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80화 (480/687)

480화

“...미안하다. 다들. 고의는 아니었다.”

우레걸음 교수는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물론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진심을 담아서 사과한다고 받아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들 에인로가드의 가르침을 충실히 배운 덕분이었다.

“이게 사과한다고 그냥 넘어가실 일입니까!”

“맞습니다! 교수님께서 혹시 돈 따로 챙기신 거 아니에요?!”

“이, 이 자식들이...”

우레걸음 교수가 메이킨 가문의 사람들 눈치를 보며 당황스러워했다.

학교 안이었다면 상관없었지만 학교 밖에서는 평판을 신경 안 쓸 수가 없었다.

이상한 오해를 사서 ‘에인로가드의 우레걸음 교수가 학생들 은화를 떼먹는다고 하더군요’란 소문이 해골 교장 귀에라도 들어가면...

“내가 그런 짓을 할 것 같으냐!? 보면 알았겠지만 나도 마을에 들어가지 않았다. 은화를 챙길 기회는 더더욱 있지도 않았고!”

“그럼 왜 밖에서 머무르신 겁니까!”

“그야 원래 규칙이 그러니까 그랬지!”

우레걸음 교수와 학생들의 추한 다툼을 보고 있던 메이킨 가문의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했다.

“저, 에인로가드 분들. 진정하십시오.”

“맞습니다. 확실하게 명시하지 않은 저희 잘못입니다. 도중에 휴식을 취하신다면 어느 마을에서 취해달라고 분명히 말했어야 했는데.”

“...일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우레걸음 교수는 헛기침을 했다.

메이킨 가문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북부의 사냥꾼 분들께서는 일주일 전에 도착해서 사냥을 진행 중이십니다. 정말 빠르시더군요!”

“그림자 순찰대라는 이름 때문에 북부 밖으로 나오지 않으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흔쾌히 응하셔서 놀랐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메이킨 가문의 사람이 닐리아를 보며 인사하자 우레걸음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감사하단 거지?”

“빨리 날아와서 고맙다는 거겠죠.”

이한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 아까 감사해했...”

“자. 그래서 지금 남은 문제가 어떻게 됩니까?”

“아. 워다나즈 가문 분이시군요?”

“맞습니다. 저번 방학 때 뵌 적 있습니까?”

“아니요. 요아넨 메이킨 님께서 몇 번 이야기해주셔서 들었습니다. 공방에 꼭 채용하고 싶은 인재라고 하셨는데요.”

“앗. 조건도 이야기하셨습니까?”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재치 있게 한 농담에 메이킨 가문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웃기만 하자 이한은 슬쩍 다시 말했다.

“그래서 조건은...”

요네르는 이한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고개를 저었다.

우레걸음 교수는 메이킨 가문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메모하며 물었다.

“사냥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이쪽이 해야 할 일들은...?”

“먼저 산고리아 꽃의 위치를 확인해주십시오. 오랫동안 수확이 끊겼던 데다가 몬스터와 정령의 난동 때문에 새로 지도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우레걸음 교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알아들었다는 뜻을 보냈다.

“현재 인근 연금술 길드와 어부 길드의 창고에 산고리아 꽃들의 재고가 쌓여 있습니다만, 혼란이 길어진 탓에 이 재고의 품질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뛰어나고 공신력 있는 연금술사께서 새로이 기준을 만들고 재고를 분류해주셨으면 합니다.”

뒤에 있던 학생들이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듣기만 해도 해야 할 일이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저 분류를 누가 하겠는가.

“이해했습니다. 또?”

“이번 일로 마찰이 커지면서 길드 사이에, 또 길드와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중재해주셨으면 합니다.”

우레걸음 교수는 빽빽하게 글씨가 가득 찬 종이를 뒤로 넘겼다.

“그림자 순찰대에 소속된 사냥꾼 분들께서는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계십니다만, 아무래도 인원이 한정된 만큼 무분별하게 싸울 수는 없습니다. 해로와 위치를 파악하신 다음에는 쓰러뜨려야 할 몬스터만 따로 정해주십시오. 나머지 몬스터들은 사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몰아내겠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산고리아 꽃을 채집하는 방법 또한 교육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숙련된 어부들이 줄어든 탓에 미숙한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금화를 많이 주는 이유가 있구나.’

이한은 빽빽한 일들의 목록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역시 금화는 쉽게 벌 수 있는 게 아니다!

“잠깐. 교수님.”

계산해보던 이한은 문득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물었다.

“남은 날짜 동안 저 일들을 다 해낼 수 있습니까?”

“어리석은 질문이군.”

우레걸음 교수가 파이프에 불을 붙이더니 후 내뿜었다.

“어차피 무조건 해내야 하는데.”

“......”

*         *         *

농담이 아니었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우레걸음 교수는 미친놈처럼 학생들을 부려먹기 시작했다.

“여기가 이스란 시의 자랑인 서쪽 성문입니다. 남옥(藍玉)으로 된 문인데, 인어의 눈물로 만들었다는 낭만적인 전설이...”

“그런 설명은 괜찮으니 학생들이 머무를 숙소만 안내해주시오.”

“에. 도시 가문 중 하나인 콰드마 가문께서 저택을 빌려주셨습니다. 이 저택은 언덕에 위치해 있어서, 저택의 정문을 나서면 이스란 시의 자랑 중 하나인 물의 동상 거리가...”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나갈 시간도 없을 테니. 지금부터 말하는 도구를 가져다주시오. 우리는 작업 공방으로 직행하겠소.”

우레걸음 교수의 말에 하인들은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저택에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식사만 따로 챙겨서 공방으로 가져다주시오.”

“......”

“......”

학생들은 우울한 얼굴로 이스란 시를 둘러보았다.

아까는 그렇게 아름다웠던 남쪽의 도시가 이제는 갑자기 칙칙해 보이는 것 같았다.

“다들 착석해라. 지금부터 산고리아 꽃의 품질을 분류하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 먼저 잎의 색을...”

실력 있는 연금술사는 조금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 집요함을 갖고 있었다.

일에 들어간 우레걸음 교수는 학생들을 숨도 쉬지 못하게 몰아붙였다.

“옅은 적색이라고 했지! 짙은 적색이잖나!”

“줄기에 벌레가 먹은 흔적이 있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지금 빵조각을 입에 구겨 넣을 때냐? 나중에 식사할 시간을 준다고 했을 텐데!”

‘한 시간 전에도 저 말을 하셨는데.’

이한은 속으로 생각하며 손을 놀렸다.

학생들은 초췌해져갔지만 그래도 다행히 진도는 빠르게 진행됐다.

혹독한 지적 덕분에 작업이 손에 익기 시작한 학생들은 꽃을 정확하게 분류해나갔다.

“이 정도면 될 것 같군. 연금술 5등부터 10등까지. 날 따라와라.”

우레걸음 교수는 멈추지 않고 다음 지시를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수한테 지목당한 학생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어디 가는 건가요?”

“혹시 쉬러...?”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너희들은 꽃 채집 방법을 배운다. 너희들이 배워야 채집꾼이나 모험가들한테 가르쳐주겠지.”

“......”

“......”

불운한 학생들을 데리고 나갔던 우레걸음 교수가 곧 돌아왔다.

“연금술 2등부터 4등까지. 날 따라와라. 옛 채집 지도와 해로를 줄 테니 그걸 보면서 머릿속에 넣어놓도록. 새 지도를 그려야 하니까.”

“......”

“......”

우레걸음 교수가 나가는 걸 보고 있던 이한은 문득 의아함을 느꼈다.

‘잠깐. 난 왜?’

방금 지도 만들러 갔을 때 빠져야 했던 거 아닌가?

돌아온 우레걸음 교수가 이한의 의문을 바로 해결해줬다.

“워다나즈. 넌 나하고 직접 산고리아 꽃 위치 확인하러 가자.”

“...아니...!”

*         *         *

이한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교수들과 함께 항구로 걸어갔다.

아까 작업하면서 ‘바깥 공기 좀 쐬고 싶군’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다.

“산고리아 꽃 위치를 확인하려면... 바다로 나가는 겁니까?”

“그래. 배를 타고 나가게 될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이 전력이면 사실 별로 위험할 것도 없지.”

“...그러면 전 안에 있어도 되는 거 아닙니까?”

이한의 말에 볼라디 교수는 그렇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좋은 기회다.”

“!”

이한은 왜 우레걸음 교수가 굳이 자신을 데리고 나왔는지 깨달았다.

설마...

‘이 사람이 데리고 나오자고 한 건가?’

생각해보니 우레걸음 교수가 학생들을 쥐어짜기는 해도 굳이 안에서 잘 할 학생을 밖에 데리고 나와서 스릴을 겪게 하는 취미가 있진 않았다.

진상을 깨달은 이한은 충격과 공포가 섞인 눈빛으로 볼라디 교수를 쳐다보았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정말 없구나!’

에인로가드 안에서도 엿을 먹이더니 밖에서도 이렇게...

“엇. 마법사 님들이시오?”

항구에는 뱃사람들과 전혀 다른 이질적인 복장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누가 봐도 북부 출신의 사냥꾼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는 겉모습.

그림자 순찰대였다.

“맞습니다.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아니... 뭐... 산속에서 할 일도 없었는데 잘 됐습니다. 보수도 넉넉하고, 지원도 넉넉하고...”

“이렇게 비싼 화살은 솔직히 산속에서 별로 못 쓴단 말입니다. 이런 걸 또 언제 써보겠습니까.”

사냥꾼들은 메이킨 가문의 넉넉한 지원에 매우 만족해하고 있었다.

화살 하나하나에 마법이 부여되어 있거나, 혹은 전투 직전에 물약이 아낌없이 분배되거나.

이 모두 다 추운 북부 산맥에서는 볼 수 없는 풍요로움이었다.

“이 마법 화살은 남으면 갖고 가도 되나?”

“어허. 체면이 있지 그런 소리를.”

“체면은 무슨... 저번에 화살 주워다 쓴 거 본 적 있는데.”

‘닐리아가 안 와서 다행이다.’

이한은 닐리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닐리아가 왔다면 부끄러워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을지도 몰랐다.

배 위에서 뭘 잡았는지 떠들던 사냥꾼들은 갑자기 손뼉을 치며 물었다.

“아참. 교수님. 물어볼 게 있습니다.”

“물어보십시오.”

우레걸음 교수는 상대가 뭔 이야기를 하려나 싶었다.

“그... 학생 중에 저희 그림자 순찰대 출신이 있지 않습니까? 그, 넬리아였나?”

“놀레아. 이 까마귀보다 멍청한 놈아.”

“헷갈릴 수도 있지. 우리 쪽 구역 출신이 아니라 동쪽 구역 출신이라 헷갈렸다!”

이한은 조용히 대답했다.

“닐리아입니다.”

“아. 맞아. 닐리아! 그래. 닐리아였지!”

“닐리아 그 친구 잘 하고 있습니까?”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은 최대한 관심 없다는 듯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 눈빛에는 칭찬을 갈구하는 욕망이 이글거렸다.

그림자 순찰대 출신으로 에인로가드까지 입학한 만큼, 내색하지 않아도 사냥꾼들의 기대가 컸던 것이다.

“어... 아주 훌륭한 학생입니다.”

번개걸음 교수도 그 기색을 눈치챘는지 사냥꾼들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연금술 강의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수준이니 말입니다.”

“오오...!”

“대단하군!”

사냥꾼들은 감탄했다.

솔직히 말해서 사냥꾼들은 닐리아의 성적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다른 놈들은 도시에서 책 잡고 있다가 갔는데 산맥에서 활 잡고 있다가 간 닐리아가 얼마나 유리하겠는가.

그런데 저런 대답이 들려오다니.

“친구들간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어... 그건 여기 워다나즈가 말해주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워다나즈. 말해봐라.”

‘비겁하게 나한테 떠넘기시는군.’

이한은 속으로 교수를 욕하며 입을 열었다.

“닐리아는 탑에서 아주 인기가 좋습니다.”

“오오...!”

“내가 말했잖나. 걔는 우리랑 좀 달리 사교적이라니까. 잘 어울릴 거라고.”

“나중에 오면 어떻게 바깥 친구를 사귈 수 있는지 좀 물어봐야겠군. 난 마을만 내려가면 놈들이 도망가던데.”

“자네가 피칠갑을 한 채로 내려가서겠지.”

사냥꾼들의 반응이 좋자 이한은 조금 더 말을 이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물론이고 푸른 용의 탑 학생들도 닐리아를 아주 좋아합니다. 저번 방학 때는 메이킨 가문에서 초대를 받고 머물렀는데, 메이킨 가문에서 감동해서 더 머물러달라고...”

“......”

“......”

사냥꾼들은 멍하니 듣다가 피식 웃었다.

“여기 마법사께서 우리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저런 말을 하나보군!”

“이거 고맙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그런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하하하하하!”

“......”

이한은 졸지에 자기가 한 일들이 거짓말로 바뀐 닐리아한테 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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