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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75화 (475/687)

475화

이한은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여기가 해골 교장이 직접 관리하는 징벌방이기도 하고 오래 있어서 좋을 게 하나 없었다.

그냥 조용히, 눈치 보면서 버두스 교수만 데리고 가고 싶었는데...

페르쿤트라가 길길이 날뛰면서 여기 지하 어딘가에 있을 정령을 끝장내겠다고 하는 것이다.

“페르쿤트라 님. 진정하셔야 합니다. 보아하니 여기는 적의 본진입니다.”

물살이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하고, 페르쿤트라가 막아서자 바로 더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걸 보니 홍수를 일으킨 정령들의 본진은 이 주변이 분명했다.

다른 차원의 정령이 오랫동안 머무르면 현실도 거기에 맞춰서 개변되기 마련.

안 그래도 분신으로 제약된 힘만 가지고 싸워야 하는 페르쿤트라에게는 더욱 불리한 환경이었다.

“싸우지 마시고 그냥 교수님만 찾아서 나가시죠.”

힘을 빌려다오!

“아니...”

이번만! 이번에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다음에는 네 부탁을 들어주겠다!

“...상대가 말 한 번 못 들은 척 했다고 너무 사생결단을 내시려는 거 아닙니까?”

이한은 페르쿤트라를 말리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차피 넘치는 마력 빌려주고 나중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이한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 없는 교환이긴 했지만...

‘아니 대체 왜 저렇게 화를?’

정령들 사이의 명예, 자존심, 자부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한에게는 페르쿤트라가 조울증으로 보일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마시고...”

일흔두개의 금궤를 열어 보상을 약속하노니 시종들은 더욱 더 도달할지어다!

“......”

내탕고(內帑庫)의 문을 추가로 개방하겠다! 전사들이여, 집합하라!

“......”

아까 부른 시종들로 모자라 재산을 털어 정령 군대들을 소집하는 페르쿤트라의 모습에 이한은 상황이 점점 커지는 걸 느꼈다.

쳐라! 우렛소리가 나팔수가 될 것이니, 너희들은 나아갈지어다! 복수자들이여, 날 모욕한 적들에게 그대로 갚아주는 자들에게 뇌금(雷金) 있을지어다!

정령 군대는 진형을 갖추더니 사나운 기세로 돌진을 시작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통로를 밀어붙이던 정령의 물살이 증발하고 흩어지며 빠르게 밀려났다.

“......”

이한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페르쿤트라 분신의 뒤를 쫓아서 걸어갔다.

일단 들어온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히... 히익!”

“미친 마법사다...! 미친 마법사야!”

징벌방 안쪽에 갇혀 있던, 해골 교장이 수집한 제국의 중범죄자들이 이한을 보고 기겁해서 고개를 무릎 사이에 처박고 벌벌 떨었다.

밖에서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온갖 흉악한 짓들을 저지른 자들이었지만 징벌방에 오고 나서부터는 마법의 위대함에 비해 자신이 얼마나 벌레 같은지 느낀 지 오래였다.

그런 와중에 웬 미친 마법사 하나가 정령 군대를 이끌고 통로에서 대륙 멸망의 날에나 있을 법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으니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를 단죄하기 위해 새로 온 미친 마법사인가?’

“저기 말씀 좀 묻겠...”

이한이 말을 던지는 순간 범죄자 한 명이 자신의 목을 힘껏 조르더니 거품 물고 쓰러졌다.

“......”

다른 범죄자들도 비슷하게 행동했다.

이한은 한숨을 한 번 푹 쉬고 정령 군대의 뒤를 쫓아 서둘러 달려갔다.

*         *         *

버두스 교수는 열심히 편지를 쓴 다음 유리병 안에 넣었다.

그리고 마법을 걸어서 창살 밖으로 던졌다.

원래라면 밖으로 연락을 전달할 방법이 없었겠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에인로가드에 일어난 정령 홍수.

심층 징벌방의 죄수들이 홍수로 고통 받는 걸 막기보다는 오히려 권장하는 해골 교장.

이 몇몇 요소들이 겹쳐 유리병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물살을 타고 밖에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버두스 교수는 열심히 다음 종이를 찢어 편지를 준비했다.

“아. 그만하세요. 교수님. 퍽이나 오겠습니다.”

복도 반대 쪽 감방에 갇혀 있던 졸업생, 도두크 가문의 케틀이 짜증을 냈다.

“교수님 제자 중에 누가 교수님을 구하러 와요?”

다른 자존심 강한 교수라면 아무리 졸업생이라지만 제자의 도발에 발끈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버두스 교수는 비범한 정신세계를 갖고 있는 사람.

케틀의 빈정거림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왜 안 구하러 와?”

“...그야 교수님이... 아오. 됐습니다. 하여간 그만 하세요. 절대 안 올 테니까. 만약 오면 제가 일주일 동안 염소로 지내겠습니다.”

“아냐. 올 거야.”

“아. 진짜 내가 어쩌다가 버두스 교수님 앞에 갇혀서... 잠깐. 교장 선생님이 일부러 배치한 거 아냐? 진짜 너무하시네. 내가 강의에서 얼마나 열심히 떠들었는데.”

케틀은 분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죄를 씻기 위해 인성 교육 강의에서 얼마나 열심히 떠들었던가.

그런 노고도 모르고 이렇게 버두스 교수 앞방에 가두다니.

“교수님도 헛짓거리 그만하시고 빨리 반성의 아티팩트나 만드세요. 죄를 지었으면 노역으로 갚아야죠.”

“난 죄가 없다니까.”

“아. 예. 그러시겠죠.”

케틀은 피식 웃었다.

다른 모든 말은 믿어도 버두스 교수가 하는 ‘난 죄가 없어’란 말은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저도 마을의 가축을 훔쳐서 변신시키지 않았습니다. 길드 투자 받아서 날리지도 않았고요. 다 오해인데 제가 재수없게 갇혔네요!”

“어? 그럼 고나달테스한테 빨리 말해.”

“...간수! 간수! 제발 방 좀 바꿔줘!!”

케틀은 탕탕 창살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하긴 정령 홍수로 차오른 물이 머리 끝까지 차오르는데도 안 오는데 올 리가 없었다.

“꼬륵... 꾸륵륵. 마법사님. 마법사님. 제발 저 좀 도와주십시오.”

옆 감방에서 물에 익사하기 직전인 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틀이나 버두스는 마법사라서 들어오는 물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냥 평범한 범죄자들은 그럴 수 없었다.

케틀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안 죽어.”

“죽... 꾸르륵. 죽어... 미친마법사새끼들아...”

“그래그래. 더 참신한 욕은 없고?”

옆 감방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끊어졌다. 아마 완전히 침수된 모양이었다.

케틀은 신경을 끄고 다시 버두스 교수를 불렀다.

“교수님. 절대 안 올 제자들 괴롭히지 마시고, 다른 방법을 고민해봅시다. 어떻게 탈옥할 방법이 없을까요?”

버두스 교수는 정신나간 비버 수인 마법사였지만, 교수의 실력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에인로가드 졸업생인 만큼 케틀은 ‘모든 마법에는 허점이 있다’라는 해골 교장의 격언을 기억했다.

버두스 교수라면 그 허점을 더욱 잘 찾아낼 수 있으리라.

“무리야.”

“아니 찾아보지도 않으시고... 그 벽에 부여 마법으로 균열을 내서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보면 어떻습니까?”

“고나달테스는 여기 벽에 <바콴탈라나의 비통>을 걸어놨어.”

바콴탈라나.

부여 마법사라면 어느 누구나 이름을 알고 있는 수백 년 전의 위대한 부여 마법사였다.

그리고 바콴탈라나가 이름이 높았던 분야는 바로 마법사를 가두는 미궁이었다.

그 미궁을 장식한 마법 중 하나가 바로 <바콴탈라나의 비통>.

온갖 마법 시도를 무산시키는 단단한 철벽 같은 마법이었다.

“그... 그렇게까지? 아니, 그럴 금화가 있으면 저희 연구비로 주시지!”

케틀은 분노했다.

<바콴탈라나의 비통>이 얼마나 비싼 마법인데 이런 감방에 낭비한단 말인가.

에인로가드의 학생들은 <어떤 재질의 양말을 신어야 냉기 계열 마법에 잘 버틸 수 있을까?>같은 연구의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그래도 해결하실 수 있지 않으십니까?”

“그거 자체는 어떻게든 시간 주면 뚫을 수 있어. 근데 그 뒤에 배치된 벽이 통째로 <팔다르 르지의 황금>이야.”

“...아니 진짜 너무하시네!!”

팔다르 르지.

부여 마법사들이 모두 바콴탈라나의 이름을 알듯이 변환 마법사들은 모두 르지 가문의 팔다르를 알았다.

‘어떤 물질도 여기서 더 이상 완전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알려진 <팔다르 르지의 황금>을 개발한 마법사!

...그리고 그걸 감방에 낭비하다니!

“제가 그거 한 조각이라도 구하고 싶어서 제국 경매도 몇 곳이나 참가하고 후원금도 요청하고 그랬는데 시치미를 뚝 떼셨던 겁니까!?”

“훔치지 그랬어?”

“있는지 알아야 훔치죠!”

케틀은 씩씩댔다.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에인로가드는 여전히 학생들을 화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 <팔다르 르지의 황금>도 뚫을 수 있긴 한데 그 뒤에는...”

버두스 교수는 표정 변화 없이 이 감방에 배치된 마법들을 줄줄 읊었다.

케틀은 그 화려하고 웅장한 마법들의 라인업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이런 미친...’

모든 마법에는 허점이 있다고 말한 만큼, 해골 교장은 그걸 보완하는 법도 아주 잘 알았다.

마법들끼리 서로 정교하게 연계시킬수록 허점은 바늘구멍처럼 줄어드는 법.

새삼 케틀은 해골 교장이 얼마나 위대한 대마법사인지 느꼈다.

...그걸 왜 징벌방에서 보여주는지 잘 모르겠지만...

쾅!!!

“???”

밖에서 들려오는 굉음.

케틀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귀를 기울였다.

평범한 제국 사람들이라면 들을 수 없는 소리였지만, 숙련된 마법사인 케틀의 귀에는 정령들의 소리없는 아우성들이 굉음 사이에서 섞여 들렸다.

■■■■■■! ■■■■-■■■!

■■■■■■■!

‘뭐야? 정령들이 싸우나?’

정령 홍수가 밖에서 일어난 건 알고 있었지만 정령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거대한 흐름 속에서 정령들이 의견이 갈리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이다.

“알겠다.”

버두스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케틀은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버두스 교수는 교수 아닌가.

이 상황에 대해서 분명 알고 있...

“뭔데요?”

“날 구하러 온 거야.”

“...아 진짜 지랄...”

“버두스 교수님! 버두스 교수님 계십니까!!”

“?!?!?!?!!!!”

케틀은 자신이 징벌방에 갇혀서 미쳐버린 줄 알았다.

저 멀리서 정말 버두스 교수를 찾는 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에인로가드가 망했나????’

케틀은 버두스 교수를 구하러 올 제자가 나오는 것보다 에인로가드가 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이었다.

“버두스 교수님!”

“나 여기 있어! 나 여기 있어!”

“교수님!”

“그래! 빨리 열어!”

심지어 제자는 정말로 버두스 교수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케틀은 눈만 끔뻑이며 상황파악을 하려고 애썼다.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위치만 확인하고 문은 다음에 열겠습니다!”

“왜?”

이한은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감방 복도가 미친듯이 옆으로 확장되더니 양쪽에서 정령들이 사납게 달려들어서 힘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우레와 천둥과 번개를 무기 삼아 휘두르는 페르쿤트라 휘하의 정령들.

그에 맞서 폭풍과 비바람을 화살로 쏘아대며 막아선 홍수 측 정령들.

그 튼튼한 감방이 삐걱거릴 정도의 살벌한 격전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아 조심 좀 하십시오!! 저 옆에 있습니다!”

걱정 마라! 계약자를 다치게 할 정도로 내가 허술해보이나!?

‘네...’

나와라, 잡스러운 도적놈들의 우두머리야! 내 제안을 모욕하고 무시한 놈의 얼굴을 봐야겠다!

페르쿤트라는 다시 한 번 이한의 마력을 끌어냈다.

원래 계약자의 마력을 끌어내는 건 무슨 미친 악마와 사기 계약을 한 게 아닌 이상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사람이 그렇듯 정령도 몇 번 반복하면 좀 뻔뻔해지기 마련이었다.

이한은 황당해하며 페르쿤트라를 쳐다보았다.

‘아니 마력이 남는다지만 이렇게 막 가져가도 되나?’

이한은 전투 끝나고 나서 단단히 항의해야겠다고 기억해뒀다.

“너... 너... 너...?!”

“아. 선배님!”

케틀은 옆방에 갇힌 죄수처럼 컥컥 숨막힌 소리를 냈다.

선배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이한은 다급하게 외쳤다.

“사식은 전투 끝나고 넣어드리겠습니다!”

“뭔... 대체... 뭔 짓을 하고 있...? 컥. 숨이, 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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