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96화 (496/687)

496화

 자. 배그렉 교수가 사용하는 혈마법과 마법범죄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인신공양의 비술은 어떤 점이 다를까?

 “배그렉 교수님이 사용하시면 제국법으로 허가받은 정당한 마법이지만, 마법범죄자들이 사용하면 불법 아닙니까?”

 ...그것도 맞긴 한데, 마법적인 요소에 집중해라.

 볼라디 교수의 혈마법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피를 매개로 사용해 마력을 증폭시키는 비술이었다.

 아무리 마법사의 피가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시약이라지만 자기 자신의 피를 바치는 일이 몸에 좋을 리 없었다.

 고위 마법으로 갈수록 마법의 구조가 복잡해지고 마법사가 짊어져야 할 리스크도 커지는데, 거기에 이 혈마법까지 더해진다면 얼마나 불안정하겠는가.

 당장 혈마법을 개발하던 마법사도 마법 사고로 사망한 걸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법범죄자들은 영리하게 접근했다.

 -내가 위험을 짊어질 필요가 있나? 다른 놈이 짊어지게 하면 그만이지.

 “그게 인신공양의 비술이군요.”

 그래. 마법사 자신이 아닌 다른 자들의 육신을 바쳐서 위험을 피하는 기술이지.

 해골 교장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쯧쯧 소리를 냈다.

 이한은 아주 조금 감동받았다.

 그냥 미친 마법사인 줄 알았는데 마법사들이 민간에 끼치는 피해에 분노할 줄도 알다니.

 해골 교장의 다른 면을 본 기분이었다.

 저런 식의 편법은 스스로의 실력을 깎아먹는 자충수다. 마법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들어주는 편리한 기술이 아니거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고, 따라오는 위험 또한 마법인데 그걸 잊어버리면 결국 추락하게 되어 있지.

 “...아. 저는 교장 선생님께서 마법범죄자들의 사악한 범죄에 화를 내신 줄 알았습니다.”

 뭐 그것도 화가 났고.

 해골 교장은 대충 말했다.

 그래서 네가 배워야 할 것들은 다음과 같다.

 아티팩트가 달그락거리더니 일렬로 배열됐다.

 놈들의 비술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마력 패턴을 익혀둬라. 마법범죄자들을 먼저 알아차릴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과연.”

 참. 먼저 알아차리면 바로 죽여라. 괜히 자비 베풀겠다고 까불다가 당하지 말고.

 “...예... 뭐.”

 그리고 해주(解呪)도 익혀둬야겠지.

 “아. 그건 자신 있습니다.”

 이한은 발도르오른에게 배운, 일명 <마력 망치>를 준비했다.

 무식하게 마력으로 그냥 날려버리려고 하는 제자의 모습에 해골 교장은 어이가 없었다.

 ‘마력이 많으니 저런 무식한 짓을 계속 해도 다칠 일이 없구나!’

 원래 다른 마법사였다면 한두번 하다가 호된 꼴을 당하고 나서 ‘아 내가 너무 무식했구나! 마법사라면 무릇 지성으로 마법을 해제해야 하는데, 짐승새끼마냥 마력으로 부숴버리려고 하다니!’ 반성할 텐데, 이 제자 놈은 마력이 너무 많아서 반성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 무식한 방법 말고... 놈들이 시전하는 걸 봤을 때 즉시 막을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해골 교장도 마력을 무식하게 휘둘러서 완성된 마법을 깨부수는 것 자체를 부정하진 않았다.

 다른 학생 놈들이 ‘마법사에게 공부가 왜 필요합니까? 마력으로 단칼에 잘라버리면 그만인데!’라고 깝죽댔다면 대번에 거꾸로 매달았겠지만 적어도 워다나즈에게 저 방법은 맞는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저 방법이 무적은 아니었다.

 정말 뛰어난 마법사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충격까지 막을 수 있도록 마법을 짰고...

 무엇보다 워다나즈 정도의 재능이라면 무식하게 힘을 모아서 부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머리를 조금만 써도 됐다.

 너도 마법의 카운터 개념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예.”

 카운터.

 혹은 역(逆) 마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개념은 부여 마법사나 치유 마법사들이라면 특히 더 잘 알아야 하는 개념이었다.

 마법사는 스스로의 의지와 상응하는 대가로 현실을 바꿔서 마법을 구현한다.

 그렇다면 그 마법을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그 마법의 구조를 완전히 이해한 뒤 약한 고리부터 하나씩 비틀어가는 게 정석이었다.

 가끔은 외부에서 거대한 힘으로 부숴버려도 됐고...

 이 모든 개념들을 카운터라고 불렀다.

 아직은 그렇게 와닿지 않겠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중요해질 거다. 마법을 하나 시전해봐라.

 이한은 수옥탄을 빠르게 준비했다. 해골 교장의 희고 둥그런 두개골을 향해서.

 순간 해골 교장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러자 이한이 준비하고 있던 마법이 헝클어졌다. 마력으로 형성되고 있던 구조에 불순물이라도 끼어든 것마냥.

 알겠느냐?

 “약한 고리에 마력을 끼워넣으신 겁니까?”

 그래.

 해골 교장은 흡족하게 말했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스스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바로 알아차리니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흡족하기 그지없었다.

 카운터에 익숙해지면 이런 것도 가능해진다. 상대의 마법 시전 자체를 방해해버리는 거지.

 완성된 마법의 구조를 파악하고 해체할 수 있다면, 그 마법이 완성되어가는 도중에 개입할 수도 있었다.

 상대 마법의 약한 고리에 자신의 마력을 찔러 넣으면 그것만으로도 섬세한 마법은 흔들리거나 느려지거나 취소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해골 교장은 이한의 손목에 마력을 쏘아 보냈다.

 상대 마법의 약한 고리에 마력을 찔러 넣은 것처럼, 마법사의 육체에도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었다.

 훨씬 더 고등하고 복잡했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상대 마법사는 그냥 무능력자가 됐다.

 마력이 흐르는 순간 내가 찔러 넣은 카운터가 발동해서 타격을 줄 거다. 해봐라.

 쾅!

 이한의 안에서 거대한 마력이 파도처럼 흘러나오더니 해골 교장이 찔러 넣은 마력의 침을 그대로 박살내버렸다.

 “?”

 ......

 순간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그리고 그 카운터 또한 해제할 수 있지. 방금 이렇게.

 “그, 그렇군요.”

 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마법의 카운터는 확실히 쓸모 있는 개념이 맞았다.

 완성된 마법을 해제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시전을 방해하고 적 마법사를 적극적으로 견제하는 기술.

 이걸 마법범죄자들에게 사용하려면 마법범죄자들이 자주 쓰는 마법에 대해 파악해둬야 했다.

 아티팩트에서 느껴지는 마력 패턴은 익혔겠지?

 “아니...”

 아까 아티팩트 늘어놓은 다음 볼 시간도 별로 주지 않았는데 바로 넘어가려고 하는 해골 교장의 모습에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보여주시고 계속 마법 이야기만 하셨습니다. 잠시만요... 음. 다 익혔습니다.”

 엄살은 참 제국 제일이구나. 자. 다음은 약한 고리다. 그것도 패턴 익히면서 같이 느꼈겠지? 확인 정도만 해둬라.

 ‘아니 어떻게 아신 거지?’

 이한은 괜히 대마법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도를 좀 느리게 나가고 싶은 속셈을 원천차단하는 노련함이 해골 교장에게서는 느껴졌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진심으로 묻는 거냐?

 해골 교장은 멍청이를 보는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자기객관화가 안 되다니?

 자. 다음은 직접 해보자. 내가 시전할 테니 약한 고리에 마력을 찔러넣어봐라.

 “알겠습니다.”

 서둘러라! 이걸 다 한 다음에는 아티팩트에 걸린 마법 효과도 배워야 하니까.

 “......”

*         *         *

 해골 교장의 야심은 아쉽게도 실현되지 못했다.

 새벽과 아침이 지나고 금요일의 태양이 머리 위로 떠오르자 해골 교장은 아쉽다는 듯이 이한을 풀어준 것이다.

 정작 아티팩트 분석은 다음에 해야겠군. 저런. 졸리냐?

 “예.”

 리치가 되면 안 자도 되는데.

 “......”

 이한은 해골 교장을 욕하면서 걸어 나왔다.

 역(逆) 마법을 연습하느라 너무 많은 걸 한 번에 배워서 머리가 꽉 찬 기분이었다.

 ‘태양이 유난히 더 눈부신 기분이군...’

 안뜰로 나오자 곳곳에서 친구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하루 휴일을 받았지만 사실 별 의미가 없었다.

 홍수로 인해 날아간 게 많아서 그만큼 일도 늘어난 것이다.

 이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텃밭도 다시 복구해야 하는데. 나무가 많이 안 날아갔으면 좋겠군. 채소와 달리 과일은 시간이 좀 걸릴 텐데... 푸른 용의 탑 놈들은 잘 지내고 있겠지? 휴게실이 침수돼서 한 번 확인은 해야 할 텐데. 화덕도 날아갔나? 기껏 추가해놨는데 아깝군...’

 “워다나즈 님. 워다나즈 님.”

 “음?”

 이한은 고개를 돌렸다.

 랫포드가 반갑게 이한을 부르고 있었다.

 “어디 있다 오셨습니까? 어제부터 안 보이셔서 걱정했습니다.”

 “교장 선생님한테 붙잡혀 있었어.”

 “저런...!”

 랫포드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제가 어렸을 때 들었는데, 황제 폐하께서는 공명정대한 분이라 고발하는 투서를 하나하나 다 읽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아닌가?

 이한은 말하다가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자신도 헷갈려졌다.

 “오늘 휴일이지? 뭘 하고 있나?”

 “암시장 재건에 필요한 자재를 좀 구하고 있었습니다.”

 랫포드는 들고 있던 나무판자를 흔들었다.

 이한은 그 나무판자가 강의실 책상 재질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참. 랫포드. 확인해야 할 곳이 하나 있는데, 길잡이로 같이 가주겠나?”

 의뢰 때문에 외출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이한은 심층 징벌방에 갇혀 있던 졸업생 선배의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거 받아라. 나하고 내 친구들이 쓰던 방 위치야. 쓸만한 게 좀 남아있을 거다.

 쓸만한 게 있다면 최대한 빨리 먼저 가서 선점해야 했다.

 에인로가드에 있으면서 배우는 건, 아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뿐.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그 전에...”

 랫포드는 머뭇거렸다. 이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좀 주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괜찮은데?”

 랫포드는 설명 대신 거울을 내밀었다. 이한은 거울 속의 자신이 뱀파이어 종족으로 변한 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자고 올게.”

*         *         *

 보통 피곤한 사람이 조금만 잘 수는 없었다.

 이한도 마찬가지로 일어났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교수님을 불러야 하지 않나...

 -맥박은 정상이었다니까요...

 -시아나 사제님.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시체처럼 자는 건 이상하지 않...

 “...다들 고맙다.”

 이한은 불사조 탑 사제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랫포드를 만나러 갔다.

 호밀빵 사이에 토마토, 베이컨, 치즈, 양상추를 잘라 넣은 샌드위치를 한 손에 들고 걸어가던 이한은 멀리서 다가오는 랫포드를 발견했다.

 “준비됐나?”

 “예.”

 이한은 랫포드의 뒤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 무리가 낚싯대를 들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쟤네는 어디 가는 거지?”

 “아. 이번 홍수로 새로 생긴 저수지에 물건 건지러...”

 ‘나중에 가봐야겠다.’

 매우 흥미로운 소식에 이한은 솔깃했지만, 지금은 지도가 우선이었다.

 ‘본관 3층.’

 에인로가드에서도 가장 오래 된 건물인 본관은 그 역사만큼이나 예측불가능한 마법의 총체였지만, 일반론적인 법칙이 있긴 했다.

 저층일수록 비교적 안정적이고, 고층일수록 괴팍해진다.

 그런 점에서 본관 3층은 1학년 학생들도 가끔 발을 디딜 수 있을 정도로 본관에서는 안전한 편이었다.

 선배들이 쓰던 방이 그런 본관 3층에 위치해있다는 건...

 ‘운이 좋다.’

 하긴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운이 좋을 때도 있는 게 맞았다.

 이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1학년 학생은 2층의 끊어진 복도를 타고 올랐다. <숲의 생쥐>가 있는 폴리모프의 숲은 오늘 보이지 않았다.

 ‘파란 손수건 강의실 지나서 왼쪽으로 꺾고, 그 다음에는 천장을 두드려서 복도를 새로 하나 열고...’

 덜컥, 쿵, 탕, 와르르!

 벽이 사라지고 천장이 바닥이 되며 없던 길들이 만들어졌지만 두 1학년 학생들은 이미 익숙해져서 눈길도 주지 않았다.

 “...잠깐.”

 “왜 그러십니까?”

 이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지도에 적힌 문구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다음은 천장을 걸어가면 새 강의실이 하나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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