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화
이한은 어처구니없는 오해에 경악했다.
버두스 교수를 언데드로 만들었다니.
흰 호랑이 탑 놈들이 하는 헛소리보다 더 심하지 않은가.
“어? 아니었어?”
이한은 가이난도의 뒤통수를 다시 한 대 때리고 말했다.
“그냥 동명이인이야.”
“너무 불쌍해! 하필이면 버두스 교수님하고 겹치다니!”
가이난도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동정하자 이한은 살짝 당황했다.
“그...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아냐. 너무 불쌍해.”
저 멀리서 낯익은 선배 두 명이 헐레벌떡 달려오는 게 보였다.
이한은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헉. 헉... 뭐, 뭐하고 있었냐?”
“이한이 소환한 언데드 마법사가 버두스여서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요.”
가이난도의 대답에 코홀티는 경악했다.
“너, 버두스 교수님을 언데드로 만든 거냐!?”
“......”
* * *
진상을 파악하자 코홀티는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오골도스는 옆에서 속삭였다.
“선배님. 여기 언데드들이 들어간 구덩이들이 많습니다. 거기 들어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닥츠르...”
1학년도 아니고 4학년씩이나 되어서 이딴 어처구니없는 착각을 하다니.
하지만 코홀티에게도 변명은 있었다.
“갑자기 버두스 교수님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다고. 그것 때문에...”
‘교수님이 사라졌어도 그걸 나하고 연관시키는 건 좀 많이 이상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한은 선배를 배려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한은 알지 못했다.
코홀티나 다른 몇몇 사람들한테 이한은 이미 해골 교장의 진전을 이어받을 직계 미치광,,, 아니, 직계 제자 취급을 받고 있다고!
“교수님께서는 징벌방에 가셨습니다.”
이한의 설명에 코홀티는 ‘그러면 그렇지’하는 얼굴로 납득했다.
“하긴. 어디 가셨나 했네.”
“다른 선배들한테 물어보면 되잖아요?”
가이난도의 질문에 코홀티는 머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여 마법 배우는 놈들은 다 모른다고, 관심 없다고 하더라고.”
“......”
“......”
침묵이 맴돌았다.
이한은 화제를 바꾸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선배님. 언데드를 막아냈으니까 시험은 끝난 겁니까?”
“응? 아니. 시험은 다른 건데. <주정뱅이 저주>가 시험이야.”
상대방에게 강렬한 취기를 불러일으키는 저주 계열 마법.
2서클 마법이었지만 비교적 난이도가 낮고 마스터하지 못하더라도 시전 자체는 가능한 만큼, 몇 가지 저주 마법을 익힌 초보 흑마법사들의 다음 교보재로 자주 사용되는 마법이었다.
“...어, 그러면 언데드 습격은 정말 시험과 조금도 상관이 없었던 겁니까?”
이한은 살짝 당황했다.
물론 중간고사 전에 보여준 시연이라는 건 들었지만 그래도 시험과 조금 상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상관이 없으면 왜?
“......”
“......”
코홀티와 오골도스는 서로 쳐다보았다.
오골도스는 못 본 척 고개를 숙였다.
원래 이런 일에서 책임자는 게 고학년 아니겠는가.
“...워, 워다나즈 너는 내가 책임지고 만점으로 해줄까?”
“아니...”
이한은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는 선배의 모습에 당황했다.
* * *
시험이 끝나고(가이난도와 라파드엘은 서로에게 실수로 저주를 날린 탓에 취해서 헤롱거렸다) 이한은 돌아가려다가 멈칫했다.
코홀티가 언데드가 박살난 벌판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선배님?”
“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빨리 돌아가. 괜히 오래 있으면 교장 선생님이 트집잡는다.”
‘아무리 봐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코홀티는 마치 교수 몰래 사고를 친 선배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한은 혹시 몰라서 다시 물었다.
“선배님. 저도 흑마법 듣는 학생이잖습니까. 무슨 일 있으면 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아니야. 이건 후배가 신경 쓸 일이 아니거든.”
옆에 있던 오골도스가 흙을 긁어모으다가 중얼거렸다.
“서리거인의 왕은 누가 상대한 줄 알겠습니다 참.”
“......”
코홀티는 오골도스를 발로 차서 구덩이로 밀어버렸다.
“선배님?”
“아, 아니. 발이 미끄러져서. 난 원래 안 이래. 오해하지 마. 오해 안 할 거지? 우리 학파 원래는 안 이래!”
코홀티는 이한이 이걸 보고 ‘흑마법 학파의 선배는 후배를 구타하나?’하고 오해할까봐 잔뜩 걱정했다.
만약 그런 오해를 했다가는 흑마법 학파의 교수와 동기가 코홀티를 구타할 테니까!
“솔직하게 말해주시면 오해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게... 그러니까... 에휴.”
코홀티는 더 이상 숨겼다가는 이 후배가 도망칠까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말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 궁상맞지 않나? 이래도 되나?’
언데드 웨이브 한 번 보여줬다고 학파 시약 비축량이 휘청거릴 정도면 얼마나 없어 보이겠는가.
그러나 이한은 생각보다 코홀티의 고통에 깊게 공감했다.
“저런...!”
이한은 마음이 아팠다.
시약이 없는 건 모르툼 교수의 능력 부족 때문이지 선배들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능수능란한 정치질로 지원금을 타오던가 아니면 지원금을 훔쳐오기라도 해야지 그걸 못해줘서 학생들을 고생시키다니.
“교수님이 정말 너무하십니다!”
“아... 아니. 그렇게까지는 아닌데? 솔직히 우리 교수님이 버두스 교수 같은 사람보다는 나은...”
이한은 더 안타까웠다.
선배들은 에인로가드에 오래 있는 바람에 비교를 관장하는 뇌의 특정 부분이 퇴화된 게 분명했다.
“아닙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선배들의 사정을 모르고 언데드를 다 부숴버리다니.”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었... 아니... 그게... 워다나즈, 내 편을 들어줘서 고맙긴 한데...”
코홀티는 더더욱 당황했다.
이 1학년 학생이 보여주는 감정이 너무 진실되고 절절했던 것이다.
무슨 몇 년은 흑마법 학파에서 공부한 것처럼...
고맙긴 했지만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1학년이 언데드 웨이브를 맞받아쳤으면 그건 칭찬받아야 할 일이지 시약 소모시켰다고 미안해 할 일이 아니었다.
만약 코홀티가 1학년 때 그런 업적을 세웠다면 졸업할 때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들의 귀에 대고 자랑했을 텐데.
“제가 시약을 구해와 보겠습니다.”
“어? 아냐. 아냐. 이건 훔치면 안 돼.”
코홀티는 이한을 말렸다.
에인로가드의 학생들을 보면 법도 규칙도 없다고 생각하기 쉬웠지만, 의외로 에인로가드에도 암묵적인 법과 규칙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학생들끼리의 약탈과 절도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교장 선생님의 재산은 일종의 학생공유재산이라 괜찮았지만, 학생들끼리 서로 털기 시작하면 그 뒷감당이 힘들어지는 것이다.
안 들키면 된다지만 원래 세상에는 비밀이 없는 법.
“특히 흑마법에 쓰이는 시약들은 티가 나거든.”
“훔친다는 게 아니라 부탁해서 갖고 온다는 거였는데요.”
“......”
“......”
구덩이에서 기어 나온 오골도스가 코홀티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코홀티는 다시 한 번 오골도스를 발로 차서 밀어 넣고 말했다.
“부탁은 더 힘들걸? 너 같으면 애써 모은 학파의 재산을 그냥 내주겠어?”
“밑져야 본전이니 한 번 부탁드려보겠습니다.”
원래 교수들은 자기가 직접 금화를 벌지 않고 지원금을 넉넉하게 받아 연구하는 만큼 금전감각이 좀 마비된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 만큼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이 부탁하면 꽤 선선히 내줄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이한의 경우 아는 교수들도 많았으니 다 돌면서 구걸하면 제법 양이 모이리라.
이한은 자신이 있었다.
“아니... 음... 고맙긴 한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교수가 박대해도 너무 분하게 여기지 말고. 도중에 안되겠다 싶으면 그만둬라? 알지?”
“예.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가자.”
이한은 친구들을 보며 말했다.
이미르그가 쓰러진 가이난도와 라파드엘의 뒷덜미를 하나씩 붙잡고 들어올렸다.
“...미안하다.”
“아, 아냐. 도와줄 수 있어서 기뻐.”
“그 자식들 그냥 물에 던지고 갈까?”
“아, 아냐! 안 무거워. 들고 갈 수 있어!”
이미르그는 이한이 진짜 둘을 물에 던지고 갈까봐 허겁지겁 외쳤다.
코홀티는 흐뭇한 얼굴로 1학년 후배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주 마법도 그렇고(둘은 서로한테 날리느라 쓰러졌지만), 서로 우애가 돈독한 것도 그렇고.
1학년 후배들은 다들 믿음직스러웠다.
특히 워다나즈 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자기 일도 아닌데 자기 일처럼 저렇게 선배를 걱정해주다니.
결과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가슴이 따뜻해진 것만으로 충분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에인로가드에도 이런 감동이 있는 거지.’
코홀티가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려고 손수건을 꺼내는 사이 뒤에서 디레트가 하수인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시약 회수용으로 커스텀한 하수인들의 준비를 끝내고 찾아온 것이다.
“시험 벌써 끝났어?”
“어? 어.”
“예상보다 더 빨리 끝났네?”
“어...”
“...그런데 왜 언데드들이 다 이 모양이지?”
디레트는 무표정하게 물었다.
그 무표정함이 코홀티는 더 무서웠다.
“그게... 그러니까...”
코홀티는 최대한 빠르게 있었던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디레트가 소환한 하수인들에게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저 하수인들이 공격한다면 코홀티는 지금 방어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하.”
설명을 다 들은 디레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었다.
“일이 꼬여도 어떻게 이렇게 꼬일까.”
“그, 그렇지?”
코홀티는 움찔움찔하며 디레트의 지팡이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다행히 디레트는 공격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있는 거라도 챙기자.”
“...그, 괜찮은 거지?”
“안 괜찮지만 어쩌겠어. 어느 누구도 1학년 후배가 이런 식으로 다 부숴버릴 거라고는 예상 못했을 걸.”
“그렇지?!”
디레트가 공격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든 코홀티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다니까. 예상할 수 없었던, 정말로 불운한 재난이었지. 어떻게 보면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너 지금 신난 건 아니지?”
디레트의 목소리가 서늘해지자 코홀티는 재빨리 슬픈 얼굴을 했다.
“아, 아니야. 그냥... 그냥 그렇다고. 나도 당연히 슬프지. 게다가 후배가 다른 학파 방문해서 시약 받아오겠다고 갔거든. 기특하지만 얼마나 또 슬퍼.”
“...후배가 다른 학파 방문해서 시약 받아오겠다고 갔다고?”
“어.”
“넌 그걸 안 말리고 갔다 오라고 했고?”
“...어... 그게...”
코홀티는 ‘나는 나름 말려보긴 했는데’라고 변명해보려다가, 괜히 디레트의 성질만 돋울 거 같아서 눈치를 봤다.
퍽!
오골도스는 자기가 들어가 있는 구덩이 위로 떨어진 코홀티를 환영했다.
“어서 오십쇼.”
“닥츠르...”
구덩이 위로 날아오는 흙더미를 느끼면서 코홀티는 호흡 마법 준비를 했다.
* * *
“교장 선생님!”
???
해골 교장은 이한이 너무 적극적으로 부르자 당황했다.
이한은 원래 저렇게 친근하게 접근하던 학생이 아니었던 것이다.
해골 교장을 보면 질색하고, 또 해골 교장도 그런 반응이 좋았는데...
뭐... 뭐냐?
“저번에 제가 학교 보수 공사도 열심히 했잖습니까.”
그랬지...?
“학교에 찾아온 손님들이 빠진 암계도 제가 발견해서 지켰습니다. 기부금은 덤이고 말입니다.”
......
“축제 때 마법사들도...”
그냥 원하는 걸 말해봐라.
해골 교장은 황당했지만 이한의 요구를 존중해 줄 생각이었다.
당장 말한 것만 따지고 봐도 확실히 해낸 일이 많긴 했으니까.
얄밉긴 해도 해골 교장이 그런 것까지 부정하진 않았다.
외출권이냐? 몇 장까지 알아보고 왔지?
“아직 남았습니다.”
친구들도 써야지.
“걔네들은 알아서 나올 겁니다.”
‘이 자식이.’
해골 교장은 친구들을 아끼던 예전의 이한이 그리워졌다.
“교내의 흑마법 학파에서 사용할 시약이 부족한데 혹시 좀 지원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
해골 교장은 너무 놀라서 턱을 다물지도 못했다.
“교장 선생님?”
...설마 이 미친놈들이 너한테 구걸을 시킨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