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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51화 (451/687)

451화

‘에인로가드에 너무 적응한 거 아닌가?’

한 마리 고독한 늑대 같던, 그림자 순찰대 출신의 사냥꾼은 어디가고 에인로가드의 노련한 학생만이 남아있었다.

닐리아가 물러서자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매우 아쉬워했다.

“아... 잘하면 통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은화가 낫지 않았을까?”

“워다나즈가 우리도 아니고 돈 때문에 안 될 제안이 통하진 않았을 거야.”

“닐리아는 푸른 용의 탑 애들하고 친해서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움찔!

이한은 닐리아가 움찔하며 친구들의 눈치를 훑는 걸 분명히 보았다.

“...닐리아. 잠깐만.”

“어? 왜? 뭔데?”

“푸른 용의 탑 애들이 널 찾더라고. 네가 없으니까 고생이 많나봐.”

“...어? 진짜↗?”

숨기려고 해도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고 귀가 살짝 솟는 것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물론이지. 너 없으면 푸른 용의 탑 애들이 반은 굶어죽는다니까. 검은 거북이 탑 친구들 때문에 바쁜 건 알겠지만 신경 좀 써줘.”

닐리아는 최대한 품위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 이런! 내가 그거까지 생각하진 못했네.”

“그럴 수 있지.”

뒤에서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감탄한 얼굴로 닐리아를 쳐다보았다.

대귀족 가문 출신인 푸른 용의 탑 학생들도 의지하고 존경하는 닐리아는 친구들 사이에서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먼 북방 산맥에서 내려온 그림자 순찰대 출신의 고고한 사냥꾼!

방금 대화를 들으니 존경심만 더 커졌다.

“저번에 무도회에서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잖아. 미동도 안 했어.”

“산전수전 다 겪은 닐리아한테 무도회 같은 건 그냥 애들 장난처럼 보였을 걸?”

“......”

닐리아는 귀를 쫑긋거리며 대화를 듣다가 슬쩍 이한에게 속삭였다.

“그런데 진짜 푸른 용의 탑 애들이 나 찾았어?”

“어...”

“...하여튼 고마워.”

닐리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한에게 감사인사를 표했다.

*         *         *

수요일 아침.

안파곤을 도와 학생들이 부여 마법 중간고사를 보는 걸 마무리 지은 이한은 다음 시험을 준비하러 밖으로 나왔다.

“흠...”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선배가 한 말이 좀 이상해서.”

이한은 옆에서 낚싯대를 던지고 있는 요네르에게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안파곤을 도와서 부여 마법 시험을 감독한 건 친구들 모두 알고 있었던 만큼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시험 끝나고 안파곤이 남긴 말은 좀 이상했다.

“뭐라고 했길래?”

“다른 선배들 사이에서 뛰어난 후배 있다는 소문 돌면 귀찮아지니까 좀 조심하는 게 좋겠다고 하시던데...”

이한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단 이한은 이미 1학기부터 선배들 사이에서 이름을 알린 상태였다.

저번에 디레트 선배나 오골도스 선배가 하는 이야기만 봐도 이한의 이름을 아는 선배들이 은근히 많았던 것이다.

‘이미 늦은 거 아니었나? 어라? 아직 안 늦었나?’

“이러면 혹시 흑마법 학파 선배들만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는데?”

이한은 살짝 희망 섞인 예측을 내놓았다.

흑마법 학파 선배들이야 기본적으로 교우관계가 불행할 테니, 이한에 대해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지 않았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으응?’

요네르는 송어 한 마리를 낚아서 살림망에 던져놓다가 의아해했다.

들은 바에 따르면 부여 마법 학파 선배들도 만만찮게 교우관계가 불행해보였던 것이다.

요네르가 보기에는 흑마법 학파 선배들보다 부여 마법 학파 선배들이 더 인간관계가 좁아보였다.

일단 흑마법 학파 선배들은 다른 학파 친구들과 협력해서 학교에 서리거인의 왕을 소환할 정도의 사교력은 있지 않았던가.

그게 긍정적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부여 마법 학파 선배가 착각한 거 아닐까?’

“요네르. 요네르. 듣고 있어? 흑마법 쪽 선배들만 아는 것 같은데. 그럼 의외로 다른 선배들은 별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어.”

이한은 기뻐했다.

괜히 쓸데없이 필요 이상의 관심을 받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응... 으응.”

요네르는 친구가 기뻐하는 모습에 차마 속으로 생각한 걸 말해줄 수가 없었다.

“워다나즈! 빨리 내려와!”

“?”

탄주어 위에 앉아있던 이한은 고개를 돌렸다.

먼저 검술 시험을 보기 위해 출발했던 흰 호랑이 탑 친구들이 물 속에서 첨벙거리며 헤엄치고 있었다.

“너희 왜 거기서 그러고 있냐?”

“무슨 소리야? 시험 봐야지!”

“...??”

이한은 순간 당황했다.

‘검술을 시험하려면 단단한 바닥 위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강의 항목이 항목인 만큼 당연히 딱딱한 바닥 위에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설마 시험을 물 속에서 보나?”

“어. 우리가 배 뺏어야 한대.”

“빨리 들어와! 너 없으면 힘들어!”

“탄주어나 배 같은 건 치워야 해. 치우고 들어와.”

“...너희가 날 속이는 게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지?”

이한의 의심 섞인 눈빛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울컥해서 외쳤다.

“너 하나 속이자고 우리가 여기 다 이러고 있겠냐?!”

“빨리 들어오기나 해!”

분노해서 외치던 흰 호랑이 탑 학생 중 몇 명은 문득 속으로 생각했다.

‘어라? 워다나즈 놈 한 번 속일 수 있다면 해볼 만한 일 아닌가?’

생각해보니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         *         *

시험을 돕기 위해 찾아왔던 백양목 기사단의 기사들은 완전히 물바다가 된 에인로가드의 모습에 당황했다.

“일단 비를 멈추게 하고 물을 빼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안타깝지만 교장 선생님께서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예? 아닐 텐데요. 예전에 고나달테스 공께서 바닷물을 마르게 한 적도 있었다고 아는데 고작 이 정도 홍수를...”

잉걸델 교수는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이 주제에 대해 오래 이야기해봤자 바깥의 기사들에게 에인로가드 욕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 또한 기사의 덕목.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시험은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하. 실내에서 시험을 보십니까?”

기사들은 그것 참 좋은 생각이라는 듯이 교수를 쳐다보았다.

실내에서 본다면 이런 물난리가 난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검술 실력을 볼 수 있으리라.

“실내도 지금 물난리가 심해서... 여기 배를 하나 준비했습니다.”

잉걸델 교수는 뒤를 가리켰다.

꽤 날렵한 모양새를 가진 늘씬한 함선이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아하! 저 위에서 학생들끼리 검술을 겨루게 하는...!”

“학생들에게 헤엄쳐서 이 배를 뺏어보라고 해볼 생각입니다.”

“......”

기사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뒤에 있던 어린 견습기사들은 수군거렸다.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이 날씨에 헤엄쳐서 배를 뺏으라니 좀...

잉걸델 교수 본인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잉걸델 교수는 밖에서 보기에는 이미 충분히 훌륭한 에인로가드 교수였다.

*         *         *

“...일단 다들 계획을 짜보자고.”

이한은 물 위에 둥둥 뜬 채로 흰 호랑이 탑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셋이 한 조로, 마법을 쓰지 않고, 맨몸으로 헤엄쳐 가서, 정해진 곳에 있는 함선을 한 척 뺏는다.

간단하지만 믿겨지지 않는 시험이었다.

‘잉걸델 교수님이 드디어 에인로가드에 완전히 물들어버리신 건가?’

이한은 안타까웠다.

그래도 잉걸델 교수가 나름 선을 지키던 사람이었는데...

“뭐, 뭐야? 다들 왜 물 속에 있어?”

“들어와. 빨리.”

이한보다 늦게 들어온 학생들은 시험 내용을 듣고 황당해했다.

“배가 어디 있는데?”

“저쪽 바다 위에 암초하고 봉우리 보이지?”

“암초가 아니라 마구간이고 봉우리가 아니라 탑...”

“하여간 저쪽으로 돌면 함선이 있대.”

“그럼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데?”

“...워다나즈 놈 계획 들으려고?”

“뭐라는 거냐!”

듀크마가 믿기 힘들다는 듯이 외쳤다.

“당연히 각자도생이지. 워다나즈 지시를 받을 것 같냐!? 워다나즈도 경쟁자인데!”

“야. 잠깐만! 그래도 말은 듣고...”

“너희들은 그러고 있어라! 가자! 우리가 먼저 깃발을 꽂는 거다!”

듀크마는 자기 조원들을 데리고 힘차게 헤엄치기 시작했다. 이한은 그 뒷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어떻게 이용할지 아직 정하지도 못했는데 저렇게 그냥 가버리다니!’

듀크마와 친구들이 마구간, 아니, 암초를 돌아서 사라지자 순간 침묵이 맴돌았다.

촤촤촤촤촤촥!

그리고 사나운 물의 창이 수면 위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

“컥! 어헉! 어푸! 어푸푸!”

날카롭게 다듬어져있진 않았지만 두터운 물의 창은 한 대 맞을 때마다 학생들을 바다 속 깊이 밀어 넣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듀크마와 친구들은 비명을 지르더니 물 속 깊숙이 잠수했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거리를 벌려 친구들에게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배, 배 위에서 기사들이... 치사하게...!”

배를 기어오르면 갑판 위에서 방해가 들어올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아직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바로 노포(弩砲)로 물 창을 발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듀크마와 친구들은 콜록거리며 물을 토해냈다.

“고맙다. 듀크마. 네 희생 덕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었다.”

“...워다나즈.”

듀크마는 살짝 반성했다.

워다나즈 놈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아닌데도 사사로운 경쟁심이나 감정을 치워두고 일단 직면한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듀크마 본인은 거기에 반발했다가 이런 꼴이라니.

“기왕 먼저 가는 김에 한 번 더 가보자. 이번에는 셋이 흩어져서...”

“...꺼져!!”

듀크마는 발끈해서 툴툴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한은 안타까워했다.

“너무 급했나?”

“그, 그런 것 같다.”

더르규도 차마 이한의 편을 들어주진 못했다.

이한이 별다른 기책을 내놓지 못하자 학생들은 슬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워다나즈. 정말 기책이 없나?”

“마법을 못 쓰면 힘들 것 같은데.”

“정말로?”

“...내가 지금 마법을 못 쓴다고 해서 너희를 못 팰 것 같냐?”

이한의 진지한 질문에 의심하려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움찔하며 물러났다.

“젠장. 워다나즈도 무리인가...”

“하긴 애초에 경쟁하는 시험이지. 좋아. 우리끼리 뚫어보자고.”

학생들이 물 위로 흩어지자 이한도 생각에 잠겼다.

‘수중 호흡도 못 쓰고 환상 마법도 못 쓰고 냉기 마법도 못 쓰고... 어렵긴 하군.’

이한은 자신이 생각보다 정말 많이 마법에 의존했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잉걸델 교수는 이런 걸 가르쳐주기 위해서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학생들을 던진 걸지도 몰랐다.

아니면 그냥 에인로가드 교수들처럼 학생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고 싶어서일 수도 있었고.

“잠깐. 더르규. 모라디는 어디 갔지?”

“그, 그걸 이제 묻는 거냐?”

“아까는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많이 있어서 몰랐지.”

“모라디는 네가 오기 전에 탐색 좀 해보겠다면서 움직였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반대쪽에서 작게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젤이 물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이한은 그 모습에 깨달았다는 듯이 외쳤다.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서 접근한 건가? 길이 너무 멀어서 이쪽으로 오지 못할 거란 방심을 꿰뚫은 거군! 하지만 그래도 감시하는 사람은 있었을 텐데... 아. 알겠다.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면 벌목장 탑 주변이라 물에 떠밀려 온 잔해물들이 많지. 그 잔해물들 사이로 위장해 들어간다면 들키지 않고 접근할 수 있었을 거야. 훌륭해, 모라디! 바로 출발하자!”

지금 다른 학생들이 정면에서 얼쩡거리며 시선을 끄는 상황이 바로 기회였다.

이한은 조금이라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모라디가 온 방향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더르규는 가만히 있다가 얼떨결에 뒤를 쫓았다.

“......”

멀리까지 전력으로 헤엄쳤다가 돌아와서, 거센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이제 막 설명하려던 지젤은 둘의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 새끼...

...진짜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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