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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83화 (483/687)

483화

불운한 학생 한 명이 고통 받긴 했지만, 작업 경과는 확실히 빨랐다.

우레걸음 교수는 산고리아 꽃의 위치를 순식간에 찾아냈고,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은 해로에 있는 몬스터들을 마치 씨를 말릴 것처럼 잡아댔다.

그리고 볼라디 교수와 교수의 뛰어난 수제자는 섬이나 암초에 숨어 있는 몬스터들을 처리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돌아가서 쉬도록 합시다.”

우레걸음 교수는 선원들에게 말했다.

선원들은 살짝 의아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직 더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마법사 님께서 생각이 있으시겠지. 하긴, 급히 달려오신 만큼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았을지도.’

일처리가 빨랐던 만큼 선원들은 덜 지친 상태였다.

아직 더 배를 몰 수 있었지만, 마법사의 지시인 만큼 생각이 있을 거라 판단하고 망설임없이 뱃머리를 돌렸다.

번개걸음 교수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피곤하기라도 한 거냐?”

“아, 아닙니다.”

“그럼 왜? 조금 무리하면 오늘 이 주변은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워다나즈가 불쌍해서...”

“......”

번개걸음 교수는 볼라디와 함께 섬에서 걸어나오는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         *         *

이스란의 이방인들 중에는 그 정체를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수상한 이들도 여럿이었다.

모든 곳에 열려 있는 항구에 이런 수상한 이들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터.

그러나 지금 항구 서쪽 덕장 주변에 위치한, 허름하고 비린내 심한 <흐린 생선 눈알> 여관에 있는 수상한 자는 조금 특별했다.

마법사 출신으로서 제국 마법범죄자로 수배된, 어떻게 보면 제국 마법사로서 도달할 수 있는 악명의 정점에 도달한 자.

마법범죄자 이아놉은 여관 구석에 앉아 소문을 듣고 있었다.

“에인로가드 놈들이 왔다... 헛소문은 아니렷다?”

“아이고. 마법사 님. 제가 무슨 배짱으로 마법사 님을 속이겠습니까?”

퇴역한 선원은 아첨하듯이 손바닥을 비비며 고개를 숙였다.

마법사는 제국 어디서든 환영받는 직종이었고, 그건 제국의 어두운 뒷골목도 마찬가지였다.

음지에서 지내는 이들에게도 이아놉 같은 마법사는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아놉의 신분이 불확실하고 수상하다는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애초에 이 주변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다 수상쩍은 점 한두개는 갖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렇겠지. 헛소문이라면 네 눈알과 혓바닥을 뽑아버릴 테니까.”

“......”

퇴역한 선원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 이 마법사가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저번에 마법사의 두둑한 금화주머니를 노리고 덤벼들었던 용병 놈들이 어떻게 되었던가.

마치 시든 고목처럼 바짝 말라서 죽어버렸다.

‘흑마법사가 분명해.’

선원은 마법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일단 이아놉이 흑마법사라는 건 확신했다.

그렇지 않다면 저런 사악한 저주들을 어떻게 쓰겠는가.

“산고리아 꽃 때문에 난리가 난 건 알았는데... 에인로가드 놈들까지 온 건 예상 밖인데. 설마 그림자 순찰대를 부른 것도 놈들 생각인가?”

“예? 그건 어떻게 아십니까?”

선원의 질문에 이아놉은 가볍게 경멸의 눈빛을 던졌다.

“그럼 여기 길드 놈들이 서로 얼싸안고 그림자 순찰대를 불렀겠느냐.”

“부를 수도 있...”

선원은 말끝을 흐렸다.

이아놉은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았다.

여기 도시 길드들 사이의 알력과 다툼, 산고리아 꽃과 관련해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권 문제, 이런 것들 때문에 그림자 순찰대를 불러서 문제부터 해결하는 과감한 방법을 고를 수 없다고 설명해봤자 뭐하겠는가.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터.

“하여간 에인로가드 놈들을 저주하실 겁니까? 저주하신다면 필요한 물건들을 구해오겠습니다.”

퇴역한 선원은 얼굴에 패인 주름을 더욱 깊게 만들며 씩 웃었다.

그 탐욕스러운 웃음에는 한 몫 단단히 챙겨보겠다는 욕망이 번득였다.

“에인로가드 놈들을 저주한다니... 대체 네놈은 간이 몇 개고 목숨이 몇 개냐? 아무리 병신이고 머저리여도 길가에 굴러다니는 지푸라기라도 머릿속에 처박고 다니도록 하거라.”

이아놉은 에인로가드 마법사들을 건드리자는 말을 하는 선원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가끔 겁없이 날뛰는 반마법주의자들이야 죽고 싶어서 환장한 놈들이라 까분다지만, 이아놉은 매우 이성적이고 제정신이었다.

그리고 이성적이고 제정신인 마법사라면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네놈은 선원이었지. 먼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때 폭풍이 몰려오면 어떻게 했느냐?”

“그야... 폭풍을 피해서...”

“그래. 에인로가드 놈들은 폭풍이라고 보면 된다. 폭풍이 지나고 나면 남은 자리에서 한몫 챙겨도 늦지 않다.”

이아놉은 느긋하게 몸을 뒤로 젖혔다. 퇴역한 선원은 한 몫 챙길 기회가 사라져서 불만스러워보였지만 마법사가 두려워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불만스러워하지 마라. 눈알을 뽑아주랴?”

“아, 아, 아닙니다!”

“네게 맡길 일이 있다. 이 일을 해내면 크게 포상해주마.”

“!”

“주변의 용병 놈들에게도 모두 이야기를 전해라.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들이 나왔다면 학생들도 있을 텐데, 그 중 뛰어난 녀석이 있으면 내게 알려달라고.”

“뛰어난 녀석... 말입니까.”

퇴역한 선원은 머뭇거렸다.

마법사들의 실력을 구분할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너무 걱정할 거 없다. 소문으로 들려올 테니까. 마법사들의 업적이란 건 가만히 있어도 소문으로 퍼지기 마련이지. 어중간한 놈들은 필요 없다. 네가 들어도 말도 안 될 정도로 대단하다 싶으면 전해라. 에인로가드에는 그런 천재가 한두명씩 나오거든.”

“예... 알겠습니다.”

선원은 이아놉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에인로가드는 폭풍이라 피해야 한다면서 뛰어난 학생은 알려달라니.

납치라도 하려는 것일까?

‘하지만... 그러면 방금 한 말과 정반대 아닌가?’

이아놉은 싸구려 술을 양철 잔에 따르며 끌끌 웃었다.

마법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이아놉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뛰어날수록 타락하기 쉽지.’

이아놉은 에인로가드 출신은 아니었지만 에인로가드 출신의 마법범죄자를 본 적이 있었다.

수십 년도 지난 옛날 일이었지만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어디서 마법적 재능으로는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이아놉의 수준을 완전히 뛰어넘는, 제국 마법의 정수를 이은 천재.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위압이 되는 기분이었다.

말하는 주문 하나하나가 천재적이었고, 마법의 구조는 어느 한 부분도 모자람 없이 완벽했으며...

그리고 누구보다 오만했다.

이아놉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위대하고 사악한 대마법사 안타곤달스에게 이렇게 물었었다.

-대체 무엇이 아쉬워서 에인로가드 출신이 저러는 겁니까?

-어리석은 질문이군. 원래 뛰어난 마법사일수록 타락하기 쉬운 법인데. 하긴, 뛰어나본 적 없는 네가 그걸 알 수는 없겠지.

마법에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현실은 하찮게 보이고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규칙과 굴레들이 덧없게 느껴졌다.

숭고한 진리와 이치의 끝을 보려고 하는데 벌레 수백 명이 죽는 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무리 제국의 영광과 명성이 마법사를 기다리고 있어도, 뛰어난 마법사에게 가장 커다란 유혹은 진리 그 자체였다.

-이아놉. 생각해봐라. 저 빛나는... 너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대한 마법의 지성이 타락하는 모습을.

-안... 안타곤달스 님.

-너무 막연한 이야기만 했나? 그래. 그럼 이건 어떠냐? 네가 한 번이라도 성공한다면 널 내 제자로 삼아주마.

-...!!!

이아놉처럼 한계에 부딪친 마법사에게, 안타곤달스 같은 대마법사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그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크게 기대가 되지는 않지만...’

그 이후로 에인로가드 출신 마법사들과 몇 번 접촉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아놉이 원하는 만큼 뛰어난 이들은 아니었다.

아무리 에인로가드 출신이라 하더라도 적당히 뛰어난 천재는 이아놉의 유혹에 쉽게 혹하지 않았다.

진리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오만한 천재만이 이런 유혹에 넘어올 터.

이아놉은 부디 이번 에인로가드 놈들 중에 그런 천재가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         *         *

저녁.

저택 식탁에 앉은 학생들의 얼굴은 핼쑥하고 파리했다.

이한은 옆에 앉은 황녀가 숟가락을 쥔 채로 꾸벅꾸벅 조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비슷한 현상을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먹을 것에 대해서는 비상한 능력을 발휘하는 가이난도도 피곤에는 이기지 못하고 식사 자리에서 한 번 졸았던 것이다.

가이난도는 그 사실에 너무 커다란 충격을 받고 이후 식사 자리에서는 바늘로 허벅지를 찔러서라도 제정신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황족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존다는 건 그만큼 피곤하단 뜻이었다.

“황녀님. 일어나십시오.”

“...!”

아덴아르트는 눈을 크게 떴다.

“식사하셔야 합니다. 졸아서 못 드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감사합...”

잠에서 덜 깬 채 감사의 인사를 하려던 황녀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니, 고작 식사 하나 때문에 후회를 하진 않을 텐데?

“워다나즈...”

어떻게 된 거냐고 따지려고 했지만 이미 이한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워다나즈. 섬에 있는 몬스터들을 다 쓸어버렸다면서.”

“...뭐?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흰 호랑이 탑, 바크 가문의 바트렉이 말하자 이한은 깜짝 놀랐다.

계속 저택 공방에 갇혀 있었을 놈들이 어떻게?

“하인들이 말해주던데?”

“...아니. 아니. 잠깐.”

이한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잠깐 와보시겠습니까?”

“무슨 일로...”

시중을 들던 하인이 당황해하며 달려왔다.

“혹시 음료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남부식 음료라...”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몬스터들을 다 쓸어버렸... 나 혼자 한 것도 아니지만, 하여간 그 소문을 어디서 들은 건가?”

“항구에 제가 거래하는 생선 장수가 있는데, 그 장수한테서 들었습니다.”

“..혹시 그 장수는 어디서 들었는지 아나?”

“오늘 그물 치러 간 어부들한테 들었다고 했습니다만...? 그, 사냥꾼 분들이 어부들한테 말해주셨다던데, 아닙니까?”

“......”

무슨 에인로가드 교수들 사이 연락망보다 전파 속도가 빨랐다.

이한이 섬에서 잡는 동안 그림자 순찰대는 주변 바다 몬스터 잡으면서 지나가는 어부한테 ‘저기 워다나즈 가문 소년이 그렇게 몬스터를 잘 잡는다더라’하고 소문까지 퍼뜨린 것 아닌가.

믿기 힘든 멀티태스킹 능력이었다.

‘과연 괜히 사냥의 달인이 아니군...’

“제가 무슨 실수라도?”

“아, 아니야. 사실 부른 이유는 식사가 너무 맛있어서였네. 여기 황녀님에게 멧도요 요리 한 접시 더 내줄 수 있나?”

“알겠습니다.”

하인은 기뻐하며 물러났다.

잠 깨서 식사를 하고 있던 황녀는 다시 한 번 황당하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아니...!

“무슨...?!”

물론 한 접시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만이었다.

아덴아르트는 단호하고 품위 있게 항의할 생각으로 이한의 어깨를 붙잡으려고 했다.

“...워다나즈. 오늘 그림자 순찰대 어땠어?”

그러나 다시 한 번 방해가 들어왔다.

닐리아가 매우 걱정 가득한 얼굴로 주변의 눈치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사고라도 쳤을까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한은 ‘사냥꾼들이 자꾸 내가 너랑 친하다는 거 안 믿고 네가 활 들고 협박한 줄 알더라. 그리고 자꾸 독주 권하고, 마법에 대해서 설명해도 안 듣고, 가이난도만큼 귀찮은 사람들이었어’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았다.

그리고 친구를 위해 입을 열었다.

“...제국에서 가장 뛰어나고 유능한 사냥꾼들을 만난 것 같아서 영광이었어.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더군.”

메이킨 가문의 사람들한테서 대충 이야기를 들었던 요네르가 이한을 안타깝게 쳐다보더니, 바트렉 앞에 있던 사과 타르트 접시를 집어서 이한 앞에 슥 밀어주었다.

바트렉은 억울했지만 참았다.

워다나즈가 노동량으로 따지고 들면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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