 것이다.

이 파악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같은 효과를 가진 아티팩트라 하더라도 마법사마다 제각각의 방법으로 만드는 것이다.

어떤 마법사는 안정성을 우선시해서 마법진의 마력회로의 내구도를 신경썼고, 어떤 마법사는 화력을 우선시해 마법진의 마력출력의 한계를 신경썼다.

또 어떤 마법사는 그냥 효율을 무시하고 자기 마력 많다고 시위라도 하듯이 마력을 대량으로 주입해버리기도 했고...

이런 점을 파악해서 어디가 망가졌는지 정확히 고쳐야 하는 만큼, 수리에는 제작에 없는 난이도가 있었다.

“고장을 내려면 먼저 아티팩트가 필요하지.”

“만들겠습니다.”

“아니. 내가 만든다고.”

안파곤은 다시 한 번 이 후배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누가 이걸 1학년한테 시킨단 말인가.

“너는 확인만 해줘.”

“정말 그래도 됩니까!?”

이한은 깜짝 놀랐다.

안파곤은 황당해하며 대답했다.

“당연히 그래도 되겠지.”

“알겠습니다.”

“미리 만들어 놓은 거 저기 궤짝에 있으니까 저것부터 확인해.”

“예.”

이한은 궤짝을 열고 안에 있는 아티팩트를 하나씩 꺼냈다.

그러는 사이 안파곤은 작업 도구를 들고 아티팩트를 추가로 만들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숫자가 숫자인 만큼 오늘 안에 끝내려면 지금부터 시작해도 밤을 새야 할 수도 있었다.

칙, 치직, 치치칙!

땅, 땅, 땅-

한동안 다락방 안은 고요했다.

말은 없고 작업 소리만 울려 퍼졌다.

“저. 선배님.”

“왜.”

안파곤은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고개를 돌렸다.

뛰어난 후배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아티팩트 확인 하나 못해서 부른단 말인가?

‘해골 교장한테 매수당한 건 아니겠지.’

“다 했습니다만.”

“......”

안파곤은 눈을 깜박였다.

처음에는 후배가 거짓말이라도 하나 생각했는데, 아티팩트에 남은 마력 잔향을 보니 농담이 아니라 한 번씩 다 사용을 해본 게 분명했다.

“벌... 써?”

“예. 제작 도와드릴까요?”

“...그래.”

안파곤은 이한에게 도구를 내밀었다.

이렇게 되자 어디 한 번 실력을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여기 마법진 문양 보이냐? 마력 흐름 완성시켜서 활성화시켜봐.”

“예.”

보아하니 회로의 증폭과 유지 부분이 빠져있었다.

어차피 영구적인 아티팩트가 아니라 시험용 아티팩트인 만큼 이한은 과감하게 유지 부분을 치워버렸다.

그리고 마력을 과하게 투입해 마법진의 문양을 가동시켰다.

“됐습니다.”

“???”

말한지 10초도 안 됐는데 작동시켰다는 이한의 말을 들은 안파곤은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다.

“벌써?”

“예.”

놀랍게도 정말로 아티팩트는 작동하고 있었다.

안파곤은 이한이 작업한 문양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복잡하게 회로를 구성하는 대신 필요 없는 부분을 빼버리고 마력으로 대체해버린 것이다.

이건 자기 마력의 양과 질 모두에 자신이 있고 컨트롤에 자신이 있는 교수나 할 법한 작업이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건 문양 주변에 별다른 번짐이나 균열이 없다는 점이었다.

경험 없는 마법사들은 이런 작업을 하면서 주변에 끼치는 여파를 고려하지 못해 정작 마법진은 완성해도 아티팩트 자체를 망가뜨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후배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마치 이런 제작만 수백 수천 번 넘게 반복한 것처럼.

안파곤은 몇 번이고 확인하느라 고개를 점점 아티팩트에 박을 것처럼 숙였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 찾으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안파곤은 순간 해골 교장이 옆에 숨어서 안파곤을 놀리나 싶었다.

저번에 실험을 위해 예산을 크게 타간 이후로 해골 교장이 볼 때마다 안파곤을 타박했던 것이다.

-이야. 에인로가드의 황금갈취자 안파곤 아니냐! 저번에 내 황금을 그렇게 가져가놓고 아직도 결과가 안 나오고 있냐?

-......

-왜? 더 가져가지 그러냐? 저번에도 나 몰래 황제 폐하께 연구제안서 제출하지 않았냐. 내 비밀창고에 있는 황금을 쓰게 해달라고!

-...죄송합니다...

그러나 해골 교장은 보이지 않았다.

안파곤은 이 후배가 정말로 이걸 만들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놀랍다.’

부여 마법 배우는 학생들은 서로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안파곤도 새로 들어온 2학년 후배가 뭐에 관심이 있고 뭘 만드는지 잘 알지 못했다.

중요한 건 자기가 만들려는 거였지 후배나 선배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 후배는 없던 관심도 강제로 생기게 만들 정도였다.

“어떻습니까?”

“아주 훌륭해. 그런데...”

“?”

“이건 못 쓴다.”

“어. 뭐 잘못 만든 게 있습니까?”

안파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만들면 고장이 안 날 테니까.”

“......”

마법진의 문양과 회로는 복잡하고 정교할수록 고장나기 쉬웠다.

이한처럼 최대한 단순하고 견고하게 마무리지어버리면 고장을 내기가 힘들었다.

고장난 아티팩트가 필요한 만큼 덜 단단하게 만들어야했다.

“그, 그렇군요. 제가 놓쳤습니다. 역시 선배님이십니다.”

“...이게 내가 칭찬받을 일이냐?”

안파곤은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었다.

칭찬은 방금 후배가 만든 것에 받아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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