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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99화 (499/687)

499화

시무룩해진 랫포드를 뒤에 두고 이한은 거울 앞에 섰다.

새 주인인가?

‘흠.’

이한은 디레트에게 배웠던 것들을 떠올렸다.

익명의 에인로가드 선배와 대화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새 주인이겠지. 그럼 몇 년 동안 갖고 있다가 이제 생각나서 열었겠나? 그딴 걸 왜 묻는 건가? 나 참. 여기가 학교라서 망정이지 길드였다면 당장 거꾸로 처박았을 텐데.

검은 거북이 탑 소속인가.

‘오. 통하나?’

이한은 위장이 통하자 그대로 밀어붙였다.

멀리서 이한이 거울 위로 쓰는 글자를 힐끔거리던 랫포드가 매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저건 그냥 미친 사람 아닌가?’

도둑 길드에서도 저렇게 난폭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은데...

-감히 건방지게 날 떠보려고 하지 마라. 내 부하들을 보내서 징벌방에 처박아버릴 테니까.

알겠다. 거래나 진행하도록 하지.

글자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의외로 상대방에 대한 인상은 느껴졌다.

이한은 상대방이 상당히 냉정하고 침착하단 인상을 받았다.

처음 만나는 상대가 앞뒤 가리지 않고 날뛰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다니.

‘고학년에, 푸른 용의 탑이나 불사조 탑 아닐까?’

틀릴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한은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청휘단보초가 필요하다. 최소한 세 주머니 이상. 알고 있는 게 있나?

*         *         *

거울 너머의 상대는 냉정한 시선으로 답장을 기다렸다.

청휘단보초는 구하기 불가능할 정도의 약초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흔한 약초도 아니었다.

게다가 고학년 때 많이 쓰는 시약이라 2학년이나 3학년들은 잘 갖고 있지도 않았다.

거울 너머의 상대가 청휘단보초를 꺼낸 이유는 그 약초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이 간단한 질문으로 상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정보를 갖고 있다면 4학년 이상, 아무리 봐줘도 3학년 이상일 가능성이 높았다.

걸걸하게 말하는 걸 봤을 때 검은 거북이 탑 출신, 그것도 석공 길드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고.

-안다.

‘3학년 이상의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이 맞군.’

거울 너머의 상대는 생각을 빠르게 정리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의 말하는 태도가 무례하긴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아티팩트를 쓸 때 품위 있고 예의 있는 대화를 기대하고 사용하진 않았으니까.

중요한 건 쓸모였다.

게다가 지금 검은 거북이 탑 학생처럼 무례하고 오만한 사람일수록 실수가 잦지 않은가.

거래 상대로서는 더욱 더 매력적이었다.

서로 맞는다면 교환하지. 무엇을 원하지?

-산맥의 거인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마법이 필요하다. 알고 있나?

‘...4학년 이상인가? 설마 5학년은 아니겠지.’

거울 너머의 상대는 솔직히 놀랐다.

산맥의 거인들을 제압할 방법을 찾고 있다니.

대체 무엇을 노리길래?

‘산맥 쪽에 탈출로라도 있나? 아무리 그래도 그쪽을 노릴 이유가 없을 텐데?’

거인 같은 강한 마법 저항력을 가진 존재들은 언제나 마법사의 악몽이었다.

한 번 상대하려면 온 마법을 쏟아부어도 모자란 만큼 그냥 엮이지 않는 게 최선인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거울 너머의 상대는 거인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마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거인은 편법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아쉽게 됐군. 모른다.

살짝 굴욕적이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은 잠시 답이 없다가 대답했다.

-무능하군. 우리 길드에서는...

거울 너머의 상대의 눈썹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길드 출신 학생들이 강한 소속감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마주하게 되니 성가시기 그지없었다.

그런 소속감이 마법사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자기 자신의 길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다른 건?

-교내의 골렘 중에 공간 이동을 사용하는 골렘이 있다. 제압할 마법이 필요한데 알고 있나?

“......”

거울 너머의 상대는 놀란 눈동자로 글자를 노려보았다.

묻는 질문 하나하나가 놀라웠던 것이다.

원래라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겠지만, 워낙 놀란 탓에 거울 너머의 상대는 무심코 물어보았다.

공간 이동을 사용하는 골렘이 있다면 피하는 게 낫지 않나?

-이래서 길드에서 피 땀 흘려 일하지 않은 놈들은... 난관이 있다고 피해서 도망친다고?

“......”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은 그 뒤로도 몇 줄 정도 더 일장연설을 펼쳤다.

거울 너머의 상대는 스스로의 실수를 인정하며 인내했다.

-알겠다. 모른다면 어쩔 수 없지. 다음 재료들을 구할 방법을 알고 있나?

*         *         *

‘어떻게든 속여 넘기고 있다.’

이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상대는 이한이 1학년 학생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절대 들켜서는 안 됐다.

나중에 2학년이 되면 선배들을 만나게 될 텐데, 2학년부터 학교생활이 꼬이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청휘단보초...’

낮은 난이도의 마법보다는 높은 난이도의 마법에서 더 자주 보이는 시약.

주로 많이 쓰이는 곳은 부여 마법, 연금술 등이었다.

거울 너머의 상대는 정작 자기 자신의 흔적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설마 상대가 모든 학파의 마법을 다 듣고 있는 미친놈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고학년에 부여 마법, 연금술 쪽... 좀 더 넓게 잡으면 변환 마법까지도...’

애초에 고학년이라고 추측했던 만큼 청휘단보초를 요구하는 모습은 이한의 추측에 상당한 힘을 실어줬다.

오늘 가장 운이 좋았던 점은 이한이 청휘단보초에 대해서 나름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1학년 학생이 위치까지 알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이한은 저번에 우레걸음 교수의 마탑인 각수관 3층에서 청휘단보초가 든 상자를 본 적이 있었다.

3층 미궁의 17번 실험실!

공간이 왜곡되어서 책상 위에서 떨어지는 물이 천장으로 흐르던 바로 그 실험실.

거기에 보관되어 있던 시약들 중 청휘단보초를 분명하게 봤던 것이다.

우레걸음 교수는 1학년 제자가 자기 3층 실험실 구석에 있는 시약을 기억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하리라.

‘그런데 거인 제압이나 골렘 제압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이한은 살짝 떨떠름해졌다.

물론 1학년인 걸 들키지 않고 상대방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고른 질문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의 반응이 생각과 조금 달랐다.

마치 이한이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한다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볼라디 교수가 터무니없는 걸 시키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반응으로 보니...’

조금, 아니 많이 씁쓸했다.

푸른 메아닐 꽃, 동하소... 구할 방법을 알고 있다.

“!”

이한은 반색했다.

지금 상대가 말한 재료들은 메이킨 가문의 요아넨이 이한에게 알려준 예지력 강화 물약의 재료였다.

중간고사 전에는 여유가 없어서 만들지 못했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도전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중간고사 난이도를 생각해봤을 때 이 학교에서 예지력은 필수다.’

아무리 이한이라 하더라도 맨몸으로 계속 버티는 게 쉬워보이진 않았다. 비상수단이 필요했다.

-교환하도록 하지.

먼저 하겠나?

-그래.

이한은 상대가 먹고 튈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먹고 튈 경우 바로 우레걸음 교수한테 고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거울 너머의 상대에게 이한의 과감한 태도는 다른 생각을 남겼다.

‘과감하고 겁이 없군. 호쾌하고 담대한 성격의 검은 거북이 탑 학생 중에 새로 물약을 만드는 학생이 있다면...’

원래 거울 너머의 상대는 이런 부분에서 쓸데없는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번 상대는 조금 달랐다.

어떤 학생이길래 아까와 같은 것들을 물었는지 호기심이 동했다.

-네가 원하는 건 각수관 3층 미궁, 17번 실험실에 있다.

“...!”

거울 너머의 상대는 더욱 놀랐다.

대체 이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은 무슨 수단으로 각수관 3층 깊숙한 곳에 있는 약초의 위치를 확보했단 말인가?

‘연금술 학파를 깊이 듣는 학생이 분명하다.’

교수의 수제자인가?

-마음대로 생각하시지. 자. 약속한 걸 말해라.

거울 너머의 상대는 이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이 누군지는 몰라도 참으로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지독함은 에인로가드 학생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소양이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교수의 수제자가 낼름 정보를 파는 경우는 흔치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걸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냉혈한이 분명했다.

*         *         *

“다 됐다. 나중에 챙겨가야겠군.”

거울과의 통신을 끝낸 이한은 메모를 정리하며 일어났다.

디레트와의 대화와 달리 이 이름 모를 상대와의 대화는 피곤하고 긴장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만큼 소득이 있었다. 예지력 강화 물약을 만들 준비가 끝난 것이다.

‘기말 전에는 완성되겠지.’

“워다나즈 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대화 중반 때부터는 대놓고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랫포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지?”

“아까 그 말투는 대체 어디서 보고 배우신 겁니까? 저희 길드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말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상대가 의심하지 않던가요?”

“살코 보고 따라했는데?”

“......”

랫포드는 경악했다.

투탄타가 그런 이미지였단 말인가!?

‘본인한테는 절대 말해주면 안 되겠다.’

심지어 상대방한테 통했다는 게 더 놀라웠다.

“흰 호랑이 탑 친구들한테 부탁해서 갖고 오라고 해야겠군.”

이한은 혹시 몰라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에게 의뢰를 맡길 준비를 했다.

함정이 있거나 가짜 정보였을 경우에 흰 호랑이 탑 친구들이 기꺼이 희생해줄 것이다.

일을 모두 마무리하고 기지를 빠져나오자, 1층에서 어슬렁거리는 친구들이 보였다.

당번을 맡은 놈들이야 밖에 나올 수 있었다지만 원래 밤에 돌아다니다가 잡히는 건 징벌방 가기 딱 좋은 행동이었다.

이한은 너무 대놓고 어슬렁거리는 친구들의 모습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너희 거기서 뭐하냐?”

“힉! ...아, 워다나즈구나. ...헉!”

‘이 자식 방금 한 번 더 놀라지 않았나?’

유령이나 습격자인 줄 알고 놀라는 건 이해했는데, 왜 이한인 걸 알고서도 한 번 더 놀란단 말인가?

“당번 때문에 나온 거야. 이상한 의심하지 마.”

“일을 맡았으면 일을 해야지 왜 여기 있지? 당번 때문이 아닌 것 같은데?”

“......”

“......”

학생들은 매우 찔린 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결국 포기한 흰 호랑이 탑 학생 한 명이 이한에게 속삭였다.

“워다나즈. 이건 너만 알고 있어라. 오늘... 손님이 온다더라고.”

“뭐?!”

이한은 진심으로 놀랐다.

주말을 맞아 손님이 온다니.

물론 에인로가드에 꽤 많은 외부인들이 찾아오긴 했지만 학생들이 이렇게 기다릴 정도의 손님이라면 한 사람밖에 없지 않은가.

“혹시 에인로가드의 실태를 조사하러 온 제국 관료인가?”

“...아니? 그걸 왜 기다려?”

흰 호랑이 탑 학생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제국 관료가 오는데 밤 새워가면서 여기를 어슬렁거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럼 누구지?”

“이파두르!”

흰 호랑이 탑 학생은 물론이고 푸른 용의 탑 학생들까지 모두 매우 기대 섞인 시선을 이한에게 던졌다.

마치 이한이 그 이름을 듣고 ‘헉! 그 사람이 온다고!?’하고 놀라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물론 불행히도 이한은 그러지 못했다. 이한은 당황했다.

“그게 누군데?”

“......”

“...그... 음유시인... 이파두르... 몰라? 유명한데... 제국 신문에도 나오고...”

“난 그쪽 란은 잘 안 봐서. 미안하다.”

이한은 시무룩한 친구들을 달랬다. 아산은 매우 기대 섞인 얼굴로 말했다.

“난 내가 지은 노래를 한 번 보여드리려고.”

“...?”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산이 지었던 노래면...

-에인로가드. 에인로가드. 너무 좋다네. 따뜻한 식사와 푹신한 침대가 있는 곳. 에인로가드.

‘제국법으로 금지해야 하는 유언비어 노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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