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화
해골 교장은 진심으로 당혹스러웠다.
분명 교수들이 이야기했던 시험들 중에는 세이렌이 없었던 것이다.
누구지?
“번개걸음 교수님 시험에 나왔는데요...”
번개걸음 교수가 1학년 상대로 그런 무리한 시험을 낼 사람이 아닌데.
‘그럼 교장 선생님은 뭔데요...’
스스로 쓰레기임을 고백하는 해골 교장의 모습에 학생들은 어이없어했다.
아!
해골 교장은 깨달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아직 시험 내용을 정하지 않았다면 난이도를 몇 배로 올려버리게나! 내 탄주어의 원한을 갚아주게!
자기가 지나가면서 시험 난이도를 올려달라고 충동질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정령 홍수로 인해 시험장이 다 침수되었을 테니, 번개걸음 교수가 난이도를 올리면서 시험 내용을 바꿔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겹칠 줄이야.
하긴, 마법사들이 생각하는 게 다 비슷한 법이지.
“?”
“그건 아닌 것 같...”
상관없다. 세이렌은 원래 알아도 막기 힘든 법이니까.
-저, 주인님. 세이렌들이 도망치고 있습니다.
?!
해골 교장은 데스 나이트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세이렌들이 이한의 얼굴을 보고 손가락질하고 수군거리더니 돌아서서 빠르게 도망치고 있었다.
......
“......”
스승과 제자 모두 일그러진 얼굴로 도망치는 세이렌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 * *
“빨, 빨리.”
“잠... 잠깐만 기다려봐. 손이 굳어서 안 움직여.”
세이렌이 돌아가자 학생들은 한숨 돌린 김에 양철 잔에 펄펄 끓는 커피를 부었다.
아무리 이한이 신나서 <잠열 부여>를 학생들에게 모두 걸어줬다 하더라도, 이런 추운 날씨에 계속 잠수를 반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다들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추위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불을 피울 수 있다는 것과 커피가루와 찻잎을 가져왔다는 점이었다.
펄펄 끓는 커피가 목구멍으로 들어가자 가이난도는 몸에 온기가 퍼져나가며 추위로 곱았던 손가락이 풀리는 기분을 받았다.
가이난도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런 게 소풍일지도...”
“미쳤냐?”
“비싼 커피 먹고 헛소리 할래?”
“아, 아니.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가이난도가 구박받는 동안에도 몇몇 학생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고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친 체력을 가진 흰 호랑이 탑이나 검은 거북이 탑 학생, 그리고 그냥 성적에 미친 이한이었다.
“후, 후후, 워다나즈... 포기하지 그러냐. 검술은 몰라도 기사로서의 단련은 우릴 따라올 수 없을 거다.”
‘검술을 그렇게 넘어가면 안 되는 것 아냐?’
옆에서 듣고 있던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은 속으로 생각했다.
흰 호랑이 탑 학생이면 검술로 승부를 봐야지 검술은 몰라도라니...?
이한은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뭐라고 말하든 난 더 들어갈 거다.”
“좋... 좋아! 어디 한 번 승부해보자고!”
체력 승부로 이해했는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의욕을 불태웠다.
물론 이한은 그런 학생들끼리 승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시간 끝날 때까지 계속 찾아낸다.’
이렇게 고생한 이상 억울해서라도 1등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첨벙!
다시 학생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한은 아직 걸려 있는 수중 호흡 마법과 암흑 시야 마법을 확인한 다음 능숙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학교에서 홍수가 난지 얼마나 됐다고 자맥질에 이렇게 익숙해지다니.
‘정말로 시련이 사람을 성장시킨단 말인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이한에게 누군가 접근했다.
톡톡-
“!?”
이한은 깜짝 놀라서 지팡이를 겨눴다. 그러자 상대도 깜짝 놀라서 마법을 쏘지 말라는 듯이 외쳤다.
-♩♪! ♩♪♪!
-비열하게 함정을... 돌아가는 척을 하고 매복을 했던 건가!
세이렌은 분노한 눈동자로 석판을 꺼내 그 위에 빠르게 글씨를 써내려갔다.
개쌨끼ㅇ...
-아. 잠깐. 설마 도와주려고 남은 건가?
자세히 보니 맥을 상대할 때 배의 노잡이 역할을 맡아주던 그 세이렌이었다.
게다가 공격하려는 의사도 보이지 않았다. 이한은 설마 싶었다.
끄덕-
세이렌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물론 대답은 했어도 눈빛에는 원망과 경멸이 가득했다.
저번에 맥 관련으로 도움을 받아서 도와주려고 남았더니 감히 저딴 의심을...
-미안하다. 에인로가드에 있다보니 사람을 자꾸 못 믿게 되는군.
이한의 말에 세이렌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하더니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세이렌이 보기에도 에인로가드의 학생들은 꽤 혹독하게 지냈던 것이다.
까딱까딱-
세이렌은 따라오라는 듯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해골 교장의 일을 옆에서 지켜본 만큼 어디에 가장 귀한 보물을 숨겨놨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쪽으로.’
세이렌이 손가락을 뻗으며 방향을 가리키자 이한은 머뭇거리더니 물었다.
-혹시 먼저 가보지 않겠나? 내가 못 믿어서 그런 건 아니고.
-......
세이렌은 진짜 더럽고 치사해서라도 빨리 은혜를 갚은 다음 이 소년과는 상종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 * *
물에 잠긴 탑 밑기둥 사이를 지나, 갑작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심해의 열수(熱水)를 피하자 세이렌이 가리킨 목적지가 나왔다.
접근하기 어렵게 얼기설기 널브러진 목책 파편들을 보자 이한은 속으로 경악했다.
‘정말 찾으라고 여기에 놓은 건가?’
이건 그냥 나중에 해골 교장이 ‘여기에 놨는데 못 찾았느냐? 허 참 재미없긴’같은 소리를 하려고 놓은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찾으라고 놓은 게 아니었다.
탁탁탁!
세이렌은 아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지느러미를 움직여 바닥을 쳤다.
빨리 챙길 거 챙기고 서로 헤어지자는 뜻이었다.
‘교장 선생님의 억지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가보군.’
이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바닥에 접근했다. 그러자 어디서 많이 느껴본 마력이 느껴졌다.
우우웅-
해골 교장의 마력이 정교한 구조로 구성되어서 보물을 보호하고 있는 걸 보자, 이한은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왔다.
여기 배치해놨으면 양심적으로 결계 마법까지 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정말 미친 사람이다.’
이한은 혀를 차며 마력을 집중했다.
욕은 욕이고 일단 해제는 해야 했으니...
발도르오른에게 배운대로 장전한 마력이 파성추가 되어서 강하게 결계를 후려갈겼다.
꽝!
세이렌은 뭐하냐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전문적인 마법사는 아니었지만 세이렌 또한 정령의 핏줄을 이은 존재로서 높은 지성을 갖고 있고, 에인로가드에서 오래 지낸 만큼 마법에 대해 알 만큼은 알았다.
그리고 지금 이한이 하고 있는 건 결계 마법을 해제할 때 일반적으로 쓰는 방법이 아니었다.
무슨 저런 무식한...
꽝! 꽝! 꽝! 꽝!
그러나 그런 마력의 망치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휘두르자 세이렌의 표정이 달라졌다.
말도 안 되게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그 방법을 저렇게 반복할 수 있다면...
-음. 역시 안 되는군.
이한은 아쉬워하며 포기했다.
해골 교장이 외부의 충격을 버틸 수 있도록 정교하게 짜놓은 게 분명했다.
-왜 그렇게 보고 있지?
이한은 의아해하며 세이렌을 쳐다보았다.
세이렌이 홀린 듯이 멍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 ♪♬!
‘...혹시 날 은근슬쩍 현혹시키려는 건 아니겠지.’
이한은 세이렌이 들으면 분노할 생각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는 사이 세이렌은 무식한 방법의 충격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된 조언을 했다.
무식카게힘으로하지말고아래약한고리를...
‘저런. 마법사가 아니라서 방금 보여준 방식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건가.’
이한은 새삼 세이렌이 마법사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발도르오른이 가르쳐 준 파훼책을 무식하다고 폄하하다니.
‘하지만 가르쳐 준 방향은 맞다.’
세이렌이 가리킨 방향을 세심하게 탐색한 이한은 지적이 맞다는 걸 깨달았다.
아주 미세한 차이였지만 아래 쪽 고리의 마력이 약했던 것이다.
보통 마법에서 이런 부분은 구조적인 약점이었다.
-확실히 여기 마력이 좀 약하게 느껴지긴 하는데.
-?
세이렌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모든 마법은 이론적으로 약점이 있다지만, 대마법사가 시전한 마법은 그 약점마저 가려지기 마련이었다.
당장 세이렌도 해골 교장이 시전하는 걸 직접 봐서 약점을 아는 거지 마력의 차이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나무 원소로 안을 보완했나.
이한은 결계 마법 곳곳에 나뭇가지가 얽혀있는 걸 느꼈다. 약점에 가해지는 힘을 분산시키고 흡수하기 위한 배치인 모양이었다.
세이렌은 이한의 분석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석판에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약점인 고리부터 시작해서 어느 순서대로 마력을 연결해서 해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였다.
그러나 이한은 바로 화염을 일으켜서 구조 안에 불을 질러버렸다.
-!!!!!
세이렌은 소리 없는 비명과 함께 석판을 던지고 불을 끄려고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미 물속에서 피어난 불꽃답게 잘 꺼지지도 않았다. 세이렌은 정령의 힘을 끌어내서 간신히 불꽃이 퍼지기 전에 불을 끌 수 있었다.
-♪↘♪♪↗♪!
무슨 뜻인진 몰라도 세이렌이 화가 났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한은 사과했다.
-나무 원소로 되어있길래 안에 불을 잘 지르면 바로 깨뜨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게되겟냐!!!
-됐잖...
-......
세이렌은 불타서 사라진 결계를 쳐다보았다.
원래라면 정령들이 일으킨 범람도 범람이고, 결계가 가진 저항력도 있어서 쉽게 태우지 못하고 사그라들어야 했는데...
이 마법사가 불러온 화염은 어찌나 화력이 좋았는지 결계를 그냥 전부 다 태워버렸다.
세이렌이 급하게 끄지 않았다면 안에 든 보물까지 같이 탔을 것이다.
탁탁탁!
세이렌은 이한이 얼마나 서투른 짓을 했는지 설명하기 위해 석판 위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이한은 상대가 잔뜩 화가 난 것 같아서 일단 반성하는 기색을 보였다.
‘내버려뒀어도 통제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속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한은 참았다.
솔직히 다른 마법과 달리 화염 원소 마법은 아직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 * *
촤아악-
이한이 가장 늦게 나오자 친구들은 호기심 섞인 표정으로 달려왔다.
“뭐 찾은 거 있어?”
“아. 잠깐만.”
세이렌과 투닥대는 바람에 정작 무슨 보물인지도 확인하지 못하고 올라온 상태였다.
이한은 상자를 열고 안에 든 쪽지를 확인했다.
외출권.
“별 거 아니군.”
“...!!!!”
“!!!!!!”
-!!!!!!
옆에 있던 데스 나이트까지 경악했다.
외출권에 이렇게 초연하다니...
이게 대체 1학년 학생이 맞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던 해골 교장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날아왔다.
무슨 일이냐?
-주인님. 외출권 찾은 학생이...
뭐? 그걸 찾았어?
해골 교장은 깜짝 놀랐다.
학생들이 못 찾으면 ‘여기 있는 걸 못 찾았냐?’하고 놀리려고 했는데 찾아내다니.
넌 또 그걸 왜 찾았냐?
“......”
“......”
누군지 묻지도 않고 이한을 타박하는 해골 교장의 모습에 학생들은 침묵했다.
“제가 찾았다고 안 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안 찾았느냐?
“제가 찾긴 했는데...”
그렇겠지.
해골 교장이 툴툴대며 이한의 손에서 상자를 뺏었다.
-어떻게 찾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물어봤자 내 속만 긁을 것 같아서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세이렌을 협박해서 찾아내기라도 했나보지.
해골 교장은 자신이 무심코 정답을 맞췄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건 좀 무리 같...
농담도 모르나? 농담도?
-죄, 죄송합니다.
하여간 다 찾아낸 것 같으니 다음 행사로 넘어가자.
“또 있어요?!”
“언제 끝나요??”
해골 교장은 학생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말했다.
장기자랑이다. 각자 소풍에 어울리는 마법 하나씩 보여 봐라.
“음.”
워다나즈 넌 만점이다. 저기 가서 그냥 앉아 있어라.
“아니...”
이런 것도 소풍이긴 했는지 소외당하자 살짝 서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