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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03화 (503/687)

503화

겁에 질린 바실리스크가 시아나 사제를 물기 전에, 이한은 빠르게 말했다.

“독액 추출하려고 기른 게 아니야.”

“네? 그럼 어디에 쓰시려고?”

시아나 사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플레맹 교단에서 자라온 시아나 사제에게 있어서 동물을 기르는 건 다 쓸 곳이 있을 때 뿐이었다.

소를 기르는 건 그 우유를 얻기 위해서.

닭을 기르는 건 그 달걀을 얻기 위해서.

하물며 바실리스크처럼 위험하고 기르기 까다로운 동물을 열심히 키우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귀하디 귀한 바실리스크의 독을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독액을 추출하려고 기른 게 아니라 교수님께서 나를 공격하려고... 음.”

말하려던 이한은 너무 미친 소리 같아서 멈칫했다.

차라리 그냥 독을 뽑으려고 길렀다는 게 덜 미친 것처럼 들렸다.

“네?”

“...하여간 독액 추출하려고 기른 건 아니니까 주사기는 좀 뒤로 치워주겠나?”

“알겠습니다.”

시아나 사제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한이 저렇게 말하자 일단 주사기를 뒤로 치웠다.

새끼 바실리스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겁 주지 마. 아직 어린 새끼라서 그렇게 겁을 줬다가는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고.”

“적응하게 해야죠?”

“......”

사제라고 하면 선량하고 신실한 사람을 떠올리기 쉬웠지만, 그게 꼭 유약한 성격과 연결되는 건 아니었다.

선량하고 신실한 사람도 필요할 때면 얼마든지 광기 가득해질 수 있는 것이다.

시아나 사제는 매우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어차피 다른 교수님들도 독액을 추출하실 텐데 그냥 내버려둔다고 달라지나요? 겁 안 먹게 적응을 시켜야죠.”

“...어?”

“우레걸음 교수님도 저번에 한 번 말씀하신 적 있었는데요. 정말 바실리스크가 부화하면 독액을 좀 추출해야겠다고.”

새끼 바실리스크가 다시 부들부들 떨며 이한의 품속으로 파고들려고 했다.

이한은 달래듯이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잠깐. 교수님들이면 다른 교수님도 있나?”

“가르시아 교수님도 그 때 계셨는데, 바실리스크가 정말 부화하면 독액을 받을 수 있나 물으시더라구요.”

“!”

이한은 크게 충격받았다.

우레걸음 교수나 다른 교수들이 그러는 건 상관없었지만 그 선량한 가르시아 교수님마저 저렇게 말했을 줄이야.

‘역시 마법사들은 마법이 관련된 일이면 가차 없구나!’

마법만 관련되면 아무리 선량한 마법사라도 눈이 뒤집힌다고 봐야 했다.

이한은 다시 한 번 커다란 교훈을 얻었다.

“참. 버두스 교수님도...”

“아. 그 교수님은 안 궁금해. 달라고 했겠지.”

버두스 교수는 별로 놀랍지 않았다.

성격상 바실리스크가 부화하면 가죽을 벗겨도 되냐고 물어볼 사람이었으니까.

‘큰일이군.’

이한은 바실리스크를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겼다.

생각보다 교수들이 바실리스크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물론 나중에 바실리스크가 튼튼하게 다 자라면 독을 빌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처럼 아직 다 자라지도 못한 상태에서 주사기를 꽂아 넣고 독액을 추출하는 건 좀...

‘없던 사악함도 만들 것 같은데.’

착한 몬스터도 저런 짓을 당하면 모든 생명체를 멸종시키려는 사악한 몬스터가 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바실리스크와 같이 지내야 하는 이한이었다. 바실리스크 성격을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나 뛰어나고 신의를 지켜주는 플레맹 교단의 걸출한 인재, 시아나 사제. 혹시 바실리스크가 태어난 건 비밀로 해줄 수 있나?”

“아이 참. 물론이죠.”

이한의 아첨에 시아나 사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교수님들이 알아차리지 않을까요?”

“예상보다 훨씬 빨리 깨어나서 다들 말하지 않으면 모를 거야. ...한 사람 빼고.”

볼라디 교수는 주기적으로 바실리스크 알을 물어볼 정도로 관심이 많았던 만큼, 다른 교수들처럼 쉽게 속여 넘기는 게 불가능했다.

이한은 바실리스크를 빤히 쳐다보았다.

‘과연 괜찮을까?’

볼라디 교수는 바실리스크의 독 추출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다른 부분에는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 관심이 더 위험할지도 몰랐다.

이한의 적수로서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써먹으려고 키운 거였으니...

“혹시 나하고 싸울 수 있니?”

-......

질문을 받은 바실리스크는 오늘 보여줬던 반응 중에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듯이 바들바들 떨며 파고드는 모습에 시아나 사제는 신기해했다.

“원래 새끼 바실리스크는 유순한 건가요? 제가 알기로는 새끼 때부터 사악하고 난폭하다고 들었는데.”

“그야 주사기를 그렇게 들이대면... 아니다.”

이한은 일단 바실리스크를 달랬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교수대의 밧줄마냥 이한의 목을 파고들 것 같았다.

“내가 잘 말해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시아나 사제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참. 워다나즈 님. 만약에 독액 추출해야 하시면 불러주세요. 도와드릴 테니까.”

“......”

사제의 잔잔한 광기에 이한은 플레맹 교단에 대한 두려움이 살짝 샘솟았다.

*         *         *

“교수님.”

월요일 아침.

남들이 햇볕을 쬐며 쌀쌀한 공기로 굳은 몸을 녹일 때, 이한은 본관 지하로 내려가 볼라디 교수를 대면하고 있었다.

교수는 탁자 앞에 앉아서 처음 보는 형태의 기계식 함정을 조립하고 있었다. 이한은 그 함정의 형태를 최대한 기억하려고 애썼다.

언젠가 그 함정이 이한을 노릴지도 몰랐으니까.

“왔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비로운 스승이 철없는 제자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듯한 끄덕임이었다.

“무슨 마법을 배우고 싶나?”

“...교수님. 제가 그렇게 새 마법에 환장한 사람처럼 보이십니까?”

볼라디 교수는 물끄러미 이한을 쳐다보았다.

차라리 ‘그렇다’라고 대답해주는 게 덜 얄미웠을 것이다. 이한은 포기하고 화제를 돌렸다.

“먼저 이 이야기는 비밀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합당하다면.”

볼라디 교수는 엄격했다.

만약 워다나즈가 주말에 몰래 학교를 빠져나가 반마법주의자나 마법범죄자들을 사냥하러 간다고 선언할 경우, 이것까지 비밀을 지켜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제가 그딴 짓을 왜... 아니. 아닙니다.”

교수의 설명을 들은 이한은 반박하려다가 포기했다.

생각해보니 볼라디 교수 앞에서 몰래 외출 시도한 적도 있고 몰래 적들과 맞붙은 적도 있었으니 자업자득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억울하다.’

“그, 바실리스크가 부화했습니다.”

볼라디 교수는 조립하던 함정을 내려놓고 바로 일어났다.

“축하한다.”

‘뭘 축하한다는 거지?’

이한은 질문을 삼키고 재빨리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교수님. 예상하신 것과 조금 다른 상황입니다. 바실리스크가 일찍 부화한 탓에 성장을 덜 했습니다.”

교수의 눈썹이 휘어졌다. 그리고는 이한의 팔에 시선을 던졌다.

외투의 긴 소매 속에 숨어 있던 바실리스크는 바들바들 떨었다.

“사안은? 크기와 상관이 없을 텐데.”

“아무래도 다 못 자랐으니까 그만큼 위력도 약하지 않을까요?”

이한은 대충 던졌다.

사실 위력이 약한지 안 약한지는 바실리스크를 시켜서 뭐라도 석화시켜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독은? 석독(石毒)의 독성만 유지된다면...”

“그것도 아무래도 다 못 자랐으니까 그만큼 위력도 약할 것 같습니다.”

볼라디 교수는 소매 속의 바실리스크를 노려보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의 변화도 없었지만, 이한은 왠지 볼라디 교수가 ‘이런 배은망덕한 뱀 같으니, 내가 널 얼마나 기대했는데’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쳐다본다고 바실리스크의 힘이 갑자기 강해지거나 갑자기 사나워지진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지금 상태를 봤을 때 바실리스크가 좀 더 커진다 하더라도 이한을 적극적으로 공격할지 의문이었다.

“번개걸음 교수님에게 물어서 성장시킬 방법을 찾아보겠다.”

“교수님. 사실 제가 비밀을 유지해달라고 한 게 그것 때문입니다.”

이한은 사악한 교수들이 바실리스크의 독을 탐내고 있다고 고발했다.

특히 버 모 교수는 독뿐만이 아니라 아주 모든 걸 다 탐내고 있다고.

“바실리스크가 강해지기도 전에 그런 식으로 채취해가면 성장에 커다란 악영향을 주지 않겠습니까?”

“과연.”

볼라디 교수는 이한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했다.

눈앞의 제자가 가진 탐욕스러움을 생각해봤을 때, 바실리스크를 키우는 데에 있어서 한 치의 약화도 허용하고 싶지 않은 게 당연했다.

“알겠다. 비밀을 지키도록 하지.”

볼라디 교수는 기계식 함정을 지하실 찬장에 던져 넣었다. 공간 마법이 걸려 있었는지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지하로 연결된 바닥문을 열고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이한과 바실리스크는 같이 떨었다.

‘뭘 꺼내 오시려고 저러는 거지?’

다행히 볼라디 교수는 둘을 한 번에 죽일 비밀병기를 갖고 오는 대신 낡은 책 한 권을 갖고 왔다.

책의 제목은 무려 <사악한 괴수를 길러내는 비술>이었다.

볼라디 교수는 책의 먼지를 천천히 털어낸 다음 탁자 옆의 책꽂이에 꽂아넣었다. 강의가 끝난 다음 천천히 읽으며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

-......

이한과 바실리스크는 제발 저 낡은 책에 상식적인 내용이 적혀있기만을 빌었다.

*         *         *

“책은 얼마나 썼지?”

“...1, 1/3 정도 썼습니다.”

이한은 슬쩍 변명했다.

1/2는 너무 많아보였고, 1/4는 너무 적어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주말에 다른 일들이 너무 많았다. 숨겨진 비밀기지를 찾은 것부터 시작해서 음유시인을 안내하는 일까지 했으니.

‘너무 적나? 더 늘릴 거 그랬나?’

“생각보다 진도가 빠르군.”

‘젠장.’

이한은 후회했다.

볼라디 교수의 반응을 보니 더 천천히 해도 됐었던 것이다.

괜히 겁먹고 스스로 무덤을 파다니!

“여러 전투 마법을 배우고 있지만 아직 만족하지 못하고 있겠지.”

“전 만족하고 있...”

“씨 서펜트 사냥 때 느꼈을 거다.”

‘뭘?’

이한은 의아해졌다.

씨 서펜트 사냥 때 느낀 건 다른 친구들은 뒤에 뒀는데 이한은 굳이 앞으로 끌고 온 교수에 대한 원망 정도였다.

“회피 수단의 부족을.”

“...어, 그 정도까진...?”

솔직히 분신 마법에 강화 마법, 거기에 볼라디 교수가 (때려서) 익히게 만든 단기 미래 예지 마법 정도까지 놓고 보면 1학년 학생 기준으로는 넘칠 정도로 회피 수단이 철저했다.

거기에 이제 원소 마법으로 방어까지 추가하면 지금 수준에서는 아주 밸런스가 탄탄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봤나?”

“예? 어...”

“그래. 마법 수련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다.”

“......”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할 거면 왜 물어보는 거지?

이한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가만히 인내했다.

볼라디 교수는 현재 이한의 마법 상태가 가진 불균형을 지적했다.

몇몇 원소 마법, 흑마법, 부여 마법, 소환 마법 등 이쪽은 경험을 쌓아나가며 실력을 성장시키고 있었지만 변환 마법이나 치유 마법 같은 분야들은 아무래도 실력이 정체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교수님들께서는 딱히 그런 말을 하지 않았...”

‘담당 교수는 지금도 OK라고 하는데 당신이 왜 그러세요’라는 뜻으로 돌려 말했지만 볼라디 교수는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했다.

“르지 교수님에게 부탁했더니 변환 마법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행사가 있더군. 참가하면 좋은 경험이 될 거다.”

“그런 게 있었습니까?”

이한은 의아해했다.

다른 친구들한테서 들은 기억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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