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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76화 (476/687)

476화

버두스 교수가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숨도 못 쉬어? 애기야?”

“헉, 허억. 닥치십쇼!”

케틀은 버두스 교수에게 성질을 내며 호흡을 정리했다.

에인로가드에 갓 들어온 신입생마냥 호흡곤란이 올 줄이야.

수치스러운 일이었지만 케틀도 할 말이 있었다.

‘방금 본 광경은 누가 봤어도 호흡곤란이 왔을 거다.’

해골 교장의 인성 교육 듣던 1학년 학생이 정령 군대 데리고 심층 징벌방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니.

...아무리 모든 것이 가능한 게 에인로가드라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교수님은 놀랍지도 않습니까 저게!? 1학년! 1학년 무쇠대가리가 여기까지 온 거라고요!”

“안 놀라운데? 나 구하러 왔다니까?”

“...!”

케틀은 그제야 1학년 학생이 버두스 교수를 알아보고 불렀단 걸 떠올렸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방금 전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웠던 것이다.

“말했잖아. 올 거라고.”

버두스 교수는 해가 뜨고 달이 지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걸 본 케틀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다.

‘그렇구나.’

드디어 알 것 같았다.

저 신입생은...

‘속고 있다!’

대체 어떻게 버두스 교수한테 속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케틀은 결심했다.

어쩌면 케틀이 졸업하고 나서도 이 감방에 갇힌 건 운명일지도 몰랐다.

뛰어난 마법 재능을 가진 신입생이 버두스 교수한테 속아서 인생이 꼬이는 걸 막기 위해서!

‘내가 반드시 막는다...!’

케틀은 이를 악물었다.

신입생이 다시 감방 앞으로 돌아오면 어떻게든 설득할 생각이었다.

버두스 교수를 구해줄 필요 없다고.

너는 지금 속고 있다고!

이건 졸업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신성한 의무였다.

*         *         *

더 덤벼봐라! 크으핫핫핫! 더 덤벼보란 말이다!

해골 교장 밑에서 일하느라 오랫동안 울분이 쌓였는지 페르쿤트라는 도망치는 정령들을 조롱했다.

그러자 페르쿤트라가 부른 정령 시종 중 하나가 정련된 벼락을 들고 휘두르다가 멈칫하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돌진해서 휘두르다가 또 멈칫하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

?

이한도 페르쿤트라도 의아해했다.

“왜 저러는 겁니까?”

왜 그러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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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쿤트라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한은 궁금해져서 물었다.

“뭐라고 하신 겁니까?”

...계약자의 마력을 빌려서 이겨놓고 너무 기세등등하시면 군주로서 체통없는 짓이라고...

“......”

페르쿤트라가 너무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서 이한은 대신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자기와 계약한 정령 아닌가.

“아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계약한 마법사의 마력을 빌리는 건 계약한 존재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인데!”

물론 편을 들어봤자 페르쿤트라의 수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페르쿤트라는 적들을 조롱하지 않고 조금 더 침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저런 건방진 정령은 그냥 돌아가라고 하시죠?”

그만해라... 내 잘못이다.

살짝 겸손해진 페르쿤트라가 침착하게 선언했다.

이쯤 됐으면 알았겠지. 아무리 너희가 먼저 둥지를 꾸렸다 하더라도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내 마력은 무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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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라 계약자입니다?’

이한은 왠지 모르게 정령어를 조금 배운 기분이었다.

...내 계약자의 마력은 무한하고... 지형의 이점으로 저항하는 건 무의미하다. 나와라! 더 이상 다른 부하들을 혹사시킬 필요는 없을 터.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아까까지 그렇게 물이 휘몰아치던 곳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메마른 징벌방 통로 끝에서 강렬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얼핏 보면 커다란 물의 덩어리 같은 존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가만히 서있어도 그 안에서 보여주는 느린 유체의 흐름에는 비범한 힘이 서려있었다.

‘이번 홍수의 우두머리구나!’

이한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앞의 정령이 이번 홍수를 일으킨 존재라는 것을.

나왔군.

페르쿤트라는 냉정하게 앞을 노려다보며 말했다.

만족스럽나? 세상이 온통 물바다다. 이 정도로 퍼부었으면 됐겠지.

전혀...! 나를 부른 정령들은 더한 것을 원한다!

상대 정령은 느리고 젖은 목소리로 쩌렁쩌렁 대답했다.

여기 마법사들이 쌓은 분노가... 나를 소환했다! 마법사한테 붙잡혀서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는 자가 그 분노를 이해하겠나?

...자비를 베풀어주려고 했더니 감히!

페르쿤트라는 아픈 곳을 찌른 정령에게 극도로 분노했다.

순식간에 몸이 부풀려지더니 징벌방 천장 위에 구름과 함께 번개가 번쩍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대 정령도 가만히 당하지는 않겠다는 듯이 비바람을 불러내 페르쿤트라의 구름을 밀어내고 징벌방 복도 바닥을 침수시켰다.

다들 비켜라. 내가 처리하겠다!

페르쿤트라는 불러낸 정령들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이 양쪽으로 밀어냈다.

징벌방 복도의 공간이 확장되고 확장되며 더 이상 넓어질 수 없을 것처럼 늘어났다. 마치 공간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벌어질 싸움과 비교한다면 이렇게 확장된 공간도 좁게 느껴졌다.

에인로가드 지하에서 번개와 바다가 충돌했다.

어디서 이름 하나 대지 못하는 잡놈이 내 관대한 제안을 거부해?

내가 속임수에 넘어갈 줄 알았느냐... 대마법사의 노예야!

“?”

이한이 ‘페르쿤트라가 무슨 속임수를 썼나? 언제 썼지?’하고 생각하는 사이 정령이 외쳤다.

대마법사를 옆에 숨겨놓고 협상이라고 지껄이다니... 내가 가장 하찮은 정령이라 하더라도 그런 속임수에는 속지 않는다!

......

“......”

페르쿤트라와 이한은 동시에 할 말을 잃었다.

아니...

학생이다, 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처량한 머저리 놈!

“저 학생입니다!”

그러나 둘이 외쳐도 상대는 듣지 않았다.

페르쿤트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의 위대한 명성이 무시당한 게 해골 교장의 악명 때문이었다니.

아니, 해골 교장의 악명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상대가 머저리 놈이라 멍청하게 착각을 한 거지!

닥쳐라... 통하지 않는다!

‘환장하겠군.’

나는 대해와 비바람의 호민관, 나의 이름과 권능으로 폭풍을 불러오겠다!

우레와 천둥의 주인 앞에서 폭풍을 불러오다니?

두 정령은 다시 부딪혔다.

상대 정령은 둥글던 형체를 변형시키더니 역사(力士)의 모습으로 변했다.

마법사들은... 계속 물을 오염시키고 땅을 더럽혔지... 분노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

이한은 자신이 한 짓도 아닌데 반성하게 됐다.

선배들이 얼마나 에인로가드에서 개판 같이 실험을 했다면 정령들이 저렇게 분노가 쌓였단 말인가?

‘하긴 키메라나 슬라임이 돌아다니는 거 보면 선배들이 절대로 제대로 관리했을 리 없지.’

페르쿤트라는 코웃음을 치더니 상대의 무기를 쳐내고 번개를 찔러 넣었다.

같잖은 수작을!

그러자 상대의 형체가 출렁이더니 강력한 힘의 파동이 터져 나왔다. 타격을 크게 입었다는 걸 멀리서도 느낄 수 있었다.

페르쿤트라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초월적인 힘을 가진,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보여주는 싸움은 마법사들의 대결과는 전혀 달랐다. 페르쿤트라는 주변 벽을 한 번 치더니 금속을 뜯어내 번개와 엮어 끓어오르는 금강저(金剛杵)를 완성시켰다.

연타와 함께 살벌하게 정령의 형체가 뜯겨져나갔다.

두들겨 맞은 정령은 몸을 쪼개고 변형시켜서 간신히 탈출했다.

“!”

그리고 이한과 눈이 마주쳤다.

“......”

처음에는 해골 교장인 줄 알고 방어 자세를 취하려던 정령은 이한의 모습이 뭔가 다르다는 걸 느끼고 멈칫했다.

...엇...

“학생입니다.”

이한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속임수...

“언데드 아닙니다.”

죽어라!

쾅!

페르쿤트라는 혼란에 빠진 정령을 그대로 벽에 처박아버렸다.

감방 하나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박살나고 정령이 깊숙이 꽂혔다.

“잠깐! 설득 중이었습니다!”

뭐? 설득은 무슨. 그냥 역소환시켜 버려라!

“이미 중상을 입었으니 말로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상처는 내가 입었다!

해골 교장의 노예라는 말은 어떤 공격보다도 더 깊숙한 상처를 페르쿤트라에게 남겼다.

페르쿤트라는 연신 툴툴대며 파직거려도 더 이상 공격을 퍼붓지 않고 멈췄다.

...제안을 무시한 것에 사과드리오.

깊숙이 꽂혔던 상대 정령이 나와서 사과했다.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상대가 해골 교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한도 좋게 대답했다.

“저희도 좀 심했던 것 같습니다.”

뭐가!

페르쿤트라가 발작하려고 했지만 이한은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정령 홍수를 끝내고 이만 돌아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물론 정령들의 분노는 이해합니다만, 홍수가 길어질수록 마법사들은 더 무리한 방법을 쓸 겁니다. 이쯤에서 마무리 짓는 게...”

상대 정령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패배한 이상 패자에게는 어떤 말도 허용되지 않는 법. 자비에 감사드릴 뿐이오.

이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잘 마무리된 것 같았다.

가이난도를 제물로 바칠 필요도 없었고, 에인로가드의 학생들 때문에 분노한 정령들을 억지로 역소환시킬 필요도 없었다.

물론 교장 선생님의 징벌방이 좀 부서지긴 했지만...

‘이건 내가 한 게 아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지.’

마법사의 이름을 묻고 싶소.

정령은 존중을 담아 물었다.

아무리 난폭하고 분노에 찬 정령이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끝장을 봐도 될 상황에서 참고 중재에 나서다니.

“이한입니다.”

이한... 이한. 그 이름을 꼭 기억해두겠소. 혹시 계약한 정령들 중 물과 관련된 정령이 있소?

“...없습니다.”

이한은 살짝 떨떠름해졌다.

누구 놀리나?

‘보면 도망가는데...’

물과 관련된 정령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오?

“...아니, 정령들이 저만 보면 피하던데요.”

아.

정령은 바로 이해했다.

페르쿤트라나 자신처럼 여러 업적과 위업을 쌓은 강력한 존재라면 모를까, 약한 정령들에게 저런 마력의 압박감은 견디기 힘든 아우라였다.

“......”

......

......

공기가 어색해지자 페르쿤트라는 적을 노려보았다.

저런 눈치 없는 놈 같으니...

정령도 그걸 느꼈는지 화제를 돌렸다.

괜찮다면 선물을 주고 싶소.

“오. 뭐든지 좋습니다.”

이한은 기대 섞인 시선을 던졌다.

정령들의 권능은 언제나 귀한 선물이었으니까.

게다가 이 정도 홍수를 일으킬 수 있는 정령이라면...

무엇이 좋을까... 마법사, 그것도 아직 어린 마법사라면 물의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권능이 어떻겠소?

“...괜찮습니다.”

이한은 사양했다.

이미 할 수 있었으니까!

줄 거면 볼라디 교수한테 맞기 전에 줬어야지...

그, 그렇소? 그러면 물을 수증기로 바꿀 수 있는...

“그것도 할 줄 압니다만...”

......

정령은 눈에 띄게 민망해했다.

몇 번 고민하던 정령은 드디어 괜찮은 걸 떠올렸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파아앗-

이한의 손등에 새로운 정령 문양이 새겨졌다. 정령은 우호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 진명은 우피눔. 우피눔이오. 마법사가 오늘 보여준 자비심은 절대 잊지 않겠소.

“잠깐, 무슨 권능인지는 말해주고 가ㅅ...”

이한이 말하기도 전에 우피눔은 혼자 만족해하며 역소환됐다.

이한은 상대방이 혹시라도 겹칠까봐 일단 주고 빠르게 도망친 게 아닌가 살짝 의심이 들었다.

*         *         *

“교수님? 교수님 계십니까?”

이한이 돌아오자 버두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외쳤다.

“빨리 열어줘!”

“예. 잠깐 기다리십시오.”

“잠깐!!”

케틀이 크게 외쳤다.

“기다려라, 넌 속고 있다!”

“예?”

“버두스 교수한테 속고 있단 말이다! 버두스 교수는 그렇게 구해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야! 넌 지금 속고 있어!”

“......”

이한은 말문이 막혔다.

왜냐하면...

‘내가 훔쳐서 갇힌 건데...’

“네가 믿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마법의 재능을 갖고 있다는 건 알겠다. 네가 믿기 힘들 정도로 선량하다는 것도 알겠고. 하지만 정신 차려라! 지금 넌 속고 있다!”

“안 속고 있거든!”

버두스 교수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항의했다.

이한과 교수는 서로를 존중하는 제자와 스승이었다.

그걸 저렇게 말하다니.

“풀어주면 뭐 해주실 겁니까!”

“어?”

“풀어주면 뭐 해주실 거냐고요! 저 신입생한테!”

“내 공방에서 일할 기회?”

“...야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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