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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56화 (456/687)

456화

사실 중간고사를 꼭 봐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고정관념이긴 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거나 교수의 생각이 있다면 중간고사를 다른 과제로 대체하거나 기말고사에 합쳐서 봐도 되는 것이다.

물론 해골 교장은 쉽게 허락해주지 않긴 했다.

기본적으로 에인로가드의 교수들은 워낙 양심 없는 버ㄷ, 작자들이 많아서 풀어주면 ‘귀찮은데 지팡이 던져서 제일 멀리 날아간 학생을 A+로 할까?’같은 시험이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정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준비된 던전이 침수됐다는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교수님.”

“그렇겠지.”

‘뭘 그렇겠지야.’

볼라디 교수는 이한도 진심으로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이한은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교수가 고통스러울 때 제자가 옆에서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 건 ‘저는 간이 부었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한은 최대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학년 수석을 뺏긴 상상을 하는 거다. 해골 교장이 옆에서 비웃고 있군.’

“바실리스크는 어떻지?”

달그락!

이한이 옆에 내려놓은 배낭 안에 들어있던 바실리스크 알이 공포에 떨어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 많이 돌봐줘야 해서 이한이 배낭에 넣어서 데리고 다녔는데, 그 탓에 미친 마법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아직 좀 더 걸리지 않겠습니까?”

“번개걸음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다. 성장을 촉진시키는 비약이 있다고.”

“성질이 난폭해지고 괴팍해지는 부작용이 있잖습니까.”

번개걸음 교수와 친한 만큼 이한도 들은 적이 있었다.

-너는 동물들을 잘 다루고 연금술에 능한 만큼 나중에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제가 동물을 잘 다룹니까?

-너는 동물들에게 겁을 잘 주고 연금술에 능한 만큼 나중에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

-희귀한 동물의 새끼들을 싼 값에 사와, 온갖 비약으로 성장을 촉진시켜서 팔아먹겠다는...

-그런 방법이! 마법이란 참으로 놀랍습니다!

-...끝까지 들어라. 원래 마법이란 건 세상의 규칙과 섭리를 바꾸는 일. 무턱대고 그랬다가는 끝이 좋지 않다.

번개걸음 교수는 예전에 목장에서 만티코어를 대량으로 길러 기사단에 팔려고 했던 어리석은 드워프 연금술사 이야기를 해줬다.

안 그래도 사나운 야성을 가진 몬스터들에게 성장의 비약을 먹이는 건 지나칠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다.

어느 순간 몬스터들이 폭발하면 그 분노는 어디로 향하겠는가?

-혹시 우레걸음 교수님이십니까?

-...아니야! 우레걸음을 그렇게 생각했던 거냐!?

하여간 이렇게 위험한 일인 만큼 이한은 바실리스크에게 비약을 먹일 생각이 없었다.

바실리스크 알이 이한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누가 자신을 지켜줄 사람인지 명확하게 느낀 것이다.

“난폭해지고 괴팍해지면 좋지 않나?”

볼라디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차피 싸울 텐데?

“......”

......

이한은 알이 분노에 차서 볼라디 교수를 노려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확신할 수 없었지만 왠지 그랬다.

“냉정하고 침착해야 더 강력한 적수 아니겠습니까.”

“과연... 그런 싸움을 더 선호하나.”

“제가 그런 싸움을 더 선호한다는 게 아니라... 젠장. 선호합니다.”

이한은 차마 바실리스크 알을 버릴 수가 없어서 인정했다.

알이 너무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화제를 돌려야겠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교수님. 방법이야 많을 겁니다. 수중 호흡 마법을 걸고 내려간다거나...”

“생각해보긴 했다.”

무뚝뚝한 볼라디 교수의 대답에 이한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별 생각 없이 농담한 거였는데!

‘한 번만 더 내가 내 혀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저주하겠다.’

이한은 매우 깊이 반성했다.

“하지만 손상이 심하더군.”

“저런.”

다시 한 번, 이한은 물의 정령에게 깊이 감사했다.

대홍수가 아니었다면 저걸 몸으로 감당했을 터.

“그러면 오늘 강의는 끝난 겁니까?”

이한은 살짝 기대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일찍 끝나면 가서 밀린 공부나 할 생각이었다.

해골 교장이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넌 공부 안 해도 괜찮잖아’같은 헛소리를 지껄였지만 이한은 그딴 말에 속지 않았다.

저들은 분명 이한의 성적을 견제하려는 게 분명했다.

“끝났다면 저는 이만...”

볼라디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물 위를 걸어오더니 이한의 나룻배 위에 올라탔다.

졸지에 자기 배를 뺏긴 이한은 황당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세상에, 지팡이 든 강도군.’

볼라디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뒤에서 미는 것처럼 나룻배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앉아있던 이한은 나룻배가 점점 본관 건물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자 살짝 당황했다.

‘뭐지?’

이대로 계속 북쪽으로 향하면 에인로가드가 자랑하는 지옥산맥(사실 그냥 산맥이었지만 이한과 친구들은 지옥산맥이라고 불렀다)이 나왔다.

기껏 준비한 던전이 날아간 이상 간단한 연습이나 수련 정도만 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탁-

대홍수가 났어도 산맥까지 전부 가라앉진 않았다. 어느 정도 접근하자 마른 땅과 울창한 숲이 눈에 들어왔다.

볼라디 교수는 이한을 쳐다봤다. 내리란 뜻이었다.

“교수님. 질문이 있...”

교수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하나 올렸다. 조용히 하란 뜻이었다.

그 모습에 이한은 갑자기 불길해졌다.

볼라디 교수가 미친 마법사긴 했지만 그래도 질문에는 대답해주는 미친 마법사였다.

갑자기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는 이유는?

‘지금 소리 내면 위험한 상황인가?’

이한은 빠르게 머릿속으로 산맥에 나오는 몬스터들을 점검했다.

번개걸음 교수 밑에서 남는 시간마다 <에인로가드 뒷산에는 무엇이 나올까?> 강의를 받은 만큼 수많은 몬스터들이 떠올랐다.

‘젠장. 너무 많은데.’

생각해보니 소리 내면 위험한 몬스터들이 너무 많았다.

이한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마법을 미리 외워놔야 하나 고민했다.

마법을 미리 외워놓으면 좋았지만 조용히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주문을 영창하는 것도 위험할 수 있었다.

-왔는가?

소리는 위에서 들려왔다.

이한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높고 울창하게 자란 숲의 나무들 사이에서, 낯익은 거인의 머리가 이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번보다 짧아진 머리칼.

이한과 내기를 벌였다가 머리칼을 내준 산맥의 거인, 이쿠루샤였다.

“이쿠루샤 님!”

-다시 만나서 반갑군. 하지만 목소리는 좀 낮춰주게나.

이쿠루샤는 조용히 하라는 듯이 손짓했다.

-지금 다른 거인들이 산양들을 짝지어주고 있는데, 산양들이 예민한 시기라서.

“?”

이한은 순간 이해를 못했다.

산양들이 예민해져봤자 산양 아닌가?

-아. 미안하네. 마법사들은 산양이라고 안 부르지. 조금 이름이 다를 걸세.

“뭡니까?”

-산맥파괴양이었나? 산맥포식양? 산맥붕괴양?

“......”

볼라디 교수가 대신 대답해줬다.

“산맥파괴양이오.”

-아. 맞네.

산맥파괴양은 양처럼 생겼지만 거인에 맞먹는 덩치를 가지고 암반을 뚫는 대형 몬스터였다.

저걸 산양이라고 부르는 건 탄주어를 금붕어라고 부르는 것만큼 뻔뻔한 일이었다.

*         *         *

이쿠루샤는 이한과 볼라디 교수를 새로 지은 집으로 안내했다.

동굴집은 거인들이 주먹으로 지은 것마냥 투박한 겉모습이었지만 안의 모습은 실로 안락했다.

이한과 볼라디 교수가 앉자마자 이쿠루샤는 체스판을 하나 들고 왔다.

-오랜만에 만난 김에 한 판 두지.

“아. 예.”

이한은 떨떠름했지만 일단 뒀다.

오프닝은 d4와 Bf4로 시작해서 단단하게 방어를 친 뒤 퀸사이드로 캐슬링을 하고 킹사이드에서 강력하게 밀어붙이자 이쿠루샤는 허무하게 자멸해버렸다.

-이런!

“이쿠루샤 씨.”

볼라디 교수가 부르자 이쿠루샤가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한 판만 더 둬도 되겠나? 속기로 빠르게 두겠네.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쿠루샤는 신이 나서 재빨리 말을 정리했다.

그 모습을 보자 이한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잠깐. 시간을 끌면...!’

볼라디 교수가 대체 이쿠루샤한테 왜 데리고 왔는지는 몰라도, 체스만 하다가 시간이 끝나면 그냥 돌아가도 됐다.

저번에 보니 이쿠루샤는 백을 잡았을 때 e4 Nf3 Bb5로 시작하는 오프닝을 좋아하는 거인.

그렇다면 이한도 나이트를 f6에 두고 단단한 흑의 장벽을 만들 수 있었다.

‘질질 끌어서 무승부를 유도한다.’

이쿠루샤와 볼라디 교수는 이한의 사악한 속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쿠루샤는 그런 것도 모르고 열심히 이한의 장벽을 두드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쿠루샤 씨.”

-아. 미안하네. 그만둬야겠군.

“......”

불리한 상황에 핑계가 생기자 미련 없이 그만두는 거인을 보며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다른 부분에서는 신사 같은 사람이 체스 관해서는 왜 이렇게...?

‘기껏 둬줬군. 내기라도 걸 걸.’

-알고 있겠지만, 저번에 있었던 인상적인 대결 이후 교수들에게 네 이야기를 몇 번 했었지.

“예???????”

이한은 경악해서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아니 대체 왜 그런 배은망덕한 짓을 한단 말인가?

‘거인들은 모두 파렴치한 개자식들인가??’

어쩌면 사람들은 머리칼이 아니라 머리를 잘라야 배신을 하지 않는 걸지도 몰랐다.

-왜 그렇게 놀라지?

“...허명이 퍼져나가는 건 마법사로서 부끄럽습니다.”

-겸손하군그래.

이쿠루샤는 칭찬하듯이 볼라디 교수를 쳐다보았다. 교수는 무표정했지만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교수들이 흥미를 보이더군. 여기 배그렉 교수 같은 경우에는 강의에 도움을 좀 받을 수 있냐고 묻길래 수락했지.

“오...”

이한은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걸 꾹 참았다.

-다른 거인들과 달리, 나는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들이 하는 부탁은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 여기 산맥에서 지내다보면 알게 모르게 마법사들의 신세를 지게 되니... 그러고 보니 대마법사께서는 강녕하신가?

“그렇소.”

-다행이군. 저번 일은 다시 한 번 고맙다고 전해주게. 거인사냥꾼들은 독하고 악랄한 놈들이라, 대마법사께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피해가 컸겠지.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훈훈한 대화를 듣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진 이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어떤 도움을 주시는 겁니까?”

-전투 마법사로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을 만들어달라고 부탁받았지. 들어보니 여기 거인들이 좀 멍청해도 그런 건 잘 할 수 있겠다 싶더군.

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굉음이 밖에서 들려왔다.

산맥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였다.

-이런. 산양이 한 마리 도망쳤군. 오늘 안에 잡아야 할 텐데.

“......”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아. 강의를 도와주는 이야기였지. 거인들이 잘 할 수 있긴 한데, 문제는 이 친구들이 좀 멍청해서... 힘조절이나 시험이라는 걸 이해 못 할 수도 있거든. 그래서 먼저 불러야겠다고 생각했지.

거인들에게 ‘저 마법사를 죽지 않을 정도로 난이도 조절해서 시험해봐라’라고 하면 너무 어려울 수 있었다.

차라리 거인들과 미리 좀 친분을 쌓고 안면을 익히는 게 나았다.

거인들이 자기 친구라고 생각하면 알아서 힘조절을 해줄 테니까.

-무엇보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확인 한 번 없이 대뜸 위기에 던져놓는 건 좀 위험하고 갑작스러울 것 같아서 말이지. 익숙해질 시간을 줘야 하지 않겠나?

이쿠루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괜찮소.”

-그런가?

“믿지 못하겠다면 지금 한 번 해보시오.”

“교수님. 생각해보니까 물에 잠긴 지하 던전도 나름대로 성취감이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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