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79화 (479/687)

479화

“걱정하지 마라.”

이한은 바실리스크 알을 달랬다.

마력만큼 든든한 주인의 말에 바실리스크 알은 진동을 멈췄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넌 아직 와이번보다 약하잖아. 관심을 가지셔도 와이번에게 더 가지시겠지.”

-......

알은 다시 경계심 가득한 소리를 냈다.

“워다나즈. 여기 깃발 받아라.”

우레걸음 교수는 와이번 위에 깃발 두 개를 올렸다.

하나는 에인로가드의 문양이 새겨진 휘장이고, 다른 하나는 제국의 문양 위에 칼이 그려진 휘장이었다.

이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에인로가드 깃발이야 에인로가드 소속인 걸 알리는 거고... 이건 뭡니까?”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제국의 공무를 수행하는 중이라는 뜻이지.”

“그렇군요. 칼은 근데 왜 그려져 있는 거죠?”

“길을 방해하면 즉시 처분한다는 뜻이지.”

“...어, 농담이십니까?”

“농담 아닌데?”

우레걸음 교수는 뭔 소리를 하냐는 듯이 대답했다.

학교 안에 있다 보면 잊기 쉬웠지만 마법사는 언제나 고급 인력이었고,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는 그 중에서도 최중요 인력이었다.

밖에서 어떤 위험이 접근할지 모르는 만큼 깃발로 먼저 경고하는 게 당연했다.

-섣불리 접근하면 즉시 공격하겠다!

볼라디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 접근하면 바로 공격하도록.”

“...저도 말입니까?”

“그래.”

“교수님. 저도 학생...”

이한은 ‘호위로 붙으신 건 당신이고 저는 교수의 지도를 따라 소풍 나온 학생인데요’라는 뜻을 담아 말했지만 볼라디 교수한테는 전달되지 않았다.

“학생이지?”

교수의 목소리에서는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이한은 포기하고 볼라디 교수 옆에 앉았다.

널찍하고 평평한 와이번 등판이 아니라 좁고 흔들리는 목 주변에 앉은 이한과 볼라디 교수를 본 친구들은 벌써 수군대고 있었다.

“저 교수님이 그 교수님이신가?”

“난 저 교수님 밑에서 듣는 학생이 있는 줄 몰랐는데. 다 나간 거 아니었어?”

“원래 워다나즈는 모든 강의를 다 듣는 게 목표잖아.”

“아. 하긴. 그래서 듣는 건가?”

‘아니야. 개자식들아.’

이한은 속으로 자신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리는 친구들을 욕했다.

“앞을 보도록.”

“예...”

볼라디 교수는 이한에게 ‘와이번 기수는 공중에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로 실전 강의를 바로 시작했다.

“...그래서 기수는 대각선 뒤쪽과 아래쪽 사각이 가장 취약하다. 마법사라면 마법으로 보완할 수 있다. 무조건 시야부터 확보하도록. 공중에서의 싸움은 시야부터 시작이다.”

“어, 배그렉 교수...”

지나가던 우레걸음이 괴롭힘 당하는 이한을 발견하고 물었다.

“굳이 워다나즈까지 옆에 앉혀야 합니까?”

어차피 도착하면 학생들은 꽤나 잡무에 시달려야 할 것이고, 그 중에서 마력 많은 워다나즈가 맡아야 할 노동량은 간단하게 계산해봐도 몇 배는 됐다.

그걸 생각해보면 벌써부터 워다나즈를 괴롭힐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호위는 볼라디 교수의 일이었지 학생의 일이 아니었다.

이한은 살짝 감동했다.

‘과연 우레걸음 교수님이야말로 에인로가드의 평균이시다!’

이 정도만 되어도 어딘가 싶었다.

볼라디 교수는 우레걸음 교수의 질문에 무표정한 얼굴로 침착하게 대답했다.

“배우고 싶어하더군요.”

“아. 그렇습니까?”

“......”

이한은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란 말인가.

심지어 바실리스크의 알도 어이없어하는 게 느껴졌다.

‘여기서 내가 아니라고 반박하면 배그렉 교수가 날 밀어서 떨어뜨릴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워다나즈. 힘내라.”

우레걸음 교수는 누가 에인로가드 평균 아니랄까봐 더 이상 엮이지 않고 격려해주고 떠나갔다.

이한은 우레걸음 교수를 속으로 욕했다.

*         *         *

쐐애애애애애액-!

준비를 마치고 출발한 와이번들은 번개처럼 허공을 갈랐다.

학생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와이번은 처음 타봅니다, 교수님!”

“귀한 녀석이니까! 길들이는 게 생각보다 까다롭다. 이 알을 구해오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너희들은 상상도 못할 거다!”

번개걸음 교수가 비행용 고글을 쓰고 유쾌하게 외치자 학생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제국 외곽, 하늘을 찌를 듯 펼쳐진 장엄한 봉우리와 협곡들.

그리고 그 곳을 홀로 탐색해 와이번의 알을 훔쳐가지고 나오는 번개걸음 교수.

“맞습니다! 백작이 얼마나 화를 냈습니까?”

“미친놈이지! 자기도 암시장에서 사놓고 화를 내다니. 내가 목숨을 구해준 거다! 그대로 부화했으면 와이번이 저택을 박살냈을 텐데!”

번개걸음 교수는 백작의 저택에서 와이번 알을 훔쳐갖고 나온 일을 설명해줬다.

학생들은 그 설명에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서로 쳐다보았다.

“이한. 이한. 어떻게 생각해? 저래도 되는 건가?”

이한은 친구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볼라디 교수가 계속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방금 아래에서 날아간 몬스터가 뭐였지?”

“유령... 유령 독수리 아니었습니까?”

“틀렸다. 독수리 유령이다. 둘의 차이를 기억해두도록. 독수리 유령은...”

“......”

아산은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쳤다.

와이번 등판 위에서 책을 읽고 카드놀이를 하던 학생들도 슬슬 심심해지고, 계속 하늘을 경계하며 주변에 보이는 몬스터들을 정확하게 외쳐야 하는 이한도 지쳐서 쓰러질 무렵, 번개걸음 교수가 신호를 보냈다.

“오늘은 여기까지! 와이번들을 쉬게 해줘야겠다. 착륙! ■■! ■■■!”

번개걸음 교수의 외침에 와이번들이 하강을 시작했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아래에 불빛이 드문드문 보이는 마을 몇 개가 보였다.

‘저기가 목적지인가. 내일 점심 전에는 도착하겠군.’

저 멀리 바다와 맞닿은 곳에 위치한, 화려한 불빛으로 타오르는 항구도시가 보였다.

제국 남부 해안도시들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도시 이스란이었다.

원래라면 휴양지로 방문할 법한 곳인 만큼 학생들도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그래도 조금 돌아다닐 시간은 있지 않을까?”

“탈출하면 안 되나? 징벌방 가면 되지 않아? 워다나즈. 어떻게 생각해? 네가 징벌방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알잖아.”

“그딴 질문하지 마라...”

이미 볼라디 교수로 지쳐있던 이한은 피곤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와이번들이 마을 근처 언덕 풀밭 위에 착륙하자, 마을 사람들이 안에서 횃불을 들고 달려 나왔다.

그리고는 에인로가드의 깃발과 제국의 깃발을 보고 깜짝 놀라 외쳤다.

“마법사! 마법사 님들께서 오셨군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레걸음 교수는 예의바르게 촌장에게 인사했다.

에인로가드 안에서는 제국 공작한테 욕을 퍼부어도 해골 교장이 뒷감당을 해줬지만 밖에서는 최대한 신사답게 굴어야하는 법.

“급한 공무가 있어서 이렇게 와이번을 타고 달려왔습니다. 이 와이번들은 완전히 훈련되어서 조금도 위협을 끼치지 않을 테니 믿어주십시오. 에인로가드와 마법사의 명예를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이한은 번개걸음 교수가 아까부터 툴툴대는 와이번의 콧등에 주먹을 날리는 걸 목격하고 슬며시 몸을 움직여 가렸다.

“물... 물론입니다. 저희는 마법사 님들을 믿지요. 당연히요!”

촌장은 공경심과 두려움 모두를 느끼며 긴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걸 최대한 숨기기 위해 과장된 동작으로 인사했다.

“마을로 들어오십시오! 쉴 곳을 준비해놨습니다! 와, 와, 와이번도 같이 데리고 오셔도 됩니다!”

학생들은 바로 움직일 준비를 했다.

종종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밖에 나가서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찬 이슬을 맞으며 밖에서 자는 걸 좋아합니까?’같은 오해를 받긴 했지만 당연히 아니었다.

따뜻한 여관 안에서. 푹신하고 매끈한 침대 위에서 자는 게 당연히...

“아닙니다. 밖에서 머무르겠습니다.”

우레걸음 교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저희는 이미 다 준비를 해서 온 상태입니다. 마을 분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군요.”

“아, 아니. 민폐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아닙니다. 이만한 인원이, 게다가 와이번까지 들어가면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겠죠.”

우레걸음 교수가 이러는 데에는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아무리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들이 제국 만민의 존경을 받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잘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겁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와이번은 더더욱 그랬다. 실수로 난동이라도 부리면 우레걸음 교수가 책임져야했다.

마지막으로...

-오고가는 길에 쓸데없이 사람들 괴롭히지 말게. 괜히 마을 사람들 불러서 ‘에인로가드에서 나왔는데 따뜻한 빵과 마실 음료를 좀 주시면...’ 같은 짓 하지 말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런 일을 한두번 하는 것도 아니고.

해골 교장이 지나가는 길에 제국의 일반인들과 접촉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힝.”

“마을에서 머무르는 줄 알았는데.”

학생들은 슬퍼하며 야영을 준비했다.

갓 입학했을 때라면 ‘어떻게 사람이 밖에서 자죠?’라고 했겠지만, 이제는 푸른 용의 탑 학생들도 밖에서 자는 것 자체에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여기 담요 좀 더 깔아봐.”

“잠깐. 벌레 좀 치우고.”

“이 물약 뿌리세요. 벌레 막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시아나 사제님...! 감사합니다. 와. 효과가 굉장하네요! 풀도 한 번에 다 죽어버렸어요!”

“잠깐. 잘못 드렸네요. 여기 이걸 뿌리세요.”

“......”

이한은 친구들이 챙겨 온 여행식량을 냄비에 털어 넣고 끓였다.

단단한 빵과 치즈, 짭짤한 육포, 그리고 아직 신선한 당근과 양파, 감자 등이 들어갔다.

“고맙다.”

“드신 만큼 나중에 갚으셔야죠.”

“......”

우레걸음 교수는 어이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에인로가드 학생한테 이런 식량이 얼마나 귀하겠는가.

‘그런데 텃밭이 홍수로 날아갔는데 채소들은 어디서 구한 거지?’

우레걸음 교수는 잡탕 수프를 털어 넣으면서 의문을 품었다.

꽤 신선한 걸 보니 밖에서 갖고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이한은 볼라디 교수용으로 채소만 넣고 끓인 수프를 따로 빼서 바치고 우레걸음 교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교수님. 메이킨 가문에서 초청한 거잖습니까.”

“그렇지.”

“그냥 메이킨 가문의 행렬하고 같이 갔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그럼 너무 느리잖나. 강의도 들어야 하는데.”

학생들은 매우 아쉬워했다.

메이킨 가문과 같이 움직였으면 넉넉하게 일, 이주일 정도는 놀 수 있었을지도 몰랐는데!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그래도 최소한 이동에 필요한 물자 같은 건 메이킨 가문에서 줘야 하지 않습니까?”

“에이, 메이킨 가문 정도 되는 가문이 그런 자질구레한 것까지 챙기진 않지. 나중에 지급한 보수에서 알아서 챙겨가는 거다.”

“그렇군요. 보수는 끝나는 대로 받습니까?”

“그래. 그런데 크게 기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보수가 적습니까?”

“아니. 그런 의뢰도 있지만 메이킨 가문은 후한 편이다. 그렇지만 그걸로 사치를 할 수는 없을 거야. 모으고 모아놔도 당장 내년 실험이나 연구비가 부족할 텐데.”

에인로가드에서 아무리 황제의 금고를 털어서 지원하고, 제국 재무관의 수염을 비틀어서 예산을 뜯어내도 마법사들의 탐욕을 만족시킬 순 없었다.

마법사들은 제국의 황금을 모두 갖다 바쳐도 실험하게 더 바치라고 외칠 족속들이었으니까.

결국 자기가 원하는 마법을 마음껏 연습하고 실험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직접 투자를 받아내고 후원을 뜯어내고 금화를 벌어둬야 했다.

‘끔찍하다.’

이한은 이번 일로 받아낼 보수가 실험으로 무의미하게 사라질 보석이 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그 무슨 낭비란 말인가?

*         *         *

아침.

일어나자마자 와이번을 타고 항구도시에 도착한 일행을 맞이하러 메이킨 가문의 사람들이 나왔다.

“너무 급하게 부른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학생 여러분들. 어제 잠은 제대로 주무셨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야영 정도야 뭐...”

학생들은 외부인 앞에서 허세를 부렸다.

에인로가드 학생이라면 다들 하게 되는 일이었다.

“...야영하셨습니까?”

“네? 네.”

“......”

메이킨 가문의 사람들은 매우 당혹스러워하며 서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 와이번을 타고 온다고 하셔서 와이번을 착륙시킬 만한 인근 마을들에 간곡히 부탁을 드렸는데, 혹시 아무 말도 없으셨습니까?”

“보수도 다 지급하고 학생들이 혹시라도 들르면 꼭 잘 대접해달라고 했는데...”

“......”

“......”

학생들은 모두 일제히 고개를 돌려 우레걸음 교수를 노려보았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