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54화 (454/687)

454화

‘분명 사악한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이한은 해골 교장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

해골 교장이 물에 잠긴 에인로가드의 전경을 둘러보며 학생들의 고통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는 말을 믿느니 차라리 가이난도가 일주일 내내 공부했다는 말을 믿을 것이다.

대체 무슨 시험을 준비하고 있길래?

파지지지지직-

...뭐하냐?

해골 교장은 자신이 주변에 둘러놓은 마법 방벽 몇 겹을 뚫고 들어오는 제자의 모습에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지금 작별 인사를 해놓고 바로 헤엄쳐서 접근한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뭐 저런 무식한 놈이.’

나름 정교하게 짜놓은 마법 장막을 그냥 마력을 무식하게 휘둘러 뚫은 게 더 황당했다.

마력이 저 정도로 많으니 저런 무식한 방법도 효과적인 방법이 되는 것이다.

에인로가드 교수들이 저런 무식한 방법을 가르쳐줬을 리는 없을 테니 혼자서 익혔을 텐데(만약 누가 가르쳐줬다면 징벌방에 가둬야 했다), 새삼 참 어처구니가 없는 놈이었다.

워다나즈 가문 출신 맞나?

“밤공기가 좋아서 수영 좀 했습니다.”

내 마법을 부숴가면서?

“걸리적거리는 게 있어서 힘을 좀 줬는데 교장 선생님의 마법인 줄은 몰랐습니다.”

이한은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뻔뻔하게 대답했다.

아쉽게도 해골 교장은 생각보다 훨씬 더 철저했다.

본인을 중심으로 꽤 광범위한 영역까지 마법 장막들을 몇 겹 쳐놓아 침입을 방지하다니.

멀리서 지켜보는 것도 막겠다는 철저함이 느껴졌다.

나를 습격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지 않나? 그래, 너라면 슬슬 시도해 볼 수도 있겠군.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이십니까? 저는 한 번도 교장 선생님을 공격할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제자로서 스승을 공격할 생각을 한다면 그게 사람 새끼겠습니까?”

네 두 번째로 큰 장점은 스승을 존경하는 바로 그 충성심이다. 하긴 네가 습격하려면 이렇게 허술하게 하진 않았겠지.

해골 교장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창고에 숨겨진 보물을 탐내서 쫓아온 거겠지? 하여간 학생 놈들은 모두 다 도둑 새끼라니까. 눈만 돌리면 내 창고를 털려고 혈안이 됐지!

‘그럼 식사와 이부자리와 실험 재료를 좀 보장해주시던가...’

이한은 속으로 욕했다.

자기가 반쯤 유도해놓고!

안됐지만 오늘은 창고를 관리하려고 온 게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오신 겁니까?”

말했잖느냐. 에인로가드가 물에 잠겨서 학생들의 고통을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학생들을 도와주러 온 거다.

“......”

이한은 ‘하!’하고 비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했다.

‘정말 성의 없게 거짓말을 하시는군.’

“그럼 저도 옆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

해골 교장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것처럼 이한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한은 떠보듯이 물었다.

“제가 있으면 불편하십니까?”

불편하진 않고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때가 있긴 하지.

“......”

농담이다.

농담 같진 않았지만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학생들이었다면 헛짓거리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했겠지만 너야 뭐... 괜찮겠지. 그래. 옆에서 도와봐라.

해골 교장은 순순히 수락했다.

생각해보니 이한은 시험공부를 따로 할 것도 없으니 지금 하려는 일들을 미리 봐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이한은 그 수락에 살짝 당황했다.

‘뭐지? 거절하지 않다니.’

완전히 거절하진 않더라도 방해받은 해골 교장이 툴툴댈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수락하다니.

‘다른 함정이 있는 건가? 내가 옆에서 보더라도 알아볼 수 없는 그런 건가? 혹은 내가 알아보더라도 아무 의미가 없는...’

이한이 골똘히 몰두하자 해골 교장이 옆에서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돕는다면서 뭐하냐?

*         *         *

해골 교장은 이한이 타고 있는 나룻배에 염동력 갈고리를 걸어 빠르게 따라오게 만들었다.

원래라면 노를 저어 움직였을 나룻배가 해골 교장의 뒤를 쫓아 빠르게 내달렸다.

제국의 사람들은 이 영지가 위대한 마법장벽으로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아닙니까?”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다.

에인로가드는 그 자체로 거대한 마법의 현존이었다.

제국 전역에서 손꼽힐 정도로 마력의 흐름이 짙은 장소에 제국의 역사보다 더 길게 존재한, 고대 마법의 원류이자 적통.

그 긴 역사 동안 한 번도 침몰한 적이 없었던 만큼 제국 사람들이 환상을 품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마법이 그렇게 쉽고 편리했다면 마법사들이 인생을 바치지도 않았을 거다.

에인로가드에 걸린 마법들은 해골 교장도 전부 파악하지 못할 만큼 복잡하고 많고 강력했다.

이런 마법들은 가끔 서로 충돌해서 예상치 못한 현상을 만들어내고 더 가끔은 구멍을 만들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한다고 잘 굴러가는 일은 없다. 모든 일은 관리가 필요하지. 검은 닦지 않으면 녹이 슬고, 옷은 돌보지 않으면 낡고 해지지. 에인로가드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해골 교장의 업무 중 하나는 드넓은 에인로가드 곳곳을 순찰하고 확인하며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고치는 것이었다.

가끔은 탈주하는 학생도 붙잡고...

게다가 지금처럼 정령들의 홍수 같은 거대한 현상이 벌어지고 나면 에인로가드의 마법질서는 더욱 더 혼란스러워지고 괴팍해지기 마련.

이런 순찰과 수리가 특히 필수적이었다.

부서지거나 금이 간 건물을 보거나, 혹은 평소와 다른 걸 발견하면 말하도록.

“......”

이한은 해골 교장을 매우 수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설명이 너무 그럴듯해서 오히려 더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논리적으로 말은 된다. 하지만 수상하다.’

중간고사 기간에 둥둥 떠서 돌아다니며 음험하게 눈빛을 빛냈던 게 과연 우연의 일치란 말인가?

이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 그러냐?

“교장 선생님께서 이렇게 헌신하시는데, 그 헌신을 우습게 보는 바깥 사람들의 시선이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말이 참으로 옳다. 중요한 게 뭔지도 모르는 머저리 새끼들이지.

해골 교장은 동의하며 눈동자를 번뜩였다.

그러자 물속에서 벽돌들이 스스로 붙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탑 하나가 완성되었다.

이런 멍청한 3학년 놈들. 암흑 원소 차원의 존재를 소환해놨으면 잘 가둬놓을 것이지. 도망쳐버렸군.

“......”

이한은 귀를 의심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기껏 지은 건물이 아깝긴 하지만... 다음 학년들이 잘 쓰겠지. 참. 너도 소환수를 가두고 싶으면 이 봉쇄탑을 기억해놓도록 해라.

해골 교장은 이한이 일을 돕는 만큼 자상하게 조언해줬다.

물론 내용은 별로 자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너무 약한 놈들까지 여기에 가두진 말고. 날개 네 장, 다리 여섯 개, 무게는 성벽 주춧돌 여덟 짝 정도? 이 이상만 가두는 게 좋겠다.

“아. 예.”

저건 네가 고쳐볼 수 있겠다. 고쳐봐라.

“?”

이한은 해골 교장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고 눈을 깜박였다.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원래 뭐가 있었습니까?”

아. 미안하다. 네 눈에는 안 보이겠군.

해골 교장은 허공에서 세 바퀴 빙글 돈 다음 ‘모든 학생들은 무쇠대가리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허공에서 고풍스럽고 납작한 형태의 석조주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 금 간 게 보이겠지? 한 번 수리해봐라.

“이건 무슨 건물입니까?”

이한은 나룻배를 석조주택 가까이 붙이며 물었다.

학교에서 자주 보이는 건축물들은 보통 탑(교수들이 많이 지었다)이나 오두막(학생들이 많이 지었다)이었다.

이런 높이가 낮고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건축물은 에인로가드에서 그리 유행하지 않았다.

고풍스럽고 아름답긴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실용성이었으니까.

당장 나무와 가죽으로 대충 세운 오두막도 마법을 쓸 줄 아는 마법사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전에 똘똘한 학생 하나가 몬스터 키워보겠다고 지은 건물이었는데...

“어, 몬스터가 살기에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만.”

예쁜 건물이긴 했지만 몬스터에게 중요한 건 넓고 뛰어다니기 좋은 공간이었다.

그렇지. 그래서 정작 지어놓고 별로 쓰지도 않았다.

‘별로 안 똘똘한 것 아닌가?’

그 뒤로는 이제 후배 학생들이 대대로 다른 용도로 쓰고 있지. 몇 번 바뀌었을 거다. 십 년 전에는 격구 클럽이 클럽하우스로 썼고, 오 년 전에는 마법사 카드 클럽이 대회를 열었었나... 아닌가? 대회 열기 전에 결투로 불이 났었나? 별로 중요하진 않지. 지금은 외부에서 제대로 ‘초대받은’ 손님들의 숙소로 쓰고 있지.

해골 교장은 ‘초대받은’에 강점을 뒀다.

밖에서 오는 손님들이 정말 싫은 모양이었다.

하여간 숙소로 쓰는 만큼 수리는 제대로 해둬야 한다. 원소 마법 중에 흙, 나무, 암석은 다 마스터했겠지?

“아니요?”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한이 번개암흑화염냉기등등의 고급 원소로 고통 받는 걸 알면서 저딴 말을 하다니?

저런. 배그렉한테 말해야겠군.

“......”

농담이니까 그렇게 노려보지 마라. 나무나 암석은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겠지. 1학년 때는 쓸 일이 없을 테니까. 흙은?

“기본적인 것만 할 줄 압니다.”

형태 변환, 유지... 혹시 분해도 할 줄 아나? 분해가 중요한데.

“예.”

고맙게도 살코한테 예전에 <투탄타 가문의 바위 분해>를 배운 적이 있었다.

완벽하게 터득한 건 아니었지만 마력 덕분에 쓸 수는 있었다.

그럼 기본적인 게 아니잖느냐, 이 무쇠대가리야.

해골 교장은 이한을 타박했다.

겸손한 건 마법사에게 좋은 습관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짐승새끼처럼 먹고 자고 노느라 바쁘겠지만 2학년이 되면 건축할 일이 제법 많을 거다. 지금 익혀둬서 나쁠 게 없지. 그런데 이건 변환 마법에 대한 지식도 어느 정도 필요한데... 아. 쓸데없는 걱정을 했군.

해골 교장은 이한이 듣고 있던 학파들을 떠올리고 방금 말을 취소했다.

“어, 변환 마법은 아직 자신이 없...”

조용히 듣기나 해라.

해골 교장은 앞으로 이한이 하는 말의 95%는 엄살이라고 치부하기로 했다.

*         *         *

흙 원소 마법은 난이도가 꽤 쉬운 편했다.

어느 마법사든 흙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만큼, 친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화염이나 물과 달리 흙은 가장 가까이서 부르기도 쉬웠다.

흙을 불러오고, 형태를 쌓고,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등 이런 마법들은 다른 학생들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복합적인 소재를 사용해 만들어진 건축물을 수리하려면 단순히 흙뿐만이 아닌 다양한 요소들도 통제할 줄 알아야했다.

해골 교장은 암석을 모래로 변환시키고, 모래를 암석으로 변환시킬 수 있도록 이한을 밀어붙였다.

천을 강철로 변환시키는 건 어떻게든 익힌 이한이었지만 단단한 바위를 모래로 변환시키는 건 역시 쉽지 않았다.

해골 교장은 벽에 막힌 제자를 돕기 위해 자갈을 던지고 모래를 뿌렸다.

느껴라! 느끼는 거다! 방금 변환은 반응이 늦었다. 방금 변환은 집중이 흩어졌다! 마력을 더 때려부어라. 어차피 이 마법은 좀 남아도 된다!

이한은 얼굴을 때리는 자갈과 모래에게서 한시라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마법을 익혔다.

그리고 정말로 성공했다.

“...!”

석조주택의 파손된 부분을 빠르게 형태 변환시켜서 실금을 사라지게 만들자, 이한은 갑자기 스스로한테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왜 맞기 전까지는 성공하지 못하는가?

‘이런 방식으로 계속 성공하는 게 맞나? 효율이 좋긴 하지만...’

잘했다. 그 마법들은 꽤 유용하게 써먹을 거다. 암석은 그대로 주무르기에는 꽤 귀찮은 놈이라...

‘확실히 어느 석공 길드를 가든 용돈은 벌 수 있겠군.’

두 마법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했다.

“다음은 어딥니까?”

흐음. 호숫가 쪽에 선착장이 있었는데 거기도 피해가 있을 것 같군. 그쪽으로 가보자.

“예. ...?”

고개를 끄덕이고 가려던 이한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

‘정말 수리만 하나?’

사악한 음모나 시험 준비 같은 건 정말 안 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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