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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52화 (452/687)

452화

“이, 이한. 모라디 설명을 좀 듣는 게 낫지 않겠나?”

지젤의 눈빛을 눈치 챈 더르규가 앞에서 헤엄치던 이한을 불렀다.

“아. 그렇군. 놓친 게 있을 수도 있으니. 미안하다. 모라디. 마음이 급해서. 설명해봐라.”

“...이쪽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서 접근하면 벌목장 탑 주변이라 물에 떠밀려 온 잔해물들이 많은데... 됐어. 집어쳐. 개새끼야.”

“?!”

갑자기 욕을 먹은 이한은 황당해했다.

“왜 저러는 거지? 설마 어제 흰 호랑이 탑 놈들 공부 안 한다고 몇 대 쥐어박은 것 때문에 저러는 건가?”

“그건 잘 한 것 같은데...”

더르규는 중얼거렸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워다나즈 놈은 대체 왜 우리를 이렇게 미워하는 거냐’라고 투덜댔지만 더르규가 보기에 이건 이한의 잘못이 아니었다.

잔소리를 듣기 싫으면 그럴 짓을 안 하면 되지 않는가.

“그보다 모라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 듣고 있어.”

“다른 친구들한테도 말해줘야 하지 않나?”

“?”

“?”

이한과 지젤은 뭔 개소리를 하냐는 듯이 더르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둘이 따로 시선을 교환했다.

“출발할까?”

“출발하지.”

“가자. 더르규.”

“아, 아니... 친구들한테...?”

이한과 지젤은 더르규를 당기고 밀면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학생들 체력이 대단하군요.”

함선 위에 있던 백양목 기사단의 기사들은 저 멀리 수평선에서 헤엄쳐오는 학생들을 보고 감탄했다.

흔히들 에인로가드에서 수학한다고 하면 골방에 틀어박혀 마도서만 탐닉하는 병약한 마법사를 떠올리기 쉬웠지만, 역시 학생들은 기사 가문 출신답게 강골이었다.

“에인로가드에서도 잊지 않고 육신을 단련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으음.”

잉걸델 교수는 가만히 있어도 육신이 단련되는 에인로가드의 혹독한 환경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았다.

“발사해라.”

“겨, 경. 이렇게 계속 쏘다가 익사라도 하면...”

“어허. 어디서 적을 동정하느냐?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더냐?”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원래 백양목 기사단의 어린 견습기사들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순수한 기사단 소속과 마법학교 소속이란 차이부터 시작해서, 이번 해에 몇 번이고 경쟁을 펼쳤으니 경쟁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견습기사들도 지금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너무 안쓰러워서 차마 냉정하게 공격하지 못했다.

‘너무하잖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비 오고 풍랑 거친 바다 위를 헤엄쳐 들어오는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이리저리 표류하는 나뭇잎처럼 위태로워보였다.

“그런데 학생들이 마법을 쓰지 않고 맨몸으로 함선 위로 올라올 수 있습니까?”

기사 중 한 명이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흩어져서 접근하는 것까지는 시간이 지나면 되겠지만, 지금 비 오는 날 미끄러운 함선 외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오러의 벽을 깬 기사들이야 초인적인 신체 능력과 마력을 활용해서 외벽을 탈 수 있었지만 학생들 수준에서는 아직 무리였던 것이다.

“물론 힘들긴 할 겁니다. 하지만 이 시험은 단순히 육체적인 능력만을 시험하기 위해 준비한 게 아닙니다.”

잉걸델 교수는 함선 주변을 가리켰다.

파편이나 잔해물처럼 보이는 것들 사이에 장비들이 둥둥 떠있었다.

“아하! 등선용 장비를 뿌려놓으신 거군요!”

“그렇습니다. 학생들이라면 분명 찾을 수 있겠지요.”

“전 또, 교수님께서 그냥 맨몸으로 기어오르라고 생각하시는 줄 알고 오해했습니다! 하하!”

“...제, 제가 그렇게 보였습니까?”

잉걸델 교수는 살짝 당황했다.

에인로가드의 다른 교수들과 달리, 자신은 꽤 합리적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철퍽!

“?”

이야기하던 도중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교수와 기사들은 고개를 돌렸다.

물에 푹 젖은 이한 일행이 함선 갑판 위에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잠깐. 마법 안 쓰고 올라갈 수가 있나?”

“...!”

다른 방향에서 친구들이 물 창 피하기 놀이를 하는 사이 이한 일행은 함선 가까이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함선의 외벽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마법을 쓰지 않으면 손가락을 걸거나 체중을 지탱하기도 쉽지 않아보였다.

더르규는 신중하게 속삭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수님이 이걸 그냥 오르라고 하셨을 것 같진 않다. 다른 곳에 뭔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뭔가 놓친 게 아닐까?”

“더르규. 난 널 존중하지만 넌 지금 1학기 학생처럼 생각하고 있어.”

“맞아. 초이. 정신 차리라고. 여기가 기사단 숙소처럼 보여?”

이한과 지젤은 그런 더르규를 매우 날카롭게 타박했다.

더르규는 억울했지만 둘이 맞겠거니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 생각에는... 마력 활용으로 기어오르는 게 답일 것 같다.”

“마력 활용?”

“그래. 혹시 엥게 가문의 검술에 대해 기억하나?”

“워다나즈. 너는 몰라도 나하고 초이는 기사 가문 출신이야.”

지젤은 어이없음을 시선에 담아서 던졌다.

엥게 가문.

기사 가문 중에서도 흡검(吸劍) 계열의 검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들이었다.

이 흡의 성질을 이용하는 묘리는 이한도 대결에서 배워 나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지 않았던가.

“검술에 능숙하게 쓸 정도로 완벽하진 않지만, 그 정도로도 기어오르기에는 충분하지. 이걸 노리고 함선을 탈취하라고 하신 걸 거야.”

“하지만... 마력 활용이 그렇게 쉽지 않을 텐데.”

지젤의 눈썹이 둥글게 휘었다.

말이 마력 활용이지, 저건 마력의 성질을 특이하게 바꾸는 변환이었다.

논리와 이성과 법칙으로 연구된 마법사의 마법도 아니라 본능과 감각으로 변환시켜야 하는 기사의 기술인 만큼 그 난이도는 훨씬 높았다.

“그게 이 시험의 목표라고? 정말 그럴까?”

“모라디. 잘 생각해봐. 여긴 에인로가드잖아.”

“......”

분하지만 지젤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여기까지 헤엄쳐왔는데 교수가 뭘 못 시키겠나 싶기도 했고.

“...좋아. 워다나즈. 한 번 말해봐.”

이한은 친구들에게 최선을 다해 흡의 묘리를 설명했다.

몸 정중앙 깊숙한 곳에서 마력을 끌어내 순환을 시키되, 점성의 성질을 떠올리면서 변환시키고 동시에 마력을 방출시켜서...

“원리는 원소 마법과 비슷해. 심상으로 성질을 변화시키는 건데 이걸 순환시키면서 유지해야 하는 거지. 그러면서 동시에 방출도 좀 해야 하고.”

“......”

“......”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설명에 둘은 질색했다. 더르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령 같은 건 없나?”

“어... 음. 순환시키는 걸 포기하고 그냥 변환 방출만 집중해도 되긴 해.”

“정말인가? 잠깐. 그러면 마력이 너무 낭비가 심하지 않나?”

“응... 그렇지.”

“......”

“......”

다시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지젤은 포기하고 말했다.

“오르기나 해. 어떻게든 따라붙을 테니까.”

그 후로 몇 번의 시도가 있었다.

지젤이나 더르규는 학년에서 손꼽히는 인재답게 흡의 성질을 가진 마력으로 변환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걸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유지하지는 못했다.

적어도 함선 위에 타고 오를 때까지는 유지해야 했던 것이다.

“안 되겠다. 이러다 들키겠어. 이거 받아라.”

이한은 외투를 벗어서 밧줄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젤에게 던졌다.

지젤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이지?”

“...서로 묶어서 지탱하자는 생각이지.”

“아.”

지젤은 머쓱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밧줄을 몸에 묶었다. 옆에 있던 더르규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괜히 말 안 해서 다행이다.’

사실 더르규도 이한이 모라디를 묶어서 미끼로 쓰려는 줄 알았던 것이다.

“다시 가보자. 셋, 둘, 하나... 가자!”

콱!

이한은 도끼로 찍듯이 손을 후려쳐서 함선 외벽에 붙였다.

원래라면 자연스럽게 미끄러져야 할 상황이었으나 손에서 방출되는 마력이 단단하게 몸을 고정시켰다.

‘된다!’

이제까지 했던 시도들 중에 가장 안정적이었다.

이한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함선의 외벽을 기어올랐다.

쩌적-

“......”

마력을 너무 강하게 방출했는지 판자조각이 떨어져 나오자 이한은 기겁했다.

마력 고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순환에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이걸 보니 필요성이 느껴졌다.

‘힘을 줄여야 한다.’

이한은 길게 심호흡하며 마력을 몸 안에서 순환시켰다. 안정적인 흐름과 함께 손끝에서 방출되는 마력량이 조절되기 시작했다.

이한은 신기함을 느꼈다.

‘내가 실력이 늘었나?’

예전에 검술 강의에서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흐름이라니.

하긴 생각해보니 그 뒤로 수많은 실전을 겪었던 만큼 이런 순환에 익숙해졌어도 놀라울 것 없었다.

게다가 이한은 어느 순간부터 순환은 포기하고 무식한 마력량만 믿은 채 방출만 해댔으니...

“...!”

이한 밑에서 올라오던 지젤은 깜짝 놀랐다.

위에 있는 워다나즈의 전신에서 미약한 마력광(魔力光)이 번뜩이고 있었던 것이다.

기사들이 오러를 쓰기 전 호흡을 가다듬고 마력을 끌어올릴 때나 보이는 현상을 고작 지젤 또래의 소년이 보여주다니.

저 현상을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워다나즈는 지금 오러의 벽 가까이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깨달음만 얻으면 벽을 넘을 수 있는 상황!

지젤은 한없이 복잡한 기분을 느껴야했다.

질투가 나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사로서 응원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저런 몰입 상태에 빠지는 건 어마어마한 행운이었다. 여기서 저 상태에 얼마나 머무르는지에 따라 벽을 깨는데 걸리는 시간이 달라질 정도로...

탁!

“다 됐다! 올라와!”

이한은 갑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마력을 풀고 몸을 던진 다음 밧줄을 끌어올렸다.

언제 들킬지 모르는 만큼 서둘러서 친구들을 끌어올려야 했던 것이다.

물론 방금 보여줬던 마력광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야...!!! 이 미친 새...!!”

지젤은 정말 기절할 뻔했다.

지금 이 미친 마법사 소년이 대체 무슨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란 말인가?

“너 지금...! 너...!”

“왜 그래? 미쳤어?”

“■□○●☆◆!!!”

“조용히 해. 들키겠다! 더르규. 올라와.”

이한은 재빨리 더르규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자세를 숙여서 접근했다. 다행히 아직 갑판 위의 사람들은 거리가 멀어서 눈치를 못 챈 모양이었다.

‘고맙다. 흰 호랑이 탑 놈들.’

이한은 우정에 감사하며 가까이 접근하려고 시도했...

“...등선용 장비를 뿌려놓으신...”

“...학생들이라면 분명 찾을 수 있겠...”

“?”

“???”

이한과 지젤, 더르규는 동시에 침묵했다.

더르규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친구들을 쳐다보았다.

철퍽!

이한은 외투를 집어던졌다. 어차피 갑판 위의 견습기사들과 싸워야 하는 만큼 몸을 가볍게 해야 했다.

“아, 아니 왜 그쪽에서?”

“...이쪽으로 돌아서 오는 게 정석이 아니었... 에이. 됐다. 모라디. 왼쪽을 맡아라. 더르규. 오른쪽을 부탁한다!”

이한은 더 말해봤자 친구들 사기만 떨어질 것 같아서 바로 공격을 개시했다.

지젤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바로 움직였다.

‘우회하는 게 정답이 아니었나?’

‘당연히 우회하라고 해놓은 줄 알았는데...’

이한은 씁쓸해하며 달려나갔다.

함선 아래쪽으로 노포를 조준하고 있던 기사단의 견습기사들이 깜짝 놀라서 자세를 갖췄다.

“너희 대체 어떻게 돌아서 온 거냐!? 아니, 그보다 어떻게 기어오른 거야? 장비도 없잖아!”

“......”

이한은 불필요한 감정낭비대신 최대한 효율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커... 커헉. 쿨럭, 쿨럭! 쿨럭쿨럭!”

이한은 폐병 걸린 환자처럼 기침을 했다. 그 모습은 바다 속에 오래 머무른 탓에 저체온증에 걸린 환자 같았다.

“워다나즈! 괜찮냐! 제가 이거 위험하다고 했잖...”

“멍청한 놈! 적을 두고 뒤를 보다니!”

견습기사는 돌아서서 기사를 부르다가 호통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방금까지 죽을 것처럼 기침을 하던 이한이 사납게 달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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