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5화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네가 달고 있는 건 주둥이냐, 입이냐?
“둘 다 같은 말 아닌...”
그런 경험을 했으면 더 고등한 마법을 배우고 준비해서 적들을 분쇄할 생각을 해야지!
해골 교장은 준엄하게 이한을 꾸짖었다.
그러나 이한의 표정이 예상과 달랐다.
반성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어이없다는 듯이 해골 교장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더 어떻게...”
......
해골 교장은 하마터면 납득해버릴 뻔했다.
옛날 사람이라 마법 교육에 대해 조금 더 너그러운 기준을 가진 해골 교장이었지만, 고대 기준으로 봐도 지금 이한의 수련은 가혹한 편이었다.
하지만 해골 교장은 물러나는 대신 호통을 쳤다.
반성하지는 못할망정 변명이나 하고!
“아니... 그래도 여기서 뭘 더 어떻게 수련을...”
이한은 황당해하며 물었지만 해골 교장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배그렉을 수상한 곳에 데리고 가는 건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이야 가능하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 문제가 생길 테니까.
‘과연.’
이번에는 이한이 납득했다.
하긴 볼라디 교수를 수상한 곳에 데리고 가는 건 화약 창고에 횃불을 들고 들어가는 것과 비슷할지도 몰랐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명심하도록 해라. 그나저나... 그 마법범죄자 놈의 눈이 제법 날카롭군. 네 자질을 알아차리다니. 어떻게 알아차린 것 같으냐? 마력량? 혹은 에인로가드 내부의 평가를 엿들었나? 아니면 방학 때 했던 일들을 소문으로 들었...
해골 교장이 말끝을 흐렸다.
말하면서 생각해보니 마법범죄자의 눈이 딱히 날카롭지는 않았다.
저렇게 단서들이 많으면 머저리도 ‘어라? 저 워다나즈 가문 출신 마법사, 뭔가 좀 비범한데?’란 생각을 할 수 있으리라.
‘주의를 더 기울이긴 해야겠군...’
저번에 워다나즈가 반마법주의자들의 습격에서 기사들을 구했을 때, 해골 교장도 생각했었다.
마법범죄자들이 관심을 가질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이렇게 보니 그 예상이 맞아떨어진 모양이었다.
하긴 워다나즈의 재능이나 해낸 일들을 생각해보면 지금 마법범죄자들이 보이는 관심이 오히려 늦은 편이었다.
타고난 마법 재능에, 일반적인 마법사들과 달리 자신의 목표를 위해 전략적으로 행동할 줄도 알고, 소속된 학파도 여럿이니....
마법범죄자로 타락하면 마법범죄자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축제를 벌일 인재였다.
“아. 그거 때문은 아니고 아마 씨 서펜트 때문 같습니다. 씨 서펜트 토벌 준비하면서 마법을 많이 썼거든요.”
그래? 하긴 네 마력이라면 뒤에 묶어놓긴 아까웠겠군.
해골 교장은 무슨 소리인지 바로 이해했다.
씨 서펜트 토벌에는 교수들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참가하지 않았던가.
교수들은 전선에 직접 참가하고 학생들은 후방에서 각종 준비를 도우는 게 정석이지만, 워다나즈는 평범한 1학년 수준은 넘어간 지 오래.
당연히 전방에서 준비를 돕게 시켰을 것이다.
네 녀석이 했을 일이라면... 장비 강화? 광원 확보?
“오. 맞습니다.”
이한은 살짝 감탄했다.
괜히 교장이 아니라는 듯이,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정확하게 이한이 했던 일들을 알아맞힌 것이다.
“교수님께서 말해주셨습니까?”
아니.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묻진 않았다. 아무리 우레걸음 교수가 다른 둘보다는 사교적이지만 너무 귀찮게 해서 좋을 것 하나 없으니... 그럼 그 마법들을 보고 마법범죄자가 접근한 거냐?
“그건 근데 별로 강렬하지 않았을 거 같고요.”
항구 전체를 대낮처럼 밝게 물들였고 실제로 그것 때문에 이아놉이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도 맞았지만 이한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른 이유가 훨씬 더 유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제 생각에는 아마 냉기 화살이나 수옥탄 마법을 씨 서펜트한테 맞춘 게 좀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수옥탄? 유미디후스의?
“유미디후스 님의 수옥탄은 아니고, 제가 개량했습니다. 교수님께서 제 이름을 붙여도 된다고 허락해주셨습니다.”
이야...
해골 교장은 보기 드물게 감정을 드러내며 기뻐했다.
배그렉 교수가 굶어 뒤지기 직전의 사냥개처럼 널 몰아붙이더니 참으로 보람이 있겠구나!
“......”
이한은 정색할 뻔했다.
그걸 알면 말려야 하지 않나?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아니라 실력이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하더라도 그 정도 되는 마법을 개량해서 자기한테 맞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역시 시련이 마법사를 성장시키는군.
“...그 전까지 쌓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닐지...”
아니다. 역시 시련이 필요해. 그보다 그런 귀한 경험을 했는데도 그냥 넘어가는 건 많이 아쉬운데... 배그렉 교수가 혹시 책을 쓰라고 말해줬나?
이한은 정말로 정색했다.
아주 교장부터 교수까지 모두 개자식밖에 없었다.
“예. 말해주셨습니다.”
네가 개량한 마법에 대해서 정리하는 것 외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책도 쓰라고 말해줬나?
“예.”
그래? 배그렉 교수가 널 참 많이 아끼는구나.
“......”
이한은 해골 교장과 볼라디 교수를 제국 법정에 세우고 고발하는 상상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하여간 조심하도록 해라. 저 마법범죄자 놈이 네게 관심을 가졌다면 다른 마법범죄자 놈들도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원래 향기로운 꽃에는 벌 한 마리만 덤벼들지 않는 법이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상한 제안이나 마법에는 절대로 관심을 가지지 않겠습니다.”
너는 마법사로서 왜 그렇게 호기심이 없는 것이냐!
“......”
해골 교장은 불합리 그 자체였다.
마법범죄자들의 제안은 무시하면서 어떤 마법이나 제안도 호기심을 갖고 끈질기게 탐구해야 한다니.
하지만 이한은 흔들리거나 하지 않았다.
원래 교수들은 저랬으니까.
‘저건 그저 소음일 뿐이다.’
의뢰를 수행하느라 고생했고... 그 경험과 보상이 네 마법의 앞길에 좋은 친구가 되길 바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한은 이번 의뢰로 받을 수 있는 금화를 생각하며 진심으로 대답했다.
‘마법 연구나 실험을 최대한 값싸게 진행해서 금화를 남길 순 없을까? 피땀 흘려서 번 돈을 마법 따위에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잠깐.
해골 교장이 갑자기 멈칫했다.
이한은 자신의 생각이 들켰나 싶어서 움찔했다.
“왜 그러십니까?”
수옥탄을 씨 서펜트한테 맞췄다고 했나?
“냉기 화살도 맞췄습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어떻게 맞춘 거지?
“?”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조준해서요?”
...내가 질문을 잘못했군. 아무리 네가 앞에서 준비를 했어도 몬스터가 나왔으면 뒤로 빠졌을 텐데, 어떻게 거기서 맞췄냐는 거다.
“아... 사소한 오해가 있었던 탓에 저도 교수님들과 같이 싸웠습니다.”
......
해골 교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침묵했다.
이한은 당황해서 물었다.
“교장 선생님?”
이걸 우레걸음 교수한테 보내도록.
해골 교장은 대답 대신 쪽지를 한 장 작성해서 데스 나이트한테 심부름을 시켰다.
이한은 쪽지에 무슨 내용이 적힌 건지 신경이 쓰였다.
위쪽 부분에 ‘너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라는 글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앞으로 네가 호기심이나 관심이 없다는 말은 절대 믿지 않도록 하겠다.
“아니, 오해였습니다! 정말!”
퍽이나 그러시겠군.
해골 교장은 냉소하며 말했다.
제국에서 제일 겸손한 척하면서 저렇게 오만한 마법사라니.
맞다. 잊을 뻔 했는데... 의뢰에 참가한 학생들한테 금요일은 쉬어도 된다고 전하도록.
지금 학교에 남아 있던 학생들은 강의는 물론이고 홍수 복구 작업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밖에서 의뢰를 끝내고 돌아온 만큼, 하루 정도는 휴식을 취하며 여독을 풀 시간을 주어야 했다.
“정말이십니까?”
이한은 살짝 감동했다.
해골 교장이 이런 배려심을 보여줄 줄이야.
‘어쩌면 이런 효과를 노리고 평소에 개같이 구시는 건가?’
평소에 하도 개같이 굴다보니 하루 휴식만 줘도 ‘교장 선생님이 사실 우리를 많이 챙기시나?’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래. 주말에야 각 탑에 맡긴 당번 노릇을 하긴 해야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하루만 쉬어도 감사할 뿐입니다.”
이한은 고개를 숙이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러자 해골 교장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딜 가냐?
“예? 휴식을 취하라고...”
넌 이럴 때 마법을 배워야지. 네가 강의 없이 쉬는 날이 또 얼마나 있겠느냐. 앉아라. 저번에 안타곤달스의 아티팩트에 대해 배우고 싶다고 했었지? 의뢰에서 고생한 대가로 알려주도록 하마.
“.......”
이한은 제국의 마법범죄자들에 대해 타오르는 증오심을 느꼈다.
제국의 질서를 뒤흔드는 야만스러운 작자들 같으니라구!
* * *
해골 교장은 이한을 앉히고 저번 전투에서 노획한 아티팩트를 꺼냈다.
그리고 이아놉에게서 압수한 아티팩트를 꺼냈고, 또 처음 보는 아티팩트도 꺼냈다.
마지막 아티팩트에는 검게 말라붙은 피가 칠해져있었다.
“......”
이런. 깨끗하게 닦아놓으라고 했잖나.
-죄송합니다.
데스 나이트가 재빨리 아티팩트를 가져가더니 깨끗한 아티팩트를 갖고 왔다.
해골 교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저번에 범죄자 놈 한 명이 저항을 거칠게 해서 말이야. 자. 봐라. 이 아티팩트들은 모두 다 마법범죄자들이 만들고 사용하던 물건들이다. 여기서 어떤 공통점이 느껴지느냐?
이한은 즉시 입을 열려고 했다.
제자의 총명한 모습에 해골 교장의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우레걸음 교수 때문에 분노가 그득했지만, 역시 마법사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건 마법이었던 것이다.
“모두 다 비싼 보석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사치스러운 장식을 달았습니다. 이 옆으로 그려진 고리 모양의 장식은 마법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데 겉모습 때문에...”
...그거 말고.
무슨 금화에 환장한 것도 아니고,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던 부분을 바로 줄줄 읊어대는 제자의 모습에 해골 교장은 한 대 때리고 싶은 걸 참았다.
“그거 말고 말입니까? 마력이 불안정한 거 말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마력이 불안정한 걸 말한 거다. 그리고 보통 마법사들은 저 쓸데없는 장신구 장식보다 중요시여기지.
“그렇습니까? 후자가 더 중요한 것 같...”
해골 교장은 이한이 자꾸 헛소리를 하는 게 듣기 싫어서 재빨리 자기 말을 이어나갔다.
마법범죄자들은 마법의 힘을 증폭시키기 위해 온갖 방식들을 사용한다. 그 방식들 중에는 제국에서 금지된 것들도 많고...
해골 교장은 갑자기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잘랐다.
손가락이 툭하고 바닥에 떨어지더니 기괴한 문양과 함께 미친듯한 마력의 흐름이 터져 나왔다.
“인신공양 같은 겁니까?”
그래. 생명이나 육신을 바치는 비술은 아주 먼 옛날부터 인기가 있었지. 내가 보기에는 실력 없는 놈들의 발악에 가깝지만.
“배그렉 교수님도 혈마법을 사용하시던데요.”
맞다. 배그렉 교수도 리치가 안 돼서 그렇다. 리치가 되면 훨씬 나을 텐데.
“......”
이한은 뭐라고 하려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의 종족을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네가 쓸데없는 오해를 할까봐 미리 밝혀놓겠다. 내가 이런 비술들을 어떤 제약도 없이 마음껏 알려주지 않는 이유는 이 비술들이 위험하고 불안정해서 시전자까지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사실 이한은 마음껏이고 뭐고 하나도 안 가르쳐줘도 불만 없었다.
마법범죄자들이 뭔 기괴한 방식으로 마법의 효율을 올린다고 해서 이한이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었으니까.
효율 안 올리면 죽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가르쳤던 놈들은 다들 내가 자기들을 질투한다고 생각해서 숨기는 거라고 지랄염병을 떨더군.
‘음.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