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13화 (513/687)

513화

 서로에게 돌을 던진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이한은 해골 교장을 쳐다보았다.

 물론 해골 교장도 이한 못지않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내가 방금 한 설명 중에서 어떤 부분이 어려웠던 거냐? 멍청한 녀석도 아니면서?

 “어, 서로한테 왜 돌을 던집니까?”

 그럼 체스는 왜 하고 카드게임은 왜 하며 격구는 왜 하겠나? 즐거우니까 하는 거겠지.

 해골 교장은 이한을 한심하게 보며 딱딱 소리를 냈다.

 생각해봐라. 너는 돌을 던지고 싶은 상대가 한 명도 없느냐?

 이한은 그 질문에 무심코 해골 교장을 쳐다보았다. 해골 교장은 싸늘하게 말했다.

 왜 나를 쳐다보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 쳐다봤을 뿐입니다. 교장 선생님.”

 하여간 평소 쌓였던 울분을 돌에 담아 던지고 해소하는 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물론 그게 품위 있고 지능적인 일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제국에서는 그보다 더 멍청한 일들도 많이 일어나니까.

 성 이악투스 축제는 대충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끼리 모여서 편을 나눈 다음 서로 돌멩이를 던져서 끝까지 서있는 쪽이 승리하는 것이다.

 ‘미친 축제군.’

 이한은 가이난도가 탐정 축제를 하겠다고 했을 때 구박한 걸 후회했다.

 여기에 비하면 탐정 축제는 훌륭한 축제였다.

 “잠깐. 교장 선생님. 밖의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여기는 배움의 전당이자 제국 최고 지성들의 상아탑인데 설마 이런 축제가 진행됩니까?”

 “제일 인기 있어.”

 제일 인기 있다.

 “......”

 이한은 선배들에게 강한 경멸감을 느꼈다.

 ‘에인로가드 교육과정이 혹독하다고 하지만 빈틈이 많은 게 분명하다. 저런 쓸데없는 짓을 하고.’

 “교장 선생님. 선배들이 아직 여유가 있는 것 같은데 저처럼 커리큘럼을 늘려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진심으로 하는 이야긴데, 가끔 네가 소름끼칠 때가 있다는 건 아느냐?

 사악한 마룡이나 제국 감찰관 앞에서도 딱히 소름이 돋진 않았지만 이 제자의 광기는 가끔 해골 교장을 오싹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후배. 농담은 이해하는데...”

 ‘농담 아닌데.’

 “너 같은 천재나 그런 과정을 버티는 거지 보통은 죽을 거야.”

 “죽어도 부ㅎ...”

 “그보다 중요한 건 축제 때문에 다쳐가지고 올 학생들이지.”

 그만두면 안 된단다. 힘내거라! 너희들은 할 수 있단다!

 해골 교장은 가식적으로 치유 마법 학생들을 달랬다.

 이번 주 축제는 치유 마법 학생들의 악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서로 돌을 던지다가 다친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올 테니...

 “힘내십시오. 선배님. 하실 수 있습니다!”

 이한도 눈치껏 응원했다.

 그러자 필과 칠이 힘없이 웃으며 고마워했다.

 “고맙다.”

 “그래도 너처럼 믿음직스러운 후배가 같이해서 다행이야.”

 “...?”

 이한은 선배의 말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같이해서?

 “저도 합니까?”

 “응? 당연하지.”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하급 절상(折傷) 치유>는 이미 잘 하잖아. 그 정도면 충분하지. 몇 가지 더 익히긴 해야겠지만 그걸 익혔으면 다른 마법들도 배울 수 있을 거야.”

 치유 마법을 배우는 다른 1학년 학생들과 달리, 벌써 하급 자상이나 절상 치유가 가능한 이한은 바로 즉시 전력으로 투입이 가능했다.

 안 그래도 인력난에 시달리는 치유 마법 학파가 이한을 내버려둘 리 없었다.

 비극적인 운명을 직감하면서도 이한은 살짝 저항을 시도했다.

 “그런데 선배님들에게는 에인로가드의 마법이 걸려 있어서 제가 볼 수 없지 않습니까?”

 자. 여기 이 안경을 쓰려무나.

 해골 교장이 자애롭게 이한의 얼굴 위에 에메랄드 안경을 씌워줬다.

 선배들에게 걸린 강력한 인식 저해 마법을 뚫고 볼 수 있게 해주는 아티팩트였다.

 “...감사합니다.”

 이한은 잠깐 성 이악투스 축제에 참가해서 돌 좀 던지고 갈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         *         *

 치유실의 악마, 말하는 책은 펄럭거리며 치유 마법 학파 학생들에게 외쳤다.

 “마취 물약 더 만들어놔! 두 궤짝은 더 필요할 거다!”

 <라그린데의 마취 물약>이라고 불리는 강력한 마취 물약들을 학생들은 열심히 쌓아올렸다.

 원래 이런 비전 물약 제조법은 쉽게 공유되지 않았지만 알카시스 교수는 자기 제자들에게 이런 걸 가르치는 데에 별다른 거리낌이 없었다.

 덕분에 학생들은 더 어려운 물약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재생 물약은 이쪽에 쌓아놔! 빨리 빨리 하자! 성 이악투스 축제 구경할 시간도 있어야 하니까!”

 말하는 책은 치유실 창가를 힐끔거렸다.

 벌써 아래쪽에서 몇몇 학생들이 산발적으로 서로에게 돌을 던지고 있었다.

 -뒤져라, 푸른 지렁이 놈들아!

 -흰 살쾡이 놈들이 안 맞았더니 간이 부어올랐군. 쳐라!

 악마 출신인 말하는 책에게 저런 축제는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뒷처리가 좀 귀찮긴 하지만 즐거움을 생각해보면 참아줄 수 있었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허공에 마법 방패를 불러와서 막은 다음 돌멩이들을 마법으로 날려 보냈다.

 에인로가드에서 몇 년 배운 게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이, 순식간에 바닥에 늘어져있던 돌멩이들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더니 산탄처럼 우수수 날아갔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조금 다르게 반응했다. 허공에 역장을 쳐서 방어하는 대신 자신의 육체를 강화시켜 직접 피하는 걸 선택했다.

 순식간에 범위에서 멀어지며 공격을 피하자 말하는 책은 종이를 펄럭이며 기뻐했다.

 “그래, 그래! 몰아붙여라!”

 원래 축제는 돌멩이를 던지는 축제였지만, 뛰어난 마법사들이 참가한다면 ‘돌멩이를 던진다’도 좀 더 다양한 개념을 가지게 됐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바위를 걷어차서 투석기가 쏘아 보내듯 상대 진형에 날리자 푸른 용의 탑 학생 중 한 명이 재빨리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날아오던 바위가 그대로 모래로 변하더니 바람에 흩어져서 사라졌다.

 “저 주문을 벌써! 마력 소모가 심할 텐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면 어떡하려고?”

 그 말에 대답하듯이 흰 호랑이 탑 학생들 뒤에서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나타났다.

 마법 노포(弩砲)를 만들어 갖고 온 거북이 탑 학생들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등짝에 돌멩이들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지렁이 놈들한테 매수당했냐?! 이런 쓰레기 새끼들!

 -저번에 우리 창고를 습격해놓고 그냥 넘어갈 줄 알았나?

 -지렁이 놈들도 습격했잖아!

 -놈들은 배상금을 냈다. 죽어라!

 “훌륭해, 훌륭해!”

 “저...”

 “물약 만들라니까?”

 뒤에서 부르자 말하는 책은 성가시다는 듯이 돌아섰다.

 그러나 뒤에 있는 건 치유 마법 학파 학생들이 아니었다.

 “너는? 고나달테스 이야기라도 하러 온 거냐?”

 말하는 책은 이한을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저번 치유실에 왔을 때 서로 해골 교장을 욕하면서 즐겁게 이야기했던 학생 아닌가.

 이번에 멀쩡하게 온 걸 보니, 또 해골 교장 욕을 하려고 온 게 분명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만... 오늘은 일하려고 온 겁니다.”

 “일하려고?”

 말하는 책은 의아해했다.

 악마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치유 마법은 서투른 마법사가 멋대로 하면 더 위험한 마법이었다.

 즉 일손이 부족하다고 1학년 학생을 데리고 오면 일이 더 귀찮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너희가 아무리 절박해도 그렇지...”

 말하는 책이 필과 칠을 쳐다보자 둘은 서둘러 외쳤다.

 “그게 아닙니다!”

 “진짜 한 몫 할 수 있어요!”

 “아닐 것 같은데?”

 말하는 책은 꽤나 완고한 태도로 질문했다.

 “정말 양보해서, 자상 치유는 할 줄 아나?”

 찔리고 베인 상처는 이런 축제에서 많이 나오는 상처 중 하나였다.

 “예.”

 “그래? 절상 치유는?”

 뼈가 부러지거나 삐끗한 상처 또한 이런 축제에서 많이 나오는 상처 중 하나.

 자상보다 더 어려웠지만 이 정도는...

 “그것도 할 줄 압니다.”

 “그래??”

 말하는 책은 정말 놀랐다.

 이 정도면 정말 전력이 될지도 몰랐던 것이다.

 “<하급 생명력 부여>나, <고통 마취> 마법은?”

 필과 칠은 머뭇거렸다.

 그것까지는 후배가 할 줄 아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할 줄 모릅니다.”

 이한이 대신 대답하자 둘은 안타까워했다.

 “이런...!”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어? 설마 빠지나?’

 묘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이한은 의아해했다.

 혹시 자격 없다고 이대로 나가게 된다면 최대한 아쉬워 하면서...

 “뭐, 자상하고 절상 치유를 벌써 할 줄 알면 생명력 부여나 고통 마취 마법은 금세 배우겠지. 내가 가르쳐주마.”

 “......”

 이한은 시무룩한 표정을 숨기며 말하는 책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하급 생명력 부여>와 <고통 마취>를 한 번에 성공시켰다.

*         *         *

 “으윽, 그 자식들이 비겁하게 돌멩이에 환상을 걸어서 맞추다니...!”

 “내가 그러니까 이딴 축제 하지 말라고 했지!”

 “그, 그래도 어떻게 안 해.”

 필과 칠, 그리고 둘을 돕는 치유 마법 학생들은 치유실로 찾아오는 학생들을 타박하며 치료했다.

 친한 사이일 경우 조금 더 날카로운 비판이 오갔다.

 “아아악! 마취! 마취는?!”

 “물약 없으니까 참아.”

 “저기 있는 건?!”

 “저건 다른 물약이야.”

 “너 일부러... 아악!”

 ‘오.’

 이한은 옆에서 도우면서 눈빛을 빛냈다.

 치유 마법 학파는 손해만 보는 학파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강점이 있었던 것이다.

 말 안 듣는 놈이 있으면...

 “후배. 뼈!”

 “예.”

 이한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주문을 외웠다.

 다른 선배들이 주변 작업을 다 끝낸 덕분에 그냥 마력을 사용해서 뼈만 붙이면 그만이었다.

 뼈가 붙고 고통이 사라지자 가만히 누워 있던 부상자 선배는 이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

 “?”

 그리고 갑자기 발작하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

 “지금 징벌방 가면 안 된다고! 마법이 풀렸어! 야! 필! 뭐하는 거야! 도와줘!”

 “...교장 선생님한테 허락 받고 하는 건데요.”

 “......”

 발작을 일으키던 선배는 갑자기 멈추더니 어색한 표정으로 다시 누웠다.

 “그... 그래?”

 “예.”

 “자꾸 말 섞지 마. 징벌방 간다.”

 필은 친구에게 경고했다.

 아무리 허락을 받았다 하더라도 선배가 자꾸 말을 걸어서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괜찮을 겁니다.”

 “그래?”

 사실 괜찮을지 안 괜찮을지는 이한도 몰랐지만, 이한은 기왕 선배들 치료하는 김에 최대한 뭐라도 주워들을 생각이었다.

 물론 상황이 유리하지는 않았다.

 “아오! 이 미친 흑마법사 새끼들...! 언데드 시켜서 매복을??”

 “......”

 “변환 마법 쓰는 놈들은 그냥 다 징벌방에 가둬버려야 해! 이 비겁한 놈들이 우리 탑으로 위장해서 숨어들어 왔...!”

 “......”

 부상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탑과 다른 학파를 욕했다.

 그리고 이한을 볼 때마다 깜짝 놀라서 발작했다.

 “안 돼! 마법! 마법 걸어줘!”

 “징벌방 가게 되면 칠 너도 같이 간다!”

 “......”

 이한은 묵묵히 고통을 마취하고, 상처를 치료하고, 생명력을 부여했다. 남는 시간이 있으면 선배들과 같이 물약을 만들었다.

 옆에서 같이 움직이던 치유 마법 선배들은 붉게 충혈 된 눈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후배.”

 “넌... 우리한테 과분한 녀석이야.”

 “아닙니다. 선배님.”

 이한은 대신 속으로 해골 교장을 욕했다.

 ‘뭐지?’

 아까부터 품속에서 마력의 흐름이 자꾸 느껴졌다.

 바실리스크를 쳐다보았지만 바실리스크는 새근새근 몸에 묶인 채 자고 있었다.

 범인은 곧 나왔다. 시련의 탑에서 나눠가진 종이 뭉치 아티팩트였다.

 종이를 펴보니 벌써 누가 꽤 글씨를 쓴 상태였다.

 -이번에 성 이악투스 축제 참가할 사람?

 -워다나즈 너도 참가할 거지?

 -야 워다나즈 보고 무시하는 거 아니지? 내가 뭐 잘못했냐?

 -아 하긴 넌 원래 바빴지

 -그래도 워다나즈 너라면 참가할 거지? 참가한다고 생각한다? 뭐라도 걸래?

 -설마 겁먹은 건 아니지?

 글씨체가 똑같은 게 한 명이 쓴 모양이었다. 이한은 옆에 있던 깃펜을 집어서 답장을 썼다.

 -앙라고. 주변에 성 이악투스 축제 참가하는 놈 있으면 다리 부러뜨린다고 전해라.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