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73화 (473/687)

473화

“아, 아니.”

“뭘 봐. 내가 살 것 같아?”

살코와 지젤은 바로 거절 의사를 밝혔다.

아무리 둘이 용감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각 탑의 우두머리였지만, 이한처럼 뛰어난 마법사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수상쩍은 아티팩트를 살 정도로 배짱이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건 사실 멍청한 것에 가까웠다.

“으음. 아쉽군. 꽤 괜찮은 투구인데.”

“......”

“......”

둘은 속으로 어이없어했다.

워다나즈를 좋아하는 놈이든 싫어하는 놈이든 워다나즈가 가진 책임감을 부정하진 못했지만...

그건 그거고 저 투구는 사기매물이 맞았다.

“나중에 다른 선배들한테 팔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나. 워다나즈.”

“아. 후배 들어오면 후배한테?”

“...아니! 제물 말이다. 제물.”

둘의 대화에 지젤은 신중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확실히 제물을 바치면 이 상황을 종료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좀 솔깃하긴 했다.

“워다나즈. 오해하지 말고 듣도록 해.”

“보통 그런 말을 하면 오해할 수밖에 없던데... 뭐. 말해봐라.”

지젤은 가이난도가 있는 쪽을 살짝 눈짓하며 말했다.

“저 친구 정도의 핏줄이면 정령도 만족할 제물일 수 있어. 어떻게 생각하지?”

“그거 좋은 생각인데.”

살코도 감탄했다.

원래 귀족 가문 놈들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살코에게 있어서 가이난도처럼 혈통만 믿고 나대는 친구는 언제 어디서 사라져도 아쉽지 않은 녀석이었다.

“...둘 다 혹시 교장 선생님의 술이라도 처먹었나? 뭔 개소리를?”

이한은 경악해서 되물었다.

“잘 생각해봐. 워다나즈. 너도 객관적으로 괜찮은 제물이지만 넌 빠지면 안 되니까 하는 제안이거든.”

“워다나즈. 너도 솔직히 저 황자가 일 안 하고 놀 때 얄밉지 않았나?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아야 하는데...”

순간 솔깃할 뻔했지만 이한은 이성을 붙잡았다.

아무리 홍수를 끝내고 싶어도 친구를 분노한 정령한테 보낼 순 없었다.

나중에 정령계에서 성장한 가이난도가 돌아와서 제국 만민에 대한 복수를 선언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안 돼. 그리고 내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너희 둘...”

“?”

“왜 바칠 제물을 학생으로만 생각하고 있지? 다른 멀쩡한 제물들을 찾아봐도 되잖아?”

“...어.”

살코는 말문이 막혔다.

지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게?

이한은 둘을 보고 혀를 찼다.

‘에인로가드에 너무 물들어버렸군.’

원래 선량했을... 아니, 원래 선량하진 않았어도 저 정도는 아니었을 친구들이 저렇게 과격하게 바뀌다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일단 좀 더 생각해봐라. 학생들 바치는 거 말고. 난 주말도 됐겠다 오두막 좀 하나 더 가지고 와야겠군. 탄주어 님! 저 좀 데리고 나가주십시오!”

쉬는... 시간인데...

“쉬는 시간 체크했습니다. 지금쯤 힘이 다 회복되셨잖습니까. 약한 소리 하지 마십시오. 탄주어 님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한 존재십니다.”

난 쉬고 싶...

“그럼 교장 선생님 습격하시겠습니까?”

...가면 되잖나...

탄주어는 울음을 참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슬픈 눈망울로 대답했다.

살코와 지젤은 이한을 보고 혀를 찼다.

‘내가 할 생각은 아니지만...’

‘...워다나즈는 너무 에인로가드에 물들어버린 것 같단 말이지.’

*         *         *

이한이 주말에 친구들과 탄주어를 타고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우레걸음 교수의 다른 오두막을 낚아서 빌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잘 들어라! 가장 먼저 오두막 발견하는 놈한테는 메이킨 가문의 판 초콜릿 다섯 개를, 가장 먼저 오두막에 갈고리를 거는 놈한테는 벌꿀감주 세 병과 살라미 소시지 세 개를, 가장 먼저 문 따고 안에 들어가는 놈한테는 오두막의 식료품 중 무엇이든 하나를 먼저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

“와아아아아아! 워다나즈 선장 만세!”

“우린 에인로가드의 해적이다!”

미친... 놈들...

탄주어가 중얼거렸지만 탐욕에 눈이 먼 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푸른 용의 탑, 흰 호랑이 탑,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로 구성된 해적들, 아니, 탐색대는 에인로가드를 돌아다니며 부유물들을 확인했다.

“?”

마찬가지로 확인하던 이한은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저 멀리서 유리병 하나가 둥둥 떠밀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

병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지만 온갖 부유물 사이에서 흠집 하나 없이 이쪽으로 똑바로 떠밀려오는 게 무언가 마법적인 현상으로 느껴졌다.

이한은 조심스럽게 유리병을 건져 올렸다. 안에는 둘둘 말린 종이 편지가 하나 있었다.

도와줘!

비블레 버두스

“......”

이한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다시 종이 편지를 유리병에 넣었다.

그리고 저 멀리 집어던졌다.

뭘... 던진 거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유리병... 같은 걸...

“탄주어 님. 교장 선생님의 집무실을 한 번 공략하시겠습니까?”

탄주어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

아까와 다른 방향에서 유리병이 하나 흘러들어왔다. 이번에는 친구들도 발견했다.

“워다나즈. 저거 뭐야?”

“혹, 혹시 보물지도 아닐까?”

이한은 인상을 찌푸리고 열어보았다.

도와줘! 워다나즈!!

비블레 버두스

“......”

“......”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학생들 사이에서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이한은 강철 같은 무표정으로 종이를 다시 유리병에 넣은 다음 집어던졌다.

“잘못 온 편지군.”

“으... 으응?”

“워다나즈라고 쓰여 있었...?”

“너희가 잘못 본 거다.”

이한의 말에 학생들은 침묵했다.

하고 싶은 말이야 많았지만 여기는 배, 아니 탄주어 위였고 선장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맞아! 잘못 본 거 같아!”

“요즘 저런 가짜 편지가 에인로가드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지!”

친구들의 든든한 지원에 이한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다시 오두막을 찾...”

둥둥-

이번에는 유리병 몇 개가 우르르 밀려오고 있었다.

이한은 설마 싶어서 탄주어 아래로 내려가 물 위를 뛰어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유리병이 이한이 있는 방향으로 틀어서 슬슬슬 흘러왔다.

빨리 와줘! 간수 눈치 보여서 아티팩트도 만들기 힘들어!

보상이 없어서 그러는 거야? 좋아! 내 도구를 빌려줄게! 이거 진짜 특혜야!

내가 좀 더 양보할게! 아티팩트 만들 때 내 작업실도 써도 돼! 옆에서 밤새도 꺼지라고 안 할 테니까!

이렇게 따라오는 걸 보니 버두스 교수가 이한을 지정하고 편지를 보내는 게 분명했다.

‘마법이 이렇게 끔찍해질 수가 있군!’

이한은 제국 반마법주의자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그 좋은 기술이 이렇게 악용될 수 있다니.

‘그보다 정말 의욕을 없애는 재주가 있으시군.’

사실 이한도 버두스 교수를 조금 걱정하긴 했다.

교수가 징벌방에 가 있는 상황은 분명 즐거운 상황이었지만...

...그 교수가 학생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있는 상황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버두스 교수가 징벌방에 간 원인 중 절반 정도는 이한의 책임이었던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스스로의 업보긴 하지만.’

그래서 주말에 한 번 징벌방에 방문해서 괜찮은지 확인도 좀 하고, 진상을 눈치 챘는지 떠보기도 좀 하고, 저번 강의 때 만났던 선배도 만나서 사식도 넣어드리고 할 생각이었다.

버두스 교수 비중이 조금 적긴 했지만 생각을 아예 안 한 건 절대로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편지들을 보니 가려던 마음도 싹 사라질 지경이었다.

구해주면 일하게 해주겠다니 이게 무슨 미친 협상조건이란 말인가?

“애들아. 미안하다. 버두스 교수님 좀 구하고 오마.”

이한의 말에 친구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래. 잘 갔다 와.”

“교수님 구해드릴 때 협상 잘 하고. 최대한 뜯어내야 해.”

“구하기 힘들겠다 싶으면 그냥 거기 계시라고 해! 알아서 나오실 수 있으실 거야!”

아무도 이한이 다른 선배들을 두고 교수를 구하러 가는 것에 대해서는 의아해하지 않았다.

탄주어는 낮게 중얼거렸다.

미친... 마법사 놈들... 같으니...

*         *         *

징벌방의 공기는 어둡고 음울했다. 어디선가 멀리서 학생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완전히 침수되진 않았지만 무릎까지 차오른 물이 더욱 분위기를 음산하게 만들었다.

어둡고 고통스러운 에인로가드에서도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곳, 징벌방!

어지간히 미친 학생도 자발적으로 여기를 찾아오진 않았다.

단순히 공기가 탁해서가 아니라 이 지하에 위치한 미궁이 그만큼 위험해서였다.

잘못 들어왔다가는 시시각각 바뀌는 복잡한 길에 방향을 잃고 새로운 죄수가 될 수도...

“페르쿤트라 님! 페르쿤트라 님! 페르쿤트라 님!!”

이한은 벽을 탕탕 두드리며 간수를 불렀다.

마력도 남겠다 목에 마력을 퍼부어가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페르쿤트라 님! 페르쿤트라 님! 페르쿤트라 님!!”

“1학년이잖아?! 너 어떻게 복도를 걸어 다니고 있는 거냐?!”

“멋지다, 무쇠대가리! 에인로가드에 불을 질러라!”

이한이 소리 지르면서 복도를 걷자 안에 있던 죄수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더 소리 질러라! 간수들이 오게!”

“아니야! 소리 줄여! 간수들이 오면 잡아간다!”

“잡혀가기 전에 먹을 것 좀 주고 가!”

“멍청아, 무쇠대가리가 먹을 게 어디 있겠냐! 신발 가죽도 씹어 먹을 땐데!”

조용, 조용, 조용, 조용!

저 멀리 복도에서 우레와 뇌성이 들리더니 전사 형태를 한 분신들이 달려왔다.

분신들은 사방에서 번개를 내뿜으며 안에 갇힌 학생들에게 마법을 날렸다.

-조용히 하라고 했을 텐데!

“자유를 향한 내 열망은 정령의 채찍으로 다물어지지 않는다 크악!”

-시끄럽다, 시험 도중 부정행위를 저지른 놈이!

“에인로가드에서는 정당방위였을 뿐 크억!”

“......”

선배들의 추한 저항을 보던 이한은 전사들에게 붙잡혀 다른 쪽으로 끌려갔다.

안에 갇혀 있던 선배들은 휘파람을 불고 발을 구르며 외쳤다.

“신입, 들어온 걸 환영한다!”

“다 징벌방 한두번씩 들어오고 그러는 거야! 너무 겁먹지 마라! 1학년 때는 금방 나가!”

이한은 좀 미안해서 대답했다.

“저 갇힌 거 아닙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싶겠지!”

“우리도 사실 갇힌 게 아니라 여기서 그냥 사색을... 크악!! 그만 지져 이 번개자식아!”

*         *         *

다른 정령들에게 일을 시키고 본인은 폐쇄된 징벌방에서 쉬고 있던 페르쿤트라는 못마땅한 얼굴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안 그래도 시험 기간이라 징벌방이 붐비는데 왜 와서 소란을 만드는 것이냐?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이 홍수는 내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설령 할 수 있더라도 할 생각도 없고.

페르쿤트라는 거만하게 거절했다.

이한의 마음은 이해가 갔다.

페르쿤트라처럼 강력한 정령과 어린 나이에 계약했으니, 이런 난관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고 싶은 게 당연하리라.

그러나 정령과의 계약은 만능이 아니었다.

오로지 합당한 내용 안에서만 가능한 만큼 이런 정령 홍수를 막는 것 같은 거대한 일은 페르쿤트라가 들어줄 생각이 없...

“예? 그게 아니라 징벌방에 갇힌 사람을 면회하고 싶어서 찾아왔는데요.”

......

페르쿤트라는 어이가 없었다.

민망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1학년 학생이 징벌방에 면회 목적으로 찾아오다니.

‘이 놈은 겁이 없나??’

아니 물론 페르쿤트라와 계약했다는 걸 믿고 왔겠지만...

...그래. 누굴 면회하려고 찾아온 것이냐? 이름이 어떻게 되지?

“비블레 버두스입니다.”

비블레... 비블레 버두스...

페르쿤트라는 갇힌 학생들의 이름을 확인해봤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제대로 말한 게 맞나? 이상한데? 학생 중에...

“아. 학생이 아니라 교수님이신데요.”

...다른 제자들은 뭐하고 왜 네가 왔나!?

결국 페르쿤트라는 참지 못하고 외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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