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521화 (521/687)

521화

이한의 눈빛이 순간 파르르 흔들렸다.

다행히 번개걸음 교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런 희귀한 녀석을 훔쳐가다니.”

“됐다. 굳이 원인을 따지면 학생들을 계속 괴롭힌 교장 선생님 때문이지.”

번개걸음 교수는 계속 불만스러워하긴 해도 학생들이 훔쳐가는 것 자체에 진지하게 화를 내진 않았다.

애초에 에인로가드의 규칙이 저런 절도를 장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속 능력 있으면 훔치라고 압박하는데 혹독한 훈련을 거친 학생들이 안 훔치고 가만히 있겠는가?

“범인으로 짐작 가는 사람들은 없으십니까?”

이한은 번개걸음 교수를 슬쩍 떠보았다.

만약 상대가 의심하는 점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수습할 생각이었다.

“글쎄, 아마 3학년 중 하나겠지? 4학년은 이제 와서 귀신닭을 훔쳐 기르기에는 너무 바쁠 테니.”

번개걸음 교수는 망치를 들고 울타리를 수리하며 말했다.

교수가 보기에는 이번 기말고사 시험을 앞둔 3, 4학년 학생들이 해골 교장의 정원에 관심을 가진 것 같았다.

여러 희귀한 짐승들이 있긴 했지만 그 중에 학생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한 건 최근에 들여 온 저 두 히드라였으니까.

그 중 4학년 학생들은 아무래도 준비할 게 많은 만큼 귀신닭에 신경 쓸 여유가 없을 테니 범인은 3학년 중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행이다.’

이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3학년 선배들이 의심을 대신 받아간다면 이한은 안전했던 것이다.

선배들이야 조금 고생스러울 수 있겠지만 원래 후배의 고통을 대신 솔선수범해서 짊어지는 게 선배의 모습 아닌가.

“참 나. 그 까다로운 녀석을 용케도 데리고 갔군.”

“그렇게 까다롭습니까?”

이한은 살짝 의아해했다.

비교적 쉽게 귀신닭을 데리고 나갔던 이한이었다.

처음에는 날뛰던 귀신닭이었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천으로 확 덮은 다음 붙잡자 반항도 하지 않고 얌전하게 따라왔다.

“그래. 성질이 보통 더러운 게 아니거든.”

“??”

이한은 자신이 귀신닭을 제대로 데리고 나온 게 맞나 살짝 의심됐다.

혹시 가짜를 갖고 나온 건 아니겠지?

‘아. 혹시 붙잡혀서 겁을 먹었나?’

“놈이 겁이 많은 편입니까?”

“아니. 성질이 더러운 것도 더러운 건데 겁이 없어서 더 성가신 놈이지.”

“......”

이한은 나중에 강의가 끝나게 되면 귀신닭을 다시 확인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제 그 얌전함이 착각이었을 수도...

“게다가 저주를 내뿜는 몬스터다.”

“아. 그건 알고 있습니다.”

이한은 저주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3학년 학생들이야 이런 몬스터를 다룰 때 뿜어내는 저주가 신경 쓰이겠지만, 이한은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어제 귀신닭이 저주를 내뿜으면서 이한을 부리로 쪼려고 했을 때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꼬꼬꼬꼬... 꼬꼬꼬꼬!!

실제로 맨 처음 성질을 내며 부리로 쪼려던 귀신닭은 붙잡혀서 저주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자 매우 얌전해지지 않았던가.

“녀석은 먹이나 주변 기후에 따라서 내뿜는 저주가 달라지거든. 특이한 녀석이지. 그래서 저주 계열 몬스터를 상대하는 법을 배우기 참 좋다고 여겼는데...”

약간 양심이 찔린 이한은 살짝 변명했다.

“대신 마력의 흐름을 읽고 어떤 저주인지 파악하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요?”

“...?”

번개걸음 교수는 이한을 살짝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다.

마법의 겉모습만 보고 어떤 마법인지 파악한다는 건 자기가 시전하지도 않은 마법의 구조를 멀리서도 느낄 정도의 재능과, 그 구조를 보고 어떤 마법인지 떠올릴 수 있는 지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게 가능하면... 1학년이 아니겠지?”

‘어라?’

번개걸음 교수의 시선에 이한은 살짝 당황했다.

이한은 종종 마력의 흐름을 읽고 그 패턴을 기억해 먼저 파악하는 일들을 몇 번 해왔던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막강한 적들을 상대할 때 주도권을 주지 않고 버틸 수가 없었다.

‘내가 이상한 거였나?’

“만약 그렇게 난폭하다면 귀신닭이 돌아다니면서 학생들을 습격하진 않을까요?”

이한은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질 준비를 했다.

훔친 귀신닭은 옛 바실리스크 오두막에 풀어놓은 상태였다.

외진 위치에, 침입자들이 오기 힘든 마법이 걸려 있는 만큼 오두막처럼 위험한 짐승을 키우기 좋은 곳도 없었다.

“그런 식으로 습격하고 다니는 놈은 아니지. 영역 동물에 가까워서. 자기 영역을 잘 떠나질 않을 거다.”

“그럼 어떤 먹이를 좋아합니까?”

“보통 닭의 먹이도 잘 먹지만 아무래도 저주의 힘을 강하게 하려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나, 마력이 좀 깃든 재료가... 잠깐.”

대답하던 번개걸음 교수는 위화감을 느꼈는지 멈췄다.

이한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너무 노골적이었나?’

“알겠다.”

번개걸음 교수는 눈썹을 올리며 이한을 살짝 노려보았다.

“너. 귀신닭을 찾아서 키워 볼 생각이군. 맞지?”

“...교수님은 정말 속일 수가 없으십니다.”

이한이 순순히 인정하자 번개걸음 교수는 툴툴대며 대답했다.

“하여간 욕심은 많다니까. 추천하지 않는다. 워낙 성질 더럽고 까다로운 놈이라 알이나 깃털이 비싸다 하더라도 치료비가 더 들 걸.”

가끔 귀신닭의 달걀이나 깃털을 안정적으로 채집해보겠다고 길러보려는 연금술사들이 있었다.

그런 시도의 대부분은 처참한 실패였다. 위험한 몬스터를 다루는 능력이 없는 연금술사들은 귀신닭에게 쪼이고 할퀴어지고 저주받아서 번개걸음 교수를 부르곤 했다.

‘...진짜 괜찮겠지?’

이한은 갑자기 걱정이 됐다.

분명 귀신닭이 고분고분해서 오두막 안에 두고 왔는데, 이한이 없는 사이 오두막을 박살내고 결계를 벗어나 도망쳤을까 걱정이 된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그런 속임수를 썼다면 이한은 다시는 몬스터들을 믿지 못할 것 같았다.

이한의 감정을 느낀 새끼 바실리스크는 품속에서 바르르 떨었다.

“잡아서 기르는 것보단 놈의 둥지를 찾아서 알이나 깃털을 갖고 오는 게 더 가능성이 높을 거다. 참. 만약 찾으면 교수들한테 갖고 가라. 아마 비싸게 사줄 걸.”

“오... 감사합니다.”

이한은 번개걸음 교수를 존경의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제자를 이렇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에인로가드에서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면 오늘은 쉬나요?”

가이난도가 머리에서 지푸라기를 털어내며 물었다.

방금 마구간의 말에 먹이를 주다가 지푸라기 세례를 맞은 것이다.

“아니. 그럴 순 없지. 원래 다음 주에 하려고 했는데, 이번 주로 당기기로 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아. 왔군.”

“!”

주변에 모여 있던 학생들은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반대쪽에서 탈것을 탄 이들이 차례대로 걸어오고 있었다.

탈것은 모두 다 제각각이었다.

누구는 말, 누구는 늑대, 누구는 타조, 누구는 산양, 누구는 거북이...

그러나 이들의 복장은 통일성 있게 똑같았다. 모두 다 같은 복장에, 그랑덴 시의 문양을 가슴팍에 달고 있었다.

아산과 앙라고가 동시에 외쳤다.

“그랑덴 시 격구 클럽!”

“...뭐? 그런 게 있나?”

이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자 두 친구는 더욱 더 경악해하며 되물었다.

“몰랐다고?!”

“그걸 어떻게 모르는 거냐, 워다나즈! 모임 참가해서 바실리스크 잡을 시간은 있으면서 그걸 몰라?”

-??

새끼 바실리스크는 학생들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언제 뭘 잡았다고?

“알아야 하는 거였나?”

“당연하지. 워다나즈. 그랑덴 시 격구 클럽은 이 근처의 귀족들이라면 누구든지 들어가고 싶어하는 명예로운 모임이다.”

“하지만 성적을 내고 있는 건 우리 기사들이지.”

“헛소리! 저번에 포상을 받은 공격수는 귀족 출신이었다!”

“그건 어쩌다가 한 번 포상을 받았을 뿐이지 않나! 원래 기사 출신들이...”

“야. 시끄럽다.”

이한은 두 친구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애초에 제국 신문에서 경제사업란만 보는 이한에게 격구 클럽이 얼마나 잘나가고 얼마나 명예가 있는지는 별 관심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하여간... 잘 나가는 단체라 이거지? 그런데 그런 곳을 왜 부른 건데? 격구하고 탈 것 훈련이 무슨 상관이라고.”

“저런. 워다나즈. 격구는 탈 것 훈련에 엄청나게 도움이 돼.”

앙라고의 의기양양한 말에 이한은 한 대 때릴까 고민했다.

근육통이 있다 하더라도 스켈레톤 전사를 시켜서 앙라고의 양쪽 어깨를 붙잡게 한다면...

“알파의 말이 맞다. 워다나즈. 격구는 탈 것 훈련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꽃이라고 할 수 있지.”

“...!”

이한은 배신감 섞인 눈빛으로 번개걸음 교수를 쳐다보았다.

털털하고 세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번개걸음의 성격상, 제국 격구 클럽이 뭘 하던 별로 관심이 없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 또한 격구에 관심이 있었을 줄이야.

“아니 그냥 훈련을 하면 됐지 뭐하러 격구까지 해야 합니까?”

“더 재밌고 더 흥미롭게 할 수 있으니까...? 아니, 워다나즈. 격구를 싫어하기라도 하는 거냐? 넌 당연히 잘 할 줄 알았는데.”

번개걸음 교수가 오히려 더 황당해했다.

일단 귀족 가문 출신에, 말 타는 것에 능숙한 이상 격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더 특이했던 것이다.

격구는 기사들의 격렬한 스포츠일뿐만 아니라 귀족들의 사교적인 교양이기도 했다.

“싫어하진 않고 그냥 관심이 없었을 뿐입니다.”

“그게 싫어하는 것 같은데... 하여간 신기하긴 하군. 너처럼 사교적인 녀석이 격구에 별 관심이 없을 줄이야.”

이한은 아픈 곳을 찔렸다.

하긴 사교성을 키우기 위해 춤과 노래도 연습하는데 격구라고 연습하지 말란 법도 없었다.

제국 고위 관료들이 격구를 좋아한다면 이한도 마땅히 격구를 연습하고 ‘저는 그랑덴 시 격구 클럽 소속입니다 하하’같은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할 터.

“...이번 기회에 관심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잘 됐다, 워다나즈!”

“그래. 우리가 너한테 격구의 매력을 알려주마!”

아산과 앙라고가 신이 나서 이한의 양 어깨에 팔을 올리고 외쳤다.

이한은 친구들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맞기 싫으면 둘 다 팔 내려라.”

“...화, 화낼 건 없잖아...”

*         *         *

격구는 탈것을 타고 하는 축구에 가까웠다.

탈것을 타고, 손에 든 긴 장대로 공을 쳐서 골대에 넣으면 되는 스포츠.

하지만 언제나 간단한 규칙일수록 그 향방은 복잡해지고 심오해지기 마련이었다.

격구에 미친 제국 사람들은 승리하기 위해 온갖 복잡한 수단과 전략들을 동원해왔다.

“탈것은 기본적으로 자유지만, 제국 규칙에 제한된 크기나 질량을 넘겨선 안 된다. 워다나즈. 네 폰리그는 아슬아슬하게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리폰을 타고 나가도 되나...?’

이한은 변신시킨 몬스터를 타고 다녀도 되나 싶었지만 번개걸음 교수가 별 말 없는 거 보니 괜찮은가 싶어서 넘어갔다.

“장대로 상대의 어깨 위를 타격하거나 베면 안 된다. 찔러도 안 되고, 마법을 시전해서 떨어뜨려서도 안 된다.”

“......”

“...누가 그런 짓을 합니까?”

학생들이 황당하다는 듯이 묻자 번개걸음 교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너희 선배들이. 꼭 못 하는 놈들이 성질을 잘 부리더라고. 들어가기 전에 먼저 마법 걸어선 안 되고... 대충 안 된다 싶으면 하지 마라. 밖에서 온 손님들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지진 말고.”

번개걸음 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웃었다.

<그랑덴 시 격구 클럽>에 소속된 선수들은 나름 오랫동안 경기를 뛰며 호흡을 맞춰 온 사이 아닌가.

지지 말라고 한다고 안 질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번개걸음 교수는 진지했다. 거대한 종이를 꺼내더니 허공에 띄우고 말했다.

“자. 봐라. 너희가 열세지만 허를 찌르면 분명 이길 수 있다...”

그 눈빛에는 농담기라고는 조금도 없이 매우 진지한 승부욕만이 번뜩였다.

번개걸음 교수의 눈빛을 본 학생들은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렸다.

교수는 정말로 학생들이 이기길 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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