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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19화 (519/687)

519화

결론을 내린 이한은 답을 보냈다.

-이미 듣고 있다.

듣고 있다고?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상대가 놀랐다는 게 느껴졌다.

이한은 단호하게 글자를 써내려갔다.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확인해보도록.

알겠다. 확인해보도록 하지.

더 캐묻지 않고 저렇게 끝내는 걸 보니, 상대는 냉정하거나 혹은 정보를 전해준 사람을 별로 믿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둘 다거나.’

이한은 조심스럽게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건 왜 묻나?

이유를 묻는 건가?

‘아차.’

이한은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서로 누군지 모르는 만큼 쓸데없는 질문은 하면 안 됐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이한은 재빨리 둘러댔다.

-최근에 똑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서. 내가 내놓은 정보의 값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군.

목소리 높은 사람이 협상에서 유리한 법.

일단 지르고 봤는데, 다행히 상대는 동의했는지 반박하지 않았다.

그 1학년은 부여 마법에 재능이 있어 보이더군.

-그렇겠지.

만약 부여 마법을 듣는다면 내년에 내 작업을 돕게 할 생각이다.

“......”

이한은 경악했다.

‘이 학교에는 개새끼들밖에 없나?’

원래 개새끼들이 입학하는 것인지 아니면 에인로가드가 학생들을 개새끼로 만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후배가 야만스러운 축제에서 고통 받는 걸 보면 안타까워해야하는 게 정상 아닌가?

그걸 보고 ‘녀석 재능이 있군 내 일을 돕게 해야 하겠다’라고 생각하다니.

괜히 버두스 교수의 제자들이 아니었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한은 내년이 되어도 부여 마법 학파의 선배들과는 감정적인 거리를 유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괜히 친해졌다가는 무슨 일을 더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         *         *

거울 너머의 상대는 한동안 거울에 답이 없어도 놀라지 않았다.

‘파격적이어서 놀랐나?’

아마 이름 모를 검은 거북이 탑 학생도 자신이 저학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에인로가드의 저학년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말하는 내용에서 티가 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만큼 워다나즈 가문의 신입생이 2학년이 되자마자 고학년의 작업에 초대받는다는 사실을 듣고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그건 어마어마한 특혜였으니까.

갓 2학년이 된 학생이 고학년의 개인적인 작업에 참가할 기회를 받는다니!

에인로가드의 학생이라면 누구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울 너머의 상대는 상식과 규정에 얽매이는 범인(凡人)이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규칙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마법사다운 마법사였다.

이번 축제에서 신입생의 힘을 빌린 몇몇 학생들을 보니 신입생은 충분히 부름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우우웅-

생각에 잠긴 사이 다시 거울에 답장이 왔다.

-그 후배가 제안을 거절한다면?

그럴 리 없겠지. 이유가 없는데.

‘트집을 잡다니.’

거울 너머의 상대는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이 트집을 잡는 모습에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범한 능력을 가진 마법사라면 으레 따라오는 질투를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검은 거북이 탑 학생도 이 어마어마한 특혜에 질투심을 보이는 게 분명했다.

에인로가드의 학생이라면 2학년이 되자마자 초대 받는 영광이 무슨 뜻인지 잘 알 테니까.

-...호의로 말해주는 거다. 말했듯이 여러 학파 듣는 후배라고. 다른 선배가 먼저 초대할 수도 있지 않나.

“!”

거울 너머의 상대는 놀랐다.

솔직히 얕보고 있던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이 생각치도 못한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변명을 하자면 여러 학파를 듣는다는 개념이 워낙 낯설어서 놓치는 부분이 나온 것인데...

좋은 지적이군.

-그렇지?

미리 교섭해서 시간을 나눠야겠군.

그런 짓을 할 고학년 학생들과 접촉해서 포섭하거나 압박함으로서 유리하게 시간을 확보할 생각이었다.

덕분에 도움이 됐다. 이건 빚으로 생각하고 있지.

-...그래...

어쩐지 상대방의 글씨체가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

거울 너머의 상대는 무슨 일이라도 있나 의아해했다.

*         *         *

‘그냥 말 그만해야겠군.’

이한은 한숨을 푹 쉬며 깃펜을 내려놓았다.

확실히 에인로가드의 선배들은 교수들만큼이나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괜히 얕은 수로 조종하려다가 더 크게 다치게 된 것이다.

‘보상이나 물어야지...’

-그래서 대가는?

아. 그래. 잊을 뻔했군. 4층 별잡이 헛간의 세 번째 짚단을 열어봐라. 교수들이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더군.

“...???”

상대는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이한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방금 들은 정보를 정리했다.

‘4층 별잡이 헛간이면... 가는 게 불가능하진 않은데.’

당장 시험 때 4층을 가야 했던 적도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이한은 4층을 방문한 적이 몇 번 있긴 했다.

못 갈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교수들이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른 곳과 연결된 입구일 가능성이 높겠군.’

이한은 그나마 이게 가능성 높다고 생각했다.

당장 본관 지하 심층의 <거미줄 호수>도 교수들이 지름길로 애용하지 않던가.

아마 4층 별잡이 헛간도 어딘가와 연결된 지름길이 분명했다.

‘친구들을 불러서 확인해야겠다.’

*         *         *

랫포드는 궤짝을 내려놓고 먼지를 탁탁 턴 다음 한숨을 내쉬었다.

컵 안에 주사위를 넣고 패를 맞추는 게임으로 흰 호랑이 탑 학생의 빵을 탈탈 털어낸 이미르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래?”

“워다나즈 님이 크게 다치셨거든.”

“뭐... 뭐? 말도 안 돼! 누구한테?”

이한이 옆에 있었다면 ‘내가 다칠 수도 있지 내가 해골 교장이야?’라고 했겠지만, 랫포드는 친구의 반응에 공감했다.

“그래. 믿기지 않지. 나도 그래. 축제가 정말 격렬했나보더라고.”

“그, 그럴 수가...”

둘이 대화하는 사이 판 초콜렛을 어디서 구해 온 흰 호랑이 탑 학생이 외쳤다.

“다시 도전이다!! 이미르그! 이번에는 카드 게임으로! 여왕을 반드시 찾아내주겠어!”

“그, 그만하면 안 돼?”

“하! 겁을 먹었군. 하지만 그럴 순 없지! 너희 검은 거북이 탑 놈들이 암시장 규칙에 뭐라고 달아놨지? 승부를 걸어왔을 때 절대 도망치지 않는다고 달아놨잖아!”

“그, 그만하는 게 좋을 텐데...”

이미르그는 카드 세 장을 올려놓고 쉭쉭 섞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는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도박 길드 출신답게 이미르그는 아무리 이기고 이겨도 상대가 계속 도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라는 함정에 빠뜨리는 재주!

랫포드는 이미르그가 카드 섞는 걸 보며 작게 속삭였다.

“방금 말한 건 비밀이야. 워다나즈 님은 적이 많거든.”

“뭐? 워다나즈?”

머리를 탁자 위에 박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던 흰 호랑이 탑 학생이 익숙한 이름에 고개를 들었다.

뒤에 있던 친구들이 그 모습에 비명을 질렀다.

“속임수에 넘어가면 어떡하냐!”

“아, 안 돼! 이건 무효야! 이건 무효라고!”

“무효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끝났어!”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다투는 사이, 멀리서 종이 새가 날아왔다.

랫포드는 재빨리 종이 새를 챙겼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 건가!?’

-랫포드. 4층에 확인해야 할 곳이 있는데 믿을 만한 친구들 좀 불러와줄래?

“......”

랫포드는 믿을 만한 친구들을 불러서 워다나즈를 침대 위에 묶어놔야 하지 않을까 아주 살짝 고민했다.

*         *         *

랫포드, 이미르그(살코가 일이 있어서 대신 보냈다), 닐리아, 아산, 요네르, 가이난도는 3층에 모였다.

“어? 더르규는?”

“흰 호랑이 탑이잖아. 말하면 안 돼.”

“맞아. 워다나즈. 넌 지금 너무 무모하다. 네가 어떤 상태인지 생각해야지. 흰 호랑이 탑 놈들이 알게 되면 습격할 확률이 100%다.”

아산은 단호하게 말했다.

“100%는 아니지 않...”

“내가 보기에도 100%가 맞아. 아니. 120% 정도는 돼.”

“가이난도. 120% 같은 건 없...”

“다들 조용히 해라.”

이한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친구들을 조용히 시켰다.

“오늘 갈 곳이 그렇게 위험한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방심해서 좋을 건 없지. 주말 동안 학교의 미아가 되어서 갇혀 있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다들 그렇지?”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간신히 주말이 찾아왔는데 괜히 미로에 빠져서 날려버리는 것만큼 악몽도 없었다.

“그러면... 각자 위치로. 출발하자.”

한두번 학교를 털어본 게 아닌 만큼 이한과 친구들은 바로 자기 위치를 찾아 움직였다.

랫포드와 닐리아는 가장 앞과 가장 뒤를.

아산이나 이미르그는 그 다음을...

“그런데 이미르그. 살코 대신에 온 건 알겠는데 괜찮나?”

이한은 이미르그가 온 게 살짝 의아했다.

거인 혼혈이라 덩치 때문에 오해하기 쉬웠지만 이미르그는 검은 거북이 탑 내에서도 손꼽히는 온건파였다.

이런 학교 탐사를 그리 선호하지도 않을 텐데...

“받, 받은 게 있어서.”

“살코한테?”

이미르그는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지더니 거기서 병아리를 하나 꺼냈다.

그걸 본 이한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닭을 길러서 달걀을 확보할 생각이군.”

“아, 아니... 그, 그냥 기르는 건데... 귀엽잖아.”

“......”

이한은 ‘귀여운 건 배를 채워주지 않잖아’라고 하려다가 이미르그의 주먹을 보고 말을 삼켰다.

생각해보니 안 그래도 약해진 상황에서 이미르그 같은 친구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가 없었다.

“그렇군. 귀여워서 기르다니. 합리적이야.”

“...?”

옆에 있던 가이난도가 이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분명 자신이 애완 돼지를 기숙사 휴게실에서 기르겠다고 했을 때는 등짝을 때렸던 것 같은데...??

“그런데 투탄타가 왜 이미르그를 보낸 거지? 이런 암행에는 어울리지 않을 텐데.”

“아... 아. 이거 때문에.”

이미르그는 이한을 가볍게 들어 올리더니 어깨 위에 앉혔다.

“솔직히 편하군. 고맙다. 이미르그.”

좀 모양새가 추하긴 했지만 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한은 솔직하게 감사를 표했다.

“나도 다른 어깨에 올라가면 안 돼?”

“어? 어... 그, 그래도 돼.”

딱!

가이난도가 신이 나서 다른 어깨에 올라가려고 하자 요네르가 금속 국자로 뒤통수를 때렸다.

*         *         *

“별잡이 헛간... 별잡이 헛간... 여기군.”

1학년 학생들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 복도를 걸었다.

아직 대낮이었지만 절대 방심할 수는 없었다. 사실 에인로가드는 밝다고 해서 덜 무서운 곳은 아니었다.

끼이익-

“아무것도 없는데?”

“짚단을 찾아봐. 그 밑에 통로가 있을 거야.”

아산과 가이난도는 빛의 구체를 띄우고 주변을 확인했다.

“찾았어! 진짜 입구가 있어!!”

“!”

이한은 생각보다 훨씬 순조롭게 풀리는 작업 상황에 반색했다.

“잘 했어! 들어가 보자!”

“정, 정말 기말고사면...! 이번에 학년 수석은 내가 될지도...!”

가이난도의 말에 친구들은 지적하는 대신 침묵했다.

지적하는 것도 슬슬 지친 것이다.

짚단 밑의 통로는 길고 어두웠지만 일직선에 별다른 함정 같은 건 없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통로의 끝이 보이자 이한은 출구를 찾았다는 걸 직감했다.

“다들, 서로 투명화 마법 확인해. 제대로 걸렸지? 좋아. 가보자.”

끼이익-

친구들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에인로가드 주변에서도 본 적 없는 울창한 정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글 한가운데에 있는 건...

-저 녀석. 또 난동이군.

-시험 때까지는 좀 참으라니까!

...빽빽한 정글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히드라였다.

데스 나이트들은 히드라를 달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애썼다.

탁!

친구들은 재빨리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

“????”

놀란 건 이한도 마찬가지였다.

데스 나이트들이 있는 거 보니 해골 교장의 시험 같은데...

‘히드라는 너무 심하지 않나?’

“이한. 이한.”

요네르가 작게 속삭였다.

“왜?”

“그, 상대가 기말고사 준비라고 했잖아.”

“그렇지.”

“...그런데 상대는 네가 1학년인 거 모른다고 했잖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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