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68화 (468/687)

468화

장기자랑을 마지막으로 소풍은 끝이 났다.

가장 주목을 받은 건 황녀였다. 황녀는 홍수로 정령들이 사나워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능숙하게 달랜 뒤 마법 연계를 보여줌으로서 이한을 시무룩하게 만들었다.

‘평소엔 저렇게 말 잘 듣는 정령들이 대체 왜 나만 보면 미친 언데드처럼 날뛰는 걸까?’

다들 소풍을 즐겼으니 돌아가서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해라.

“......”

“......”

왜 대답이 없지? 소풍 더 할까?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이한은 학생들의 눈동자가 독기로 불타오르는 걸 보며 살짝 감탄했다.

아무리 이한이 ‘제발 공부 좀 해라 낙제는 피해야 할 거 아니냐’라고 말해봤자 해골 교장이 한 마디 던지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설마 이걸 노리시고 오늘 소풍을 준비하신 건가?’

크핫핫핫핫핫!

학생들의 분노로 기분이 풀렸는지 해골 교장은 즐겁게 웃었다.

그걸 본 이한은 방금 했던 생각을 취소했다.

‘그냥 심심하셨나보군.’

*         *         *

<기초 제국 기하학과 산술 심화> 시험은 물기 없는 강의실에서 진행됐다.

학생들은 책상 앞 의자에 앉아 깃펜과 잉크로 글씨를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해했다.

“이게 시험이지...!”

“이런 시험이라면 몇 개라도 더 볼 수 있겠어!”

물론 감격은 딱 문제를 받기 전까지였다. 문제를 받은 학생들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제국 마법사 타딩고는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 탑의 면적을 정확하게 계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빌어먹을 타딩고. 자기가 벌 것이지.”

“빌어먹을 제국. 연구비 하나 가지고 더럽게 잘난척하네. 면적을 왜 계산해야 해?”

“다들 조용히 하게.”

알펜 교수가 중얼거리는 학생들에게 경고를 날렸다.

학생들은 끙끙 앓으며 문제에 집중했다.

다음 도형들의 면적은?

다음 그림과 같은 원들의 넓이는?

친구들이 괴로워하는 동안 이한은 빠르게 풀어나가...

...는 대신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것 아닌가?’

다른 강의들과 달리 이런 산술 쪽 강의는 이한이 자신 있는 분야 중 하나였다.

당연히 친구들이 급하게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쯧쯧 평소에 공부를 했어야지’했는데...

제국 마법사 타딩고는 목표와 1m 떨어진 곳에서 화염구가 날아가는 걸 지켜보고 있다. 이 때 그림에 명시된 미분계수가 초속 20m면, 마법사 타딩고의 눈동자 이동각도 비율은...

“????”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난이도가 어려웠다.

이걸 친구들이 풀 수 있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해골 교장이 혹시 사주했나?’

분노한 해골 교장이 뒤에서 칼을 들고 협박했다면 아무리 알펜 교수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을지 몰랐다.

이한은 일단 고민은 그만하고 문제부터 풀기로 했다. 시간이 정해져있는데다가 이한도 오랜만에 어려운 문제를 푸는 만큼 실수할 수도 있었으니까.

‘이렇게 어려운 문제는 안 건드린 지 좀 됐는데...’

그래도 쌓아올린 게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깃펜을 끄적거리며 계산을 시작하자 어떻게든 실마리가 잡혔다.

“끄흐응.”

“미친 타딩고 새끼... 그냥 얌전히 살라고...”

“이걸 어떻게 풀라고...”

알펜 교수가 경고를 해도 어쩔 수 없었는지 학생들 사이에서 주기적으로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한은 이해가 갔다.

이한도 이렇게 어려운데 다른 친구들한테는 얼마나 어렵겠는가.

‘문제가 좀 심하게 어렵다. 이번 시험 결과는 하향평준화 되겠군.’

노련한 교수들도 시험 난이도를 맞추는 건 쉽지 않은 법.

이한은 이번 시험이 끝나면 알펜 교수가 반성하고 기말 난이도를 낮추리라 예상했다.

“제출하겠습니다.”

“흠... 훌륭하군. 걱정했는데 잘 했네.”

가장 먼저 제출한 이한의 답안지를 받은 알펜 교수는 슥 훑어보더니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의 이한이라면 ‘걱정했는데’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알아차렸겠지만, 안 그래도 피곤한 소풍에 어려운 시험문제까지 푸느라 정신력을 소모한 이한은 위화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만. 다들 제출하도록.”

앉아서 기다리는 사이 시험이 끝나고 학생들이 우울한 표정으로 답안지를 제출했다.

답안지를 제출한 친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한 앞으로 좌르륵 달려들었다.

“워다나즈. 1번 문제 답이 뭐였냐???”

“야. 1번은 쉬웠다. 그걸 물어보면 어떡하냐. 세 개 맞지? 워다나즈?”

“세 개였어!? 젠장. 두 개 할까 세 개 할까 고민했는데... 타딩고 그 자식은 왜 그렇게 식탐이 많은 거야? 그냥 적당히 주는 대로 처먹을 것이지!”

“???”

친구들의 소란스러운 질문을 듣고 있던 이한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라?

“두 개, 세 개라니... 무슨 소리지? 문제가 뭐였길래?”

“가난한 마법사 타딩고가 연구비 최대한 아껴서 먹을 수 있는 최고급 흰 빵 개수?”

“그림에 명시된 페가수스와 지상 마구간 사이의 거리가 미분계수 시속 400km의 비율로 변하고 있을 때, 페가수스의 고도가... 잠깐. 빵 개수?”

이한은 확실하게 이상함을 느꼈다.

친구들이 푼 시험지와 자신이 푼 시험지가 너무 달랐던 것이다.

문제 순서가 다른 건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일단 이한이 받은 문제를 푼 친구들은 아무도 없어보였다.

“뭔 마법이야?”

“그게 뭔데?”

“...교수님. 교수님??”

이한은 나가려던 알펜 교수를 재빨리 따라잡고 물었다.

“시험에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상하군. 워다나즈 군. 군은 분명 만점이었을 텐데?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었나?”

알펜 교수는 의아해하며 답안지를 꺼냈다.

이한은 침착하게 말했다.

“시험 문제가 이상하단 게 아니라, 제가 다른 친구들과 다른 시험을 본 것 같습니다.”

“아. 그걸 말한 거였나. 그래. 워다나즈 군은 다른 문제를 받았네.”

알펜 교수는 마치 ‘오늘 아침에는 비가 왔네’라고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말했다.

물론 이한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식을 붕괴시키는 교수의 말에 혼란스러워하며 되물었다.

“실수가 아니라요?”

“왜 실수라고 생각하는 건가? 확실히 말하네만, 실수는 절대 아니었네.”

“...어, 교수님. 그... 같은 강의를 들으면 같은 시험을 보는 게 아닌가요?”

이한은 너무 당연한 말을 하는 바보가 된 기분을 참으며 물었다.

“원래는 그렇네. 하지만 예외도 있는 법일세. 눈 감고도 풀 정도로 쉬운 문제를 받아봤자 아무런 도전도 되지 않잖나?”

“......”

‘미친 사람인가?’

이한은 그래도 이제까지 제국 관료 출신이라 좀 제정신이겠거니 생각했던 알펜 나이튼 교수의 잔잔한 광기를 직면하자 매우 당황스러웠다.

‘내가 에인로가드를 또 얕봤구나!’

다시는 얕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무심코 당하다니.

이한은 스스로의 안일함을 탓했다.

“그렇... 그렇군요. 그러니까 제가 강의 시간에 문제를 잘 풀어서 시험의 난이도가 올라갔다...”

“그보다는 다른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걸 보고 결정했네. 그 정도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네.”

이한은 강의실 밖을 나가는 친구들을 무심코 쳐다보았다.

갑자기 친구들이 아니라 원수처럼 보였다.

“그런데 교수님. 그... 학습과 도전과 뭐... 하여간 다 좋은데, 평가에는 점수가 들어가잖습니까.”

알펜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게 될 텐데 형평성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네.”

“앗. 역시 방법이 있으셨군요.”

이한은 살짝 안심했다.

알펜 교수가 그래도 해골 교장도 아닌데 아무 생각도 없이 이한만 어려운 문제를 줬을...

“어차피 워다나즈 군은 만점을 받았으니 수석일세.”

“......”

‘진짜 미친 사람인가?’

이한은 목구멍에서 기어 나오는 반박을 참기 위해 노력해야했다.

아니 열심히 풀고 운이 좋아서 만점이지 실수 하나 했으면 바로 깎이는데 그랬으면 어쩌려고...

“기말 때는...”

“그 때도 만점을 받을 걸세. 이제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걸 알겠나?”

알펜 교수는 이한의 말을 자르고 자기 말을 이어나갔다. 말 강도가 따로 없었다.

“아니 그게 논리적으로 말이...”

“워다나즈 군이라면 성적에 신경을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네만...”

“예?”

학교 들어와서 받은 오해 중 가장 모욕적인 오해였다.

“하긴 친구들을 그렇게 신경 쓰는 만큼 물어보는 것도 당연하겠군. 혹시라도 따로 특혜를 받았을까봐 이렇게 묻는 거겠지?”

꼬장꼬장한 노교수는 미래의 대마법사를 보는 듯한 흐뭇한 시선으로 이한을 바라보았다.

보통 조그마한 재능이라도 가진 마법사는 그 재능 때문에 오만과 독선의 길로 빠져들기 쉬웠는데 이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대해(大海) 같은 재능을 가졌음에도 이타심을 잃지 않았다.

마법사들이 전부 이랬다면 제국 관료들이 얼마나 마음 편하겠는가?

“그런 특혜는 없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네. 남들보다 더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게 특혜는 아니니 말일세. 아, 물론 성실하고 공명정대한 소년이라면 특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군.”

“...예. 뭐 하여튼 특혜는 제가 좀 거북한...”

“하지만 워다나즈 군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특혜라고 생각하지 않을 걸세. 무엇보다, 2학년이 되면 수많은 강의들을 더 들어야 하는 워다나즈 군이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는 게 더 손해겠지. 제국 만민에게도 말일세.”

이한은 말문이 턱 막혔다.

논리적이고 합당해서가 아니라 이한이 더 어려운 문제를 푸는데 제국 사람들을 갖다 붙이는 교수의 언변에 경악해서였다.

‘진짜 진짜 미친 사람인가?!’

알펜 교수는 인자한 얼굴로 대화를 끝맺음했다.

“문진(文鎭)과 종이뭉치를 내려놓고 에인로가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보람이란 이런 거겠지... 아차. 말이 너무 많았군. 이만 가보게나. 참. 워다나즈 군?”

“예?”

정신력이 고갈된 이한은 무심코 대답했다.

“이번 학기의 남은 강의가 워다나즈 군의 탄탄한 연구 기초가 되도록 해주겠네.”

“......”

이한의 눈에는 친절한 노교수의 얼굴이 해골 교장처럼 보였다.

*         *         *

샤일스 가문의 리치몬드는 방에 앉아서 뒹굴거렸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고생할 때 푹신하고 마른 침대 위에서 쉴 수 있어서 좋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괜히 친구들이 걱정됐다.

“교수님. 친구들이 아직도 안 왔나요?”

“좀 걸릴 텐데.”

“그렇군요.”

10분 후.

리치몬드는 읽던 책을 접고 문 밖에 다시 물었다.

“교수님. 친구들이 언제쯤 올까요?”

“아. 좀 주둥이 닥치고 있지 못하겠냐!”

불행히도 파셀레트 교수의 다른 인격이 안에서 튀어나와 크게 호통을 쳤다.

리치몬드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 미안해요. 성질 더러운...”

“...더럽긴 뭐가!! 친구들을 버리고 들어왔으면 즐기기나 해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교수의 입에서 전혀 다른 울림을 가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리치몬드의 죄책감은 몇 배로 늘어났다.

‘젠장. 교수님의 제안을 받는 게 아니었나?’

처음에 파셀레트 교수가 찾아와서 ‘편안한 휴식, 안락한 따뜻함, 푹신한 침대’으로 제안했을 때는 행운이라고 생각해서 덜컥 받아들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서 여럿이 대화하는 것처럼 왔다갔다하는 파셀레트 교수가 너무 무서웠다.

‘어떻게든 창밖으로 단서를 던지면... 어?’

리치몬드는 높은 창 아래로 낯익은 친구의 얼굴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놀랍게도 워다나즈가 탑 밑을 정확히 찾아와 서성거리고 있었다.

‘여기야! 워다나즈! 여기라고!’

리치몬드는 고함을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를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이러다가 워다나즈가 떠나기라도 하면...

‘그래. 이불과 담요를 사용해서 밧줄을 만들자. 변환 마법으로...’

쾅!

사나운 소리와 함께 창문이 날아갔다. 밧줄을 만들던 리치몬드는 경악해서 눈만 깜박였다.

워다나즈가 그리폰을 몰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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