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70화 (470/687)

470화

“안 되나?”

“당연히 안 되지.”

원래 어지간하면 이한의 말은 긍정해주는 요네르였지만 이번만큼은 이야기가 달랐다.

춤과 사교 강의는 에인로가드에서 몇 안 되는, 공부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강의였던 것이다.

‘이건 이한이라도 안 돼.’

이한은 ‘변별력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좋은 강의는 뚜렷한 평가 기준이 있어야’하고 투덜거리면서 연회에 쓸 요리를 준비했다.

홍수로 인해 많은 식재료들이 날아갔지만 새로 생긴 식재료들도 있었다. 이한은 친구들이 낚아 온 생선들과 조개들을 숯불 위에 올렸다.

그리고 주인이 누군지 잘 모르겠는 오두막에서 나온 대파와 아스파라거스 등의 야채도 같이 구울 준비를 했다.

“요네르. 다 섞었어?”

“여기.”

요네르는 계란 노른자와 우유, 밀가루를 넣고 섞던 그릇을 내밀었다. 이한은 그걸 받아 상태를 확인하고 쿠키 옆에 올려놨다. 커스터드 크림은 어느 디저트든 잘 어울렸다.

‘생선 더 굽고... 밀가루하고 쌀이 얼마나 남았더라. 수프는 어제 만들어놓은 게 있으니 거기에 재료 좀 추가하고, 푸딩하고 케이크 정도는 넉넉히 내놓는 게 좋겠지. 사과하고 스펀지 케이크로 할까. 해골 교장이 수면제 탄 음식은 알아서 먹을 놈들 먹으라고 하고. 다른 생선하고 닭은 꼬치로 구워서 내놓는 게 편하겠지? 참. 페이스트가 얼마나 남았더라. 새로 만들어야겠군. 고춧가루하고 마늘로 만들까. 흰 호랑이 탑 놈들은 좀 매콤하게 먹던데... 아니다. 그 자식들 따로 챙겨줄 필요가 있나? 에이. 그냥 만들어주자.’

제국 유명 요리사 가문 출신인 렌지드는 이한이 몇 가지 요리를 동시에 진행하는 걸 보자 괜히 걱정이 되서 말했다.

“워다나즈. 어차피 친구들은 배가 고파서 뭘 줘도 잘 먹을 거고, 또 그렇게 공을 들여 봤자 뭐가 뭔지도 잘 모를 텐데 너무 공들이지 말고 적당히 하는 게 어떤...”

“뭐라는 거야!!!”

“렌지드, 너 이 자식. 네가 뭔데 워다나즈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격분해서 외쳤다.

평소 나름 품위를 지키던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이 흰 호랑이 탑처럼 길길이 날뛰자 렌지드는 매우 당황했다.

“아, 아니. 나도 요리사 가문...”

“요리사 가문이면 뭐든지 말해도 되냐? 그런 거냐고!”

“네가 아무리 요리사 가문이어도 워다나즈는 일 년 동안 에인로가드에서 실전으로 요리를 했어! 그 실전경험을 네가 따라올 수 있겠냐!”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오랜만에 이한이 차려준 만찬을 먹을 기회가 사라질까봐 극도로 예민했다.

심지어 다른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도 슬쩍 동조했다.

“렌지드. 네 가문과 실력은 존중하지만 다른 사람이 요리할 때 참견하지 말자구.”

“맞아. 그리고 워다나즈는 원래 저런 식으로 난이도 높은 일에 도전하는 걸 즐긴다고.”

“......”

렌지드는 의심쩍은 눈빛으로 친구들을 쳐다보았다.

같은 탑 친구들이긴 했지만 이번 건에서 렌지드는 워다나즈의 편이었다.

요리사로서 저런 무리한 일을 하는 걸 보면 동질감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이 자식들 요리 하나 더 얻어먹으려고 대충 지껄이는 거 아니야?’

*         *         *

토요일 아침.

춤과 사교 강의를 가르치는 거미 수인 교수, 크린발은 오늘도 유쾌하게 학생들을 맞이했다.

“자! 다들 고생 많았어요. 스텝을 밟으면서 들어오세요! 시험은 모두 끝났잖아요! 어라? 가이난도 학생은 왜 안 보이죠?”

“먹고 자고 있어요.”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제 만찬에서 해골 교장의 간식을 집어먹은 학생들은 아직도 푹 자고 있었다.

크린발 교수는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얼마나 시험이 피곤했으면 춤을 추는 것도 포기하고 자고 있었을까요!”

“딱히 시험 때문은... 아닙니다.”

“시험이 끝난 만큼 오늘은 참 춤을 추기 좋은 날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죠 다들?”

“예!”

“시험은 모두 다 잊어버리세요!”

“예!!”

‘그래도 되나?’

크린발 교수가 경쾌하게 외치자 학생들은 크게 호응했다.

“다들 어떻게? 즐겁게!”

이한은 무심코 고개를 돌려 강의실 밖의 창문을 쳐다보았다.

저 밑까지 차오른 물이 넘실거리면서 우중충한 안개를 흩뿌리고 있었다.

‘음. 창 밖은 보지 말아야지.’

“그러면 저번에 이어서 다시 춤을 춰보도록 하겠습니다! 학생들은 제가 종을 칠 때마다 시계 방향으로 파트너를 바꿔보세요. 많은 상대를 만나야 좋은 춤꾼이 될 수 있습니다!”

땡-

“워다나즈.”

“앙라고. ...왜 내 발을 쳐다보지?”

“아, 아닌데? 그냥 춤이 어려워선데?”

“설마 지금 밟아도 되나 머리 굴린 건가? 뒤지고 싶나?”

“아, 아닌데?? 그런 생각 조금도 안 했는데??”

땡-

“닐리아.”

“워다나즈. 저번 소풍 때 정말 너무하지 않았어?”

닐리아는 쌓인 게 많았는지 이한의 손을 잡자마자 울분을 토해냈다.

‘음. 정말 억울했나보군.’

눈동자와 목소리에 억울함이 가득한 게 느껴졌다.

“교장 선생님이 원래 좀 미치시긴 했지.”

“그것도 그건데 나도 장기자랑 때 정령 소환했는데 다들 황녀님 정령만 감탄했다고!”

“...그... 그렇군. 그걸 말한 거였군. 그야 넌...”

이한은 ‘넌 정령 시켜서 물고기 관통 사격했고 황녀님은 정령 시켜서 일루미네이션 퍼레이드를 보여줬잖아’라고 말하려다가 꾹 참았다.

보아하니 닐리아는 다른 검은 거북이 탑 친구들한테 말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이한에게 말하는 게 분명했다.

하긴 요즘 이한이나 요네르 모두 바빠서 닐리아가 하소연할 곳도 없었을 테니...

“넌?”

“아무래도 그림자 순찰대 출신이라 평범한 제국 사람들은 그 비범함을 눈치 못 채잖아. 좀 아는 사람들이나 알아채는 법이지.”

“...에이. 그 정도는 아니다.”

닐리아는 쑥스러워하며 부정했지만 기분이 매우 좋아진 건 사실이었다. 귀의 각도 자체가 달라져있었다.

이한은 옆에서 스텝을 밟고 있던 요네르와 시선을 교환했다. 요네르는 자신한테 맡겨두라는 듯이 눈짓했다.

‘두 명이 연속으로 칭찬하면 완전히 회복되겠군.’

“네가 이해해줘. 원래 여기 학생들이 보는 눈이 없...”

땡-

“더르규.”

“이한. 팔은 괜찮나?”

“팔은 갑자기 왜?”

“아까 황자님이 넘어뜨린 솥단지를 급하게 붙잡았잖나. 꽤 무거웠을 텐데.”

“아. 그거 마력 써서 잡은 거라 괜찮다. 황자라고 하길래 순간 누군가 했군.”

“......”

더르규는 그 짧은 사이에 마력을 육체에 돌려서 쓸 정도로 능숙해진 친구의 실력에 감탄해야 할지 아니면 황자가 누군지 모르는 태도에 당황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시험은 잘 봤나?”

“가르쳐 준 덕분에 잘 봤다. 다시 한 번 고맙다. 이한.”

씩 웃는 더르규의 모습에 이한은 흐뭇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같이 배웠던 다른 흰 호랑이 탑 놈들은...”

“......”

“더르규? 왜 대답이 없지?”

“......”

땡-

“더르규? 더르규? 지금 설마 무시하는...”

“오. 싸웠나?”

지젤이 보기 드물게 기대 섞인 시선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아니. 흰 호랑이 탑 놈들 시험 잘 봤냐고 물으니까 갑자기 벙어리가 되더군.”

“......”

지젤은 말없이 침묵하더니 갑자기 이한의 발을 밟으려 시도했다. 이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발을 뺐다.

“앙라고가 이미 시도하려고 했지. 모라디. 늦었다.”

“그 자식은 정말 도움 되는 구석이 하나 없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은데.”

“니가 있는 탑의 황자한테도 그 소리 똑같이 해보시지.”

“가이난도? 가이난도는 도움이 되는 구석이 있...”

이한은 말하다가 머뭇거렸다. 지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이죽거렸다.

“무슨 구석을 말하는 거지? 말해봐.”

“가이난도는... 음...”

“뭔데?”

이한은 아까 더르규가 했던 전략을 선택했다.

침묵이었다.

“......”

“...야.”

“......”

“야, 지금 불리하다고...!”

땡-

“아. 아산. 저번에 도와줘서 고맙다.”

“별 거 아니었지. 그런데 워다나즈. 왜 모라디가 옆에서 욕하는 거지?”

“내가 아니라 앙라고한테 하는 거겠지. 신경쓰지 마라.”

“너한테 하는 것 같은데... 음. 중요한 건 아니겠지. 참. 편지를 받았는데 형님이 네 이야기를 하시더라.”

“뭐라고?”

아산의 형인 달카드 가문의 다이할.

그랑덴 시에서 제국행정관으로 일하고 있는 만큼 이한도 방학 때 만난 적이 있었다.

“나보고 너만큼만 하라던데.”

“...미안하다.”

“왜 사과하지? 편지 내용 좋았는데?”

“그게 좋았다고...?”

아산은 진심으로 편지 내용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평소에 실망했다는 내용과 달리, 이번에는 좀 인정도 받고서 정진하라는 말을 들은 만큼 꽤 기뻤던 것이다.

“가이난도를 본받으라고 했으면 아마 100% 화가 났겠지. 하지만 너라면 뭐...”

“그, 그래. 네가 만족했다면 상관없겠지. 근데 아산. 나중에 네 가족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겠나?”

“아. 가족하니까 생각난건데 누님도 네 이야기를 하시더군. 이번 방학 때 초대해서 네 생활을 기록하게 해달라고 하시던데.”

“...어째서지?”

“이건 내 추측이지만, 청동 드워프 은행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교재로 쓰기 위해서 아닐까 싶군.”

“아산. 오늘 저녁에 그냥 네 가족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보자.”

이한은 아산에게 ‘네 가족은 좀 이상하다’라는 말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고민했다.

땡-

“황녀님.”

아덴아르트는 학생들 중 가장 품위 넘치는 동작으로 고개를 숙였다.

대귀족 가문인 푸른 용의 탑 학생들과 비교해도 황녀의 무도회 참가 경험을 따라오기는 힘들었다.

가이난도는 좀 예외였고...

“워다나즈.”

황녀는 가볍게 헛기침을 한 다음 이번 해 이한이 보여준 같은 학년 학생들을 향한 헌신과 희생정신을 칭찬하고 처음에 오해했던 걸 사과한 다음 누구나 좋아하는 요즘 제국 귀족 가문의 정치 구도와 정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준비했다.

“아침 식사는 마음에 드셨습니까?”

“껙, 예.”

‘방금 껙이라고 하지 않았나?’

말을 하려다가 선수를 뺏긴 황녀는 기침을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혹독한 훈련으로 단련된 후천적인 능력이었다.

“생선 중 어느 게 마음에 드셨습니까?”

“...아귀가...?”

“아. 제대로 살이 올랐죠. 제가 생각해도 숯불로 잘 구운 것 같습니다. 사과 푸딩은 어떠셨습니까?”

맛을 떠올린 황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우ㄹ... 아니, 오두막에서 건진 사과가 꽤 향긋하더군요. 스펀지 케이크는 처음에 만들 때는 좀 모양이 별로였는데 점점 만들다보니까...”

이한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매우 흥미롭게 듣고 있던 황녀는 문득 자기가 이걸 왜 듣고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왜 말해주는 거지?’

워다나즈 같은 사람은 어떤 행동도 허투루 하지 않는 법이었다. 모든 행동에 의미가 있었다.

“그나저나 친구들이 2학기 때 좀 굶주려서 걱정입니다. 홍수가 끝나면 각자 탑으로 돌아갈 텐데 끼니를 제 때 챙겨먹을지.”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황녀는 대답하고서도 이한의 의도가 파악되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이한이 불사조 탑으로 간 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식생활 수준이 하락했다! 탑의 종말이다!’하고 비명을 질렀지만 황녀는 그게 그리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배가 고프고 입맛이 없어지고 힘들긴 했지만 에인로가드 학생이라면 의연하게 맞서야 하지 않겠는가.

배가 고프고 입맛이 없어지고 힘들긴 했지만 황녀 또한 당당하게 맞서고 있었다.

“아. 혹시 없는 동안 다른 학생들을 도와달라는 요청이라면...”

황녀는 이한이 그런 명예로운 요청을 한 건가 싶어서 바로 수락하려고 했다.

“아뇨. 그건 아니고요. 그보다 황녀님은 괜찮으십니까? 돌아가면 잘 챙겨드실 수 있으시고요?”

“...!”

황녀는 드디어 경악했다.

지금 설마...

워다나즈가 자신을 먹을 것에 환장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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