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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55화 (455/687)

455화

흔히 주문만 잘 외울 줄 알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얼간이들이 있다. 굳이 누구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힌트를 주자면 네 학년의 황족 중 하나지.

“그냥 가이난도라고 하시죠?”

주문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지식이다. 그저 바윗돌만 쌓아올리면 건물이 된다고 생각하는 마법사가 만든 탑을 생각해봐라. 잠깐이야 마력 덕분에 그 모습을 유지하겠지만 그 마력이 얼마나 오래 남아있겠느냐?

“흠.”

이한은 이제까지 자신이 썼던 마법들을 떠올려봤다.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이한은 압도적인 마력량으로 지속 시간을 크게 늘리곤 했다.

‘얼마나 갈 수 있지?’

...수사학적인 질문이었다. 계산하라고 한 게 아니라. 이 어처구니없는 놈아.

해골 교장은 황당하다는 듯이 제자를 쳐다보았다.

방금 한 질문은 ‘마법은 세계의 질서를 의지로 뒤트는 행위인 만큼 오만해지지 말고 최대한 질서를 이해하고 순행해야 한다’란 뜻으로 한 질문이었지, ‘질서를 무시하고 마력량만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로 한 질문이 아니었다.

“아. 그렇군요.”

모래, 바위, 나무... 네가 지금 다루는 원소들은 기초적인 것들이고, 더 나아가면 같은 흙을 쓸 때도 자갈이냐 모래냐 점토냐로 나뉘고, 화강암이냐 석회암이냐 현무암이냐로 나뉘고...

이한이 다루는 흙 원소 마법과 모래-암석 변환은 마법건축에서 기초적인 마법이었고 깊게 들어가면 다양한 재료의 성질을 파악하고 하중과 응력을 이해할 줄 알아야했다.

어떻게 안의 공간을 파악하고 대들보를 넣고 지붕의 무게를 분산시키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이한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오늘 방금 말해주신 것들을 응용할 일이 있습니까?”

심심풀이로 말하기에는 너무 전문적이었던 것이다.

오늘은 없겠지?

“?”

하지만 넌 어차피 2학년이 되면 다 들을 것 아니냐. <기초 마법건축학>이나 <기초 마법재료학> 같은...

“아닙니다.”

이한은 나무를 피어나게 하던 걸 멈추고 정색했다.

*         *         *

석조주택의 금 간 부분을 수리하고, 선착장의 날아간 지지대를 새로 피어나게 한 나무로 대체하고, 기타 파손을 열심히 수리하고...

규모가 크면 해골 교장이 나섰고 작으면 이한이 처리했다.

다 됐군.

“......”

이한은 매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쯤 되자 슬슬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젠장. 진짜 보수공사 하러 나오신 거였군.’

사악한 음모나 수상한 시험이나 숨겨놓은 보물창고 같은 건 없었던 것이다.

해골 교장은 이한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오만한 녀석 같으니. 마법 몇 개 실패했다고 그런 표정 지을 거 없다.

오늘 이한이 익힌 흙 원소 마법과 변환 마법들만 해도 충분한 성취였다.

해골 교장은 다른 교수들이 얼마나 이한을 쥐어짜는지 잘 알았다.

여기서 더 밀어붙이지 않아도 다른 교수들이 알아서 괴롭힐 터.

‘휴게실에 써놔야겠군.’

“예... 감사합니다...”

고생했으니까 먹을 것 좀 가져가라.

해골 교장은 눈짓 한 번으로 허공에서 식량을 불러왔다.

맥주와 꿀술이 꽉 찬 둥그런 나무통들과, 방금 주방에서 갓 만든 따끈따끈한 만찬들.

이한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절대 지금 먹지 말아야겠군.’

에인로가드의 규칙 중 하나는 해골 교장이 주는 음식을 절대 시험 기간 때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푸짐한 만찬이 따끈따끈한 것도 매우 의심이 갔다.

배고픈 학생들이라면 알면서도 아까워서 먹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의도가 분명했다.

이한이 넘어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해골 교장이 혀를 찼다.

설마 학생들에게 나눠주지 않고 너만 독점할 생각이냐?

“억울한 학생이 있다면 결투로 승부를 보라고 하겠습니다.”

......

해골 교장은 이한을 욕했다.

마법 좀 잘한다고 다른 학우들을 억압하다니.

‘저런 못된 놈!’

그러는 사이 멀리서 데스 나이트 하나가 달려왔다.

-주인님.

그래. 작업이 끝났으니 슬슬 돌아가겠다. 교수들은 잘 준비하고 있더냐?

-예.

시험 기간에는 학생들만 괴로운 게 아니었다.

교수들도 시험을 준비하느라 의외의 괴로움이 있었던 것이다.

해골 교장은 몇몇 전과가 있는 볼ㄹ... 교수들은 따로 휴게실로 불러서 해골 교장에게 먼저 내용을 검사를 받도록 명령했다.

별다른 일은 없었고?

-잉걸델 교수께서 매우 낙심하고 계십니다. 혹시 포상으로 금화를 내리셔서 달래신다면?

누가 옛 시대의 기사 아니랄까봐 고리타분한 소리를 하는구나. 요즘 마법사들은 금화를 내린다고 기뻐하지 않는다.

‘?’

이한은 뭔 개소린가 싶었지만 해골 교장은 당당했다.

그래서 왜 낙심한 거냐? 홍수는 언젠가 끝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라. 학생들 손에 물 좀 묻는다고 죽기야 하겠느냐.

“......”

이한은 해골 교장의 뒤통수를 공격하지 않기 위해 꾹 참아야했다.

-그게 아니라...

데스 나이트는 이한을 보더니 잘 됐다는 듯이 가리키며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무아지경에 빠졌던 일과, 그 무아지경을 다시 재현하기 위해서 함선을 기어올랐다는 일을 설명하자 해골 교장은 그야말로 빵 터졌다.

크핫핫핫핫핫핫핫핫!

-......

“......”

데스 나이트와 이한이 해골 교장을 빤히 쳐다보았지만, 해골 교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었다.

웃고 웃고 또 웃었다.

그리고 마치 세상이 끝날 때까지 웃...

아. 미안하다. 너무 웃겨서. 어쩐지 피곤해보이더니 그런 짓을 했군. 잉걸델 교수도 참 성실한 사람이야. 내가 있었다면 도와줬을 텐데.

“정말 아쉽습니다.”

조심해서 돌아가라. 다음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으면 말해보고.

‘상대는 교장이다. 상대는 교장이다.’

이한은 모라디를 욕하고 해골 교장을 욕하면서 인내했다.

저 도발에 절대 넘어가면 안 됐다.

‘힘이 부족해서인가? 내게 힘이 부족해서?’

*         *         *

“......”

파라라라락!

희미하게 들리는 책장 넘어가는 소리. 눈앞에 펼쳐진 생소한 풍경.

해골 교장이 준 검은 책이 페이지를 드러낸 채 공중에 떠있었다.

“아니...”

이한은 살짝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무리 이한이 잠들기 전에 ‘힘이 부족하다’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찾아올 줄이야.

“미안한데 내가 오늘은 좀 쉬어야 하는데.”

엄살이 아니라 정말로 쉬어야했다.

당장 지금 하루 내내 바다 위에서 헤엄치고 해골 교장 따라다니면서 에인로가드 보수 작업을 하지 않았던가.

내일도 시험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휴식은 필수적이었다.

파라락!

그러나 이한이 뭐라고 말하든 간에 검은 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3서클 마법, <고나달테스의 끓어오르는 힘>.

부여 마법, 그 중에서도 강화 마법 계열에 들어가는 마법이었다.

무생물체가 아닌 생물체에 거는 마법인 만큼 난이도가 더 있었고, 무엇보다...

‘집중형은 실패 리스크나 부작용이 심한 걸로 알고 있는데.’

강화 마법은 부여 마법보다 더욱 더 시전을 조심해야 했다.

부여 마법은 실패해도 아티팩트나 재료가 부서지는 걸로 끝났지만, 강화 마법은 실패하면 팔다리가 부서질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중에서도 집중형 강화 마법은 더욱 위험했다.

전체적인 육체의 기능을 올리는 게 아니라 특정 기능만 집중해서 올리는 마법.

당연히 성능은 훨씬 강력했지만 그만큼 리스크가 있었다.

그런 효과를 얻기 위해 집중한 만큼 실패할 경우 반작용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물론 성공해도 반작용이 있을 때도 있었고...

“그래도 교장 선생님께서 만드신 마법이니까 뭔가 다른가?”

?

“......”

책은 입이 없었지만, 이한은 방금 책이 팔락거리는 동작에서 ‘그게 뭔 소리야?’하는 의사를 느낄 수 있었다.

“...연습이나 하자. 나중에 교장 선생님에게 주먹을 날릴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         *         *

아침.

이한은 침낭에서 일어났다. 도서관 천장이 서서히 밝아지고, 바리케이드 너머로 빛이 어둠을 밀어내는 게 눈에 들어왔다.

검은 책한테 얼마나 시달렸는지 팔다리가 아직도 끊어지는 환각통이 느껴졌다.

<고나달테스의 끓어오르는 힘>은 예상했던 대로 실패할 경우 화끈하게 고통을 보여줬다.

‘진짜 강화 마법은 건드리지 말아야겠다.’

이한은 왜 강화 마법사들이 비싼 은화를 받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강화 마법사들이 왜 가끔 멱살을 잡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용병이나 모험가들이 급해서 마법을 받아도, 이런 부작용이 있으면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란 게 원래 급할 때와 급하지 않을 때가 다르지 않던가.

“가이난도. 일어나라. 아침 먹어야지.”

이한은 옆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가이난도를 발로 툭툭 쳤다.

평소에는 아침 이야기만 해도 벌떡 일어나는 가이난도가 오늘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잠에 푹 빠져있었다.

‘뭐지?’

이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툭-

지팡이로 가이난도를 뒤집자 입가에 초콜릿이 있었다.

어제 교장 선생님이 준 만찬 중에는 분명...

‘초콜릿 케이크가 있었지.’

이한은 친구들을 불렀다.

그리고 지금 못 일어나는 놈들은 모두 거꾸로 매달아놓으라고 말했다.

“밑에 <나는 밤에 먹지 말란 음식을 훔쳐 먹었습니다>라고 쓰면 되지?”

“그래. 깨어나도 바로 내려주지 말고 조금 더 있다가 내려줘.”

“걱정하지 마라. 워다나즈. 나는 이런 체벌에 아주 능숙하다.”

살코는 맡겨두라는 듯이 눈을 찡긋했다.

규율이 강한 길드에서는 도둑들을 용서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벌백계지. 마음아파하지 마라. 워다나즈.”

“딱히 마음아파하진 않았...”

-아침에 시험 있는 사람들은 빨리 나와! 탄주어가 기다린다!

도서관 밖에 선착장에서 친구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다 된 거 아니야? 출발하자 슬슬.”

“잠깐. 워다나즈가 안 왔어.”

“오전에 시험 없는 거 아니야?”

“아냐. 워다나즈는 무조건 있어. 걔는 시간이 다 꽉 차있거든.”

“......”

이한은 선착장에서 나누는 대화를 듣자 갑자기 씁쓸해졌다.

친구들이 이한을 보고 나누던 대화를 멈추는 걸 보니 더더욱 그랬다.

“가자.”

“그, 그래. 워다나즈.”

“어제 고생 많이했는데 몸은 괜찮냐? 모라디가 너 걱정하던데.”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방금 말을 꺼낸 흰 호랑이 탑 학생을 탄주어 위에서 밀어버렸다.

첨벙!

“푸헉! 뭐, 뭐하는 거야!”

“미안하다. 잠을 적게 자서 발이 미끄러졌다.”

*         *         *

이한은 자신보다 더 씁쓸한 사람이 에인로가드에 있을까 생각하며 강의실 문을 지팡이로 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한보다 더 씁쓸해 보이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볼라디 교수였다.

‘아니?’

이한은 놀랐다.

사람 죽일 때도 무표정하게 죽일 것 같은 미치광이 교수가 저렇게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니.

“교수님?”

이한은 뗏목 위에서 볼라디 교수를 불렀다. 물 위에 서있던 볼라디 교수는 이한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번 중간고사는...”

“......”

온갖 위험과 시련을 극복해 온 에인로가드의 수석도 지금만큼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지?

“...없다.”

“!!!!!!!!!!!”

이한은 깜짝 놀랐다.

에인로가드가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이번보다는 덜 놀랐을 것 같았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래.”

“어째서입니까?”

“홍수 때문에.”

볼라디 교수는 어지간히도 고통스럽고 괴로웠는지 느릿하게 설명했다.

원래 중간고사를 대비해 준비해놨던 지하 던전이 있었다.

이한이 여러 학파를 다 듣는 만큼, 그 학파의 마법들을 모두 종합해서 만들어 놓은 아주 재밌고 유익한 종합 지하 던전이었다.

‘물의 정령이시여. 감사합니다.’

이한은 앞으로 물의 정령을 만나면 감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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